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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4/13 09:23:54
Name   구밀복검
Subject   삼국지로 돌아보는 90년대 썰
문득 제가 삼국지를 언제 처음 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릴 때 꽤나 열성적으로 몰두했는데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비교적 투명하게 과정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릴 때는 자신의 학년 등위와 연령에 민감하다 보니 몇 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는 식으로 사건과 기억의 발생 순서를 쉽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1.
해서 옛날 생각을 해보니, 삼국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신문 연재만화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년기에는 집에 삼국지 관련 도서가 그림책이든 만화든 소설이든 동화든 전혀 없었거든요. 그 시절 제 개인 도서관 노릇을 했던 교회에도 삼국지 관련 자료는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정확한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여기저기 오가면서 4면짜리 소아용 신문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소년 동아였는지 소년 조선이었는지 둘 중 하나에서 삼국지 만화를 연재했습니다. 관우는 '우'라고 소로, 장비는 돼지로 설정되었는데 유비는 잘 모르겠네요. 원숭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상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장비가 독우를 줘 패는 묘사가 제법 박진감 넘쳤던 기억이 납니다. 붕어崩御라는 낱말도 여기서 처음 배웠네요. 후한 영제가 사망하자 십상시 중 일인이 주변에 '천자께서 붕어하셨다'라고 알렸는데, 다들 말귀를 못 알아먹고 물고기를 찾는 식으로 언어유희 개그를 치는 장면이 있었죠. 다만 이때만 해도 그냥 '삼국지'라는 소설이 존재하며 이게 지금 급조된 게 아니라 고래부터 어른들이 읽어오던 서사였다는 정도만 인지한 것이지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유비가 서주 입성하는 즈음까지만 읽었거든요. 이게 94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삼국지에 대해 인식하게 된 계기는 95년에 TV에서 삼국지 애니메이션을 접한 것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듯이 당시 17-19시는 TV 애니메이션을 국민적으로 보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MBC에서 해주지 않았나 합니다.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광고 포함 25-3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었던 것에 비해 이 애니메이션은 1시간을 통으로 방영을 해줬는데, 18시-19시 타임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도 17시-18시 타임이었던 것 같은데, 6-8회 정도로 분량이 동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방영된 그 주에 엔딩 봤을 거예요. 아니면 그 다음주 정도까지 넘어갔거나. 당시에 신규 애니 하나 편성하면 엔딩 날 때까지 3-6개월을 소요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분량이 적은 작품이었죠. 아마도 어쩌다 보니 애니메이션 편성 계획에 구멍이 나서 땜빵으로 투입된 것이 아닐지?



방송국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어린이 시청자였던 저는 흥미진진하게 애청했습니다. 작화도 그렇고 서사 전개의 페이스도 그렇고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 비해 웰메이드스러운 장중함이 있었거든요. 특히 위의 여포가 초선을 살해하는 씬은 아해의 눈에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흐름과 완전히 달라서 그러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전형적인 남성향 미인으로 디자인 되었던 초선이 경극배우마냥 귀기어린 분장을 한 채 자신이 통수 친 것을 밝히면서 여포를 비웃으며 광년이처럼 꽃을 뿌리는 게 음산하고 오싹했죠. 물론 당시의 관점이고 지금 보면 서로 남충입네 메갈입네 손가락질하는 인터넷 성대결 구도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슬몃 귀여운데 공교롭게도 성우도 윤소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배야 ㅋㅋㅋ '더러운 손 저리 치우지 못해?'

여튼 그렇게 삼국지란 소재에 흠뻑 빠지며 삼덕이 되었고, 만화든 소설이든 잡히는대로 삼국지를 탐독하게 됩니다. 이즈음 읽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림책처럼 소설과 만화를 이원적으로 결합시켰던 소설/만화 삼국지입니다. 김원석과 최달수가 각기 글과 그림을 담당했죠. 그 나이에도 그렇게 서술이 조밀하게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 그저 그런 아동용 도서이긴 했는데 그래도 주변에 있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삼국지 도서 중에서는 그나마 상등품이었습니다.
  




