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1/10 20:21:31
Name   nickyo
Subject   세습되는 우리의 술자리들


요 며칠 신년이다 연말이다 해서 여러 사람과 연락을 하게 되었다. 남중, 남고를 나온 필자는 아무래도 주변에 남자 사람이 많다. 절대 얼굴이 못생겨서가 아니다. 그렇게 넘어가자 정초인데 이정도는 괜찮잖아? 아무튼 연말-연초동안 남자들의 흔해빠진 이야기들을 듣다가 왠일로 그들이 해온 술자리에서 이성을 꼬시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런쪽에 있어서 조금 재미없는 편이다. 아는사람 하나하나에게 날을 세우며 술자리에서 여성을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 그런식으로 꼬셔서 원나잇하지 마라. 하루 만나는 사이라고 피임 안하는게 자랑이라고 떠드냐 같은 식으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꽤 불편함을 표현한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런 얘기 좀 집어쳐라.. 뭐 적당히, 나이브하게.. 더 독하게 말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봐야 뭐 귀담아 듣기나 하겠냐 하는 생각. 그래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흥이나 원나잇이나 뭐 헌팅이나.. 술자리에서 '노는'법을 이야기하는 대화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의 경험은 간접적으로는 당연히 익숙한 것을 직접적으로 들음으로서 한번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의 이야기는 내가 이번에 주변인들로부터 들었던 자랑내지는..실수나..과거의 치기들을 듣고 그들의 머리를 깨지 않기 위해 간신히 정리해본것이다. 참을 인 세번이면 사람을 살린다는데 난 오늘 거의 특수구조대의 활약에 버금갔던것은 아닐까. 어쨌든.


술자리에서 술을 먹이고 여자를 침대에 눕힌다.. 라는 공식은 거의 20대 청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취하면 떼도 쓰고 화도 내고 달래고 어르어서 손만, 어깨만, 키스만, 가슴만, 손으로만, 5초만, 한번만.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가 문득 떠오른다. 뭐 꼭 이런 문화를 다들 향유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잘 논다는 이야기에는 어느정도 이 스토리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각자의 허세와 자랑을 벗겨내더라도.. 어쨌거나 술을 먹이고 의사결정에 흥이 오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취해서 에라모르겠다.. 내지는 귀찮다..내지는.. 의식없음까지 간 여성을 침대 위로 끌고가(혹은 더러 침대가 아닌 온갖 곳에서도 자행되겠지만) 섹스를 한다. 이러한 방식이 꼭 남성들의 전유물인것은 아니다. 여성 역시 꽤 이러한 술과, 술에 취한 것과, 혹은 술에 취한 척을 통해 많은 진전을 얻어내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술 없이는 쿨해질 수 없는, 어떠한 핑곗거리와.. 취했을 때의 그 편리함, 원하는대로 충동적으로 행동해도 '술'이라는 이유에 기댈 수 있는 것들로 인해 특정한 이성관계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세습적으로 이어져간다. 동생들을 챙기는, 친구들을 챙기는 잘 노는 사람들의 실전적 가르침이란. XX. 그런 성실함이 꼭 생식기에만 몰려있다.


잘 노는 친구, 아는 형, 아는 언니를 따라 간 흥미롭고 설레이는, 정신없고 자유로운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은 좋은 기억과 안좋은 기억을 달고 쓰게 삼켜간다. 때때로 그것은 자기에 대한 세뇌처럼 작동하기도 하며, 혹은 자기에 대한 정당화로도 쉽게 이어진다. 너무나 많은 멀쩡하고..착하고.. 평소에 젠틀하고 예의바르고 사회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던 남자 사람들이 여느 밤에 그런 공간에 가면, 술을 먹이고. 먹이고. 들러붙고. 꼴았어. 각이야. 하고 근처에 널린 침대로 데려간다. 인사불성이 된 여자는 영문도 모른채 섹스를 당하지만, 저항의지 자체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은 사실 강간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술이 너무 취해서, 실수로 라는 단어를 앞이든 뒤로든 붙여가며 약간은 의기양양하게 안에다 세번, 네번, 다섯번을 쌌어. 하며, 그런데 걔는 졸라 못생겼어 라고 말을 마치며 마치 그래도 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앞에 세워진 맥주병 같은걸로 대가리를 깨버리기에는 내가 너무 사회화교육을 충실히 받았으므로.. 그저 자랑이다 개자식아 하며, 쓰레기라고.. 그렇게 흘려버리게 된다. 그제서야 멋쩍게, 아냐 걔도 하자고 했으니까 했지. 하며 대충 얼버무려진다.



아마 이런 형들과, 이런 친구와, 혹은 이런 언니(비율로는 더 적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를 따라 그들은(적어도 나는 이 문화를 향유하지 않았으므로) 이 문화를 세습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주변인으로서 그들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우리의' 안에 들어가 이 문화를 세습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남녀의 성적 차별로 바라볼것인가. 도덕적 해이로 바라볼것인가. 무엇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마 적어도 이 욕구의 관계에 있어서는 남자가 결국 그 신체적 유리함에 의해.. 책임도 없고, 실행도 쉬운. 말하자면 '그러고 싶다면 언제든 그럴 수 있게 준비되어진' 특징을 가짐으로 인해 기계적인 평등관계를 유지해서는 안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를 따먹는(그리고 이것은 양 성 서로에게 지칭되어간다) 이야기와, 방법론은 계속해서 세습되어간다. '술'이나, '성'이나,'도덕'만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관계를 맺어가는 '양상'에 정식화시킨 하나의 관념에 대한 문제이고 우리는 이 관념에 의해 때로는 이익도 취하지만, 동시에 범죄와 다를바 없는 것들에 의해 피해입거나 피해주었을 것을 실수로 무마하며 지나왔을수도 있다. 이런것에 비한다면 차라리 매춘이나 호빠는 훨씬 더 정당한 관계라고 느껴진다.


