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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7/23 22:53:47 |
Name | 선비 |
Subject | 백윤식을 용납하기 위해서 |
백윤식을 용납하기 위해서. 팟저님의 “우리는 백윤식을 용납해야하는가(https://kongcha.net/?b=3&n=3330).”에 대한 글입니다. “우리는 백윤식을 용납해야하는가.”는 잘 구성된 글이다.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끌고 수사학적 질문으로 잠정적 결론을 낸다. 그리고 몇 가지 근거를 통해 논지를 강화하고 끝단에는 결론을 한 번 더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구성의 깔끔함에 비해 논리적으로는 큰 비약을 가지고 있는 데 이 글에선 크게 두 가지 근거를 통해 해당 글의 논지에 대해 비판할 생각이다. 우연의 오류와 역도 우연의 오류 일반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에 일반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나, 이와는 반대로 특수한 경우에만 참인 것을 일반적인 경우에도 참이라고 가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후자를 가리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부른다(출처: 나무위키). 이건 그냥 가정이다. 백윤식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가 알코올을 섭취한 후, 운전중 교통사고를 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훈방조치에 해당되었고, 백윤식은 그 즉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고라니는 경상을 입어 동물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에 대해 동물애호가 네티즌들의 비난이 있었지만 백윤식 씨는 곧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그냥 가정이다. 또, 조형기라는 배우가 있다. 그도 술을 마시고 교통사고를 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만취 상태에 해당되었고, 음주음전사고의 피해자가 된 여성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하지만 조형기는 그 자리에서 시체를 유기한 후 차에 올라탔으나 그대로 잠들어버려서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이 사건에 대해서 페미니스트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은 조형기 씨는 그러나 곧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서론에서 작자는 백윤식이 일베 영화에 출연했다는 무리한 가정을 하고 이 비유적 영화와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실제 영화의 사례를 동일시한다. 일견 이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영화고, 검증되지 않은 루머가 섞여있으며, 어느 한쪽의 시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말이 있다. 독일 건축가인 루드비히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말은 디테일, 즉 세밀한 부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구(警句)로 쓰이는 말이다. 디테일을 무시하자 논리의 곡예가 벌어진다. 똑같이 음주운전 사고는 맞다. 그러나 백윤식 복귀를 주장하기 위해선 우리는 조형기의 복귀를 함께 주장해야 하는가? 글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동치 시킨다. 그러나 박정희는 노무현이 아니고, MC현무는 김윤아가 아니고, ‘운지의 꿈’ 또한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두 고인(故人)의 대한 평가부터 시대, 연출의 적절성까지 전혀 다른 두 가지 경우이다. 적어도 하나를 허용하려면 다른 하나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사례의 다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작자도 이 부분의 비유가 완벽하다지는 않다는 걸 아는지 몇 가지 단서를 단다. 그리고 각각이 자신들의 소재 및 배경을 형상화하는 정도의 차이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영화마다 어느 의견이 부당하고 무엇이 정당한지에 대한 기준이 갈리겠죠. 하지만 ‘운지의 꿈’이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불편한 노래인 만큼,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지지자에게 불편할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건, 어떤 작품에 걸린 민감한 정치성으로 인해 그 매체에 참여한 배우에 대한 여론이 결정되며, 그 여론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제작자로 하여금 특정 배우를 반려할 정도가 된다면, 전 그 사회를 도저히 건전한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글의 말미 즈음에서 비슷한 주장이 이어진다. 아르바이트를 뽑는 PC방 사장이 있고, 구직자에게 페이스북 주소를 요구하는 기업이 있고, 직원의 블로그를 감찰하는 회사가 있으며, 그리고 넥슨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과연 여러분은 어디쯤 ‘선’을 그을 생각이신지요. 그리고 그 ‘선’을 어떻게 정당화할 생각이십니까. 이쯤되면 유명한 오류의 이름이 하나 떠오를만하다. 그렇다. 전형적인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Slippery Slope)다. 사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보기 어렵지 않다. 