2.
제 삼덕질이 만개했던 것은 97년입니다. 그 전까지 삼국지는 어쩌다 우연히 간헐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 이상의 정보를 발굴하고 일상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더불어 상품 구매를 비롯한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어요. 어린 아해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죠. 근데 97년이 되면 상황이 바뀝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삼국지가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1) 이동도서관
그 전까지만 해도 국공립 도서관은 멀고 동네에 도서 대여점도 아직 없어서 접할 수 있는 도서가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97년 봄부터 목요일마다 집 앞 10M 즈음에서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이동도서관 차량이 오더라고요. 불감청고소원이라고 독서에 슬슬 눈 뜰 무렵에 적절한 수단을 얻은 것이죠. 승합차를 개조한 거라 차량 규격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 작은 내부에 꽤 많은 책이 들어갔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게 상당수가 해적판 도서였다는 것 ㅋㅋㅋ 예컨대 호소가와 치에코의 만화 '왕가의 문장'의 소설본을 해적판으로 낸 '나일에 피어난 사랑'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죠.



고려원표 해적판 무협지들도 즐비했고.. 무협덕질도 이때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당연히 삼국지도 있었는데, 이 차량에 실려 있는 삼국지 소설은 월탄 박종화 삼국지와 정비석 삼국지였습니다. 양자 모두 대략 1권에 300-400쪽이었고 양자 모두 6권짜리였어요. 그 무렵에 일정 수준의 아우라와 스놉 부심을 느끼며 읽기에 딱 적당한 분량과 문체였습니다. 제대로 된 한역본을 읽은 건 그게 처음이었죠.


2)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60권 전략 삼국지
물론 전략 삼국지는 93년에 출간 되었고, 그 시기부터 광고가 더러 나오긴 했지만 96년경부터 보다 대대적으로 나왔죠. 그 전까지는 주로 소형 광고였는데 이즈음엔 매일같이 전단 광고로 게재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예상보다 잘 안 팔려서 어떻게든 재고처리 하려고 할인 판매 할부 판매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근데 지금처럼 아이린이 인터뷰 했다고 82년생 김지영 매출이 떡상하는 시대는 아니었기에 저렇게 광고 때린다고 바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죠. 광고에서는 늘상 접할 수 있는데 아무도 읽어본 녀석은 없는 전설 속의 신수 같은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러다 대략 97년경부터 학급문고나 교내 도서관 같은 곳에 드문드문 비치되더군요. 간혹 전권 구매한 아해들도 있었는데 그 경우 그 아해들의 집은 만인의 화개장터가 되었죠. 근데 기본적으로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라 소장한 놈 아니고서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는 없었어요. 끽해야 조조가 여백사 죽이는 대목까지나 읽을까.. 아니면 보고 싶은 부분만 발췌독하거나 하는 식이었죠. 매번 그러는 게 감질나서 결국은 저거 하나 완독해보겠답시고 집에서 버스 차편으로 30분가량 걸리는 구립 도서관까지 왕래하기도 했네요. 마침 같은 목적으로 동행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놈은 정사충이라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았습니다. 같이 열심히 읽어놓고 재밌지 않냐고 물어보면 정사엔 이런 거 안 나와 운운 ㅋㅋㅋ 나중에야  그 시기에 삼국지 정사를 김원중이 오역 출간했다는 것을 알았죠. 아마 PC 통신에서 그거 보고 어깃장 놓은 듯.. 썅넘.


* 저 초 장왕의 절영지회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이 읽어서 정작 춘추전국 시대 역사는 모르는 상태로 저것만 알고 ㅋㅋ 막상 작품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는데 왜 광고 포인트로 잡았는지 의문이네요.


