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23 23:52:58
Name   王天君
Subject   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하)
12-7.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이니 별로 객관적이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자꾸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식으로 프레임이 짜이니까요.
그 선글라스 남은 추모현장을 두고 "꿀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두고 화를 내면서, 뭐가 꿀잼이냐고 계속 다그쳤구요.
꿀잼이 꿀잼이죠~ 라면서 이야기를 했고, 여자분은 굉장히 화를 냈습니다.
사람들은 추모 현장에 왜 왔냐고, 뭐가 그렇게 꿀잼이냐고 계속 이야기했고
선글라스남은 "아니~ 꿀잼이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대답한 거에요~ 지금 물어보고 있잖아요~" 라고 했습니다. (전 꽤나 가까이 있었습니다)
선글라스 남은 추모현장에 온 이유를 "그게 진짜 추모일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고~" 라고 했고 전 정말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걸 네가 뭔데 판단하냐고.
리더격이던 민머리 남자는 "아니 여기에 메갈이나 여시가~" 라고 했고 사람들은 전부 다 폭소했습니다.
전 별로 웃음이 안나왔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그 일베회원들의 이야기는 황당하게 들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인데 어떻게 여기서 메신져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요.
일베가 지금 메갈, 여시 걱정할 사람들인가요. 친척 누나 동생 사진 도촬해서 인증하고, 여동생 방에 밀웜 푸는 사람들인데.

저는 앞으로 일베와는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의 실체를 부분으로나마 직접 봤으니까요.

12-8. 핑크코끼리를 둘러싼 여론을 보면서, 저는 대한민국의 시위를 보도하는 보수언론이 계속 생각나더군요.
"폭력시위" 이 단어 하나면 거기에 어떤 맥락이 있건 그 시위는 이미 폭도들의 만행이 되어버립니다.
영상을 다시 한번 보세요. 정말로 폭행이라 불릴만한 것이 있었는지. "폭행"과 "실랑이" 중 어느 단어가 더 적합해 보이시는지요.
제가 "미안하다 사실 네 뒤통수 때린거 나였다 탈이 잘 흔들리는지 궁금해서" 라고 쓴 일베 다른 회원의 글을 가져와야 할까요.
왜 모든 맥락을 제거하고, "폭행"을 당한 것처럼 다들 이 사건을 바라보시는 걸까요.
저 핑크코끼리 탈을 쓴 사람의 행동을 보고 과연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만 있었을지요.
저로서는 이 일련의 흐름이 이미 짜맞추어진 프레임대로 흘러간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12-9. 왜 이 사건에서 "도발하는 측"을 읽지 못하실까요.
세상 어느 누가 추모하는 자리에, 다른 이를 추모하는 화환을 보내는지............
핑크코끼리부터 해서, 이런 도발을 그저 참고만 있으라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립니다.
물론 그것이 성숙한 태도죠. 하지만 우리는 온라인에서도 일베의 행위를 듣고 참지 못해 욕을 날립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현장을 훼손하려는 도발을 어떻게 참고만 있을 수 있나요.
그리고 그 도발의 맥락을 무시한 채, 도발의 결과만을 처음과 끝으로 압축해서 사건을 나르는 분들을 전 봅니다.
이래이래해서 이렇게 되었다 - 가 아닌, 이랬다 - 로 모든 가치판단이 끝나버리는 워딩들이요.



일베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 토론으로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닙니다.
도발하고, 법적 수위를 넘게 한 다음, 오로지 뭔가를 망치는 게 전략의 전부입니다.
이미 우리가 알던 일베의 면목과 연속됩니다. 이걸 두고 자꾸 피해자로만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달리 보셔야 합니다.
원하는 사건들을, 원하는 대로만 해석하고 계신 건 아닐까요.
그렇게 수도 없이 고인능욕하고, 여성혐오하던 일베가 과연 이 상황에서만 갑자기 신사적이고 평화적으로 바뀌었을까요?









저는 추모의 현장을 두고 일베 및 다른 이들의 수많은 위협에 대한 증언을 봅니다.
어떤 동영상이 어떻게 짤려서, 그게 일베에서 어떻게 편집이 되어서 유통되는지를 계속 듣습니다.
현재 떠도는 이야기들을 듣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누가 나쁘다, 이런 이야기 아닌가요?다시 말씀드리지만, 굳이 일베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그러니 일베 욕하고, 다른 사람들 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입장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13-1. 이 여론의 흐름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프레임의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느낍니다.



