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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4/22 08:08:58
Name   메아리
Subject   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2
2. 중국의 역사 소설에 나타난 武의 양상으로 그 성격을 짚어보기

  武는 두 측면에서 전쟁과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軍, 혹은 국가 조직 내부에서 지휘자로서의 조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라는 기본적인 성질과 관계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武를 수련한다고 할 때에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속한 조직 내부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권력의 숫자를 줄인다는, 정치적, 물리적 영향력의 확대라는 것과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나를 죽이려는 상대방을 죽이거나 제압한다는, 즉 나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全生의 기본이 되는 목숨과 신체를 보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術과 藝, 道라는 경지에서의 차이와 연결될 수 도 있습니다. 우선 軍이나 국가 조직내부에서 지휘자의 조건으로서 武가 가진 특징을 살펴보면, 전쟁이라는 장에서 軍의 수단, 軍의 물리적인 영향력으로 사용되는 상호 적대적인 제어체계라는 현실에서 타인을 지배하는 가장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용되는 武의 모습은 타인을 지배하는 기술과 관계하기 때문에 術의 차원에서의 武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武가 도의 경지로 확대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그것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초한지나 삼국연의에서 보여지는 武人들의 모습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한지에서 항우는 자신이 가진 물리적인 능력, 즉 武力에 의존해서 楚覇王의 자리에까지 앉을 수 있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武力이라고는 별반찮은 한고조에게 패하고 마는데 이런 예는 術의 차원에서의 武라는 것의 한계를 드러내어 보이고 있습니다. 武力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항우가 한고조에게 패한 것은 지배기술의 다른 면들을 경시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로잡았던 수만의 진나라 군사를 반란이 두려워 생매장시키거나, 신하들의 간언을 잘 듣지 않는다든가 논공행상을 편파적으로 한다든가 등을 통해 휘하의 장수나 군졸들에 대해서 존경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비춰졌던 항우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한고조와 최후의 일전을 벌일 때에도 한신이나 팽월 등, 제후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마지막엔 혼자 몇 명의 부하들만을 이끌고 도주하다가 죽은 항우를 보면 지배 기술로서 武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 보입니다. 또한 삼국연의에서 가장 탁월한 武力을 가진 장수이지만 결국엔 유비와 조조의 연합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는 여포의 경우를 봐도 같은 모습이 보이는데, 비단 여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武將은 武力이 그리 높지 않았던 軍師나 君主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術의 차원에서의 武의 또 다른 한계는 바로 전쟁이라는 활동의 장입니다. 송왕조에 접어들어 전쟁의 시대가 일단락 나면서 신흥관료계급인 사대부의 영향으로 崇文 정책이 나타나면서 전쟁이라는 활동의 장과 국가 관료라는 기반이 약해진 武는 반국가 세력 형성이라는 저항과 은둔이라는 회피를 존재 양상으로 가지게 됩니다. 당대에 있었던 절도사 제도가 가진 약점이었던 지방의 절도사가 중앙의 군주만큼이나 강한 武력을 가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 즉 術의 차원에서의 武를 지배 기술로 가진 군주 아닌 자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武將의 숫자를 줄이고 그나마 남아있던 武將에 대해서도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쓰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은 결국엔 군사력의 약화를 불러, 북방민족의 남침을 막을 역량의 부재로 송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송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수호전에서 저항과 회피라는 武의 존재 양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108명의 武人들이 양산박이라는 곳에 은거하면서 반국가, 반사회적인 집단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주된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武人들의 유형을 보면 초한지나 삼국연의에 나오는 武人들의 유형과는 다릅니다. 첫째는 원래부터 국가 관료가 아니었거나 관료였다 하더라도 결국엔 저항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武人들이라는 점이고 둘째 전쟁, 싸움 기술이었던 武術이 시장에서 구경거리로 팔리거나, 도적 떼의 위협수단으로 격하된다는 점, 셋째 그런 결과로 武人들의 실존 양상이 저항과 회피로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수호전에 나오는 이러한 武人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송에 이르러 術의 차원에서의 武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지배기술로서 武는 이차적이었다는 것과 둘째 그나마 가장 영향력 있었던 전쟁이라는 활동의 장이 줄어듦으로 해서 현실적으로 武는 새로운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武의 존재 양상의 변화가 새롭게 나타나거나 다른 기반에서 변화된 것이라기보다는 武의 기원이 가지고 있는 두 측면 중에 다른 한 쪽에 강조 내지는 관심의 집중을 기울이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맥의 계승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쟁과 연관을 맺고 있는 다른 면, 즉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라는 성질과 관계된 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武는 전쟁이라는 현실, 그리고 전쟁과 다름없는 현실에서 주체의 全生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武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소극적인 사용에 제한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術의 차원에서의 武처럼 武는 공격적으로 사용되는, 혹은 사용 가능한 힘이기도 하지만 또한 방어를 위해 쓰여질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으로 武를 수련한다는 사람들에게 원칙으로 강조되는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서'라든가 '武는 殺法이 아니라 活法'같은 말들이 있는데, 이러한 말들은 武가 가지는 방어적인 힘으로써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또한 여기에서 武가 선진시대의 묵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묵자는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에 반대하여 약소국을 위해 대리로 방어전쟁을 수행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묵자 자신이 천리길을 걸어가서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저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묵자의 추종자들은 협객의 신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실천하면서 통치자에 대항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의리를 중시하고 금전을 경시했다는 것도 후대에 武人들의 생활 태도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묵가의 주장과 행동들은 武人들의 수련 자세나 생활 태도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면들은 수호전에 나오는 武人들의 양상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면들을 살펴보면 그릇되게 재산을 모으거나 관리의 신분으로 부정하게 재물을 탐하는 사람들을 징벌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義賊의 경향과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서 지배기술의 하나로서, 전쟁수행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術의 차원에서의 武라고 할 수 있는 것들과는 차별성을 지니는 다른 측면의 武의 양상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道의 차원에서의 武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道의 차원에서의 武의 특징을 정리해보자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묵자의 영향을 받아 타인에 대한 배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義를 중시하는 겁니다. 또 하나의 특징을 서술해보자면 장자와 장자 이후의 도교 계통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全生의 실현을 위한 자신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목적은 분명 선진시대의 전략적 인식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맞닿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의 武는 계속적인 전쟁 속에서 術의 차원에서의 武가 강조됨에 따라 일견 흐릿해지면서 재야, 즉 군사관료계급에 속하지 않은 武人들의 맥을 타고 전승되어 왔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런 전승의 맥에 도가의 다른 경향인 도교의 方仙術이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方仙術의 일종인 氣功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도교의 方仙術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선진시대의 노장 사상은 위진시대에 이르러 王弼 등을 필두로 하는, 그것을 학문으로 취급하여 연구하는 파와 한 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神仙家에서 발달한 종교, 즉 도교를 믿는 파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노장을 종교로 믿는 사람들은 『道德經』과 『莊子』를 長生法에 대한 책으로 해석하면서 실질적인 연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사실 神仙術은 전국시대 무렵 燕, 濟 나라지방의 方士에 의해 활발하게 고취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神仙, 仙人이라는 不老, 不死의 존재가 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후한 초엽의 王充은 『論衛』라는 책, 「道虛」편에서 그것을 비판했습니다. 그 책에서는 神仙術을 恬淡無欲, 養精愛氣라는 노자의 도에 기초한 일종의 처세술로서의 養生術과  穀不食이라는 호흡법에 관계된 것으로 기를 생명활동의 근원으로 보는 사고 방식에 기초한 養生術에서 유래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또 導引養生이라는 養生術과 服食藥物이라는 약물복용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진나라 시대 葛洪의 『抱朴子』는 한, 위 이래의 煉丹術, 行氣術, 導引術, 卜易,  穀 등을 총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당시대에도 이러한 것들이 유행했다고 보여지는데, 당나라 초기의 孫思邈의 천금요방은 양생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것은 導引과 按摩가 결합하여 양생체조로 변했으며 송나라에 이르러 이것은 八段錦이라는 간단한 도인술로 변형되어 민간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이 팔단금이 계속 변형을 거듭한 후, 태극권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도교의 양생술중 행기술과 도인술이 변화를 거듭하여 武의 한 형태인 권법과 관계하는 지점이 드러납니다. 태극권은 陳王庭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혹은 명나라 때의 전설상의 인물인 장삼풍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창안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런 도인술, 팔단금, 태극권 등은 오늘날 기공이라고 통칭되는 기를 수련하는 방법들입니다.

