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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8/28 14:57:35수정됨
Name   카르스
Subject   한국을 다루는 경제사/경제발전 연구의 발전을 보면서
연구하기 싫은 겸 예전부터 몇년간 든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한국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선진국 열강에 들어섰고, 각종 컨텐츠와 성취가 전세계적인 호평과 관심을 받는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는 많은 이점을 불러오는데 한국의 연구자로서 느끼는 큰 이점은 한국을 다루는 양질의 국제적인 연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세부전공인 한국의 경제사, 경제발전 등을 영어로 다룬 연구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많지만 해외 연구자들도 많다. 내가 영어로 쓰여진 한국의 경제사/경제발전 쪽 문헌을 정리한 것만 해도 아래 정도가 나온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논문까지 넓히면 더 많을 것이며, 중요한 분석이지만 초기 단계의 진행중인 논문이나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많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Working Paper나 Job Market Paper 같은 건 연도를 표시하지 않았다)

1. 전통적인 집성촌이나 친족 네트워크가 농촌의 발전, 새마을운동 성과에 미친 영향 - Seol, Yang(2019)
2. 한국의 관료집단이 수출 증대에 미친 영향 - Barteska and Lee
3. 새마을운동 성취나 농촌-권위주의 정부 네트워크가 민주화 이후 선거에 미친 영향 - Hong, Yang and Park (2023), Hong, Park and Yang
4. 한국 고도성장기의 재벌위주 대기업 집중의 긍정적 영향 - Choi et al. (2024)
5. 한국 중화학공업의 성과 - Lane (2023), Kim, Lee and Shin, Cho and Levchencho
6. 개신교가 한국의 인적자본, 독립운동, 정치적 선거결과 등에 미친 영향 - Paik and Hong (2021), Izumi et al. (2023), Becker and Won (2024), Won
7. 토지개혁이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인적자본 축적 등에 미친 영향 - Kim and Lee, Park and Yang
8. 키의 변화로 본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생활수준 변화 - Kim and Park (2011; 2021)
9. 조선 과거제도의 장기적 불평등과 권력 네트워크의 동학 - Park and Wang, Hong, Paik and Yun
10. 한국의 R&D 혁신과 성장 - Jaramillo and C Kim
11. 한국 고도성장기 무역/관세정책의 캐치업 효과 -  Connolly and Yi (2015)
12. 한국전쟁이 지역 발전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 - Jung et al.
13. 과거 급제, 향교 분포 등 조선시대의 전근대 인적자본의 유산의 중장기적인 영향 - Hong and Paik (2018), Jung et al. [바로 위의 Jung et al.과는 다른 논문이다]
14. 한국의 권위주의 체제 시절 정칙-경제계를 넘나드는 인적 네트워크가 기업의 발전에 미친 영향 - ? & Robinson (작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맞다 - 공저자가 한 명 더 있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15.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교육 팽창이 지역의 중일전쟁-2차 대전 시기의 군사적 동원에 미친 영향 - Izumi and Park (2025)

등등...

목록을 보자면 특징이 있는데, 1) 흔히 생각하는 한국의 거시적인 성장을 다루는 논문도 많지만 2) 인적 자본 축적, 키의 성장(경제성장의 proxy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정치적 결과(군인으로의 동원, 선거 결과) 등 미시적인 분야의 성장을 다루는 논문도 많아졌으며, 3) 역사적 유산이나 특정 사건이 후대의 거시나 미시적인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논문도 많이 존재한다. 예전에 비해 경제학이 다루는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게 한국의 연구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연구자로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내가 하는 연구는 이 빠르게 증가하는 문헌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아직은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박사학위논문 챕터를 노리고 내가 진행 중이거나 진행하고 싶어지는 연구들은 일단은 2)와 3)에 걸쳐있으며, 미시적이지만 중요성은 덜하지 않은 분야들이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거대한 한국의 경제사/경제발전 문헌에의 Contribution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영어로 된 논문들은 Contribution을 서론에 왠만해선 언급하기도 하고.

둘째, 국제적으로 한국의 사례에 관심이 많아진 상황에서, 한국인 정체성을 가진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래와 같은 케이스까지 접하다보니 생각이 안 깊어질 수가 없다. 1) 한때 한국에서 공부했다가 외국으로 갔지만, 여전히 한국의 사례를 연구해서 종종 도움을 구하는 박사과정 외국인 친구 2) 외국의 케이스를 연구하는 입장으로서, 한국의 사례를 한국인 연구자인 나에게 간략하게 물어보는 한국계 1세대 이민자 혹은 한국계 외국인 3) 작년 말의 비상계엄 사태 때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는 중국인에게 어떻게 이 사태를 설명할지 한 고민

세번째로 이러한 경제사, 경제발전사 연구결과가 현재 한국의 위치에 던지는 함의이다. 한국의 영광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졌지만, 이 영광이 어디까지 지속될까 두려움은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경로를 거시적으로든 미시적으로든 잘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계든 학계든 문학계든 시민운동계든 각계각층에서 쏟아져온 주장들 보면 그 경로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정치적 성향이나 당위성, (내 세계관에 녹아든 형태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이 상호주관적인 분석보다 앞선다는 인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사 경제발전사 연구결과는 그 의문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경제사/경제발전 연구가 세대별, 정치세력별 역사관, 세계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데 쓰일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한국의 정치적 갈등은 최소한 정서적인 면에서는 심각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념적 양극화는 통념과 다르게 심각하지 않다). 이는 작년 말의 비상계엄 사태라는 정치적 대사건으로 드러났다. 일단 큰 틀에서 마무리는 되었지만 재발될 위험이 현존한다. 이러한 정서적 양극화는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세대별, 정치세력별 역사관, 세계관 갈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들의 갈등을 해소해야한다는 책임감을 연구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사/경제발전을 다루는 최신 연구들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1970년대생 이후 세대(여긴 남 녀별로도 차이가 작지 않다), 그리고 민주당계 정당, 보수 정당, 진보 정당의 사관과 세계관에 각각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할만한 초당파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만일 특정 집단의 사관과 세계관에 문제가 있음이 연구로서 드러났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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