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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07 20:55:29
Name   neandertal
Subject   이거 해봤으면 여러분들도 다 호모 사피엔스...


여러분들 혹시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슬슬 잠이 오려고 할 때쯤 갑자기 몸이 움찔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아니면 피곤한 어느 오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 반복되는 객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슬슬 졸다가 퍼뜩 잠에서 깨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차창 밖을 바라보신 적은요? 그때쯤이면 아마 여러분 맞은편에 앉아서 여러분의 조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어떤 승객은 여러분이 민망해 할까 봐 이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겠지요.

아니면 점심시간 후 5교시 영어 시간에 머리가 반쯤 벗겨지신 영어 선생님께서 열심히 to 부정사의 부사적 용법을 설명하시는 동안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라는 동의의 표현으로 고개를 부지런히 위 아래로 끄덕끄덕하면서 노트에는 적장 쓴 본인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형 문자들을 열심히 그리다가 퍼뜩 눈이 떠지면서 벌게진 눈으로 좌우를 살피고는 홍건하게 고인 침을 소매로 쓱 닦아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이러한 현상들을 "hypnic jerk"이라고 부르는데 왜 잠이 들려고 할 때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인류의 진화 과정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이 hypnic jerk는 인류가 진화를 하면서 적응시킨 반사작용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침팬지들이 밤에 어디서 잠을 자는지 아십니까? 우리 인류와는 약 8백 만 년 전에서 6백 만 년 전 사이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들은 밤에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잠을 잡니다. 위험한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지요. 우리 인류의 오랜 조상들도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류의 먼 조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도 틀림없이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어 놓고 잠을 잤을 겁니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은 방어에 절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별다른 대비책도 없이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땅위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 짓이야말로 포식자들에게 "아잉!~포식자님들 저를 가지세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에 따르면 hypnic jerk는 나무 위 둥지에서 잠을 잤던 우리 먼 조상들이 깊은 잠이 들기 전에 자신들이 잠자는 자세를 바꾸거나 살펴보도록 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나타난 반사작용이라는 겁니다. 이 반사작용은 실제로 자다가 떨어지는 경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막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잠에서 깨게 되어 급하게 주변 나뭇가지라도 붙잡게 해주었을 테니까요.

이 주장이 맞는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만들기 위해 중력을 이용해서 떨어지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은 나름대로 인류의 진화과정에 바탕을 둔 타당성이 있는 장면이 되는 거지요.

이 이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지만 왠지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음에 여러분들이 지하철에서 졸다가 자기도 모르게 퍼뜩 깨어서 살펴보니 아직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한번쯤은 옛 조상들의 힘들었던 삶을 떠올려 보면서 2백 만 년 가까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 그 본능적인 진화의 산물에 감사의 뜻을 표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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