  武가 기공에 관계되는 이유를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단순히 파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은 武를 단지 술의 차원에서 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武는 직접적으로 全生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서 자신에 대한 배려,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염려와 관심의 집중이 도교 계통의 양생술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종교 계통의 양생술이 결과적으로 武를 신비주의적으로 보게 한 원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차원과는 다른 양상으로 武를 사람들이 수련해왔음을 앞서의 예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術의 차원에서의 武와 道의 차원에서의 武가 서로 다른 발전 도상 위에 있긴 하지만, 기원적으로 싸움기술이라는 면에서 여전히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배 기술의 일종으로 지배자에 의해 사용되었던 術의 차원에서의 武를 武의 본질적인 측면으로 道의 차원에서의 武를 야사나 허무 맹랑한 옛날이야기 같은 부수적인 측면으로 보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장에서 왜 武, 즉 싸움기술이 필요했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따져본다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함을 목적으로 했던 道의 차원에서의 武가 오히려 본질적인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자가 말한 기와 도의 차원에서 본다면 術의 차원에서의 武는 기로, 道의 차원에서의 武는 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術의 차원에서의 武도 자신의 全生을 방해하는 요소의 제거라는 측면으로 권력의 최상단을 목적으로 했다는 것에서 全生을 추구한다는 목적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武를 통해 軍이나 국가 조직 내에서 남에게 지배받지 않는 위치까지 올라간 경우는 아주 단편적이거나, 혹 있다하더라도 그나마 오래가지 못합니다.

  道의 차원에서의 武는 全生실현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비지식인-그들은 군사관료계급에서 도태된 사람들일 수도 있고, 어쩌면 평민계급일수도 있습니다.-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지식인들은 『莊子』를 통해 상호 적대적인 제어체계라는 현실에서 그들의 불안정한 위치를 벗어버리고자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식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회피나 비겁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또 그러한 것들이 개인주의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에서 독단이나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道의 차원에서의 武를 통해 그러한 현실에서 스스로 全生을 얻으려 한 사람들은 묵자의 영향으로 義라고 이름 붙여진 타인에 대한 배려를 품고 있었고, 각종 양생술을 통해 물리적인 힘을 얻고 단련함으로써 비겁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회피나 독단이 아닌 어쩌면 용감하게 세상에 대항하여, 동시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나, 전쟁과도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음이라는 목표는 중국의 학문들이 모두 결과적으로 수양론의 형태를 띈다는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결국 학문의 이유는 수양, 자신의 지킴, 적대적이고 상호 대립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무장시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두 가지 위치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제어하는 쪽, 즉 勝者의 위치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싫다 나는 혼자 떠돌란다 는 遊의 위치가 그것입니다. 武는 일종의 수양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익힐 수 있었던 지식인들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武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비지식인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은 비지식인의 위치에서 그들이 세상과의 대립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武는 단순히 싸움기술로서가 아니라 수양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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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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