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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11 17:59:39
Name   삼공파일
Subject   전염병을 앞에 두고 “나는 누구의 편인가”를 논하는 한국 사회
메르스는 결국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어떤 종류의 사회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슨 측면으로 보든지 직관적으로 느끼기에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하다. 한국 사회가 큰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회의적으로 답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은 아니다.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이어서 행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고, 언론은 이슈를 만들며 정치권이 이를 피드백하고, 행정부는 다시금 대처한다. 여기서 보인 기형적인 부분은 사회적 문제가 메르스 창궐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문제로 시작되었다가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 이후에 박 시장의 행보에 대한 문제로 넘어갔다. 여론에서 주도권조차 잃어버리는 모습에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장악력이 이토록 떨어지나 다시 한 번 탄식하게 되지만 사람들이 관심 갖는 부분은 이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행정부의 무능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이제는 박 시장이 잘했느냐 못했느냐로 모든 이목이 집중되어 버렸다.

정치인이나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래서 메르스 창궐 사태에 대해 언론과 행정부가 사소한 실수는 있을지언정 각각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여론의 관심을 부추기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행정부는 이를 다루고 진정시키고 대응하고 있다. 잘못된 점은 여론 그 자체, 혹은 대중의 인식이다. 메르스 창궐 사태의 주어는 엉뚱하게도 박 시장이 되었고 변주으로 야당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기타 등등이 간혹 등장한다.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거나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선제적 대처가 중요하다거나 어느 사건에 적용하더라도 그럴법한 핑계거리가 되는 이야기들이 동원되며 박 시장에 대해 논한다. 이 논의는 사태에 따라오는 특수한 비판이 아니라, 박 시장이라는 혹은 박 대통령이라는 주어에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여론은 메르스 창궐 사태를 놓고 또다시 “나는 누구의 편이고, 너는 누구의 편인가?”라는 질문만 미친듯이 던져대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본질적으로 서사적이었다. 서사적인 것은 역사적이다. 역사의 해석은 정치적이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속성이다. 다만, 세월호 사건에서는 언론과 정치, 지식인의 역할 부재로 서사를 완성하지 못했고 정치성이 서사성을 앞질러 서사의 완성을 방해했기 때문에 문제였다. 하지만, 메르스 창궐 사태에는 아무런 서사가 없다. 여론은 전염병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진정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공포는 언론이, 진정은 행정부가 담당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문제일 것 같은 언론과 행정부가 아니라, 여론에서 심각한 이상 증세를 확인할 수 있다. 여론은 전염병을 두고 당연히 느껴야 할 양가 감정을 제쳐두고 박 시장에 대한 명확한 하나의 감정을 결정하려고 한다. 어떤 종류의 사회적 문제가 발발하더라도 여론은 무조건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먼저 느낀다. 그리고 이 혼란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누구의 편인가”라는 반복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되뇌게 만든다.

한국 사회가 이슈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정치성에 매몰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문제는 그동안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 나는 과거의 정치성과 지금의 정치성을 달리 해석한다. 과거의 정치성은 정치성이다. 정치성은 이념에 기반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성은 이념이 거세되었다. 이념이 거세된 정치성은 정치성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었다. 정체성은 기반을 찾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모든 이슈에 달라붙어서 특수성을 제거해버린다. 메르스 창궐 사태를 대하는 여론의 태도가 세월호 사건과 거의 똑같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기형적 여론의 탄생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때 이뤄졌다. 박 대통령이 “복지”를 전면적 화두에 내세우면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념적 구분이 사실상 사라졌다. 민주당 정부와 MB 정부를 실제로 체험한 대중이 이념적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체득했고, 이를 간파한 박 대통령이 선거 전략을 맞추어 짠 것이다. 대중이 판단해야 할 부분은 박근혜 개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밖에 없었다. 여기서 필요한 판단 근거는 “내가 누구의 편이냐” 뿐이었다. 대선 열기가 과열되고 언론 환경이 바뀐 것도 크게 한 몫 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직관 자체를 뒷받침할 이념적 근거 자체가 전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이후 모든 사회적 이슈에 여론은 대처할 능력을 잃었다.

병원 실습을 돌고 있는 의대생으로서 메르스 창궐 사태에 대해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가질 것인가 고민해봤다. 개인적인 사회적 위치가 윤리적인 입장을 요구하고, 이러한 특수한 입장과 상황에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견해가 있어야 한다. 메르스가 어떤 병인지 공부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우려해야 할 부분과 안심해도 될 부분을 구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면, 아마 의대생으로서 더없이 좋은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메르스 창궐 사태보다 여론이 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저열한 비유를 할 생각은 없다. 지금 메르스 창궐 사태는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이념이 거세되어 정체성 불안을 느끼는 여론 때문에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선행된 문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전염병이 퍼지든, 배가 침몰하든,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나는 누구의 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팔다리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머리가 생각할 힘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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