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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1/31 03:41:36
Name   Thursday
Subject   2021년 날 불안하게 하는 것
1월의 마지막 날이로군요..

작년 연말, 그리고 올해 첫 하루 동안의 일을 일기로 썼던 글입니다.
절 집어삼킨 짙고 어두운 불안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또 극복하기 위해 두들긴 글이지만 쉽지 않군요.
특정 대상에 대한 불신과 분란을 일으킬 의도로 쓰여진 글이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된 사례들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믿기 쉽지 않겠지만 저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것은 매우 진지한 글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웃기만 해서 위로받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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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2021.01.01

며칠 손가락이 아팠다.
사실 조금 따끔할 뿐이고, 요 근래에는 손을 잘 쓰지 않아서, 또 자주 씻느라 살이 밀리고 까져서 그랬겠거니 싶었다.

자세히 살피지도 않았다. 그냥 벅벅 닦고 문지르고 그랬으니 깨끗하리라 여겼다.
그러다 어제 아침(31일) 지독한 통증에 벌떡 일어난 뒤에야 나는 심각성을 깨달았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조금만 스쳐도 아파 뒈질 것 같은 거다.

근래의 여러 이슈로 아파트 하나를 혼자서 쓰며 외부출입을 자제(사실 아예 나가질 않았다. 친구들 몇 명만 방문했다.)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계절이 바뀌는 풍경은 보아도 그걸 직접 피부로는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난 이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가야했다.

저 병균 가득한 세상으로 나가야하다니, 하지만 너무 아팠다.
미칠 것 같았다. 참아보려다 포기했다. 통증 부위를 자세히 보다 작은 점같은 흔적이 보였는데, 그 안쪽으로 보이는 흔적상 검은 가시 같은 게 박혀있는 것 같았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어린 시절 샤프심이 박힌 손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쉬울거다.  그런데 지금 난 샤프를 쓰지도 않을 뿐더러, 샤프도 없는데? 그러다 며칠 전 길어진 머리카락의 아래쪽을 바리캉으로 밀고 머리를 감으려다 손가락이 따끔했던 걸 기억했다.

...그래. 머리카락이었다.

부어오른 살 아래 까맣게 점처럼 보이는 흔적 안쪽 깊게 실처럼 보이는 흔적이 증거였다. 머리카락이 분명했다.

허참, 이 빌어먹을 머리카락.

한동안 살펴보니, 박혀있는 건 분명하나 어떻게 들어갔는지, 또 이미 살이 메꿔졌는지 구멍이나 머리카락을 끄집어낼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걸 빼내려면 칼로 째고 빼야만 했다.

그리고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궁시렁거리며 병원부터 알아보고 오랫동안 운전을 안해 배터리가 방전됐을지 모를 차를 걱정하며 집을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시동이 걸리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정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튼 정형외과의는 내 설명을 듣고, 손가락의 상태를 보곤 엑스레이를 찍어도 상태가 확인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어르신들께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태도와 또 그 친절한 목소리. 예약시간이 조금 밀려도 한 명 한 명 길게 묻고 확인해주는 의사양반을 보고 호감이 갔다.

신뢰가 갔다.

오랜 병원 생활로 나는 안다. 빠르게 예약시간에 맞춰 환자를 살피는 의사도 많지만, 이렇게 자세히 봐주는 선생이 흔치 않다는 것을. 내심 좋은 선생이구나 싶었기에 친절하게 "어떻게 오셨어요?" 라는 물음에 머리카락이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침묵은 2초가 되지 않았다.
어딘지 매섭게 나를 쏘아보는 듯한 선생의 눈빛에 불만과 불신이 섞인 걸 보곤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평소라면 왜 그가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는지, 또 내가 그럴만한 여지를 줬는지에 대해 생각하거나 다른 요인을 살폈겠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아파서 뒈질려는 중이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상처를 확확 거칠게(?) 만지는 의사양반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으윽, 흐윽, 아흐윽, 따흐악! 하는 날 보고, 아이고 아프세요? 하는 게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불만이 생기려는 걸 꾹 참고 내 손을 치료해줄 양반이니 나쁜 생각을 멈췄다. 그러다 나를 겁주려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무서운 소리를 한다.

이게 지금도 염증이 심하고 안에 농도 차고 그랬는데 더 늦게 왔으면 큰일날수도 있다 심하면 손가락을 자를 수도 있다. 평소 조심하시라 상처가 작아도 얕보지 마라.

