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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2/04 19:39:14 |
Name | 삼공파일 |
Subject | 5분으로 완성하는 현대 철학 족보 |
철학과 남자/여자와 소개팅하신다고요? 이거 하나면 소개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원래 밑에 뤼야님 라캉 글에 쓴 댓글인데 배꼽 치고는 커져서 빼옵니다. 소개팅에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간단하게 썼습니다. 수박 겉핡기로 묻은 농약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 중심으로 계보를 그리면 에드문드 후설이 "현상학"을 창시합니다. 수학자였던 그는 당대 유행하던 심리주의(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그려지는 환상이다)를 배격하고 학문의 기반으로서 철학의 지위를 되살리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현상학을 정립합니다. (본문과 관련하여 재밌는 후설의 명언 중 하나가 데카르트가 데카르트의 생각을 오독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어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을 배워서 "존재론"을 창시합니다. 하이데거는 후설처럼 학문을 정립하는 천박한 작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플라톤 이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제 위치로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이론을 존재의 현상학이라고 하고 후설은 그런 비과학적인 이름을 슬퍼하지만 하이데거는 그를 인간적으로도 무시합니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합조하던 하이데거를 유태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결별 후에 하이데거의 죽음의 철학을 "생의 철학"으로 해석하여 정치 철학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합니다. (하이데거를 떠나서 칼 야스퍼스 밑에서 공부합니다. 칼 야스퍼스는 키에르키고르와 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맥락에 있습니다.) 레비나스가 하이데거 철학을 프랑스에 들여옵니다. 그러면서 하이데거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윤리학"을 내놓습니다. 최종 보스 등장 전까지 묻힙니다. 레비나스가 들여온 하이데거를 그의 친구였던 사르트르가 봅니다. 사르트르는 형이상학보다도 존재 자체에 관심이 있었고 하이데거의 시간을 역사로 해석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면서 존재를 역사 앞의 주체로 상정한 "실존주의"를 창시합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한 주석이자 답장이자 반박인 "존재와 무"를 씁니다.) 사르트르는 이제 프랑스의 상징이자 자체가 됩니다. 프랑스 정부의 알제리 침공을 비판하고 68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됩니다. 친구였던 알베르 카뮈가 "프랑스 입장에서 알제리를 침공할 수도 있다"라고 하자 역적으로 몰아 버립니다. (카뮈는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사르트르가 추도사를 합니다.) 사르트르의 아성을 인류학자가 무너뜨립니다. 루소를 탐독하던 레비-스트로스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부족들을 관찰하며 인류 문화의 공통적 기원을 토템에서 발견합니다. 이를 구조라고 생각하여 통칭 "구조주의"를 창시합니다. 그는 저서인 "야생의 사고"에서 뜨거운 문명과 차가운 문명에 대한 묘사를 하며 다른 것을 못 받아들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야말로 원주민 같은 차가운 문명이라고 촌철살인합니다. (사르트르는 역사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반박해보지만 이미 승부는 KO로 끝나 있었죠.) 그리고 이 족보의 최종 보스는 자크 데리다입니다. 칸트부터 시작해서 레비-스트로스까지 천천히 몽땅 다 읽고 얘기해주면서 '너희 생각은 사실 이런 거야'라고 저자들에게 지적해줍니다. 데리다 앞에 텍스트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른바 "해체주의"를 말합니다. 레비나스의 논문을 가져와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오해가 있지만 꽤 좋은 글"이라고 평해 한 수 가르쳐주고 유명해지게 합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어떻게 루소를 오독했는지 설명해주고 야만과 문명을 구분 짓지 않는데 평생을 바쳤던 그의 텍스트를 "에덴 동산을 묘사하는 창세기 코드"라며 박살냅니다. 그... 그리고 탈모인인 푸코는 족보 쓰지 말라고 합니다. "지식의 계보학"으로 족보를 쓰면 지식이 우리를 부당하게 지배함을 설파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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