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11/03 00:20:12
Name   구밀복검
Subject   공주와 도둑


90년대는 비디오 테잎 대여점의 전성기였죠. 저도 그 시대의 자손으로서 열심히 비디오를 빌려봤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작품이라면 꼬마 자동차라, 호호 아줌마, 팬텀보이 같은 것들이 있네요.

이 시기 비디오 테잎 대여점의 특질로 꼽자면 무질서성입니다. 비디오 테이프라는 상품 자체가 고가가 아니기도 했고, 지금처럼 개인 단위에서 상업성을 판단하기가 쉬웠던 것도 아닌지라, 점주들은 그냥 아무 거나 일단 많이 들여놓고 보는 경향이 있었죠. 그래서 테잎 리스트를 보면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되려 작품 선택의 다양성이 있었고요. 국적이든 타겟층이든 장르코드든 패턴을 찾기 어려웠고 그야말로 만화 비빔밥이었죠. 그 와중엔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비디오 마켓으로 강등된 작품들도 제법 뒤섞여 있어 저 같은 분유충들도 쉬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The thief and the cobbler란 작품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한국에는 <욤욤공주와 도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비디오 타이틀은 그냥 심플하게 <공주와 도둑>로 나왔던 것 같군요. 여하간 한국에 수입된 것은 이미 배급과 유통 과정에서 꽤나 난도질이 되어 디즈니 스타일로 어레인지 되는 등 연출자의 의도가 사라진 버전이었습니다만, 어린 아해 눈에는 도둑과 구두수선공과 공주와 황금공과 악마와 외세가 뒤얽히며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제법 흥미진진했지요. 추억을 더듬어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지해 작품을 검색하다가 리처드 윌리엄스라는 레전드 애니메이터의 비운의 걸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수소문 끝에 DVD를 구매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한 장면만 살펴보겠습니다. 작품 중반 즈음 도둑놈이 구두수선공의 추격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씬이죠. 심플하게 그려진 가로선과 세로선과 격자무늬 사이에서 숨바꼭질이 벌어집니다. 막힘은 열림이 되고 수평은 수직이 되죠. 에셔의 그림처럼, 3차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가 2차원의 점선면에서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애니메이션의 마술이죠. 그렇게 구두수선공과 도둑과 공주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이 뒤섞이게 됩니다. 마치 전혀 공통점 없는 테잎들이 알록달록 진열되어 있던 그 시절 그 대여점처럼.


오리지널 컷


한국어 더빙



3


    욤욤공주와 도둑 진짜 좋아했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상미 진짜 쩔어요 8ㅅ8
    구밀복검
    앗 동지가 있을 줄이야...이거시 독립군 된 기분
    꼬마 자동차 붕붕, 호호아줌마, 이상한 나라의 폴 다 좋아했어요 +ㅅ+
    근데 욤욤공주는 저 어지럽고 치밀한 영상미랑 마냥 둥글둥글 귀엽지도 않은데 뭔가 매력있는?? 캐릭터들 때문에 몇번이고 빌려 봤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ㅎ
    구밀복검
    니가 황금공을 찾았구나! 에서 빵 터지는 것..
    다시갑시다
    와... 진짜 대단하네요... 처음보는 작품이고 처음 듣는분인데 풀버젼 찾아봐야겠어요
    구밀복검
    클립 따라가시면 다 있습니다 ㅎㅎ
    1
    캡틴아메리카
    [모뉴먼트 밸리]가 생각나네요 ㅎㅎ
    구밀복검
    처음엔 존 포드 말씀하시는가 싶었는데 뒤져보니 게임이 있군요 ㅎㅎ 함 플레이 영상 찾아봐야겠습니다.
    캡틴아메리카수정됨
    존 포드라니 앜ㅋㅋㅋㅋㅋㅋ