옳은 소리고 바른 소리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게 느껴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주사를 맞고 마취하고, 긁어내고... 등 어떻게 시술할 건지 듣고 동의한 뒤 이 별것 아닌 일을 끝내기로 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그저 의사가 처음 내게 보인 불신과 불만조차도 일이 이리 되도록 방치한 한심한 환자에 대한 답답한 때문이라 싶었다. 그게 어느정도 맞는 것 같기도 했고..

"마취 조금 아파요."

그래.

난 가볍게 생각했다.

마취? 아프겠지. 마취가 제일 아프겠지. 하지만 처음 한 번일 뿐이다. 무엇보다 나 좀 많이 아파봤잖아? 투병 생활도 길었고, 그 외 전신마취(9초까지 기억한 게 단 한 번이다. 대개 10을 말할 때 정신을 잃었다.)외에도 이런 국소 마취는 자주 받아봤다. 교통사고도 무려 일곱 번을 당했고 다리가 부러지고 날아가 처박히고 별의 별 자잘한 사고는 끝이 없었다.

알보칠이 유행하기 전 치과 선생님은 스트레스에 입안 가득 구내염이 '피어나는' 내가 안타까워 알보칠을 선물해줄 정도였고 나는 그 희석되기 전의 것을 처음만 아프면 되니까! 라며 학창 시절 잘도 사용했었다. 하얗게 핀 구내염 두개가 점점 커지다 합쳐져 새끼 손가락 한마디 만한 크기가 되는 걸 본 이후 나는 구내염이 생기면 알보칠을 들이붓는다.

팔이 탈구 됐을 때는 어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바닥을 잘못 짚은 팔이 탈구되어 어깨 위로 올라왔을 때, 순식간에 부어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인체의 대단한 신비란, 거의 몇 초만에 확 부어올라 외투가 빵빵해지는 걸 보니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인가 싶을 정도였다. 당시 주변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없고(사실 많았다. 친구와 기숙사 헬스실에서 운동을 한 뒤 취업한 친구 축하 파티를 가기로 했는데, 굳이 몸을 씻고 가겠다고 나 혼자 고집을 부린 게 문제였다. 나는 몸을 씻고 난 뒤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기숙사 옆 으슥한 샛길로 갔는데, 문제는 그 샛길이, 사고 현장이 여자 기숙사 근처였다. 그곳에서 구급차가 오고 난리가 났다면 왜 거기에 있었던 거죠? 등의 온갖 오해에서 치달은 질문과 누명에 시달리다 자살했을 거다.), 탈구된 팔 방향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지독하게 아팠지만 그저 멍하니 있다간 동사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내가 왜 이곳에서 죽었는지 온갖 개소리가 퍼지겠지. 동사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온갖 개 같은 오해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아무튼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내가 팔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해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

처음만 아프면 됐다. 처음만.

물론  여담이지만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 의사선생에게 말하니

"엑스레이상 멀쩡한데? 너가 팔을 맞췄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마라 그게 쉬운 줄 아냐? 정 네 말이 사실이라 쳐도 근육이 찢어졌으면 mri 찍어야 한다. 그런데 내 보기엔 아니야~ 정 뭐하면 팔걸이나 차던가. 좀 그러면 MRI라도 찍어볼래?"

당시에는 집 사정이 어려웠기에, 또 억울했지만 안 믿는다면서 구라 좀 작작치라는 의사 새끼의 면상을 들이받고 싶은 걸 꾹 참고 병원을 나서야했다. 물론 내 어깨 근육은 완전히, 시쳇말로 씹창난 상태였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지인이 운영하는 바에서 바카디를 글라스로 털어먹고(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집에가서 쿨쿨 처잤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다. 결국 버틸 수가 없어서 mri를 찍었고 의사는 그제야

"엌ㅋㅋㅋ 야, 다 찢어졌넼ㅋㅋㅋㅋ 이야, 어떻게 참았냐; 야, 당장 수술 해야겠다."

아무튼, 나는 참 다양하게 아팠다. 마취 경험도 셀 수가 없다.
나는 그의 경고에 통증을 각오하긴 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딸그락딸그락.

의사선생이 말했다.

"아파요."

그래. 아프겠지. 하지만 참을만 할 거다.

푸욱!

