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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12/04 20:20:07 |
Name | 선비 |
Subject | 모리 요시타카, <스트리트의 사상> 서평 |
노트북을 정리하다 예전에 쓴 서평을 발견해서 올립니다. 노트북 할아버지가 이젠 한글파일 하나 여는데 3분 이상 걸리네요... 사막과 스트리트의 사상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끌어온 재판이 얼마 전 끝났다. 쌍방 항소로 2심까지 이어진 재판의 결과는 벌금 50만원에 선고유예. 징역형을 주장했던 검찰의 주장보다는 훨씬 완화된 결과이지만,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 나는 폭력을 휘두르거나 기물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 아니다. 나의 죄는 거리에 나갔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을 통해 이어져오던 좌파 사상은 이미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후쿠야마는 1989년 이미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통해 사회주의에 안녕을 고했다. 우리는 더 이상 사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재미있는 유머를 접하거나, TV뉴스에 나오는 유명인의 사생활, 혹은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쇼’를 보지 이미 영향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사상을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후쿠야마의 말대로 역사는 끝나버린 것일까? 모리 요시타카는 <스트리트의 사상>에서 전통적 좌파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스트리트의 사상이다. 스트리트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스트리트의 사상’을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그것은 점과 점을 잇는 선의 사상이다. 전통적으로 사상은 대부분 대학 연구실이나 도서관처럼 ‘점’이라고 불릴만한 곳에서 생산됐다. 반면 카페, 공원, 역 등 다양한 점을 횡단하는 곳에서 스트리트의 사상은 발생한다. 둘째, ‘스트리트의 사상’은 아래로부터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먼저 사상이나 이론이 있고 거기에 따라 실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존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상이다. 셋째, 그것은 복수의 사상이다. 스트리트의 사상은 한 사람의 사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름없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상이다. 마지막 특징은 그것이 꼭 활자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음악이나 영상, 만화처럼 비언어적인 실천을 통해서 실천되기도 한다(pp. 29–30).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의 발달은 정치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사각판 속의 모든 것을 엔터테인먼트화 한다. 기 드보로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삶이 ‘외양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TV에서 다루는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이 심각한 정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시청률이 되는 한 방송국은 정치 소재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100분 토론>이나 <썰전> 같은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지적 격투기라고 부를법한 엔터테인먼트(p.108)”로 다루어질 때로 한정된다. 정치의 내용은 사라지고 외양만 남는다. 소위 ‘텔레비전 정치’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실상 자유로워 보이는 TV 토론 속에선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 가진 의제 설정권은 기존 권력 관계를 텔레비전 속으로 그대로 끌고 온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는 논의의 틀을 항상 미리 준비해 둘 수밖에 없다. 틀에서 벗어나면 왕왕 ‘현실적이지 못한’논의라고 일축된다. 그리고 이 틀 자체가 기본적으로 현실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권력 관계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 현실적이고 누가 현실적이지 않은가”는 미리부터 정해져 있다. 그 결과 열견 다양해 보이는 논의도 기존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고 강화할 뿐이다(p.108) 그런데 스트리트의 사상은 미디어의 스펙터클화와 결합된 사회공학적 지식의 원 밖에 존재한다(p.109). 오히려 정치의 스펙터클화는 스트리트의 사상이 출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왜냐하면 스펙터클화는 새로운 스펙터클을 불러일으킬뿐더러, 미디어가 보여주는 아젠다에서 소외된 의제들을 거리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근래의 가두집회가 스트리트의 사상을 보이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최근의 집회들(촛불집회, 희망버스 등)은 그 형식 면에서 기존의 집회와는 다르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그 직전의 집회(기륭전자 사태 등)들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첫째, 그것은 주최가 없는 집회였다. 주최가 없다는 표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상술하자면, 촛불집회에도 주최를 칭하는 단체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여고생들이었다. 시위에서 주최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참여한 시민들 또한 주최측의 통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둘째, 탈정치적이다. 탈정치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비정치적인 성격을 띄었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정당 정치에서 벗어난 집회였다는 이야기이다. 