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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5/15 05:26:23
Name   하늘밑푸른초원
Subject   용어의 한국어화에 대해서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스승인 세종대왕이 태어났던 날입니다.

우리나라에게는 여러 유산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은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인 관점으로 볼 때,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유효하고 또 의미있는 것들 중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지심체요절은.. 기술은 대단하였지만 구텐베르크와 달리 민간에 널리 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한글보다는 심히 떨어진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용어의 한국어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피지알 자게에 제가 질문을 올렸었습니다.
"한국어 위키피디아는 왜 이렇게 내용이 부실한가요? 백과사전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수준이네요.'
http://ppt21.com/pb/pb.php?id=qna&no=81927&divpage=51&ss=on&sc=on&keyword=위키피디아
그 대답으로 여럿이 있었습니다.
글을 올리고 수정하는 유저수가 많아서 그렇다,
유저가 참여하려는 마인드가 부족해서 그렇다,
보상이 없다, 등등... 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일본은 학술용어를 상당히 일본어화를 시켜서, 일본위키피디아가 의미가 있지만, 한국은 학술용어의 한국어화가 별로 되지 않았잖아? 그러면 한국어 위키피디아로 해봤자 용어들이 다 영어일텐데, 그러면 한국어로 서술하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니?'

물론 어떤 학문적인 항목의 글을 일반인들은 많이 안 봅니다.
전문가들은 영어를 잘 하니 영어판 서적이나 논문이나 백과사전을 읽으면 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케이스는?
'관심은 있는데 그래도 영어보다 한국어로 읽는 편이 훨씬 수월한 케이스'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위키피디아가 있는 게 아닐까요.

결국 이런 맥락에서라도, 용어를 한국어화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의의를 갖는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용어의 한국어화'를 말할 때, '한국어'는, 한자어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순우리말로 용어를 만들기는 일반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한자의 장점들 중 하나가 바로 많은 뜻을 짧은 음절수로 압축하기에 좋다는 거죠.
물론 '배움집'이 '학교'보다 더 직관적으로 와닿기는 하지만, 글쎄요..










현실적으로, 용어를 한국어화시키는 것은 매우 장애물이 많습니다.

1. 그 수많은 용어들을 다 언제 한국어화를 시키나?
- 지금까지 번역이 안 된 용어는 물론이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는 최신 용어들을 무슨 여유가 있어서 한국어화를 다 시키나?(인력 부족, 자본 부족, 사회적 합의의 부재)

2. 그 용어에 딱 맞는 한국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 한국어화를 시키고 싶어도 그 용어의 뜻과 쓰이는 뉘앙스 및 맥락에 딱 필요한 한국어가 딱히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3. 한국어화를 시킨다고 해서 꼭 그 용어가 직관적으로 (영어로 된 용어보다) 더 와닿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 용어의 한국어화를 할 때, 십중팔구 한자어로 번역이 되는데, 과연 영어를 한문보다 더 잘 읽는 지금의 한글세대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4. 한국어로 된 학술용어가 국제학회에서 쓰이는 용어가 아니라면, 그냥 영어로 된 학술용어 하나만 아는 것이 더 경제적이지 않나?
- 요즘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가 텍스트언어학text linguistics과 담화분석discourse analysis입니다. 문장 이상의 텍스트 맥락을 다루는 학문이죠. 글의 맥락을 잡고 요약을 하는 등 실전 독해에 가장 쓸모있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텍스트언어학에서 결속구조cohesion와 결속성coherenc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결속구조와 결속성은 글을 글답게 만드는 텍스트성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입니다. 결속구조는 표면적인 언어적 차원에서 글이 그물망을 이루며 촘촘히 연결되는 속성이고, 결속성은 심층적인 논리-의미적 차원에서 글이 (글쓴이의 의도 하에) 계속 일관되는 속성입니다. 하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만약 국제적인 텍스트언어학 학회에 참여하는 영미권 학자와 한국어권 학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용어들에 대해서 영미권 학자는 cohesion과 coherence, 이런 말만 알면 되지만, 한국어권 학자는 cohesion과 coherence 말고도 결속구조와 결속성이라는 말까지 알아야 합니다. 2배로 알아야 하죠. 그나마 이 용어들은 번역이 참 잘 되어서 그다지 외우는 데에 무리가 없긴 하지만, 만약 용어의 번역도 허술해서 (영어로 된 용어)-(한국어로 된 용어) 사이에 연결이 쉽게 되지 않는다면 참 난감합니다. 또, 영미권 학자가 구글링을 할 때에(학자들도 구글링을 많이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은 cohesion만 검색하면 되지만, 한국어권 학자는 cohesion도 검색해야 하고 결속구조도 검색해야 합니다.(한국쪽 텍스트언어학회의 동향도 알아야 하니) 또, 이 용어는 결속구조라는 번역어 말고도 응결성이라는 번역어도 있습니다. 이 용어도 무지하게 쓰입니다. 즉, 번역의 과정에서 용어가 둘이나 셋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비경제적이 되죠.









학문은, 그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 친숙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이 됩니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영어로 된 글을 봐야만 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된 학술적 글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러면 학술용어를 한국어로 많이 번역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모든 학술용어를 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무리이고,
적어도 학문에 초심자로써 배우는 사람이, 그 용어를 처음 봤을 때,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 특유의) 직관으로 그 용어의 뉘앙스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캐치하는 정도
이 정도의 기초적인 용어의 한국어화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어의 한국어화에 관심이 있으며 이에 능통한 능력자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하아.. 모르겠습니다.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어떻게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모든 것이 학문적으로 뒤쳐져 있는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글자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덕택에 한국어가 숨이 붙어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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