그래서 정신 나가는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흐으으엌! 하고 비명을 질렀다. 민망해 얼른 신음을 삼켰지만, 의사는 "움직이면 안된다고 했죠?" 하면서 아주 그냥 비틀고 쑤시고 난리였다. 이정도로 거칠게 주사를 놓았던가? 이게 사실이고, 이게 최선이었나? 그래도 마취약의 효과는 대단해서 곧 손의 감각이 사라지고 통증도 사라졌다.

손가락을 칼로 갈라 벌리고 후비고 안에 든 더러운 것들을 긁어내는 모습을 감각없이 보고 있자니 더럽고 역겨워서 손을 씻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살을 가르고 비틀어 긁고 주변 살을 도려내는 걸 남일처럼 구경하고 있자니 의사 양반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훅 사라졌기도 했고.

의사양반이 이물질을 꺼내서 보곤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하, 참 이게 말이되나. 머리카락이 손에 박히네."

의사 선생의 말에 고막에 머리카락이 박히는 사례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사실이다. 내 친구의 이야기니까. 친구는 지독한 두통과 통증으로인해 평소 앓고 있던 이의 신경 문제인가 싶어 치과에 갔다가, 이비인후과에 갔고 고막에 머리카락이 박혀있었다란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카락이 손에 박힌 걸 의심하지 않았다. 미용하는 옛 동생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자기들도 그런 일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머리카락은 살을 파고들 수 없다라고 고집부리는 것 같았다.
침묵하는 의사는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고 내가 탐탁찮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양반은 왜 나한테 불만을 가졌는가.
뭣도 모르는 환자 새끼가 아는 척 하는 것 같아서 좆같았나?

그러고보니 살을 도려내고 안의 이물질을 긁어내는 모습이 끔찍해 결국엔 고개를 돌렸지만, 좀 살을 너무 크게 자르고 너무 막 쑤시는 것 같지 않았나? 시술 이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뻥 뚫린 구멍도 그렇고...?

괜한 의심이 막 피어나려 했다.

의사양반이 떠나고 남자 간호사가 말하길 내일은 병원이 쉬기에 토요일 일찍 와서 드레싱을 받으라, 전했다.

사람이 보기 싫어 매우 이른 시간 첫 예약을 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조제받은 뒤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 의사 선생이 왜 내게만 퉁명스럽게 했는지 슬슬 깨닫고 있었다. 통증이 좀 가시고 나서야 보이게 된 것들이 있었다.  

그 의사는 대머리였다.

갈수록 빈약해지고 허약해지는 자신의 모발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부정하려는 대머리.

그것도 젊은 대머리 후보자.

결론에 도달하자 수많은 사례들이 나를 덮쳤다.
대머리들이 나에게 저지른 온갖 짓들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문명인이다. 나름 배운 사람이다. 대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나쁜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좋은 대머리들을 떠올리려 했다. 당장 영화들만 봐도 많은 착한 대머리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착한 대머리들이 나쁜 대머리들을 박살내는 영화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젊은 시절엔 후보였으나 이후 대머리가 된 경찰이 악당들을 박살내는 정말 죽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어떤가? 그밖의 대머리들이 구한 세상을, 영웅이 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대머리들이 세상을 구했다는 것을 여전히 세상을 지키고 있음을 인지하려 했다. 대머리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아무튼 떠올리려 했다. 그래. 드웨인 존슨도 대머리 잖나. 반 디젤도 대머리고, 제이슨 스타뎀도 대머리다. 프로페서 엑스 페트릭 스튜어트도 대머리다! 히트맨의 바코드맨도 대머리지. 게다가 드웨인 존슨은 거대 원숭이의 친구인데다, 지구를(떠올려보면 지구가 미국인가 헷갈리지만 아무튼) 지킨 대머리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당장 일본 만화에 나오는 세계관 최강자 원펀맨도 대머리다. 드래곤볼에서 나오는 지구에서 가장 인간 Z전사도 대머리(였)다.

무엇보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도 대머리다.

당장 대머리가 나의 친구란 말이다.

