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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1/01 20:00:10 |
Name | 구밀복검 |
Subject | '메존일각'에서부터 클래식 할리웃 거슬러 올라가보기 |
탐라에서 '메존일각'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대로 끼적여봅니다. 원래 탐라로 올리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ㅋㅋ '메존일각'하면 영어덜트 로맨틱 코미디의 80년대적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이 사소한 오해를 하거나 감정의 골이 상하고, 이걸 수습하기 위해 좌충우돌 활극을 벌이고, 근데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되려 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고, 막판 가서 해프닝스러운 이벤트 한 방으로 마무리 지으며 큰 웃음을 주는 식이죠. 그걸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장르적인 관습도 있지만 고다이가 '소년'이라는 설정이지요.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실수도, 현실이었으면 도저히 평화롭게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도, 행위자가 어린 남성이면 일상의 해프닝으로 때우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수 있거든요. '으이구 잘했다 잘했어'라는 식으로. 이것도 성역할과 관련된 맥락이 있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니니 링크로 대충 생략하기로 하고..https://kongcha.net/?b=31&n=51864&c=322033 여하간 이런 로맨틱 코미디가 대중문화에서 지배적인 장르가 된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30년대 할리웃 영화에 도달합니다. 왜 하필 30년대냐 하면, 이 시기에 바로 무성영화 시대가 끝나고 유성영화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전과 달리 영상이라는 시각 수단 뿐만 아니라 말이라는 청각 수단을 곁들여 서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로 인해 그 이전에 주류였던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마임 기반의 코미디'는 줄어들고 연인 간의 입씨름의 묘미를 살리는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이 과정에 대사량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고, 배우들은 연극배우라기보다는 8마일의 에미넴 같은 힙합퍼들마냥 가깝게 화려한 재담을 소화해야했죠. 이 시기의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을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부릅니다. 문자 그대로 스크루볼 날리듯 막 나가는 이성애물이죠. 굳이 번역하자면 마구마구魔球魔球 코미디라고나 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막나가면서 도저히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절정으로 치달은 다음 막판에 한 번에 꼬인 플롯을 회수하는 식의 대책없는 서사구조를 보여줍니다. 현대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근연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TV 시트콤에 좀 더 가까운 특징을 띠는데요. 이때는 아직 안방극장의 개념이 없었기에 영화가 현대 TV 드라마들이 담당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을 때였고, 그러다보니 현대 영화보다 가벼운 일상극 스타일의 작품이 꽤 많았죠. 그만큼 작품군의 장르 분화도 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한 마디로 '논스톱'이나 '하이킥' 스페셜에 가까운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 준 겁니다. 영화 제작 스튜디오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를 제작하는 동시에 배급하고 상영하는 식으로 땅 짚고 헤엄치며 돈을 버는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고요. 즉 영화를 말 그대로 공장에서 '찍어내던' 시기죠. 일일드라마와 영화가 큰 차이가 없던 셈..만화방에서 볼 '메존일각'을 극장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죠. 여튼 이런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표적인 작품이 여럿 있는데,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이 양육Bring up baby'이란 작품입니다. 캐스팅부터 화려한데, 역대 최고 남우/여우를 꼽을 때 꼭 한 번씩 언급되는 캐서린 헵번(수잔 반스 역)과 캐리 그랜트(데이빗 헉슬리 역)가 출연했고, 명성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줬죠. 