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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31 00:37:56
Name   darwin4078
Subject   인테르 팬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2009-2010 챔피언스리그 시즌을 돌아봅니다.
#. 고백하건대, 저는 악성 인테르 빠입니다. pgr에서는 점잖게 인테르를 응원하는척 했지만, 사실 축덕입문했던 97년 이후 막 생겨났던 웹게시판에서 꽤 악질적으로 인테르 빠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에 해외축구를 보는 사람들도 몇 없었고, 세리에라면 거의 대부분이 유벤투스 내지는 AC밀란 팬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테르를 좋아한다고 하면 병신 3등 팀 팬은 즐...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어서 전투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3등팀이라는 말이 딱히 틀린게 아닌게, 97년이후로 제 기억에 세리에A의 우승팀은 거의 유벤투스였고, 간간히 AC밀란이 한두번, AS로마, 라치오가 곁다리로 우승 한번씩 하는 수준이었고 인테르는 항상 3등 내지는 4등 정도에서 머물러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럽클럽대항전이라고 할 챔피언스리그는 AC밀란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90년대 후반~2000년중반까지의 세리에A 양상은 리그의 유벤투스, 챔스의 AC밀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리얼플레이어, 기타 등등의 미디어와 2001년쯤 만들어진 싸줄...아니 사커라인과 세리에매니아 등의 사이트에서 알음알음 인테르 경기를 모아 보기를 10여년...



#. 2006년, 칼치오폴리 사건이 터집니다.

세리에A를 대표하는 팀들인 유벤투스, AC밀란, 피오렌티나, 라치오, 레지나 등의 팀이 심판을 매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벤투스는 세리에B로 강등되고, 해당 팀들은 마이너스 승점에서 06-07시즌을 시작하였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가진 팀은 출전권을 박탈당하며, 벌금과 2~3경기 정도의 홈경기 무관중 징계 등을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인테르를 제외한 리그 상위권 팀들의 상태가 메롱이 된 셈이죠. 사실... 인테르도 심판매수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있기는 한데, 인테르도 징계받으면 리그가 박살이 날거 같으니까 대마 하나는 살려주자는 느낌적인 느낌을 당시에 받았습니다마는...인테르 팬으로서 유베, 밀란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었기 때문에 오오... 정의는 승리한다.. 오오... 하면서 마냥 그 상황을 즐겼죠.

이후, 인테르의 세리에A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04-0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서 볼 수 있듯, 인테르의 폼이 올라오는 상황도 겹쳐있었고 칼치오폴리로 유벤투스에 있었던 즐라탄이 06년에 인테르로 이적하면서, 06년 이후 세리에A 우승을 의미하는 스쿠데토는 인테르가 차지하는게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리에 리그에서는 항상 최강자였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을 넘지 못하는 반쪽짜리 강팀이었습니다. (16강을 넘지 못한다고 하니, EPL의 어떤 팀이 생각납니다. 앰블럼에 대포가 있는..아..아닙니다.)



#. 그리고, 2008년. 당시 인테르의 구단주였던 마시모 모라티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첼시의 감독직을 사임한 주제 무리뉴를 2년 계약으로 감독으로 영입해오고, 무리뉴는 09년, 팀의 에이스인 즐라탄을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키고 에투와 현금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그리고 받아온 현금으로 09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네이더, 뮌헨에서 루시우, 제노아에서 밀리토, 그리고 2010년 초에 밀리토의 서브자원으로 판데프를 영입하면서 챔스 우승 스쿼드를 완성합니다.



#.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전시즌 우승자 바르셀로나와 한조가 되었지만, 루빈 카잔, 디나모 키예프 등의 비교적 약팀과 한조가 된 인테르는 수월하게 16강을 진출하리라는 예상대로 조2위로 16강에 오릅니다. 그리고,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첼시.

지금이야 강등권 병신이 되서 칠렐레 팔렐레 하지만, 당시 첼시는 안첼로티가 이끄는 EPL 1위의 강팀이었고, 이전시즌까지 무리뉴가 이끌던 팀이라는 점에서 구 무리뉴 vs. 신 무리뉴의 대결로 맨유 vs. 밀란과 더불어 16강 최고의 빅카드였습니다.

주세페 메아짜에서의 1차전



2:1로 인테르 승리,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2차전



0:1로 인테르 승리.

합계 3:1로 인테르가 첼시를 격파하고 8강에 오릅니다.



#. CSKA 모스크바와 인테르의 8강전은 사실 16강보다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어차피 인테르가 이기는거 아님? 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8강전의 빅카드는 뮌헨과 맨유였죠. 아스날과 바르셀로나도 있었지만, 이때의 바르셀로나는 진정한 지구방위대의 느낌이라...;;;

그리고, 4강 대진이 짜여집니다. 인테르 vs. 바르셀로나 / 뮌헨 vs. 리옹.