* 아마 저 당시 아해들은 계륵 고사를 이걸로 배우지 않았을지 ㅎㅎ 이외에 남만 정벌기가 광고에 많이 쓰였죠. 목록대왕의 짐승부대에 의해 습격당하는 촉군의 모습이라든가. '전략 삼국지 3~5권가량을 사서 읽는 것은 코끼리가 비스킷 한 개를 집어 먹는 것과 같다'는 레토릭도 쓰였죠. 그래서 코끼리 되라는 거야 뭐야 ㅋㅋ


* 이 애니메이션도 히트 쳤죠 ㅋㅋ 위 애니메이션은 다들 모르셔도 이건 아실 듯.


3) 삼국지 게임들
그렇다고 그 이전에도 삼국지 게임들이 없던 건 아니에요. 에니악 수준의 그지컴에서도 돌아갔던 '삼국지 무장쟁패'라든가 오락실을 풍미했던 '천지를 먹다 시리즈' 같은 것들이 있었죠. 근데 이런 건 어디까지나 그냥 삼국지를 소재로 했을 뿐이지, 삼국지의 세계관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물론 이미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나 영걸전 시리즈 같은 것이 나와 있었지만 그 당시 PC 보급율이 원체 낮았던지라 그맘 때 얼라들은 모르는 세계였죠. 아마도 X세대와 Y세대의 연배차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410462
*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최근 아시아/대양주의 1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아시아/대양주 정보산업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천명당 PC보급대수(95년 기준)는 호주가 2백46대인데 비해 한국은 95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96년경부터 윈도우 95가 출시되고 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지죠. 그 전까지 PC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윈도우 95 광고를 접하게 되면서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 생각하게 되는 식으로 구매 의욕이 높아졌죠. 통계를 찾아봐도 96-97 이 사이에 PC 보급률이나 시장의 매출이 현격하게 올라갑니다. 저희 집 같은 경우도 겨울방학 기간이었던 97년 1월 10일에 아버지께서 세진 컴퓨터랜드를 통해 컴퓨터를 장만하시면서 PC 소비자 대열에 합류했죠. 하드는 1GB였고 CPU는 133MHZ였고 램은 16MB였지요. 구입한 당일엔 세계 최고 컴인 줄 알았는데 나중 되니 창세기전3 최소사양도 소화 못하는 돌도끼더라고요 ㅋㅋ

그래도 PC는 아직 생활 필수품이라기엔 희소했어요. 아직 빛대중느님께서 국민PC 사업과 초고속 통신망 사업을 등의 정보 통신 천리마 운동을 전개하기 전이었기에, PC 보급률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들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통계에 따라 달리 나오지만 97년경의 가구 PC 보급률은 약 30~40% 정도에 그쳤죠. 컴퓨터가 마냥 사치품도 아니지만 기본 생활 가전은 아닌 과도기였습니다. 컴퓨터를 가진 그 자체로 선택받은 귀족인 단계는 넘어간 지 오래였으며, 동시에 모두가 자신만의 컴퓨터 가지고 각자도생할 수도 없었어요. 전설이 레전드가 아니듯 PC는 퍼스널 컴퓨터가 아니었으며, 아날로그 세계의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공공재였죠. 저 같은 경우에도 저소득층 지역에서 거주하고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97년 3월에 개학한 이후에도 가정에 PC 보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다수파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중에서 '586'은 희소성이 있었죠. 우리집에 586 컴퓨터 있다고 밝히면, 무슨 학급구나 분단구 스타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친구 초대한다든가 방문 신청 받는 것 정도는 패시브인 수준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그지없었죠.

그래서 당시의 PC 게임플레이는 필연적으로 집단성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게임이든 PC를 가지고 있는 아해의 집에 삼삼오오 모여 역할이나 순번을 정해두고 서로 돌아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전제되었죠. 그때 다같이 하기에 가장 좋은, 자연히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 '삼국지 5'였고요. 제 경우엔 97년 가을경에 어느 친구의 호의로 삼국지 5를 접했습니다. 금마가 하는 거 보고 재미나다 싶어서 빌려달라고 했는데 흔쾌히 빌려주더라고요. 당시엔 컴맹이라 인스톨 하는 법도 변변히 몰랐는데 알아서 깔아주고 일사천리로 설정 다 맞춰주고 고맙기 짝이 없었죠. 나중에 싸우고 소원해졌다는 게 함정이긴 한데 그 시절 우정과 은혜란 게 다 그렇죠 ㅋㅋ 해서 그렇게 삼국지 5 삼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도술 환술 일기토 참말참말 좋아효.. 추진진형 학익진형 많이 써봤죠.