메갈이 있고, 여시가 있고, 워마드가 있고, 일베가 있다.
거기서 주어들을 다 빼버리고, 수식어로 이들을 표현하면 됩니다. 정말로, 메신져를 떼놓고 액션을 보면 됩니다.
추모하자는 사람들이 있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고, 추모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남습니다.

13-2. 이걸 못하면, 이번 사건의 흐름을 절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메갈, 워마드, 여시가 선동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추모를 하지만 거기는 사실 사람 탈을 쓴 혐오론자들의 각축전이 되고
거기에 일베가 갔고, 욕먹을 짓을 한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 일베의 이야기는 들어야하는데 이들에게 폭력을 쓰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이들의 선동에 휩쓸려서 그 추모의 열기가 거세지고
여자들은 상관없는 이야기를 이때다 싶어서 털어놓는다.
좀 신기하지 않나요?
어떻게 하필이면 이 때 사이트에 파리날리고 자기 사이트도 못챙기는,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그러던 사이트들이
전국적으로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손에 움켜쥐고서 남혐 메시지를 주입할 수 있다는 게.
어떻게 여자들은, 사람들은 계속 이렇게 선동될까요? 우둔해서?
음모론을 계속 고집하면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이게 바로 제가 현장에서 들은 일베의 논리입니다.
"여기에 메갈이랑 여시가....."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요. 그 사이트 회원이 추모하면 추모가 추모가 아니게 되나요?

13-3. 전 너무나 끔찍한 주장들을 봤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그들이 세를 확장할 수 있으니 좋아할 거라던.............
그런 분들께 말씀드릴게요.
메갈리아의 대부분은 여자고, 워마드의 대부분도 여자입니다. 남자인 사람들보다 이 사건에 더 깊이 공감하고 더 힘들어하고 더 분노합니다.
이 사건을 두고 자기 일처럼 뛰는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주장을 하건, 그 주장이 아무리 얼토당토하지 않던,
그런 식의 도구화를 하지 마세요. 그런 상상은,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입밖으로 꺼낼 수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왜 본인이 "도구화를 한다"는 본인의 상상에 누군가의 죽음을 도구로 쓰는 건 깨닫지 못하시나요.

13-3. 저는 이 사건을 두고, 안철수의 중립론과 비슷한 입지의 주장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은 채로, 둘 모두를 비판하고 화해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이 세상은 이분법으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만, 양 쪽의 선택지밖에 없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많은 사안에서 선택의 지점은 매우 간단합니다.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딱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습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다시 벌어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결론을 두고 계속 여혐은 나쁘지만 남혐도 나쁘다, 나는 어느 쪽도 편을 들지 않겠다, 지금 싸우는 거 보니 한심해죽겠다
여야의 대립을 두고 "정치인들은 싸우기만 한다" 라는 소리를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정치에 무관심하단 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떤 갈등을 불필요한 소요로 치부할 수 있을만큼, 이 사건에 완벽히 공감하고 계신지, 혹은 모든 전말과 주체를 다 파악하고 계신지 돌이켜볼 때입니다.

13-4. 동시에, 저는 이것이 퀴어퍼레이드의 담론과 너무나도 유사해보입니다.
마이너리티가 (여성은 그 수만 많을 뿐 사회적 약자입니다.)
마이너리티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데, 그 방식을 메이저리티가 재단하기 때문이죠.
마이너리티는 연대를 외치는데
메이저리티는 그 외치는 형식을 이유로 연대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적대합니다.

13-4. 제가 괴로운 이유는, 추모를 소비하는 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월호 유족과 추모행사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서 "팝콘"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어요.
팝콘을 드신다는 분께서는, 이 모든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신가요. 저는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이 추모와, 그 추모의 주인공이 멀게 느껴지시면 팝콘 운운하면서 이를 즐겁게 관람하실 수 있나요.
정말 너무한다, 라는 생각이 드는 댓글이 너무 많이 보여요. 여기저기서....
이 사건을 두고 어떻게 이리 불구경하듯이 바라보실 수 있으실까요.
너무 그렇게 사건에서 벗어나, 뭔가를 분석하고 막 찾아내려 하지 마십시오. 편가르기 그만 하세요. 추모감별 그만하세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이 사건과의 거리감을 증명하는 겁니다. 이미 이 사건이 "나의 세계"도 아니고, "우리의 세계"도 아니라는 인식인 겁니다.
정말 추모를 염려하시는 거면, 그 자리에 가서 리본이라도 붙여주십시오. 애도하는 글이라도 써주세요.

