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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6/15 11:52:54 |
Name | neandertal |
Subject |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말...왜?...Why?... |
![]() 독일의 나치 정권이 최초로 독일에 세운 강제 수용소인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 가운데 수감되기 전에 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동료 수감자에게 수학 퀴즈 하나를 풀어 보라고 내줍니다. 수학 퀴즈를 부여받은 수감자는 수감되기 이전에는 아주 기초적인 교육만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퀴즈를 받은 수감자는 며칠을 끙끙대며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뒤 그가 다시 그 수학을 전공했던 수감자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에게 내준 퀴즈의 답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퀴즈를 내줬던 수감자는 답은 말해주지 않고서 본인이 스스로 답을 알아내야 한다고만 했습니다. ![]()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자의 고뇌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며칠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수학 퀴즈는 풀리지가 않았습니다. 다시 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이번에도 문제를 받은 수감자는 문제를 내준 수감자에게 답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수감자는 그게 마치 엄청난 값이 나가는 금덩어리라도 되는 양 답을 알려주기를 거절했습니다. 문제를 풀어야 되는 수감자는 “까짓것 안 풀고 말지 그게 뭐 대수라고”하고 수학 퀴즈를 무시하고 평소대로 생활하려고도 해 봤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는 안 풀려서 답답한 그 수학 퀴즈가 계속 떠오르고 그는 점점 더 그 문제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문제를 내줬던 수감자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감자에게 거래를 제시합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배급으로 나오는 빵을 주면 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 거지요.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나치가 세운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에게 풍족한 음식이 제공되었을 리 없습니다. 거의 모든 수감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마치 해골과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지알 회원님들도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수감인들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진들을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제공되는 음식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실낱같은 목숨을 연장해 주는 마지막 수단이었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에게 그렇게 소중한 음식을 자기에게 넘기면 궁금해 하는 수학 퀴즈의 답을 가르쳐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 꼭 먹을 거 가지고 그렇게 치사하게 굴어야만 했을까?... 그 제안을 받은 수감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내가 미쳤냐? 목숨 버려가면서 답 구걸하게?”하고 버럭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답을 알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강렬해서 그는 자신에게 배급되는 빵을 넘기기로 하고 기어코 그 수학 퀴즈의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왜? 라고 질문을 던지는 특성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해 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온 끝에 우리 인류는 달에도 사람을 보내고 인터넷이라는 것도 만들어 냈으며 거리에 상관없이 지구상에 있는 어떤 누구와도 실시간으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문명, 종교, 과학, 철학은 다 인류가 던진 “왜?”라고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었습니다. 사실 어린 조카나 아들, 딸들하고 놀아본 경험이 있는 우리 회원님들은 예외 없이 모두 이 “왜?”라는 질문의 홍수에 빠져본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침팬지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침팬지들도 가르쳐 주면 상당히 많은 과제들을 완수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주 기본적인 도구들도 사용할 수 있고 어떤 과제는 인간들보다 더 빨리 달성하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질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왜?”라고 물어보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회원님들은 어떤 “왜?”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까? 아직까지 질문을 던지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하나 던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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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군번이 95로 시작하는데 군복무 중 밤 사이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던 때가 있었죠.
새벽에 불침번이 깨워서 일어났는데 내무반에 발목 높이까지 물이 가득했고 슬리퍼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완전 군장을 싸라고 해서 급히 군장을 쌌고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해서 집합은 했는데 그 상태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더군요.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었고 먹고 나니 어디론가 이동을 하라 해서 가는데 평소에는 안 들리던 폭포 소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부대 근처에 깊이 1cm에 폭이 ... 더 보기
군번이 95로 시작하는데 군복무 중 밤 사이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던 때가 있었죠.
새벽에 불침번이 깨워서 일어났는데 내무반에 발목 높이까지 물이 가득했고 슬리퍼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완전 군장을 싸라고 해서 급히 군장을 쌌고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해서 집합은 했는데 그 상태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더군요.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었고 먹고 나니 어디론가 이동을 하라 해서 가는데 평소에는 안 들리던 폭포 소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부대 근처에 깊이 1cm에 폭이 ... 더 보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군번이 95로 시작하는데 군복무 중 밤 사이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던 때가 있었죠.