탈모로 약을 먹는 다른 친구들이 주변에 은근히 있다. 이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내 친구이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대머리가 전부 나쁜 건 아니다. 이들은 착하다. 그런데,

일전 차사고에서 날 후려친 그 새끼. 그저 친절하게 끝내려던 걸. 가볍게 넘어가려는 걸 이 악물고 지랄을 하게 만든 새끼도 대머리였다. 가만히 떠올려 보니 어릴 때 나를 치고 뺑소니 치려다 잡힌 새끼도 대머리였다. 그야말로 나를 몇 번인가 차로 쳐죽이려고 했던 작자들은 모두 대머리였다. 그래. 대머리였다. 내 어깨 수술을 하기 전 “아, 야, 그게 말이 되냐 엌ㅋㅋㅋㅋ” 하면서 일단 불신하여 일을 키운 것도 그 의사 자식도 대머리였다.

볼드모트도 대머리였으며 오스틴 파워즈의 닥터 이블도 대머리였으며 MCU의 대표적인 중간 악당들은 대다수 대머리였다. 아이언 몽거의 오베디아 스탠도 대머리였으며 레드 스컬도 대머리였다. 킹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DC의 최강의 악당 렉스 루터도 대머리다!

아니, 대머리 마이클 조던이 농구로 우주를 구한 스페이스 잼은? 우주를 구한 대머리도 있잖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우주를 반으로 절단 내버린 타노스가 대머리다.

영화라곤 해도 우주를 절단내버린 게 대머리라고.

대머리
대머리

새해 첫날 부터 대머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니 한 해의 마지막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대머리 생각 뿐이다.

악몽까지 꿨다. 대머리들이 내 손을 자르고 차로 날 치고 내 어깨와 무릎을 박살내고 내 간을 으깨고 왼발가락들 짜부러뜨리고 내 림프 가닥을 뜯어내는 꿈을. 꿈을 해석해보면 나는 대머리를 두려워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대머리들이 가진 폭력성에 굴복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내가 왜 대머리를 두려워해야하나? 계속 예민해진다. 손가락이 불편하고 아파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손을 못 씻어서 더 짜증나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씻지 말라는 말에 비명지르면서 거품을 내고 손수건으로 박박박박 닦았음에도 그렇다.

나는 대머리를 두려워하는가?

우리집은 친가도 외가도 어르신들이 사자갈기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랑했기에 나에겐 탈모유전자가 약하다. 언젠가는 발현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약하다. 실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버지같은 형님 등을 봐도 다들 머리가 수북하다. 그래서 나는 대머리에 대해 악감정을 굳이 가질 이유가 없다. 대머리로 인해 자격지심을 가진 적이 없는데 굳이? 그렇다고 내가 유행하는 대머리 희화화 밈에 완전히 세뇌되어 대머리는 나쁘다는 식으로 진심으로 믿어버린 걸까? 내가 그 정도로 타락한 머저리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지능수준이, 내 사고방식이 그 정도로 낮고 또 편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탈모에 대해 무지한 것도 아니다. 내 주변 사람 중에 대머리 후보자가 몇 명인데? 이들이 열심히 내게 들려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생각해보면,

나는 이들 대머리들에 대한 어떤 무지에 의한 분노, 그래, 미지에 대한 공포조차 품을 이유가 없다! 당장 내 아버지만 해도 머리가 풍성하신데 왜? 할아버지도 아주 그냥 머리가 엄청 기셨는데? 내 주변에 수많은 유전적 증거마저 있는데? 내가 왜 이런 것에 공포를 가져야 하나!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건가?

점점 대머리가 싫어지려한다. 입에 착착 붙는 탈모르파티를 흥얼거리다 탈모가 꽤 진행되어 고민 중인 친구 앞에서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젠장!) 며칠을 미안해 괴로워하며 이불을 발로 차고 비명지르고 마음 고생했던 나였다. 설마, 대머리에게 죄책감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 대머리를 이리도 부정하려는 걸까? 내가 그렇게 머저리라고?

망할 대머리. 대머리. 날 몇 번이고 죽일 뻔했던 대머리. 대머리.

온갖 경험에서 축적되고 학습되어 생성된 대머리에 대한 불신감과 혐오감이 내 안에서 몸집을 불려나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다...

하. 앞으로 대머리를 보면 일단 안 좋게 볼 거 같다.
아니, 그건 좀 과할 수도 있다.
이게 바르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난 앞으로 대머리를 경계할 것 같다..



10
  •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 빨려들어가듯이 읽었습니다
  • 저는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을 보고 계시네요.
  • 자라나라 머리머리
  • 훌륭한 인내와 인성 그리고 문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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