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아마도 7월 중순경이었을 겁니다. 일기예보를 통해 한반도가 태풍 너구리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여 제주 남부 먼바다와 제주 서부 앞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지요. 먼바다와 앞바다... 일기예보에 사용될 정도로 '공식적인' 두 바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내 눈 닿는 그 어디쯤 먼바다와 앞바다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일기예보를 들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먼바다와 앞바다...그 경계가 모호하기에 제게 아름답게 들리는 단어입니다.
잠시 어부의 아내가 되어봅니다. 바닷가 어떤 허름한 집에서 라디오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웃의 고기잡이 배들은 발이 묶이고... '고기잡이 배의 발이 묶이다'... 이 말은, 과연 '앞바다/먼바다' 만큼이나 공식적이지만, 역시나 듣기 좋은 말이죠. 바람이 마구잡이로 불어서 심술궂은 유령들이 일으키는 소란인 듯 집안 곳곳이 시끄러워 집니다. 창문이 들썩이고, 문은 삐걱대며, 마당에 둔 물건들은 갑자기 영혼이라도 생긴 듯 절로 쓰러지거나 굴러다니기 시작합니다. 우리집 바둑이, 옆집 흰둥이 짖어대지요.
그럼 부스스한 얼굴로 잠이 깨어 마당으로 나서지요. 짖어대던 바둑이가 꼬리를 붕붕 흔들어 댈테고, 그런 녀석을 한참이나 쓰다듬어 주어야겠지요. 이런 날씨엔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갑자기 무력해진 나머지 좁은 집안을 뱅글뱅글 돌며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기도 하겠지요. 시야가 흐려져 먼바다는 보이지도 않을 테고요. 먼바다부터 앞바다까지 미친 듯이 출렁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은 감자를 찌고 방구석에 자리를 펴고 누워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읽을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날, 차안에서 찍은 습기가득한 사진입니다. 앞바다도 먼바다일 뿐인 서울 한복판에서 풍랑주의보를 듣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엉뚱한 상상을 한 날이었습니다. 정말 일하기 싫었어요. 당장 바람부는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었죠. 이번 주만 잘 보내면 무시무시한 더위도 한풀쯤은 꺽인답니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