이리하여 삼국지 5에 몰두하던 와중에 자연스럽게 전작인 삼국지 3/4, 그리고 인접 시리즈인 코에이의 '공명전'과 '영걸전', '대항해시대 시리즈'도 차례로 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건 저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요인으로 컴퓨터를 장만하게 된 주변 아해들도 비슷하게 밟은 궤적이었죠. 이러다보니 심심할 새가 없었습니다. 너도나도 삼국지 5 매니아고, 서로 자극받아 새뱃돈이고 용돈이고 차곡차곡 모아 4만 원 쯤 되면 바로 코에이 패키지 하나씩 사고, 부모님의 시간 제약 받아가며 며칠을 매달려 클리어하고, 그걸 주변 아해들과 공유하고, 서로 집을 왕래하면서 함께 플레이하며 놀기도 하고.. 강수진이란 성우도 이때 처음 알았네요. 발연기로 접했지만 ㅋㅋ



이렇게 극히 분산적으로 개인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던 그맘때 초딩들의 PC 게임 경험을 최초로 통합시켜주고 집단의식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삼국지 5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 같은 '제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할 거라고 봐요. PC 보급 양상을 생각할 때 아마 대부분이 삼국지 5 혹은 삼국지 6으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를 처음 접했겠죠.

결정적으로 삼국지 5 입문은 이후로 이어지는 삼국지 게임들의 출현과 연속성이 있었어요. 삼국지 5와 그때까지 출시된 코에이 게임들로 끝이 아니었다는 말이죠. 한창 코에이 월드에서 매일 햅삐하게 햄을 볶으며 IMF의 시름조차 무감하게 흘리던 와중,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삼국지 6'가 출시되더군요. 게임 자체는 삼국지 5만큼 재미있진 않았지만 디자인과 그래픽 같은 비주얼 측면에서 혁신적이었지요. 삼국지 5도 물론 윈도우 기반이긴 했습니다만, 개발 시기가 윈도우 95 이전이라 그런지 여튼 도스 게임이라는 인상이 부분적으로 있었죠. 그에 반해 삼국지 6은 누가 봐도 윈도우 게임이었고 내적 컨텐츠의 충실함과 별개로 세련되어 보였어요. 삼국지 5 열풍에 합류하지 못했던 아해들도 삼국지 6 메타에는 탑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듬 해에는 '삼국지 조조전'이 나왔는데, 어린애 눈에 보기엔 공명전이나 영걸전보다는 훨씬 발전되고 정교한 게임으로 느껴졌어요.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렇기도 하고요. 병종이나 지형의 전략적 활용 같은 측면들은 전작들보다 월등히 진보했으니까요. 시각적인 요소 같은 경우도 그랬고요. 그래픽이 돋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어 전작들에 비해서는 세월에 따른 풍화를 견뎌낼 내성력이 있었죠. 실제로 지금까지도 조조전 MOD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러다가 PC방 붐이 일고,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 식스가 국민 게임이 되고, 국민의 정부의 PC 보급 정책이 성공을 거둬 PC 보급률이 70%를 돌파하고, 패키지 게임에서 MMO RPG로 메타가 전환되면서, 삼국지 같은 패키지 게임 플레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가 되었죠. 삼국지 5/6에 비해 삼국지 7/8이 대중적인 향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게임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률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생각합니다. 이젠 누구나 PC를 가지게 되었다보니, 혹은 PC방 가서 배틀넷을 할 수 있으니, 인터넷 접속해서 7검이네 8검이네 찾는 게 목적이 되다보니, 굳이 친구집 가서 플레이어블 군주를 복수로 선택하고 서로 양보해가며 꾸역꾸역 게임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 나라에서 콤퓨타 줄 탱께 친구집에서 신군주 갖고 놀다 밤 늦게 들어가서 엄마한테 얻어터지지 말고 혼자 집에서 리니지나 혀