동성애자는 AIDS 보균자들이 되기 십상이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 종북주의자가 되는 세상 아닌가. 간단히 답해보자. ‘선’은 존재해야한다. ‘선’을 긋는 것은 사람이다. '선'을 정당화하는 것은 논리와 합의이다. 무에타이 선수가 “뺨 클린치도 위험한데 음경을 치는 것은 왜 안 되냐”고 물어선 안 되는 건 그것이 ‘선’이기 때문이다. ‘선’은 해양경찰이 아니다. 잘못됐다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 그으면 된다. 계속 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모두 어떤 부분에선 다들 이 사회가 표준으로 제시하는 건전성을 어기고 있습니다. 아, 어떤 분은 아니라고요. 축하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습니다. 전 수간물을 즐겨봤고 ‘운지의 꿈’을 들으며 웃어봤고, 장동민의 팟캐스트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옹달샘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아쉬웠습니다. 전 패드립을 즐겼고 살면서 패드립도 많이 쳐봤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제 커리어에 타격이 오는 건 원치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야겠네요. 아직 김자연이 어떤 타격을 받을진 구체화된 게 없으니까요.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싶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 비겁한 놈입니다. 자기가 건전치 못한 놈인데도 그로 인해 따라올 사회적 무게는 회피하고 싶어하니까요. 하지만 전 이렇게 비겁한 놈이 저 하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매갈 옹호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매 의사가 기업의 직원에 대한 사생활 침해가 됐고, ‘이 사회가 표준으로 제시하는 건전성을 어긴’ 것들의 대표가 됐다. 전부 ‘선’이 없어서 생긴 일이다. 우연의 오류와 미끄러진 비탈길의 오류를 범한 예가 바로 무분별한 미러링이다. 뺨 클린치가 허용된다고 해서 음경을 가격해도 된다는 게 아니고(다른 사람이 먼저 했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게 덜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성폭행범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성매매에 반대해야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른 것은 그냥 다르게 대하면 될 일이다. 정리하자. 백윤식을 용납하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의견은 따로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러나 백윤식을 용납하기 위해서 조형기를 용납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말자. 그것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겁한 일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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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야 조건 상의 제약이 있고 운신의 폭이 무한하지 않다보니 실제로 취하게 되는 선택은 비슷하지만, 그래도 사상적 뿌리와 근본적인 세계관은 다르니까요.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것이 국가 조직화를 거치며 온건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고, 사회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좌파의 일종이지요. 예컨대 70년대 스웨덴에서 임노동자 기금(노동자들의 돈 모아 만든 기금으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기금 자체가 대주주로 군림하며 그야말로 노동자 국민 개개인이 기업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것) 가지고 크게 시끌시끌했는데, 자... 더 보기
현실 정치야 조건 상의 제약이 있고 운신의 폭이 무한하지 않다보니 실제로 취하게 되는 선택은 비슷하지만, 그래도 사상적 뿌리와 근본적인 세계관은 다르니까요.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것이 국가 조직화를 거치며 온건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고, 사회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좌파의 일종이지요. 예컨대 70년대 스웨덴에서 임노동자 기금(노동자들의 돈 모아 만든 기금으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기금 자체가 대주주로 군림하며 그야말로 노동자 국민 개개인이 기업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것) 가지고 크게 시끌시끌했는데, 자유주의라는 틀 안에 있는 한, 그리하여 '사회주의 운동'의 지향성을 띠지 않는 한 그 어떤 자유주의 좌파도 저런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임노동자 기금도 실제로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나와서 논쟁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차이죠. 굳이 비유하자면 1) 하드코어 펑크에서 출발했으나 메탈과 비슷해진 메탈코어/그라인드코어는 2) 메탈에서 출발했으나 펑크스러운 구석이 있는 몇몇 익스트림 메탈과 비슷하게 들리고, 실제로 이 때문에 장르 논쟁이 벌어지며, 항상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지되는 양자 간의 큰 줄기의 차이는 있는 것처럼..
