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무렵 이사와 전학을 했습니다. 명색은 부모님이 오랜 객지 생활끝에 장만한 집으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심신이 허약하고 예민했던 저는 바뀌어버린 환경이 낯설기만 했지요. 전학가기 전 저를 맡아 가르쳐주셨던 담임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제게(정확히 이야기하면 반 전체 학생들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게하고, 추억에 젖게 하고, 가끔 그리워 눈물나게 하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두고 온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워 한동안은 매일밤 베게를 적시며 울었습니다.
한옥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양옥도 아닌 것이, 머리에는 햇빛에 바랜 기와를 얹고, 좁은 땅을 활용하느라 수돗가가 전부인 마당이 있던 집이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의 모습입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착해집니다. 봄에는 좁은 골목에 너나 할 것 없이 낡은 스티로폼 용기나 못쓰게된 대야에 물빠짐 구멍을 내고 흙을 채워 채소 모종을 심고, 여름에는 어느새 그것들이 자라 꽃을 피우고 가지나 호박이나 토마토 따위가 매달리고 익어가는 모습이 어린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골목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가 설핏 깨면,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들이 골목을 지나며 부르는 노랫소리도 저는 싫지 않았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이 대문 앞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교복을 불량하게 입고 담배를 피워대는 언니, 오빠도 좋기만 했습니다. "야! 꼬마야! 너 여기 사냐?" 이렇게 물어오면, 저는 얌전하게 "네..."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제 대답이 우스운지 그들이 웃음을 터뜨릴때면, 그게 왜 우스운지 한참이나 생각하곤 했지요.
바닷가에 만들어둔 모래집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파도에 휩쓸려 가고나면 어리둥절해져서 그 흔적을 찾아보듯이, 골목만 보면 사진 한 장 담기 바쁩니다. 이 골목 어딘가에 이웃집 할머니가 낡은 매트에 고추나 나물을 말리던 모습과, 같이 놀자며 저를 부르던 친구들과, 가을 바람에 굴러다니던 낙엽과, 우리 강아지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체부동의 한 골목을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