자세히 설명하기엔 정말 막 나가는 스토리라 샅샅히 열거할 수가 없기에 대표성 있는 씬 하나만 예시로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이전 상황부터가 웃깁니다. 1) 데이빗은 공룡학자입니다. 거대 공룡인 브론토 사우루스 화석의 표본을 완성하는 계획을 진행 중인데, 돈이 궁한 터라 스폰서가 갈급한 상황이었죠. 마침 랜덤이라는 복부인이 물주가 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서 한시름 크게 덜게 되었고, 그리하여 데이빗은 랜덤 부인의 업무를 대행할 개인 변호사인 피바디라는 할배와 사업차 골프를 치게 됩니다. 2) 그런데데 골프를 치던 도중, 수잔이라는 마이페이스형 인물과 필드를 같이 쓰게 되면서 일이 꼬입니다. 수잔은 데이빗의 공을 자기 공으로 착각하고 퍼팅하고, 데이빗은 이걸 정정하려다가 수잔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한참 입씨름을 하게 됩니다. 3) 겨우겨우 문제를 수습했다 싶었는데, 이번엔 수잔이 데이빗의 차를 자신의 차로 착각하고 시동을 겁니다. 데이빗은 '이건 내 차야!'라고 항변합니다만 수잔은 '골프공도 니 꺼고 차도 니 꺼야? 세상이 다 니 꺼야?'라고 일갈하고 그대로 떠나버리죠. 데이빗은 이를 저지하려다 결국 클라이언트인 피바디를 필드에 내버려두고 차에 매달려 갑니다. 4) 데이빗은 피바디에게 결례를 사죄하고자 식사 약속을 추가로 잡습니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지긋지긋한 수잔과 다시 마주친 상황 ㅋㅋ 근데 여기서도 사고는 이어져서..수잔은 경황 중에 다른 손님과 핸드백이 바뀝니다. 그것을 모른 채 데이빗에게 핸드백을 맡기고 자리를 비우고요. 이윽고 핸드백의 원주인이 찾아와서 데이빗을 도둑놈으로 몰고 그것 때문에 상당한 곤욕을 치르죠. 이 고초를 이겨낸 직후가 위 씬 ㅋㅋ 근데 이게 영화 시작한 지 15분도 안 된 시점이고 영화는 1시간 30분 이상 남았음.. * 한글 자막이 없는 영상이라 대사를 번역해 올려봅니다. 수잔 : 이봐요,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데이빗 : 그랬다면 당신을 보자마자 도망갔겠죠! 수잔 : 설명할게요. 핸드백을 당신에게 준 건... (데이빗의 옷이 찢어진다.) 수잔 : 당신 코트가 찢어졌네요;; 고의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지 말아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옷자락을 잡고 있었을 뿐이에요. 데이빗 : 부탁 좀 할게요. 수잔 : 바늘요? 데이빗 : 그보다 쉬워요. 게임을 합시다. 수잔 : 어떤 거요? 데이빗 : 봐요,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리면 당신은 사라지는 거예요. 알았죠? 열을 세고 나서 손을 내려놓으면...당신은 없는 거예요, 하나... 수잔 : 참나, 도와주려고 했더니! 데이빗 : 아이고 고마워라... (데이빗은 수잔의 옷이 찢어진 것을 확인한다.) 데이빗 : 앗, 잠깐만! 수잔 :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고도 기어오네요. 난 화났다면 화난 거라고요. 데이빗 : 큰일났어요. 수잔 : 말 안 해도 돼요. 알아서 잘 해결해 보세요. 따라오지 좀 말아요. 집착이든 뭐든 이젠 질렸어요. 데이빗 :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좀 하게 해ㅈ... 수잔 : 좀 비켜주실래요? 데이빗 : 난 그냥 당신이 옷을... 수잔 : 아뇨, 난 안 그랬어요. 내가 말할 때 들으려고 했다면 당신 옷은... 데이빗 : 내 옷이 아니라... 수잔 : 아마 멀쩡했을 거라고요. (데이빗이 모자로 수잔의 옷이 찢어진 부분을 가린다.) 수잔 : 당신 뭐가 문제에요? 데이빗 : 이봐요, 난... 수잔 : 당신이 바보짓 하고 있는 거 몰라요? 내가 당신 코트를 찢었다고 하지 말아요. 분별을 찾아야죠. 제발 모자로 그러지 좀 마세요. 데이빗 : 그냥 거기 가만히 서 있어요, 네? 수잔 : 도대체 무슨 일이죠? 데이빗 : 아니, 제발! 움직이지 말아요! 수잔 : 작작 좀 해요. 데이빗 : 내 말 들어요, 여기서 나갑시다. 걷기나 해요. 수잔 : 이제서야 걷고 싶으신가보죠?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신과는 걷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데이빗 : 당신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알았으면 좋겠네요. 수잔 : 말 다 했어요? 데이빗 : 아이고..예예 그래요. 수잔 : 고마워요. (수잔은 자신의 옷이 찢어진 것을 알아차린다.) 수잔 : 서 있지만 말고 뭣 좀 해봐요! 이걸 어째... 내 뒤로 와요. 데이빗 : 뒤에 있어요. 수잔 : 더 가까이 와요. 데이빗 : 더 이상 못 가요, 준비 됐나요? 침착하게, 왼발 먼저. 수잔 : 알았어요. (붙어서 걸어가는 두 사람) 수잔 : 문 밖을 나가서 쭉 가요. 데이빗 : 누구를 만나야 돼요. 아, 저기 있군. (피바디를 발견한 데이빗) 데이빗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피바디 씨! 풀버전 : https://youtu.be/5fowrDX2zA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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