    직업병(?) 아닙니까? ㅋㅋ
    존 포드 ㅋㅋㅋㅋㅋㅋ
    Beer Inside
    비운의 명작 터보레이터가 생각나는 글이군요.
    2
    구밀복검
    뭔지 몰라서 방금 검색해봤는데 앜
    1
    Darwin4078
    아아... 터보레이터... 명작입니다. 2도 나왔는데 2는 솔까 쓰레기.
    무적의청솔모
    요샛말로 약을 얼마나 하면 저런 걸 만들 수 있죠?
    구밀복검
    ㅎㅎ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면 걸출합니다. 제일 유명한 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있고.
    커피최고
    와... 이걸 몰랐다니
    기아트윈스
    욤욤공주와 도둑 이거 제 인생만화중 하나예요. 분유충이 보기에 저 격자무늬 추격씬도 걸작이었지만 악의 군대가 긴 폴대를 세우고 행진하는 장면 역시 대단히 인상깊었어요. 공주도 이쁘고 도둑도 엄청난 캐릭터고... 하여간 걸작 중의 걸작.
    2
    구밀복검
    그때 분유충이셨을 리가 >_<
    학위캡터
    어렸을때 집앞에 있는 영화마을이 있었는데
    금요일밤에 들려서 가게 사장님께 "가족들이랑 같이 볼 수 있는거 추천해 주세요" 하면
    비디오테잎을 손수 골라주시던 기억이 나네요
    구밀복검
    그때 비디오 대여점주들이 하던 게 지금 생각하면 큐레이팅이나 넷플릭스 같은 거죠 ㅎㅎ
    1
    켈로그김
    욤욤공주와 도둑을 분명히 보긴 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직후에 본 지상월/소주완의 용의아들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본 비운의 괴작인 성검 쉐이드도 생각나고.. 옛생각 나네요 ㅋㅋㅋ
    성검 쉐이드는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는데 최상단에 이게 ㅋㅋㅋ https://pgr21.com/?b=9&n=92286
    켈로그김
    엌ㅋㅋㅋㅋㅋㅋㅋ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075/read/18654501
    사실은 홍차넷 ama에서 답변주신 분이 계셔서 대충 원제까지는 알아냈습니다.

    다만.. 구할 수는 없다능..
    Darwin4078
    순진무구했던 고딩 시절...
    친구들이랑 화교였던 친구 자취방에 놀러갔는데 진짜 재밌는거 있다고 틀어준 비됴가 옥보단 무삭제판과 타부 시리즈...
    허슬러와 플레이보이의 2d로 수없이 이미지메이킹을 했던 장면들이 비주얼쇼크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렇게 소년들은 어른이 되어갔..
    구밀복검
    이것이 분식과 학식의 차이..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869 일상/생각공교육+온라인 강의? 32 moqq 21/07/11 5253 1
    13549 사회공군 일병 숨진 채 발견…가족에 "부대원들이 괴롭혀 힘들다" 호소 16 revofpla 23/02/07 2911 0
    10791 정치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요를 줄이면 되는거 아닐까요 18 타키투스 20/07/17 4937 3
    6785 일상/생각공동의 지인 20 달콤한밀크티 17/12/19 4535 20
    6060 사회공립학교 교원임용 TO에 관한 사고 18 DarkcircleX 17/08/04 5991 0
    7957 일상/생각공무원 7급 = 일반고 전교 1등? 30 메존일각 18/07/27 7315 0
    11237 기타공무원들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17 지와타네호 20/12/16 6169 0
    11063 일상/생각공무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7 nothing 20/10/16 4496 22
    1727 정치공무원이 성과에 따라서 보수를 받아야되는 직업인가 싶습니다. 27 하니남편 15/12/07 6833 2
    15186 일상/생각공백 없는 이직을 하였읍니다. 11 Groot 25/01/04 1402 21
    8694 일상/생각공부 잘하는 이들의 비밀은 뭘까? (上) 22 Iwanna 18/12/28 6211 8
    8699 일상/생각공부 잘하는 이들의 비밀은 뭘까? (下) 4 Iwanna 18/12/28 5300 9
    7416 일상/생각공부 하시나요? 10 핑크볼 18/04/20 4305 3
    15164 일상/생각공부가 그리워서 적는 대학 첫 강의의 기억 10 골든햄스 24/12/27 1121 12
    13741 일상/생각공부는 노력일까요? 재능일까요? 39 비물리학진 23/04/11 4153 0
    7228 일상/생각공부는 어느정도 레벨을 넘으면 꼭 해야하는 것같습니다. 6 란슬롯 18/03/12 4348 3
    14044 일상/생각공부에 대하여... 13 희루 23/07/14 3288 0
    10655 일상/생각공부하다 심심해 쓰는 은행원의 넋두리 썰. 10 710. 20/06/06 6309 31
    7040 일상/생각공부하다한 잡생각입니다. 10 성공의날을기쁘게 18/02/03 3680 0
    13269 도서/문학공상과학문학의 트렌드 분석 - 우주여행과 다중우주(멀티버스)를 중심으로 20 매뉴물있뉴 22/10/25 3336 2
    9741 정치공수처 제도 여당안 비판 26 제로스 19/09/30 5653 16
    11316 정치공실률 0%로 집계되는 부동산 통계의 문제점 7 Leeka 21/01/03 4706 3
    2270 정치공약 : 트럼프 vs 샌더스 10 눈부심 16/02/22 4666 1
    15006 오프모임공약은 지켜보겠읍니다.(기아 우승) 35 송파사랑 24/10/29 1662 11
    8995 방송/연예공연 후기 (태연의 서울 앵콜 콘서트) 2 레이미드 19/03/23 3804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