사회운동가나 정치인도 아니고 특정 입장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일괄적으로 옹호/비판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서 죄다 의견 표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한국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라고 해서 일본 거주 조선적 위안부(해방 이후 한국 국적을 획득하지 않은 채 일본에서 살아가는 종군 피해자)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견 표명을 해야할 이유는 없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70~80년대에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판하며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가들은 항상 '왜 박정희 전두환... 더 보기
사회운동가나 정치인도 아니고 특정 입장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일괄적으로 옹호/비판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서 죄다 의견 표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한국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라고 해서 일본 거주 조선적 위안부(해방 이후 한국 국적을 획득하지 않은 채 일본에서 살아가는 종군 피해자)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견 표명을 해야할 이유는 없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70~80년대에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판하며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가들은 항상 '왜 박정희 전두환만 걸고 넘어지느냐. 김일성이 훨씬 심한데 왜 김일성은 비판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느그들이 빨갱이라는 거다'라는 식의 공격에 시달렸는데, 그에 대한 그네들의 답은 '내가 관심 있는 문제, 나에게 있어 더 중요하다 싶은 문제가 박정희/전두환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김일성 깔 사람은 흔하지 않은가? 박정희/전두환 까는 일만도 빡세 죽겄다'였죠.
결국 이런 것을 정리하면, '특정 대상에 대한 나의 옹호적/비판적 입장을 일관적으로 관철하고 고수한다면, 해당 대상과 궤를 같이 하는 여타 다른 대상에도 똑같이 옹호적/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나의 정신적/육체적 여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안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논하겠다'라는 것이죠.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지구상의 70억의 인간 모두가 취하고 있고 취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필연한 입장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경찰 행정의 허술함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지만 굳이 일일히 비판하고 다니진 않습니다. 거기까지 신경 쓰고 살 계제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주변인이 경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상황은 달라지겠죠. 마찬가지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구이언 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문제 될 게 무에 있나 싶군요.
결국 이런 것을 정리하면, '특정 대상에 대한 나의 옹호적/비판적 입장을 일관적으로 관철하고 고수한다면, 해당 대상과 궤를 같이 하는 여타 다른 대상에도 똑같이 옹호적/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나의 정신적/육체적 여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안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논하겠다'라는 것이죠.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지구상의 70억의 인간 모두가 취하고 있고 취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필연한 입장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경찰 행정의 허술함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지만 굳이 일일히 비판하고 다니진 않습니다. 거기까지 신경 쓰고 살 계제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주변인이 경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상황은 달라지겠죠. 마찬가지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구이언 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문제 될 게 무에 있나 싶군요.
1. 본문의 예시에서의 조형기와 백윤식이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피터싱어같은 급진적인 철학자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렇다면 그 선은 누가 정하는가요. 본문은 논리와 합의를 선의 설정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와 합의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가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죠. 예컨대 소설 롤리타에 대한 몇개 국가의 판금조치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논리가 합의를 바꾼 예이기도 하지요. 이는 논리가 현실의 합의를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 더 보기