4) 이문열 삼국지
같은 시기에 한국인의 국민 문학 '이문열 평역 삼국지'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던 외가에서 이문열의 삼국지와 수호지와 변경 세트를 장만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당시에 이미 팔순이 넘으셨던 외조부모님과 환갑을 바라보고 있던 외백부모님, 20대 후반의 사촌 삼형매가 대가족을 이루면서 친족들의 구심점 노릇을 했던 집안이라 유년기에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가 되었죠. 외가에 놀러 가면 장난감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고 다락방이 있었고 에어컨이 있었고 컴퓨터가 있었고 집에는 없는 온갖 교양서들이 있었고.. 외백부님이 운영하시던 약국과 중심으로 일가친지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술을 나누고 바둑을 두던 정겨운 광경이 지금도 선하네요.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나 홍성유의 김두한예찬, 채지충의 동양 고전 만화 같은 것들도 거기서 접했죠. 그런 제나두요 아방궁이었던 공간에 현장법사의 반야심경이 마련되었으니 충만하기 그지 없더군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 우연이 아니었죠. 이문열 삼국지가 89년에 연재를 마치고 단행본으로 판매되긴 했지만, 출판 시장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판매량이 급증한 건 93년 겨울에 소위 '이문열 삼국지 읽고 서울대 갔다'는 소문이 돈 이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94년부터 이문열 삼국지가 각 가정의 필수템이 되고 그렇진 않았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SNS는커녕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밴드왜건 효과가 아무리 두드러진다 해봐야 한계가 있었고, 자연히 점진적이고 축적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실제로 이문열 삼국지 판매량과 관련된 그 당시 기사들을 쭉 살펴보면, 400만 부를 돌파했다는 보도가 95년에야 나왔는데, 놀랍게도 97년 9월에 10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야기가 떠돌며, 2001년엔 1400만 부란 기록이 뜹니다. 즉 삼국지 관련 시장에 별 관심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나 아동들이 이문열 삼국지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94년 이후에도 2~3년가량의 세월이 흘러야 했고, 저에게는 그게 대략 저 시기 정도였던 것이다 싶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접했다고 해도 연령상 문해력이 부족해서 못 읽었을 거고요. 문리가 그나마 트일 시기에 딱 적절하게 접하게 된 셈입니다.

* 당시 이문열 삼국지 판매량 관련 기사 링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1600329126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11-16&officeId=00032&pageNo=26&printNo=15598&publishType=0001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1110009913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1-11&officeId=00009&pageNo=31&printNo=9650&publishType=0001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12800099132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1-28&officeId=00009&pageNo=32&printNo=9664&publishType=0001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71700209128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7-17&officeId=00020&pageNo=28&printNo=24250&publishType=00010

그렇게 만난 이문열 삼국지는 아해의 눈으로는 이전의 삼국지 컨텐츠들과 격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문열 특유의 다채로운 미사여구가 동원된 수사들이 주는 본격미와 압도감이 있었죠. 박종화 삼국지나 정비석 삼국지는 애가 느끼기에도 그냥 잘 쓴 오락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문열 삼국지는 이것을 읽으면 정말 제갈량 같은 현자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에 빠지게 했습니다. 더구나 분량의 차이가 압도적이었죠. 박종화나 정비석 작은 6권이었던 반면 이문열 삼국지는 10권이었거든요. 이제 막 덧셈 뺄셈에 숙달된 초딩의 눈에는 10은 6보다 훨씬 위대하게 느껴졌지요. 여기에 민음사 특유의 도서 디자인도 털면 먼지 나올 것 같은 곰팡내 나는 이전 판본들과 차별감을 주었고요. 그래서 학기 중이고 방학 때고 매일 외가를 드나들면서 삼국지만 붙들고 수십 번을 완독했지요. 아마 순수한 텍스트 처리량만 놓고 보면 저 때가 제 인생에서 독서량이 가장 많았던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때의 총기는 어디 가고 지금은 석두가 된 건지 참 ㅋㅋ 여튼 그런 반복적인 독서 과정에서 삼덕심은 나날이 예리하게 벼려졌죠. '드래곤 라자'를 수업 중에 읽다 걸리면 따귀를 얻어맞지만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면 머리 쓰다듬 받는 묘한 분위기도 있었기에 그 눈치를 보기도 했고요.