14-1. 남성혐오........이런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온라인상에서의 혐오발언이라고 대충 합의해보죠.
남성혐오인 추모는 무엇이며, 남성혐오가 아닌 추모는 무엇인지, 남성들이 여성들의 추모 메시지에서 이를 어떻게 가려내실 수 있나요.
남성혐오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계신지요.
혹시 그 이유가 "기분 나빠서"인거라면, 그 불쾌감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시정하라 요구할 것이며, "순수한 추모"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요.




이송희일 감독의 페이스북 부분 발췌합니다.

https://www.facebook.com/leesongheeil/posts/1086798324728719?pnref=story



14-2. 남성혐오가 존재하고, 거기에 불쾌하다면, 제발 그 불쾌함을 여성혐오에도 기울여봐 주세요.
남성혐오로 인해 남성들은 "자존심"을 다치고 "의심"을 받습니다.
여성혐오로 인해 여성들은 "죽습니다" "강간당합니다" "몰카를 찍히고 그것이 퍼집니다".



남성혐오는 남성을 "굉장히 화나게" 하지만, 여성혐오는 여성을 "굉장히 두렵게" 합니다.
이 여성혐오의 현실을 인지하고 뭔가를 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사도 같은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니까, 사람이 이런 꼴을 더 당하지 않도록 다들 생각을 모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인권의 이야기입니다.

14-3. 현실을 더 냉정하게 파악하셔야 합니다.
흐름의 바깥에 몸을 두면, 흐름이 보여요.



좀 유치한 이야기를 하죠.
지금 상황은 딱 두개밖에 없습니다.
일베마저도 맞는 소리를 하고 있든가, 모든 사이트가 일베처럼 흘러가고 있든가.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추모를 하세요.
정말로 추모를 하려고 하신다면, 당신이 붙이려는 포스트잇을, 당신이 내려두는 꽃 한송이의 의미가
이를 어찌하려는 남혐을 가려버리게 될 겁니다.

14-4. 그러니까, 추모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이슈를 두고 절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예의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어찌 그리도 잔인하게 망각을 선언하실 수들 있으실까요.
우리는 어차피 모든 일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비극이 있었다면 그 비극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알고 이야기하며 잊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의무를 다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비극을 두고, 이를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다고 당당히 외치는 분들을 전 보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가장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는 "잊지 않겠습니다" 였어요.
잊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일이 아니니까, 나의 세계가 아니니까" 를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15.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추모해주세요. 그리고 생각해봐주세요.
당장 현실적인 법안을, SF 적인 대책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튼튼한 우리가 있고 철저한 판옵티콘이 생성된다 한들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이나 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은 그를 만드는 "인간의 의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세상이 어떤 부조리를 톱니바퀴삼아 돌아가는지
그리고 나는, 우리는 남성으로서 그 부조리를 어떻게 습득해왔고, 그것을 나도 모르게 따라왔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여성의 이야기들을 들어야 합니다. 남성의 세계에서, 남성의 시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함정입니다.
무엇이 악이다, 무엇을 하려한다, 세상은 어떠하다......
지금 무엇을 더 미워하고, 무엇에 더 분노하고, 이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분노의 칼끝만 바라보실까요. 분노의 손잡이를, 그 손잡이를 쥔 손을 보세요. (이 말은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분노에도 해당이 됩니다.)
나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아니어서
누군가가 스러졌습니다.
이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의 세계가 아니었던, 우리의 세계를 이제 직시해야 합니다.

@ 페미니즘은 "더 좋은 세상 만들기" 같은 운동이 아닙니다.
더 이상 죽기 싫어서, 강간당하기 싫어서, 그 모든 인권침해를 견딜 수가 없기에 나오는 발버둥입니다.


만일 혼란스러운 분이 있다면, 이 음악을 틀고 다시 정독해주시길.
저는 요즘 운동하면서 힘차고 신나는 음악을 듣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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