1. 본문의 예시에서의 조형기와 백윤식이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피터싱어같은 급진적인 철학자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렇다면 그 선은 누가 정하는가요. 본문은 논리와 합의를 선의 설정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와 합의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가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죠. 예컨대 소설 롤리타에 대한 몇개 국가의 판금조치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논리가 합의를 바꾼 예이기도 하지요. 이는 논리가 현실의 합의를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끊임없이 틀렸음을 주장했기 때문일겁니다. 그리고 지금 롤리타를 판금조치하지말아야한다는 논리는 타당한 것으로 다수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즉 논리는 사후적으로만 타당성을 인정받습니다. 먼 훗날에 피터싱어의 급진적 평등주의가 타당한 논리로 여겨진다면, 본문에서 조형기와 백윤식을 다르게 보았던 것은 그저 과거 시대의 무지의 소치로 여겨질겁니다. 어떤 논리가 타당했었는지 당대에 확신할 수 있는 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합의죠. 그렇지만 위에서 든 롤리타의 예에서 우리는 합의를 그대로 존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합의로 그어진 선을 잘못됬다고 말하는 논리가 있어야 합의가 바뀌겟죠. 결국 당대에는 서로의 어떤 논리가 우세한지 끊임없이 겨루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렇기에 무에타이선수는 왜 음경차기는 안되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따르는것이 현실이라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위의 영역입니다. 당위로서의 선을 논하는데 있어 현실로서의 선인 합의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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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왜 노무현과 박정희가 다른지에 대한 근거로 사후평가의 차이 , 시대성 및 연출의 적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사후평가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한다면 박정희는 과거 대통령인기순위에서 항상 부동의 1위를 차지합니다. 노무현보다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의 수가 많습니다. 사후평가의 차이가 존재하는지요. 시대성이 문제가 된다면 운지의 꿈이 이십년뒤에 상영되는 예를 들 수도 있습니다. 연출의 차이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신건지 이해가 잘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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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왜 노무현과 박정희가 다른지에 대한 근거로 사후평가의 차이 , 시대성 및 연출의 적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사후평가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한다면 박정희는 과거 대통령인기순위에서 항상 부동의 1위를 차지합니다. 노무현보다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의 수가 많습니다. 사후평가의 차이가 존재하는지요. 시대성이 문제가 된다면 운지의 꿈이 이십년뒤에 상영되는 예를 들 수도 있습니다. 연출의 차이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신건지 이해가 잘되지 않네요.
먼저 이걸 설명드려야하겠네요. 저는 철저한 윤리 상대주의자이자 일종의 허무주의자입니다. 100년 후에 피터싱어의 급진적 평등주의가 타당한 논리로 여겨진다면, 1000년 후에는요? 제 의견이 훗날 나치스와 비견된다면요? 저는 상관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피터 싱어의 선호공리주의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어떤 한 인간의 선호가 다른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납득 가능한 가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여기서 '납득 가능하다'는 것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저는 현재 제가 생각하는 윤리가 모두에게 보편...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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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걸 설명드려야하겠네요. 저는 철저한 윤리 상대주의자이자 일종의 허무주의자입니다. 100년 후에 피터싱어의 급진적 평등주의가 타당한 논리로 여겨진다면, 1000년 후에는요? 제 의견이 훗날 나치스와 비견된다면요? 저는 상관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피터 싱어의 선호공리주의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어떤 한 인간의 선호가 다른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납득 가능한 가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여기서 '납득 가능하다'는 것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저는 현재 제가 생각하는 윤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드리는 지점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상대방이 납득 가능한 공정한 바탕에서 논의를 해보자는 겁니다. 반대로, 공정함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윤리 기준에 포함되고요. 제 글도 그런 입장에서 쓰여진 걸로 받아주시면 됩니다. 합의라는 것은 공정함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제약입니다.
1. 무에타이 선수는 물론 왜 음경차기가 안 되는 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자체를 없애는 건 결국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본문에서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지적한 거지요. 훗날 우리가 물리적 육체를 초월한다면 '살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런 공상으로 무슨 윤리를 만들겠습니까? 반대로, 합의라는 가치는 왜 당위가 될 수 없습니까?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저 다수결에 승자독식인 겁니까?
2. 노무현과 박정희의 정치적 평가가 다르다는 게 설명이 필요합니까? 하나는 군부 출신의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이고 하나는 전 대통령인데요. 인간 노무현과 박정희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귀엽게만 그리면 생식기와 뽀로로가 나오는 만화가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초콜릿이랑 바나나가 다르다는 것에도 일일히 설명을 붙여야 하나요? 어떤 쪽이 낫다는 게 아니라, 지지층과 평가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시대상도 전혀 다르고요. 이걸 게으르게(아니 의도적으로 비열하게) 동치한 것은 오히려 팟저님입니다. 영화의 제목부터 의도가 들어가 있는데 '운지의 꿈'이라는 제목이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와 최대한 공정하게 동치하려는 시도입니까? MC현무와 김윤아는 어떻고요? 저는 이게 정말 설명이 필요한지 의문이네요.