3.
제 삼덕심은 대충 00년 즈음에 시들해집니다. 저 정도로 매달렸으면 진부해질만도 했죠. 도서대여점도 늘어나고 게임도 다변화되고 전반적으로 유흥거리가 많아졌으니까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와 양판소가 시장을 뒤덮고, 토티와 지단이 유로 2000 결승전에서 실제로 일기토를 벌이고, 스타리그에서 콩탈리스크가 벙커링에 찢기고, 라이코스와 엠파스와 야후가 세상 눈을 트여주는 등 흥미진진한 일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굳이 삼국지만 붙들 이유가 사라진 거죠. 그나마 황석영 삼국지가 출간되었을 때 아직 죽지 않던 삼덕심을 다시금 발휘해봤는데, 영 맹탕이더라고요. 암만 봐도 '장길산'이 훨씬 재미있는데 한국 최고의 작가란 사람이 뭐 이런 걸 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 생각하면 황석영 삼국지를 읽으며 삼국지란 컨텐츠에 단물이 다 빠졌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삼국지에 열광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후에도 '용랑전'이네 '삼국장군전'이네 '창천항로'네 하는 파생작품들이 나왔고 그것들의 궤적을 열심히 따라가긴 했지만 더 이상 어릴 적처럼 삼국지에 심취할 수는 없었지요.

이후 인터넷에서 점차 정사 관련 정보들이 전파되고 그러긴 했지만 이 역시 그리 구미가 당기진 않더라고요. 위에서 소개한 정사충ㅋㅋ 친구 때문인지 정사에는 어쩐지 정이 안 갔고요. 실제 역사든 뭐든 '삼국지연의'는 그 자체로 완성된 픽션인데 정사를 따질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김용 무협 이야기하면서 구처기가 사실은 무공 같은 거 못 쓴다 이런 이야기 안 하는 것처럼. 또한, 그런 흐름을 보면서 별다른 생명력을 못 느낀 것이 가장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삼국지연의의 시대가 끝난 걸 아쉬워하는 아재들이 나중에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과 비슷한, 이미 수명 지난 컨텐츠 붙들고 있는 매니아 담론이란 죽음의 기운이 풍겼거든요. 마치 스1 양대리그가 막을 내리고 아마추어 리그와 아프리카 BJ판이 이어져봐야 그들만의 다람쥐 쳇바퀴이듯. 막상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도 죽은 자식 그리며 열심히 불알 만졌고 지금도 ASL 열심히 보고 있지만서도 ㅋㅋ 그렇다고 마음 깊이 애호할 순 없었죠. 머리가 굵어서 그런 것도 있겠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제가 삼국지 애호가가 된 것은 그리 능동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리모콘 돌려보다보니 삼국지 애니나 드라마 따위가 하고 있으니까, 어쩌다 신문 펼쳐 보니까 삼국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어른들에게 삼국지 이야기 물어보니까 친절하게 대꾸해주니까, 가만히 등 긁고 있는데 책장에 이문열 삼국지 있으니까, 학급 문고에 어떤 놈이 전략 삼국지 갖다 놓았으니까, 아부지가 컴퓨터 사주신 타이밍에 마침 삼국지 게임을 학교 친구들이 너도나도 하고 있으니까 삼국지에 빠져들게 된 거지, 남들 모르는 정보를 여기저기서 입수하고 다닌다든가 한 것이 아니란 말이죠. 한참 호기심 왕성해서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고 있을 때 너두나두 야나두 삼국지 갖고 놀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마치 마속에게 지휘권이 맡겨졌을 때 그의 눈앞에 올라갈 산이 있었던 것처럼.

