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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6/10 09:33:10 |
Name | 벤젠 C6H6 |
Subject | “고구려사는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니다” |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564&lbFB=dc499428e7dd13f8911153ab3a06a6d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역사관이라 흥미롭네요. 그런데 주류 역사학계라고 이를 모를 리 없고(민족 개념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걸 모를 역사학도가 있을까? 저도 아는데 말이죠), 이런 걸 다 감안하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어투는 솔직히 좀 짜증나는군요. 진짜 예의없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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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라는 확신이 있으신지요. 기아트윈스님께서 와서 정리해주시면 적절할 것 같은데; 아무튼 문제의 본질은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역사적 단위를 분절해서 보는 것 자체가 학자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거죠. 애초에 그 시기에는 그런 분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재하는게 아니라 후대인들의 사고의 경향성이 본질을 왜곡하는데 영향을 준 거니까요. 쉽게 말하면 인지 편향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학계에서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하나의 분파를 이루기는 커녕 뭔 멍멍이 소리냐고 린치 맞고 들어가는게 맞겠죠. 그게 안 되니까 저런 분노 섞인 어투가 나오는 것 아닐까요.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지나친 극단론으로 보입니다. 한반도에 살던 사람에게 국가나 민족에 대한 자각이나 정체성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 간의 전쟁 때 관군이 아닌 의병들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 싸웠을까요. 고구려 계승을 자처한 발해나 후고구려, 후백제같은 국가들이 잠시라도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무엇이고요. 다함께 어깨동무하고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를 정도로 강하진 않았겠지만.. 개인, 가문을 초월하는 더 큰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은 분명히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합니다. 민족 개념이 생긴지 100년이 채 안되었다며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사를 해석한다고 지적하지만, 제가 보기엔 저 교수의 관점이 오히려 현대 이후의 포스트모너니즘, 탈민족, 코스모폴리탄이니 뭐니 하는 현대적 개념을 무리하게 과거에 적용하려고 하는 입장인 것 같네요.
민족의 개념이 없다면 국가의 개념도 없다라는 인식의 바탕이 사실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죠. 국가적 시스템은 분명 근대적 민족주의(네셔널리즘)의 등장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요는 이게 네셔널리즘의 개념에 포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구분 또한 극명하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경우 그 당시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교입니다. 이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다스릴 당위를 부여했죠. 그리고 그 중심엔 임금에 대한 '충'이라는 개념이 있고요. 즉, 그 당시 지배계층은 그 당시 피지배계층이나 국가 전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공... 더 보기
민족의 개념이 없다면 국가의 개념도 없다라는 인식의 바탕이 사실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죠. 국가적 시스템은 분명 근대적 민족주의(네셔널리즘)의 등장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요는 이게 네셔널리즘의 개념에 포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구분 또한 극명하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경우 그 당시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교입니다. 이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다스릴 당위를 부여했죠. 그리고 그 중심엔 임금에 대한 '충'이라는 개념이 있고요. 즉, 그 당시 지배계층은 그 당시 피지배계층이나 국가 전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공동체 의식보다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세계관에 따라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당시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에 대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딱하고 불쌍하거나, 일종의 동포애를 느껴서 국가적 방위시스템을 발동시킨 것은 아니죠. 오히려 본인의 기득권과 임금에 대한 '충'의 이데올로기로 그랬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반대로 민족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은 꼭 임진왜란 같이 전쟁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부적합하죠. 그리고 그 당시 피지배계층이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이었으면 내가 한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갈 일도 없고, 거기 살고 있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알지 못하는 등 그 어떤 연결고리를 상정할 수 없는 함경도 사람과 '공동체'라는 의식을 공유했을 가능성 역시 희박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근대적 민족의 개념이 신문과 라디오 같은 정보, 통신 기술과 연결짓는 것은 자연스럽죠. 함경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로 다음 날 전라도 사람이 뉴스로 접할 수 있으니.) 따라서 의군들은 그냥 자기 마을이 약탈당하는게 싫어서, 혹은 지배계층에 대한 복종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서 방위를 했다고 보는 것이 민족의식에 바탕으로 싸웠다는 것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고요. 물론, 고대 시기에도 지배층을 중심으로 민족 단위의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근대에 비하면 훨씬 희소하고 이조차 이걸 촉발시킨 근인이 다르기 때문에 근대적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섭해서 보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죠. 토마스 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보면서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접근 했을 때는 모두 엉터리 소리지만, 당대의 지배적일 가능성이 높은 특정한 패러다임을 설정했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인 연역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결국 당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그 당시 사람들이 살면서 했던 경험 그 자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지점을 강조하는 것이 변경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경사는 '앎'의 해체나 다른 거창한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주장하는 것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개념이기도 하고요.