새벽에 불침번이 깨워서 일어났는데 내무반에 발목 높이까지 물이 가득했고 슬리퍼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완전 군장을 싸라고 해서 급히 군장을 쌌고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해서 집합은 했는데 그 상태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더군요.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었고 먹고 나니 어디론가 이동을 하라 해서 가는데 평소에는 안 들리던 폭포 소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부대 근처에 깊이 1cm에 폭이 두 뼘 정도로 흐르던 아주 얕은 또랑이 거대한 협곡처럼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폭이 15미터는 되어 보였고 깊이는 7~8미터 정도???
그걸 보고 경악을 했는데 헉!!! 바로 옆 수송 부대가 물에 잠겨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지만 불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반찬도 밥도 아주 아주 부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송로가 모두 끊겼기 때문에 가끔 헬기로 공수해 주는 적은 양의 부식물로 연명해야 했고 연명 자체가 우리의 임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건 훗날 알게 되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제 부대를 포함한 주변 부대들이 수장되었거나 생존 임무 수행 중이었고 TV에는 사망자 리스트가 실시간 속보로 계속 뜨고 있던 상황이었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가족들과 친척분들도 행여 제 이름이 뜰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다행히 비는 더이상 쏟아지지 않았고 무사히 생존했으나...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동안의 피해를 몽땅 다 복구해야 했으니까요.
심지어 휴전선도 무너졌기 때문에 당장 제일 급한 휴전선 복구 공사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그동안의 고생으로 체력이 바닥인데 완전군장을 한 채로 GOP로 행군을 했고 그곳에서 10분간 휴식 후 삽자루와 곡괭이를 들고 천막을 지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천막을 다 짓고 나니 총기 수입 -> 군장 검사 -_-;
일병 말호봉? ~ 상병 초봉???이 되었던 때라 짬밥 수령하러 다시 후방으로 갔다가 밥통 짊어지고 복귀 -> 밥 먹이고 -> 설거지 하고 -> 반납하고는 -> 한 손에는 삽, 다른 한 어깨에는 휴전선 세울 쇠기둥을 2인 1조로 어깨에 짊어지고 산 고개 2개를 넘어 갖다 놓고 퍼졌죠. @.@
10분 간 휴식 -> 곡괭이질, 삽질, 해머질 -> 그러다 손가락을 해머로 찧는 사고 -> 열외!!!!
하지만 짐꾼으로 전락해서 짐을 나르다가 해가 질 녘에 복귀 -> 점호 -> 꿀잠 -> 이제 좀 자나? 싶었는데 3번초 -> 근무 서고 돌아와서 기절 -> 깨어보니 아침 -> 아침 점호 -> 밥 나르고 -> 먹이고 -> 설거지 하고 -> 반납하고 -> 삽자루 + 쇠기둥 어깨 장착 -> 2 고개 넘기 -> 빡세게 작업 -> 복귀 -> 점호 -> 기절 -> 불침번 -> 기상 무한루프........
따져 보니 실제로 자는 시간은 4시간 정도더군요.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잠이 턱없이 부족하고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데 희한하게 몸 보다 더 아픈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그 느낌을 살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고통이더군요.
사실 군입대를 결정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해서 계속 고통받다가 이대로 가면 정말 죽겠다 싶어서였습니다(엄청난 불면증에 시달리니 몸이 쇠약해졌음).
입대를 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정신적 고통 + 육체적 고통이 더해지니 더 미치겠더군요.
어쨌든 당시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유일한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어서 군장을 싸면서도 보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우겨넣어뒀었죠.
그래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결단했습니다.
불침번이 끝나면 침낭 속에서 책을 읽기로!!
행여나 불빛이 새어 나가서 고참들에게 들킬까 심쿵심쿵하면서도 후레쉬를 켜들고 책을 읽던 그 시간은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뭐랄까... 글자 하나 하나가 제 가슴 속에 새겨지는 듯한 느낌... 너무도 순수한 맑음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
영혼이 정화된다는 게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희한하더군요.
잠이 더 줄어서 몸은 더 괴로운데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은 많이 가셨고 그 힘겹던 생활을 버텨낼 힘이 샘솟아났습니다.
이 글을 보다 예전의 기억을 떠 올려 보니 사람의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은 욕구는 최소한 수면욕, 성욕, 식욕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욕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번이 95로 시작하는데 군복무 중 밤 사이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던 때가 있었죠.