얼마전 소라넷의 몰카범죄나 초대남범죄를 봤을때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라며 처벌해야 한다는 공분을 봤다. 그러나 소라넷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성을 상대로 손쉽게 비슷한 짓을 벌인다. 나이트클럽에서 소위 골뱅이라는 사람들을 마지막 부킹으로 넣어준다는 이야기는 이미 고전적이라 하고, 클럽 어딘가에서는 물뽕이니 뭐니 하며 술에 약을 타는 방식을 공유하고, (파티플래너들은 그런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떠들고 실행하는 이들은 클럽 어디든 돌아다니기 바쁘던데 대체 이 답변의 괴리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떻게 하면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고 그저 손쉽게 생식기의 재미만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한다. 핵심이 되는 것은 책임을 없애는 것이며, (심지어 남자가 질 책임이 끽해야 얼마나 있다고) 그 하룻밤의 로맨스와 강간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섹스들만이 전리품으로 전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라넷을 가열차게 까고 화를 내면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다만 '잘 노는' 밤문화사이로 세습되어갈뿐이다.


나는 문득 그런생각이든다. 굳이 당신이 부모가 된 뒤에도 이런 문화를 긍정할 수 있겠냐는 말을 떠들기 전에라도... 하긴 누구나 욕망이 있고 누구나 책임지길 싫어할 수 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으면, 그래도 되면 그럴 수 있을거라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젠더나 도덕을 떠나서... 생식기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이 갖는 특권은 아닌가 싶고, 그게 매우 어렵다고 한다면,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관념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것은 아닐까하고. 계속해서 음지로, 음지로 횡행하는 것들을 그대로 수면위에서 '쿨하게'만 받아들일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 타오를 수 있는 수많은 관계들이 적어도 각자의 자유로운 의지 아래에서 슬픔과 불편함 없이 건강하게 이어질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만 하는것은 아닐까. 그걸 술이나, 젊은시절의 치기나, 실수나, 혹은 이보다 더 저열하게 '저렇게 생긴 놈/년은 그래주는게 고마운거야' 같은 말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세습이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이제는 변명마저 세습시키는 길거리의 유흥문화를 유지하는 힘들이 싫다. 노는것도 '잘' 노는것에 선망을 갖고, 고작 그 잘 노는 것이라는게 서로 섹스의 횟수를 전리품처럼 남겨놓는.. 혹은 어떤 '급'의 이성을 꼬셔냈다는 걸로 자존심을 세우려는 이 병적인 생식기 증후군이 어서 종말을 맞이했으면 싶다. 그러니 잘 노는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들은 제발. 제발. 세습좀 시키지말고 자랑도 하지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사회화 덜 된 누군가에게 괜히 머리가 깨질수도 있는거 아니겠는가. 평화롭게 살자. 차카게 살자.





8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056 일상/생각오늘 이불 밖은 위험합니닷! 27 성의준 16/01/19 4412 0
    2054 일상/생각[불판]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27 관대한 개장수 16/01/18 3528 0
    2050 일상/생각학창시절에 재밌었던 기억을 나누어보아요. 43 까페레인 16/01/18 5011 1
    2049 일상/생각타인과 친밀감을 높이는 법 7 까페레인 16/01/18 5321 0
    2047 일상/생각흐린 일요일 아침... 4 새의선물 16/01/18 4009 0
    2046 일상/생각 연애는 어렵다.. 여자는 어렵다... (2) 7 나는누구인가 16/01/18 4804 0
    2033 일상/생각인류 정신의 진보에 대한 회의 33 하늘밑푸른초원 16/01/16 5179 0
    2032 일상/생각인간 가치의 훼손에 대한 잡생각. 7 Obsobs 16/01/15 4743 0
    2019 일상/생각[자랑글] 자랑입니다. 69 Darwin4078 16/01/13 4539 0
    2017 일상/생각주택가의 소각용 쓰레기 배출 정책에 대해서 5 까페레인 16/01/13 4381 0
    2016 일상/생각연대는 가능한 것일까에 대한 아이디어 4 김덕배 16/01/13 3871 3
    2006 일상/생각[도서추천] 아주 낯선 상식 -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 7 한신 16/01/12 6737 0
    1990 일상/생각세습되는 우리의 술자리들 9 nickyo 16/01/10 4669 8
    1976 일상/생각342,000번의 묵묵함 8 mmOmm 16/01/08 4304 0
    1972 일상/생각빠이빠이~ 4 王天君 16/01/08 6473 4
    1971 일상/생각누구나에게나 있을법한 판도라의 상자. 7 Obsobs 16/01/08 3858 0
    1967 일상/생각"내가 너에대해서 아는게 뭐가있냐?" 28 쉬군 16/01/07 4621 0
    1948 일상/생각현실적인 긍정적 사고 5 Obsobs 16/01/05 4608 1
    1936 일상/생각[잡담]우리에게 필요한 욕이라는건 이런게 아닐까요. 8 Credit 16/01/03 4668 0
    1935 일상/생각(리디 이벤트) 리페라 후기 11 지겐 16/01/03 6641 0
    1933 일상/생각게시판을 떠나지 않는 이유 20 Moira 16/01/03 5297 2
    1930 일상/생각홍등가 같은.. 14 눈부심 16/01/03 8346 0
    1925 일상/생각[책] 소유냐 존재냐 그리고 추억 11 까페레인 16/01/02 4698 0
    1922 일상/생각우리 새해 목표나 다짐을 적어 볼까요? 71 와우 16/01/02 5106 0
    1918 일상/생각아이유 콘서트 짤막 후기 6 Leeka 16/01/01 5294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