개인으로서의 저는 현재 제가 생각하는 윤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드리는 지점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상대방이 납득 가능한 공정한 바탕에서 논의를 해보자는 겁니다. 반대로, 공정함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윤리 기준에 포함되고요. 제 글도 그런 입장에서 쓰여진 걸로 받아주시면 됩니다. 합의라는 것은 공정함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제약입니다.
1. 무에타이 선수는 물론 왜 음경차기가 안 되는 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자체를 없애는 건 결국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본문에서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지적한 거지요. 훗날 우리가 물리적 육체를 초월한다면 '살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런 공상으로 무슨 윤리를 만들겠습니까? 반대로, 합의라는 가치는 왜 당위가 될 수 없습니까?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저 다수결에 승자독식인 겁니까?
2. 노무현과 박정희의 정치적 평가가 다르다는 게 설명이 필요합니까? 하나는 군부 출신의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이고 하나는 전 대통령인데요. 인간 노무현과 박정희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귀엽게만 그리면 생식기와 뽀로로가 나오는 만화가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초콜릿이랑 바나나가 다르다는 것에도 일일히 설명을 붙여야 하나요? 어떤 쪽이 낫다는 게 아니라, 지지층과 평가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시대상도 전혀 다르고요. 이걸 게으르게(아니 의도적으로 비열하게) 동치한 것은 오히려 팟저님입니다. 영화의 제목부터 의도가 들어가 있는데 '운지의 꿈'이라는 제목이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와 최대한 공정하게 동치하려는 시도입니까? MC현무와 김윤아는 어떻고요? 저는 이게 정말 설명이 필요한지 의문이네요.
1. [우리는 백윤식을 용납해야하는가]가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범했다고 이야기하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난장판 속에서도 모호하나마 어렴풋한 기준쯤이야 사회적으로 용인되겠죠. 예컨대 전두환을 대놓고 까는 영화 ‘26년 후’에 대해선 저런 논란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요]라면서 선을 아예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하는데요. 팟저님이 어떤 선을 구상하고 계신지야 저야 모르지만, '정치적인물에 대한 조롱'은 무제한으로 허용하는게... 더 보기
1. [우리는 백윤식을 용납해야하는가]가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범했다고 이야기하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난장판 속에서도 모호하나마 어렴풋한 기준쯤이야 사회적으로 용인되겠죠. 예컨대 전두환을 대놓고 까는 영화 ‘26년 후’에 대해선 저런 논란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요]라면서 선을 아예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하는데요. 팟저님이 어떤 선을 구상하고 계신지야 저야 모르지만, '정치적인물에 대한 조롱'은 무제한으로 허용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제 생각은 선을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조롱'을 허용하지 말자는 선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는데요.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원 글이 선을 아예 없애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볼 수 없으며, 선을 아예 없애지 않더라도 '운지의 꿈'을 상영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어떻게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습니까. 합의와 당위가 어긋나는 수많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코리아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모집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였을때 세월호를 인양해야한다는 문장에 77.2%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통계절차에 오류가 없다면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충분한 모집단이라고 보는데요. 이것이 세월호 인양의 당위의 논거로 삼을 수 있습니까? 허핑턴 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2015년 기준 58%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33%가 찬성하고 있구요. 그렇다면 이 합의가 동성결혼 반대의 당위로 기능하나요?
2. 사후 평가가 다르다는건 설명이 필요하죠. 하나는 군부 출신의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이고 하나는 전 대통령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보다도 박정희를 존경할만한 대통령으로 뽑고 있는데요. 귀엽게 그린 야동과 뽀로로가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국민의 '사후평가'라면 그 '사후평가'를 근거로 삼지 말고 다른 걸 근거로 삼아 야동과 뽀로로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야겠죠. 물론 각 지지층에 따른 평가는 둘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지지층이 다른것이 어떻게 둘은 다르게 볼 근거가 되겠습니까. 어떤 쪽이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관하여 더 성실할 것을 요구한 것은 말씀하신대로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댓글을 단 이후 그러면 이전의 글은 둘이 같다는 것을 어떻게 논증했는지 생각해보았고, 성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래서 댓글을 수정했는데 한발짝 늦은 것 같네요.
