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1/04 21:41:36
Name   메아리
Subject   [서평]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거기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 보라. 구름 그림자가 영사기로 쏜 영화처럼 황색 바위 위를 질주한다. 그 영화의 배우들은 여드름처럼 울퉁불퉁하고 매스껍게 덮여 있는 땅의 입자들이다. 바람이 쉿쉿 소리를 토한다. 이것은 이 고장 특유의 산들바람이 아니라 지세가 바뀌면서 불기 시작한 사나운 광풍이다. 비죽비죽 솟은 쪽빛 산봉우리, 끝없는 초원, 퇴락한 도시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 활활 타오르듯 펼쳐진 하늘, 거친 자연은 우리의 영혼에 전율을 일으킨다. 들을 수는 없고 느낄 수만 있는 깊은 음처럼, 또 뱃속 깊이 박힌 짐승의 발톱처럼. ’ 목마른 사람들중에서

     

  애니 프루(Annie Proulx)를 처음 접한 건 벌거숭이 소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 글에는 내가 아는 소설이라는 것과 다른 것이 쓰여져 있었다. 작가의 정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처연한 이야기. 미국의 거친 서부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써버린 이 여성 작가는 남다르다. 그 묘한 유격이 마음에 남아 글을 읽는 내내 나를 흔들었다.

  꼴보기 싫은 남자의 허세를 읽어나가는 울림 있는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엔 증오나 혐오 같은 미움의 그림자가 없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그 무식한 현실에 찐득거리는 잔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사내를, 남자 아이를, 서부의 반()지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오히려 허세를 잠재우는 애틋한 연민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녀는 미국의 와이오밍이라는 시골을, 처연함 듬뿍 묻혀 그 삭막한 풍경이 파사삭 부서지도록 묘사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니 무작정 따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진다아마도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가보다.

  그녀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말한다.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삶이라는 사건을 통해, 정확하게는 와이오밍이라는 미국의 서부, 한 지방의 몇몇 일반적삶을 통해 미국을 말한다. 그녀는 정말 미국()을 잘 말하는 작가다. 허위와 장식을 걷어내 버리고 맨얼굴을 드러내 보이려 한다. 그녀는 미국인을 말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미국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녀는 미국적이며, 동시에 미국적이지 않은 작가다. 그녀는 인간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고, 아마 그것이 그녀의 글을 특별하게 보이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다. 이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유명해진 이 단편소설은 두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허락받지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금지된 사랑 이야기다. 끌림,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작정 끌린다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사랑에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으면 그것은 비극이 된다. 잭은 그가 말했듯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타이어 레버에 맞아 죽었다. 남자들끼리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나 비극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아름답지 않거나 불쌍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이 삭막하고 심지어 괴기스럽기까지 한 미국 서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말이다. 이 불쌍한 남자라는 존재들에게 부디 자비를...!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580 창작비트코인의 미래 희망편 & 절망편 5 right 21/04/14 4311 1
    4542 기타if no one ever marries me 6 O Happy Dagger 17/01/05 4312 5
    7848 일상/생각[스압?] 영포자 5 유자농원 18/07/14 4312 3
    11485 사회(번역)왜 기술 체제는 스스로 무너질 것인가. 1 ar15Lover 21/03/12 4312 4
    3578 음악라즈베리 필드라는 밴드를 아시나요? 11 관대한 개장수 16/08/25 4313 1
    4046 창작너 누나랑 잘래요? 10 nickyo 16/10/31 4313 4
    4295 영화[신비한 동물사전] 에즈라 밀러의 해리포터st 작업멘트 (덕통사고/덕내주의) 13 elanor 16/12/05 4313 0
    6036 일상/생각촌수와 나이 이야기 10 피아니시모 17/08/01 4313 0
    6230 의료/건강(펑)감사합니다. 3 풍운재기 17/09/05 4313 1
    8892 정치일본 자민당 총재선거를 복기하다_1 곰도리 19/02/22 4313 4
    9088 사회진주 아파트 살인사건, 앞으론 어떻게 막아야 할까? 13 Leeka 19/04/17 4314 0
    4031 정치이쯤해서 다시보는 대선 공약 및 평가와 청계집회 8 Credit 16/10/29 4314 0
    5566 방송/연예걸그룹의 최전성기였던 2009년 4 Leeka 17/05/04 4314 0
    5686 정치[불판] 피고인 신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11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5/23 4314 0
    7240 일상/생각사장님께 드리는 말 4 하얀 18/03/16 4314 11
    4508 기타고양이와 톡소포자충 6 모모스 17/01/01 4315 2
    10288 의료/건강미FDA 비만치료제 '벨빅' 시장 철수 권고 6 세상의빛 20/02/14 4315 1
    7584 일상/생각아아 인도 가네요.. 3 집에가고파요 18/05/25 4316 2
    9581 도서/문학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부활을 읽고 2 djqjgfgh 19/08/25 4316 1
    10791 정치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요를 줄이면 되는거 아닐까요 18 타키투스 20/07/17 4316 3
    5845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2 - 카리스마의 화신 16 SCV 17/06/27 4317 1
    9405 도서/문학카프카 단편집을 읽고 3 djqjgfgh 19/07/07 4317 1
    10906 일상/생각회전근개파열 수술까지 가게된 이야기.. 11 하드코어 20/08/31 4317 3
    2486 일상/생각장미라는 이름 12 ORIFixation 16/03/28 4318 5
    2613 기타[불판] 잡담&이슈가 모이는 홍차넷 찻집 <38> 51 NF140416 16/04/14 431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