ㅎㅎ예전에 포스트모더니즘 사관을 비판해서 써보라는 식으로 고딩때 수행평가 내줫었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조선은 조선역사 고려는 고려역사 고구려는 고구려역사 이런식으로 말할 순 있겠지만
우리도 조선을 우리라고 인식하고 고려도 조선도 고구려에 동질감을 가지고 우리라고 인식했고 역사에 증거가 남겨져 있기 때문에...
만일 고구려에 대해 그러한 인식이 중국의 과거 역사상에서도 존재했고 한중양국이 그런 인식이 겹쳐 내려와서 그쪽도 내세울만한 증거가 있고 그러면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사인... 더 보기
조선은 조선역사 고려는 고려역사 고구려는 고구려역사 이런식으로 말할 순 있겠지만
우리도 조선을 우리라고 인식하고 고려도 조선도 고구려에 동질감을 가지고 우리라고 인식했고 역사에 증거가 남겨져 있기 때문에...
만일 고구려에 대해 그러한 인식이 중국의 과거 역사상에서도 존재했고 한중양국이 그런 인식이 겹쳐 내려와서 그쪽도 내세울만한 증거가 있고 그러면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사인... 더 보기
ㅎㅎ예전에 포스트모더니즘 사관을 비판해서 써보라는 식으로 고딩때 수행평가 내줫었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조선은 조선역사 고려는 고려역사 고구려는 고구려역사 이런식으로 말할 순 있겠지만
우리도 조선을 우리라고 인식하고 고려도 조선도 고구려에 동질감을 가지고 우리라고 인식했고 역사에 증거가 남겨져 있기 때문에...
만일 고구려에 대해 그러한 인식이 중국의 과거 역사상에서도 존재했고 한중양국이 그런 인식이 겹쳐 내려와서 그쪽도 내세울만한 증거가 있고 그러면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사인가 보다. 대충 이런식으로 정리해서 넘겼습니다. 유럽은 많은 곳에서 이런 것들이 중첩되있고 나누기 힘든 경우들이 많던데 일본과 한국이나 한국과 중국은 그런거 판별하기 애매한건 없더라고요.
조선은 조선역사 고려는 고려역사 고구려는 고구려역사 이런식으로 말할 순 있겠지만
우리도 조선을 우리라고 인식하고 고려도 조선도 고구려에 동질감을 가지고 우리라고 인식했고 역사에 증거가 남겨져 있기 때문에...
만일 고구려에 대해 그러한 인식이 중국의 과거 역사상에서도 존재했고 한중양국이 그런 인식이 겹쳐 내려와서 그쪽도 내세울만한 증거가 있고 그러면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사인가 보다. 대충 이런식으로 정리해서 넘겼습니다. 유럽은 많은 곳에서 이런 것들이 중첩되있고 나누기 힘든 경우들이 많던데 일본과 한국이나 한국과 중국은 그런거 판별하기 애매한건 없더라고요.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관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 떨어지지 않나요? 자연스럽게 이어져내려오는 것이든 교육받아서 세뇌 비슷하게 되는 것이든 조선은 한국이고 한국은 조선의 후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것 같아서요.
과거의 기록에도 니네는 니네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누고 그렇잖아요. 함경도 전라도 예를 드셨지만 그 당시 전라도 사람한테 옆집친구가 도쿄사람 함경도사람 같이 데려다놓고 누가 '우리'냐? 하면 함경도인 가리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예전부터 얘네는 왜인이니 쟤네는 선비족이니 너는 고려별종이니 하는 식... 더 보기
과거의 기록에도 니네는 니네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누고 그렇잖아요. 함경도 전라도 예를 드셨지만 그 당시 전라도 사람한테 옆집친구가 도쿄사람 함경도사람 같이 데려다놓고 누가 '우리'냐? 하면 함경도인 가리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예전부터 얘네는 왜인이니 쟤네는 선비족이니 너는 고려별종이니 하는 식... 더 보기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관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 떨어지지 않나요? 자연스럽게 이어져내려오는 것이든 교육받아서 세뇌 비슷하게 되는 것이든 조선은 한국이고 한국은 조선의 후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것 같아서요.