덧붙여 어떻게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습니까. 합의와 당위가 어긋나는 수많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코리아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모집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였을때 세월호를 인양해야한다는 문장에 77.2%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통계절차에 오류가 없다면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충분한 모집단이라고 보는데요. 이것이 세월호 인양의 당위의 논거로 삼을 수 있습니까? 허핑턴 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2015년 기준 58%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33%가 찬성하고 있구요. 그렇다면 이 합의가 동성결혼 반대의 당위로 기능하나요?
2. 사후 평가가 다르다는건 설명이 필요하죠. 하나는 군부 출신의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이고 하나는 전 대통령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보다도 박정희를 존경할만한 대통령으로 뽑고 있는데요. 귀엽게 그린 야동과 뽀로로가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국민의 '사후평가'라면 그 '사후평가'를 근거로 삼지 말고 다른 걸 근거로 삼아 야동과 뽀로로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야겠죠. 물론 각 지지층에 따른 평가는 둘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지지층이 다른것이 어떻게 둘은 다르게 볼 근거가 되겠습니까. 어떤 쪽이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관하여 더 성실할 것을 요구한 것은 말씀하신대로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댓글을 단 이후 그러면 이전의 글은 둘이 같다는 것을 어떻게 논증했는지 생각해보았고, 성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래서 댓글을 수정했는데 한발짝 늦은 것 같네요.
졸려서 짧게 달게요. 답변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후에 추가하겠습니다.
'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엄밀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아 회원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장동민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고 패드립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별다른 고민없이 동치하는 건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직유법 대신 수사학적 의문문으로 모호하게 넘어갔다고 해서 두 가지 다른 사실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고 했던 게 아닌 것은 아니지요.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합의가 곧 당위라는 말은 아닙니다. ... 더 보기
'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엄밀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아 회원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장동민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고 패드립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별다른 고민없이 동치하는 건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직유법 대신 수사학적 의문문으로 모호하게 넘어갔다고 해서 두 가지 다른 사실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고 했던 게 아닌 것은 아니지요.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합의가 곧 당위라는 말은 아닙니다. ... 더 보기
졸려서 짧게 달게요. 답변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후에 추가하겠습니다.
'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엄밀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아 회원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장동민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고 패드립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별다른 고민없이 동치하는 건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직유법 대신 수사학적 의문문으로 모호하게 넘어갔다고 해서 두 가지 다른 사실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고 했던 게 아닌 것은 아니지요.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합의가 곧 당위라는 말은 아닙니다.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없다면 '공화제'나 '사회계약' 같은 단어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지요. 사회적으로도 합의의 가치는 중요시 여겨집니다. 반대로 2016년 기준 58%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면, 동성결혼 찬성론자들은 분명 달라진 여론을 당위의 하나로 사용할 겁니다. 공리주의적 근거를 들 수도 있겠네요.
별개로 저는 원글에 최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운지의 꿈'은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최소한 원글은 입증 책임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건 '운지의 꿈'은 비난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옹호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운지의 꿈'을 옹호하거나, '그때 그 사람들'을 옹호하거나, 둘 다 옹호하거나, 둘 다 비난하거나. 어떤 주장이든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오라는 겁니다. 다만 원글의 주장인 '그때 그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운지의 꿈'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라는 이야기입니다(이게 왜 잘못되었는지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믿습니다).
'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엄밀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아 회원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장동민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고 패드립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별다른 고민없이 동치하는 건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직유법 대신 수사학적 의문문으로 모호하게 넘어갔다고 해서 두 가지 다른 사실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고 했던 게 아닌 것은 아니지요.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합의가 곧 당위라는 말은 아닙니다. 합의가 당위가 될 수 없다면 '공화제'나 '사회계약' 같은 단어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지요. 사회적으로도 합의의 가치는 중요시 여겨집니다. 반대로 2016년 기준 58%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면, 동성결혼 찬성론자들은 분명 달라진 여론을 당위의 하나로 사용할 겁니다. 공리주의적 근거를 들 수도 있겠네요.