새벽에 불침번이 깨워서 일어났는데 내무반에 발목 높이까지 물이 가득했고 슬리퍼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완전 군장을 싸라고 해서 급히 군장을 쌌고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해서 집합은 했는데 그 상태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더군요.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었고 먹고 나니 어디론가 이동을 하라 해서 가는데 평소에는 안 들리던 폭포 소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부대 근처에 깊이 1cm에 폭이 두 뼘 정도로 흐르던 아주 얕은 또랑이 거대한 협곡처럼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폭이 15미터는 되어 보였고 깊이는 7~8미터 정도???
그걸 보고 경악을 했는데 헉!!! 바로 옆 수송 부대가 물에 잠겨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지만 불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반찬도 밥도 아주 아주 부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송로가 모두 끊겼기 때문에 가끔 헬기로 공수해 주는 적은 양의 부식물로 연명해야 했고 연명 자체가 우리의 임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건 훗날 알게 되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제 부대를 포함한 주변 부대들이 수장되었거나 생존 임무 수행 중이었고 TV에는 사망자 리스트가 실시간 속보로 계속 뜨고 있던 상황이었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가족들과 친척분들도 행여 제 이름이 뜰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다행히 비는 더이상 쏟아지지 않았고 무사히 생존했으나...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동안의 피해를 몽땅 다 복구해야 했으니까요.
심지어 휴전선도 무너졌기 때문에 당장 제일 급한 휴전선 복구 공사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그동안의 고생으로 체력이 바닥인데 완전군장을 한 채로 GOP로 행군을 했고 그곳에서 10분간 휴식 후 삽자루와 곡괭이를 들고 천막을 지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천막을 다 짓고 나니 총기 수입 -> 군장 검사 -_-;
일병 말호봉? ~ 상병 초봉???이 되었던 때라 짬밥 수령하러 다시 후방으로 갔다가 밥통 짊어지고 복귀 -> 밥 먹이고 -> 설거지 하고 -> 반납하고는 -> 한 손에는 삽, 다른 한 어깨에는 휴전선 세울 쇠기둥을 2인 1조로 어깨에 짊어지고 산 고개 2개를 넘어 갖다 놓고 퍼졌죠. @.@
10분 간 휴식 -> 곡괭이질, 삽질, 해머질 -> 그러다 손가락을 해머로 찧는 사고 -> 열외!!!!
하지만 짐꾼으로 전락해서 짐을 나르다가 해가 질 녘에 복귀 -> 점호 -> 꿀잠 -> 이제 좀 자나? 싶었는데 3번초 -> 근무 서고 돌아와서 기절 -> 깨어보니 아침 -> 아침 점호 -> 밥 나르고 -> 먹이고 -> 설거지 하고 -> 반납하고 -> 삽자루 + 쇠기둥 어깨 장착 -> 2 고개 넘기 -> 빡세게 작업 -> 복귀 -> 점호 -> 기절 -> 불침번 -> 기상 무한루프........
따져 보니 실제로 자는 시간은 4시간 정도더군요.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잠이 턱없이 부족하고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데 희한하게 몸 보다 더 아픈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그 느낌을 살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고통이더군요.
사실 군입대를 결정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해서 계속 고통받다가 이대로 가면 정말 죽겠다 싶어서였습니다(엄청난 불면증에 시달리니 몸이 쇠약해졌음).
입대를 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정신적 고통 + 육체적 고통이 더해지니 더 미치겠더군요.
어쨌든 당시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유일한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어서 군장을 싸면서도 보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우겨넣어뒀었죠.
그래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결단했습니다.
불침번이 끝나면 침낭 속에서 책을 읽기로!!
행여나 불빛이 새어 나가서 고참들에게 들킬까 심쿵심쿵하면서도 후레쉬를 켜들고 책을 읽던 그 시간은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뭐랄까... 글자 하나 하나가 제 가슴 속에 새겨지는 듯한 느낌... 너무도 순수한 맑음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
영혼이 정화된다는 게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희한하더군요.
잠이 더 줄어서 몸은 더 괴로운데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은 많이 가셨고 그 힘겹던 생활을 버텨낼 힘이 샘솟아났습니다.
이 글을 보다 예전의 기억을 떠 올려 보니 사람의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은 욕구는 최소한 수면욕, 성욕, 식욕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욕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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