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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9/05 15:32:28
Name   카르스
Subject   ‘의료대란’ 속에서 각자 살아남기
‘의료대란’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죽지는 않을 것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대폭 확대 조처가 ‘의료대란’을 야기했다. 의료대란은 한국인의 평균수명에 영향을 줄까? 준다면 얼마나 줄까? 2024년 2분기 통계를 보면 아직은 대답하기 어렵다. 2분기 사망자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1퍼센트 늘어난 8만 4천여 명이었다. 금년 2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해 대형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이 혼란에 빠졌지만 사망자 통계에는 특별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말까지 사망자 수와 사망원인 통계를 정밀하게 살펴봐야 근거 있는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의미를 부여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던 시기에 읽었던 보고서를 기억한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보건기구(WH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의 평균수명 관련 내용은 잊지 않았다. 1945년 이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을 논외로 하면 인류의 평균수명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양상태 개선으로 인한 면역력 향상과 전염병 퇴치를 비롯한 공중보건정책 발전이 압도적 요인이었다. 의료 기술 발전과 의료 서비스 공급 확대도 한몫을 했지만 전문가들이 평가한 기여도는 10퍼센트 안팎이었다. 그것만 해도 큰 기여라는 건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거꾸로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의료대란’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불경기로 인한 소득 감소와 국가 보건정책의 퇴행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의료대란’이 우리의 삶과 죽음에 미칠 영향을 논하려면 한 가지 개념을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건강수명’이다. 건강수명은 장보기에서 화장실 출입까지 일상 활동과 취미생활을 혼자 힘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기간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건강수명은 평균수명보다 10년 정도 짧다. 한국인은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 뜻이다. 그 시기의 삶은 ‘퀄리티’가 낮으며 치료와 간병과 요양에 큰 비용이 든다. 재산이 부족할 경우 건강을 잃은 노인은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된다.

(계속)

모두가 괴로운 판에 더 타격받는 고령층

‘의료대란’ 사태는 잘난 ‘문과 1등’ 대통령과 역시 잘난 ‘이과 1등’ 의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의 권력 앞에 조아리지 않는 의사들 때문에 낭패를 볼 것이다. 의사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검사를 대통령으로 뽑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할지 모른다. 나쁠 건 없다. 대통령이 낭패를 보고 의사들이 후회를 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내가 뭐라고 한다 해서, 어떤 해법이나 절충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의사들이 들을 리 없다.

‘의료대란’은 건강수명 종료가 임박한 고령자들을 집중 타격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고관절 골절을 비롯한 낙상사고, 뇌경색이나 뇌출혈 같은 뇌혈관 질환, 암, 심혈관 질환 등은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건강수명과 평균수명이 모두 줄어든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휴학한 의과대학생들도 행복하지는 않다. 인생 행로가 꼬이고 세워두었던 계획이 다 어그러진다.

윤석열은 자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의사들과 고령층을 괴롭히고 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개혁은 저항을 부른다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저항이 있다는 사실이 개혁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합리적이든 아니든, 간호법 제정이든 의료법 개정이든, 의사들은 자기네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정책에 반대하고 모든 개혁에 저항했다. 압도적 다수 국민은 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의사를 증원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이렇게 과격하고 무지막지한 방식으로는 하지 말라고 한다. 부작용이 덜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한다.

평범한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근력운동과 삼겹살 끊기뿐

험한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나는 ‘의료대란’을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폐렴 예방주사를 맞으라는 보건소의 안내 문자를 받을 때마다 ‘국가 공인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병원과 의사에게 최소한으로만 의존하는 노인이 되자고 결심한다.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익히는 것 말고는 다른 대책이 없음을 거듭 확인한다. 그래서 행동 방식을 몇 가지 고쳤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근력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 나이 들면 믿을 건 근육뿐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뼈나 관절 부상 위험이 따르는 동작은 되도록 피한다. 운전을 할 때 전후방 교통 흐름을 예전보다 더 주의 깊게 살피고 과속을 삼간다. 공사장 근처에서는 무언가 떨어지지 않는지 위를 확인한다. 새벽에 화장실 갈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저밀도 콜레스테롤(LDL) 많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고 해서 좋아하던 곱창과 삼겹살을 끊었다.

병원과 관련한 목표도 세웠다. 죽을 때까지 대형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에 가지 않는 것이다. 20년 전 무릎 연골 절제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몇 번 갔을 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제가 있으면 동네 병‧의원에 간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외과, 내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의원에 걸어서 갈 수 있다. 웬만한 것은 거기에서 다 해결하며 산다. 뭐하려 굳이 큰 병원에 간단 말인가.

오래 전 보건 관련 업계에 잠깐 몸담았던 자로서 ‘의료대란 생존법’에 대해 신통할 것 없는 이야기를 했다. 독자들이 ‘의료시스템 붕괴’라는 말이 풍기는 공포감에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으니 가볍게 참고하시기 바란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고 대형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아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한다.  

출처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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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는 한때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
출신이 있어서인지 그쪽 지식을 많이 설파하는군요. 
정치 비평도 꽤나 재미있고, 우울한 시국에서 재미있게(?) 각자도생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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