별개로 저는 원글에 최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운지의 꿈'은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최소한 원글은 입증 책임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건 '운지의 꿈'은 비난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옹호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운지의 꿈'을 옹호하거나, '그때 그 사람들'을 옹호하거나, 둘 다 옹호하거나, 둘 다 비난하거나. 어떤 주장이든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오라는 겁니다. 다만 원글의 주장인 '그때 그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운지의 꿈'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라는 이야기입니다(이게 왜 잘못되었는지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백윤식 복귀를 주장하기 위해선 우리는 조형기의 복귀를 함께 주장해야 하는가? 글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동치 시킨다. 그러나 박정희는 노무현이 아니고, MC현무는 김윤아가 아니고, ‘운지의 꿈’ 또한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두 고인(故人)의 대한 평가부터 시대, 연출의 적절성까지 전혀 다른 두 가지 경우이다. 적어도 하나를 허용하려면 다른 하나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사례의 다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Slippery Slope)다. 사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보기 ... 더 보기
전형적인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Slippery Slope)다. 사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보기 ... 더 보기
그러나 백윤식 복귀를 주장하기 위해선 우리는 조형기의 복귀를 함께 주장해야 하는가? 글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동치 시킨다. 그러나 박정희는 노무현이 아니고, MC현무는 김윤아가 아니고, ‘운지의 꿈’ 또한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두 고인(故人)의 대한 평가부터 시대, 연출의 적절성까지 전혀 다른 두 가지 경우이다. 적어도 하나를 허용하려면 다른 하나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사례의 다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Slippery Slope)다. 사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보기 어렵지 않다. 동성애자는 AIDS 보균자들이 되기 십상이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 종북주의자가 되는 세상 아닌가.
메갈리아4를 지지한 성우, 메갈리아 4를 지지한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논리는 이거죠.
"그렇다면 일베 논란으로 다른 사람들이 퇴출되었을 때는 왜 아무말도 안했답니까?"
"메갈리아는 여자 일베죠." "메갈리아는 나치 / IS / 테러집단입니다."
전형적인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Slippery Slope)다. 사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보기 어렵지 않다. 동성애자는 AIDS 보균자들이 되기 십상이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 종북주의자가 되는 세상 아닌가.
메갈리아4를 지지한 성우, 메갈리아 4를 지지한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논리는 이거죠.
"그렇다면 일베 논란으로 다른 사람들이 퇴출되었을 때는 왜 아무말도 안했답니까?"
"메갈리아는 여자 일베죠." "메갈리아는 나치 / IS / 테러집단입니다."
애초에 그 둘을 동치시키자는게 글쓴이의 주장이 이니죠. 오히려 그런 무분별한 감정적 동일시화를 그만 두고 어느 정도의 일관성 있는 선을 두어야 한다는게 요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오독할만한 여지를 엄청나게 주긴 했지만... 사실 저는 그 글의 1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이걸 주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어느정도 풍자 비슷한 어조를 느꼈거든요. 위에 올린 해명을 읽으면 뭐 그런걸 의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아 그리고 비약이 있다면 성우의 메갈 옹호를 그 '선' 안에 들어와 있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부분인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더 보기
애초에 그 둘을 동치시키자는게 글쓴이의 주장이 이니죠. 오히려 그런 무분별한 감정적 동일시화를 그만 두고 어느 정도의 일관성 있는 선을 두어야 한다는게 요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오독할만한 여지를 엄청나게 주긴 했지만... 사실 저는 그 글의 1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이걸 주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어느정도 풍자 비슷한 어조를 느꼈거든요. 위에 올린 해명을 읽으면 뭐 그런걸 의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아 그리고 비약이 있다면 성우의 메갈 옹호를 그 '선' 안에 들어와 있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부분인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있다고 느끼진 않아서; 방금 생각난 또 하나의 문제는 넥슨이 까일 당위가 있다고 하는 부분인데 저는 여기에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넥슨과 넥슨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원인은 분리시켜야죠. 관중들 소리 들린다고 럴커밭으로 걸어들어갈 순 없으니 까려면 관중들을 까야지 플레이어를 깔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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