뮌헨이 예나지금이나 강팀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분위기는 인테르 vs. 바르셀로나가 진짜 결승전이나 다름 없다는 분위기였고, 떡밥 또한 장난이 아니었죠.
시즌 시작전 에투와 즐라탄의 이적으로 두 선수는 팀만 바뀐 상태에서 맞붙게 되는 것도 있었고, 평소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의 신경전도 있었던데다, 무리뉴와 바르셀로나와의 악연도 있었습니다. 08-09시즌 4강에서 무리뉴의 첼시는 바르셀로나에게 원정다득점으로 졌는데, 이게 뭐... 오브레보의 개판 5분전 오심으로 박살난 경기였죠. 경기후 정말 뒷말이 많았습니다. 당시엔 챔스에서 EPL이 초강세여서 07-08 챔스 결승전과 똑같은 대진을 피하려는 부커진의 농락이라는 음모론부터 해서 참 말이 많았습니다. 하여튼, 바르셀로나는 오심으로 챔스우승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데다 자타인정 최강팀인데도 티키타카 점유율 축구로 상대를 농락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안티팬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분위기였고, 무리뉴의 인테르가 정의구현해서 바르셀로나를 이겨라.. 뭐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하여튼, 떡밥은 던져졌고 4월 20일 주세페 메아짜에서의 4강 1차전을 앞두고, 4월 14일 아이슬란드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서 유럽전역에서 비행기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인즉슨,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오직 육로로만 이동해야 한다는 얘기죠. 바르셀로나로서는 좋지 않은 악재였고, 인테르로서는 호재였습니다.

그리고, 주세페 메아짜에서의 4강 1차전.



페드로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바르셀로나가 앞서가지만, 밀리토의 어시스트를 스네이더가 골로 연결하면서 1대1 균형을 맞추고, 후반에 역시 밀리토의 어시스트를 받아 마이콘이 역전골을 성공하고, 밀리토가 승부에 쐐기를 박는 헤딩골을 넣으면서 3:1로 인테르가 1차전을 가져갑니다.

8일 뒤. 아이슬란드 화산으로 인한 비행기 이착륙금지가 해제되고 인테르는 편안하게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이동해서, 캄프 누에서 4강 2차전을 치릅니다.



부까꿍 짤방이 만들어진 바로 그 경기입니다.



그리고, 메시의 기가 막힌 슛을 막아내는 세자르의 슈퍼세이브 장면이 만들어진 경기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경기 초반에 티아고 모타가 부스케츠의 헐리웃 액션으로 퇴장당하고, 반강제로 인테르는 텐백을 시전하게 됩니다. 재미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인테르 팬인 저는 이렇게 흥미진진한 텐백수비축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타공인 세계최강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텐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테르가 어떤 팀입니까. 에레니오 에레라의 카테나치오로 1964년, 1965년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을 거머쥔 팀입니다. 카테나치오의 원조라 할 수 있죠. 바르셀로나는 후반 막판에 피케가 1골을 넣는데 그치고 1,2차전 합계 3:2로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경기 끝난 직후...



원정온 팬들에게 세리모니를 하러 달려가는 무리뉴를 바르셀로나의 골키퍼 발데스가 저지하려고 합니다. 자기 홈경기장에서 승리의 세리모니를 하는게 별로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인테르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합니다.



이런 식으로요.

이 사건들로 인해 졸렬한 바르셀로나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거기다 2010년 8월 내한해서 바르셀로나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백만안티를 양성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하여튼, 예상을 뒤집고 인테르는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상대는 독일의 원탑강호 바이에른 뮌헨.



#.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결승전은 여러모로 4강전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졌습니다. 세계최강의 바르셀로나를 꺾고 올라온 인테르에게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양팀의 포메이션은 이랬습니다.






밀리토가 전후반, 각각 1골씩 넣으면서 인테르는 65년 이후 35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게 됩니다. ㅠㅠ
그리고, 인테르는 세리에A 리그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결승전 경기가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 45분에 생방송했는데요, 그때 제 둘째 아들이 폐렴으로 입원해서 제가 같이 병원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아들내미는 폐렴으로 고생하는데 축구에 미쳐있는 아빠라는 인간은 새벽에 일어나서 축구 보면서 환호하고 그랬다능.. 새벽에 간호사가 병동 돌다가 병실 들어왔을때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 TV를 껴안다시피하면서 축구 보고 있어서 흠칫 놀란게 보였다능..



#.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운 무리뉴는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선임되고, 팀으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이별을 합니다.



동영상 초반에 무리뉴와 포옹하는 서세원 닮은 양반은 당시 인테르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 옹입니다. 정말 모범적인 축구단 구단주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1분 30초경에 무리뉴와 포옹하는 사람은 인테르의 수비수 마테라치입니다. 안정환 선수가 페루자에서 뛸때 인종차별한 인간말종에다 유튜브에 마테라치 반칙 스페셜이 있을 정도로 거칠고 반칙 잘하는 선수지만, 영화에서나 볼듯한 퇴임장면을 만들어주는군요.



#. 이로써 마법같았던 2009-2010 시즌이 끝납니다. 그리고, 이후 인테르는 귀신같이 리그 1위에서 떨어지고, 챔스에서도 토트넘의 베일에게 마이콘이 영혼의 마지막 한오라기까지 털리면서 해트트릭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다시 원래의 자리, 리그 3~5위로 돌아가게 되고, 리그에서는 다시 유벤투스가 스쿠데토를 독식합니다. 더불어 금융위기로 인해 이탈리아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세리에 리그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되고 챔스 출전권도 2장으로 줄어듭니다.

하지만, 생전 못볼 것만 같았던 인테르의 챔스우승을 두눈으로 보았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한번 더 볼 수 있겠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챔스우승 기념사진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그리고, 현재 세리에 리그 1위는 인테르입니다. 인테르 화이팅!! Forza Inter!!





3
  • 보기 힘든 세리에 글이 반갑네요!
  • 내용도 알차면서 예전 인테르가 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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