과거의 기록에도 니네는 니네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누고 그렇잖아요. 함경도 전라도 예를 드셨지만 그 당시 전라도 사람한테 옆집친구가 도쿄사람 함경도사람 같이 데려다놓고 누가 '우리'냐? 하면 함경도인 가리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예전부터 얘네는 왜인이니 쟤네는 선비족이니 너는 고려별종이니 하는 식으로 역사서에도 나눠놓고 그랬잖아요? 지금으 민족개념처럼 체계적으로 묶인건 아니었더라도. 물론 동포애를 느껴서 그런건 아니고 자기 기득권이나 배워온 사상때문에 의병이 일어났다라고 하신건 동감합니다만... 그것과 동질의식이 있었다 없었다는 좀 다른 이야기이고, 고대부터 사서들에 항상 종족을 나눠오고 나름대로 구분지어온게 쓰여있는데 무조건 예전엔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기록에도 니네는 니네 우리는 우리 식으로 나누고 그렇잖아요. 함경도 전라도 예를 드셨지만 그 당시 전라도 사람한테 옆집친구가 도쿄사람 함경도사람 같이 데려다놓고 누가 '우리'냐? 하면 함경도인 가리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예전부터 얘네는 왜인이니 쟤네는 선비족이니 너는 고려별종이니 하는 식으로 역사서에도 나눠놓고 그랬잖아요? 지금으 민족개념처럼 체계적으로 묶인건 아니었더라도. 물론 동포애를 느껴서 그런건 아니고 자기 기득권이나 배워온 사상때문에 의병이 일어났다라고 하신건 동감합니다만... 그것과 동질의식이 있었다 없었다는 좀 다른 이야기이고, 고대부터 사서들에 항상 종족을 나눠오고 나름대로 구분지어온게 쓰여있는데 무조건 예전엔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발해하니까 제가 고딩때 임지현교수가 발해를 국사라 가르치는걸 까면서 되게 기사 많이 났던게 기억나네요
학교에선 역사적 기록상으론 우리측하고 달리 다른 국가에서 발해에 대해 동질의식을 가진 경우는 없었고 일본에서도 발해를 고려로 여겼다고 사료들 나열하며 가르치긴 했습니다. 음 옆동네에 신불해님이 쓰신 글 (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72329 ) 중에 바잉턴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쓰셨네요. "나는 발해가 문화적으로 중국 국가들보다는 한반도 국가들과 더 긴밀한 유사점을 갖는다고 본다."
그런데 발해에 대한 관심도나 그런것도 떨어진건 사실이었던 것 같고 고구려보다 애매한건 맞는거 같아요
학교에선 역사적 기록상으론 우리측하고 달리 다른 국가에서 발해에 대해 동질의식을 가진 경우는 없었고 일본에서도 발해를 고려로 여겼다고 사료들 나열하며 가르치긴 했습니다. 음 옆동네에 신불해님이 쓰신 글 (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72329 ) 중에 바잉턴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쓰셨네요. "나는 발해가 문화적으로 중국 국가들보다는 한반도 국가들과 더 긴밀한 유사점을 갖는다고 본다."
그런데 발해에 대한 관심도나 그런것도 떨어진건 사실이었던 것 같고 고구려보다 애매한건 맞는거 같아요
용어 정의의 문제죠. 제 댓글 보시면 지속적으로 근대적 민족주의와 네셔널리즘을 대상으로 얘기했지 언어/문화/혈연 등의 관점에서 피생되는 단위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유사성 측면에서야 당연히 함경도 사람을 더 같다고 느끼겠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근대적 프레임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배층에 한정된 개념이라 전체 계층을 포괄하지도 않았으며 화이사상과 같이 그 시대의 내적 세계관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했지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죠. 인종차별과 같이 매우 ... 더 보기
용어 정의의 문제죠. 제 댓글 보시면 지속적으로 근대적 민족주의와 네셔널리즘을 대상으로 얘기했지 언어/문화/혈연 등의 관점에서 피생되는 단위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유사성 측면에서야 당연히 함경도 사람을 더 같다고 느끼겠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근대적 프레임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배층에 한정된 개념이라 전체 계층을 포괄하지도 않았으며 화이사상과 같이 그 시대의 내적 세계관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했지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죠. 인종차별과 같이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에 기인한 사고처럼 여겨지는 개념조차 사실 노예제의 탄생 같이 그 당대의 사회적 변수의 변화와 관련이 있고요. 그리고 이러한 모호한 감정적 동질감을 끌고오면 더욱 한계가 분명해지는 것이 조선시대 지배계층이 조선의 피지배계층과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 중국의 유학자들과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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