촛불집회의 유래는 한국의 집시법상 일몰 후에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문화행사 등을 예외로 하는 것을 이용해 문화제의 명목으로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때문에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실제 가두에서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하는 와중에 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시민은 사람들의 야유에 의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행사의 성격을 가진다. 그 전의 시위는 진지하고 조직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문화제의 성격을 많이 가져왔다. 그것은 시위보다는 코뮌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하고 먹을 것을 나눠먹으며 토론을 했다. 스트리트의 사상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홍대 앞 두리반의 강제철거 반대 투쟁이었다. 두리반은 안종녀씨와 소설과 유채림씨가 운영하던 칼국수 집이었다.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재건축을 이유로 강제철거를 하려는 용역들이 두리반에 들이닥치게 된다. 철거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두 부부는 같은 달 26일 새벽 2시에 절단기로 철판을 뜯어내 두리반에 진입했고 두 사람의 투쟁은 530여 일간이나 이어진다. 두리반 투쟁이 특징적이게 된 것은 그 이후이다. 유채림씨가 속해있던 인천작가회의의 도움과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음악가들의 참여로 칼국수집 두리반은 문화공간이 되었다. 내가 두리반을 처음 찾은 것은 2010년의 일이었다. 한전이 전기를 끊어 경유 발전소를 돌리기 시작한 지 얼마 후의 일이다. 불하나 없는 재개발 철거지역 안에 두리반이 있는 건물이 우뚝 있었다. 나는 엄숙한 분위기에 긴장하며 정문에 들어섰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에 보인 것은 투쟁현장과 전혀 다른 발랄한 분위기의 문화공간이었다. 처음 눈에 뜨인 것은 ‘사막의 우물 두리반’이라는 제목의 유채림씨가 직접 쓴 대자보였다. 대한민국은 사막이다. 스스로 우물을 파서 살아가야한다. 두리반은 아내의 우물이었다. 대한민국은 아내의 우물을 빼앗았다는 내용의 대자보였다. 그러나 내가 본 두리반은 사막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그곳은 차라리 대한민국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 낭송을 하기도 하고 인디밴드의 공연을 듣고, 헤비메탈에 맞춰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껌껌한 세계와 머리 위로는 별이 보였다. 공연비는 자율이었다. 나는 그곳의 분위기에 반해 그 후에도 몇 번 두리반을 찾았다. 이상의 일화들은 스트리트의 사상이 일본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들은 ‘스트리트의 사상가’들이다. ‘스트리트의 사상가’는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의 현대판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오거닉의 번역어인데, 전통적인 지식인과 달리 사람들 속에 헤치고 들어가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지식인을 그람시는 이렇게 불렀다. 이러한 지식인은 전통적 지식인처럼 대학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며 문장의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다양한 형태로 조직함으로써 정치를 만들어 가는 존재로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오거나이저나 편집자, 지식산업을 지탱하는 인쇄공 등도 포함된다(p.171). 스트리트의 사상은 말의 사상이 아니다. 스트리트의 사상가들 또한 정치인들이나 (전통적 의미의)학자들이 아니다. 바로 그 사실이 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많은 사람들, 학생이나 음악가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모리 요시타카는 ‘공간’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스트리트의 사상에는 공공영역의 변용 또한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거리나 공원은 사상의 영역이 아니었다. 기존의 공공영역은 대학이나 신문, 논단 잡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스트리트의 사상’은 거리가 사상의 집행영역일뿐더러 발생영역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같은 이항 대립의 유사 정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안이한 문제설정을 피해 자율적인 정치 공간을 먼저 만들고 거기서 다양한 정치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항 대립을 벗어나고 앞지르는 것, 이것이 바로 ‘스트리트의 사상’의 가능성이다 (p.191). 변용된 공공영역은 기존의 가치체계를 흔든다. 거리는 강의실로 공원은 공연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때문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유하는 기득권에게 거리의 전용은 체제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한국의 형법은 도로교통법에 따른 교통방해를 폭행보다 강하게 처벌한다. 때문에 집시법상 문제가 없는 시위행위는 도로교통법에 의해 기소되기 시작하였다. 거리를 되찾는 행위는 폭력 그 자체보다 강한 힘을 가진 무서운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이야기한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리트는 우리가 걷는 곳이지만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장소이다. 나는 이 글의 처음에서 패배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점의 사상과 선의 사상이 다르듯, 길 위에서의 패배는 방 안에서의 패배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을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모래사막 속의 발자국처럼 아주 희미한 것일 테지만, 그 희미함이 모든 것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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