돌이켜 생각하면 90년대가 권위주의 체제가 급진적으로 청산되고 전통적 가치와 생활이 점차 사멸하면서 시장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던 과도기였기에 그런 것도 같습니다. 동구권은 망하고 WTO 체제 들어가면서 세계 시장은 통합되고, 세계적 호황이 지속되고, 그 흐름을 잘 타서 한국의 시장경제도 고도화되고, 때마침 독재정권 작살나면서 시장에 걸려 있던 리미터는 풀리고, 컬러 TV 보급이 막 끝나고, 뒤이어 퍼스널 컴퓨터가 막 보급되고 있고, 그 가운데에도 관세 장벽은 유지하고 등등 국내 자본이 집적되고 증식하기에 좋은 조건은 다 갖춰졌는데, 막상 '컨텐츠'로 삼을 것은 마땅치 않았죠. 그 반면 종래의 동아시아적 문화 관성은 남아 있었고, 아직 인터넷과 정보 통신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서구 문화의 유입은 제한적이었죠. 또 문화적으로 일본이나 대만, 중국, 홍콩 같은 주변국들이 동양 고전에 있어서는 학술적으로든 산업적으로든 한참 앞서 있었으니 보고 베끼기도 좋았고요. 그러다 보니 그런 '동양 고전'스러운 것들이 대중 상품의 독점적 소재가 되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소비되었다 싶습니다. 그 대표 격이 지금 말하고 있는 삼국지고요. 돈은 남아도는데, 만들 건 없고, 판로는 한정되어 있다보니, 게임이고 만화고 소설이고 영상매체고 들입다 삼국지만 주구장창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세계시장이 막 비대해지던 단계에서 국제화를 지향하던 자본이 매스미디어 상품으로 만들 수 있던 건 삼국지 같은 '그 전까지 우리가 익히 알던 고전서사' 뿐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비슷하게 이른바 '정통 사극' 같은 것들도 그 시기가 마지막이었죠. 프로바둑의 상업적 전성기도 90년대고. 무협지 시대의 끝물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이럴 수가 없죠. 삼국지가 갖고 있던 위치를 문피아니 유튜브니 MCU니 하는 것들이 다 빼앗아갔으니까. 실제로 소아들이든 어르신들이든 90년대처럼 삼국지를 읽지 않죠. '삼국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이와 세 번 이상 읽은 이는 상대하지 말라'와 같은 말을 요즘 광고 카피로 내걸면 틀니 맞춘 지 몇 년 되었냐고 욕먹을 겁니다 ㅎㅎ


* 원래는 '아바마마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를 올리려 했는데 뒤져도 안 나오네요 ㅋㅋ


* 96 진로배 조훈현 캐리력 ㅎㄷㄷ


* 금요일 23시 중드가 시청률 40%라니 실화냐..

그런 식으로 하수도와 상수도가 나뉘고 수도관이 집집마다 들어서기 전, 토담 안 좁은 우물에 유비 관우 자아아앙비 무안단물이 찰랑찰랑하게 고여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단물을 길어 먹고 갈증을 해소하던 시기가 있었고, 어린 아해였던 저는 그 범람의 물결을 수영장 삼아 같은 시기 날개 돋친 듯 팔리던 너바나 네버마인드 베이비마냥 한껏 헤엄쳐 다녔죠. 사실은 그저 보리차 비스무리한 것이 고여있는 늪구덩이었을 뿐이지만 그 순간 달고 시원했으면 그걸로 족하다 싶습니다. 이젠 그냥 추억이죠 ㅎㅎ




17
  • 춫천
  • 삼국지 추억의 교과서
  • 킹갓제너럴빛대중 ㅎㅎ
  • 선추천 후감상
  • 아 추천하면 아재인 것 같아서 안 하려 했는데..ㅠ
  • 앗...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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