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은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불러다오.
당신이 오래 전에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것을 물었는데 당신은 그 대답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아주 힘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그건 자정무렵이었고, 그리고 스토브 안에서 불길이 조종(弔鐘)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1968) 중에서 -
지난 봄에 찍은 사진 중에 운좋게도 얻어걸린 예쁜 사진을 올리고 싶어 핸드폰의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의 한 구절을 메모장에 저장해 둔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전작
[미국의 송어낚시](1967)를 통해 운문에 가까운 아름다운 문장으로 문명사회를 비판하며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고, 그 다음 해에 가공의 마을인 아이디아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화인
[워터멜론 슈가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도처에 강이 있고, 그 강에는 송어들이 살고 있지요. 강에는 죽은 사람들과 함께 도깨비불이 넣어진 유리관이 있어 언제나 빛을 내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거대한 식물들의 조상이 있으며, 사람들이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두막이 있습니다. 1960년대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를 열광시켰고, 소설의 또 다른 어법을 구현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국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고 매혹된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일화도 같이 전해집니다.
인왕산 등산로에서 쳐다본 하늘에 걸린 구름이 해를 살짝 가린 찰나에 찍은 사진입니다. 워터멜론 슈가에는 저런 모양을 한 구름이 하늘을 쳐다볼 때 마다 발견할 수 있을 듯 싶지만, 여기는 워터멜론 슈가가 아니고, 대한민국 서울이니까 저런 사진은 아주아주아주 운이 좋았던 덕분에 건질 수 있었겠지요. 제 무딘 손에서도 저런 사진이 나오다니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