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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7/25 14:10:03
Name   기쁨평안
Subject   우리나라 예능 발전사에 대한 잡상 - 1
저는 예능프로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특정 프로를 마구잡이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예능프로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는, 조금은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새롭게 런칭하는 예능프로는 왠만하면 다 보는 편이고, 꽂히면 계속보고 아니면 말고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예능프로에도 어떤 흐름이 있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평소에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정리도 할 겸 해서 올려봅니다.
저보다 더 조예가 깊으신 분들의 첨언이 있다면 더욱 완성도가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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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능의 기원

"예능"이라는 장르는 사실 굉장히 특이한 장르입니다. 이것은 드라마와 같은 완전한 허구도 아니고 코메디와 같이 의도적인 웃음유도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리얼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수준의 리얼리즘은 더욱더 아니지요.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거짓(극적인 요소)과 진실(리얼리즘적인 요소)의 모호한 경계,
과장된 웃음과 진정성 있는 감성의 중간.
그 둘 사이의 모호한 지점위에 각각의 예능프로는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장르를 사람들은 왜 관심을 가지고 볼까요?

저는 그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가지고있는 내면적인 불안함이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제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사회발전속도가 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요.
5년전에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님은 일제 치하에 태어나신 분이세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 와이프랑 이메일을 주고 받으셨어요.
(힙스터 + 얼리어덥터의 피는 유전입니다. 어쨌든..)

이러다보니 다들 미친듯이 어디론가 달려는 가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고 내가 있는 위치가 어느정도 인지도 모르는 거에요. 이걸 알려줄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거죠.
그래서 그 기준이 '선진국', '미국', '일본'이 되었죠. 등수에 집착하고, 순위에 목말라하고 남하고 비교하면서 '아, 나는 여기쯤이구나.' 하면서 안심을 하거나, 불안감을 느끼거나, 우월감이 우쭐대다가,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는거죠.

그래도 7, 80년대까지는 진짜 돈을 벌기 위해서만 미친듯이 달린 시기라고 봐요.
또한 한쪽에서는 민주화를 위해서도 미친듯이 달렸고요.
그러다가 87년이 되고, 88년에 올림픽도 치루면서, 이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각 사람들에게 생긴것 같아요.
집집마다 TV도 생기고, 자동차도 생기면서, 어떤 물질적인 최소한의 필요가 채워진 시점이 된 거로 봅니다.
(80년대만 해도 저희 할아버지가 계시던 시골에는 마을에 전화기가 한집에만 있어서 그 집에 전화하면 그집 아이가 할아버지 댁으로 할아버지를 부르러 갔어요. 그럼 5분 정도 있다가 다시 전화를 하는거죠.)

저희 아버님세대만 해도 너무 가난한데 땅도 없어서 가마니에 흙을 퍼담아다가 그 속에 감자를 심어서(...) 그 감자를 캐어서 먹으며 연명했다고 하니까요. 할아버지가 그나마 공무원이셨는데, 딸린 식구가 너무너무 많아서 정말 힘드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런 여유가 생기니까, 극빈층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중산층이 되면서 사람들이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한거죠.

'나는 가난한 환경에서 이렇게까지 살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2. 토크쇼의 출현

그래서 저는 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토크쇼가 우리나라 예능의 시작으로 봅니다. 자니윤씨가 와서 자니커슨 쇼를 그대로 따라한 자니윤쇼를 했죠.

그러면서 연예인이 출연해서 드라마나 영화, 음악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거에요.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가 궁금한거에요. 방송에서 포장되고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진짜 인생이야기, 그 사람의 실제 성격은 이렇구나. 그 사람의 실제 환경은 이렇구나. 이런 것들을 보기 시작한거죠.

그 뒤로 토크쇼가 정말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임백천, 임성훈, 이승연, 이홍렬 등 굵직굵직한 토크쇼 진행자들도 나왔죠.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인구가 적고 땅도 좁아서 연예인 풀도 굉장히 좁습니다. 배우 한바퀴, 가수 한바퀴 돌면 끝이에요.
요새야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오지 예전엔 딱 두 그룹만 있고, 코메디언이나 모델은 쳐주지도 않았어요.

이런 한정된 사람들이 있으니 토크쇼 한바퀴씩 돌면 끝나는 거에요. 그러니 맨날 어릴적 이야기를 돌릴 수는 없고 점점 토크쇼는 새로운 프로그램 홍보하는 곳으로 되어버렸죠. 새로 개봉하는 영화, 새로 진행하는 드라마 이야기들.
방영중인 드라마 시청률이 경쟁사보다 떨어지면 주연 여배우 투입되어서 촬영중 있었던 에피소드 풀어놓고..
(김희애씨가 "콰레이스키" 방영중 출연해서, 러시아 오케이션 촬영당시 춥고 열악한 이야기 하면서, 극중에 성고문 당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형사가 제 옷을 벗기는 장면이 나와요! 여러분 이번 방송편 기대해주시요. 깔깔.' 이런 멘트를 친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진화의 시작 - 쇼프로그램

그러면서 토크쇼에서 '출연자의 진솔한 모습'이 사라지면서 인기도 점점 줄어들게 되자, 그 사이를 메꾼 것이 '출연자 가학 방송'입니다. 일종의 극한 상황을 출연자에게 부여하면서 그 속에서 포장되고 꾸민 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이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몰래카메라류 입니다. 그리고 몰래카메라도 이제 연예인들이 익숙해지면서 눈치를 많이 채기 시작하니까 아예 스튜디오에서 극한체험을 시킵니다. 매운 양파 먹이기, 레몬먹이기, 아니면 적당히 몸집이 있고 둔한 여성 연예인을 데려다 놓고 요가를 시킨다던지, 차력을 시킨다던지, 살아있는 뱀을 목에 걸어준다던지. 네 "일요일밤에" 주병진, 노사연, 이경규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레전드 시청률을 찍으며 방송 트렌드를 바꿔버립니다.

(물론 이무렵부터 방송계는 미친듯이 일본 예능을 베끼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먹히는 장르는 다 이러한 특징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러다가 극한체험위주로 방송이 바뀝니다. 무서운 놀이기구 태우기, 해외 테마파크 귀신의 집 가기, 아니면 막노동 시키기(체험 삶의 현장, 삐까뻔쩍하는 연예인도 우리처럼 노가다하면 똑같구나. 그들도 이렇게 힘든일을 했으니 우리 서민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줄거야.)
아니면 아예 육아를 시켜버리기도 했죠. (g.o.d의 육아일기)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연예인들도 많이 약아집니다. 대충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보여야 대중들에게 미움을 안사고 호감을 얻을지 대충 알게 된다는 거죠.
(이것을 실패하면 김옥빈 할인카드 사태가 나는 거고, 비슷한 시기에 구혜선 차가 벤츠인게 논란이 된적이 있는데 몇시간 안되서 바로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시작을 '저는 인천살고요, 그 차는 매니저 오빠차 잠깐 쓴거에요.' 로 시작해서 바로 논란을 가라앉힙니다. 인천이라는 단어 하나로 논란을 가라앉히는 구혜선을 보며 참 동물적인 감각이다 싶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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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한번 자르고 나머지는 이어서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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