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8/20 12:22:49
Name   쉬군
Subject   소원 성취. 차를 바꾸다.
드디어 새차를 받았다.

올해 초부터 고민했던 일이였으니 거의 8개월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예전부터 카니발은 우리 부부에게 현실적인 드림카였다.

큰차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카니발은 아예 사지 못할정도로 비싸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살 수 있을 딱 그정도의 차라 언젠가는 사야지 생각만 하면서도 원래 타던 차도 충분하다며 차일피일 미뤘었다.

그러다 올해 초 몇가지 이유를 핑계로 차를 바꿔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의 센터 라이딩을 위해 와이프가 운전을 해야했지만 이전차는 주행보조기능이 전무했다는 점

캠핑을 시작하니 지금 차로는 캠핑짐 적재하기엔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내가 차를 바꾸고 싶어졌다는 점

실은 앞의 두 이유는 핑계다.

주행보조기능이 필요하면 필요한 기능만 사제로 달 수도 있고, 캠핑짐이야 적절히 조절하면 그만이다.

근데 차를 바꾸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첫 차를 샀을때는 차를 사고 싶었다기 보다는 아이가 생기니 차가 필요해서 샀던거라 큰 감흥이 없었다.

근데 이번에는 달랐다.

필요가 아니라 욕심이 생긴거다.

어릴때부터 이런저런 가족의 사정으로 나는 항상 가족을 위해 많은걸 포기했고, 양보해야 했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였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런 삶에 불만이 쌓였는지 갑자기 뜬금없는 방향으로 불만이 터져버린 것이였다.

차를 사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왔을때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게 느꼈다. 터질게 한 번 터졌구나.

그래서 몇번, 몇십번의 고민을 하다가 눈 딱 감고 차를 계약했다.

일단 계약 했어도 나중에 취소하면 그만이니까.

차를 계약하고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내 욕심만 버리면 조금은 불편하지만 여유있게 살 수 있는데 내 욕심을 부리는게 맞을까? 이거만 아니면 가족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게 훨씬 많을텐데?

그런데 내 욕심을 포기하자니 너무 억울했다.

이번에 이렇게 포기하면 한동안 후폭풍에 우울함으로 삶의 의욕이 확 꺾일거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 와이프와 대화를 하면서 솔직히 털어놓았다.

차를 안바꿔도 그만이지만 평생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게 생겼다. 내 욕심인거 안다. 차를 사면 지금보다는 좀 더 빠듯하게 살아야 할거고 내 욕심만 버리면 우리 가족이 훨씬 여유있을거다. 하지만 삶의 이유가 사라질거 같다. 그래서 너무 속상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아무말없이 고민하시다가 다음날 나에게 넌지시 꽤 큰돈을 쥐어주셨다. 당신차를 바꾸실려고 따로 모아둔 돈이였다.

"내 차 바꾸는것도 좋지만 우리아들이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게 생겼다는데 엄마가 이정도는 해줘야 할거 같으니 이걸로 보태서 꼭 사라."

어머니 말씀에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받으려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고 안받으려니 내 마음이 아쉬웠다.

일단 받아두고 좀 더 고민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동차 출고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고민은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오죽하면 고민하며 이런저런 비교를 해주던 챗GPT 이놈도 그정도면 그냥 사는게 맞는거 같다며 넌더리를 쳤을까.

여전히 반반인 머리속으로 한창 복잡한 순간에 딜러쪽에서 연락이 왔다.

출고 예정일까지는 한두달 남은 상황인데 갑자기 앞에 계약이 취소되면서 차량 출고가 된다는 것이였다.

출고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출고를 위해 계약을 하고 서류를 준비했다.

이전까지 고민하던건 싹 잊어버렸다. 아니, 고민하던걸 잊어버리도록 누가 타이밍을 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한 시기였다.

결제를 하고 다음날 바로 차가 나왔다.

진짜 뭐때문에 고민했나 싶을만큼 차가 나오니 기다렸다는듯 결제를 한게 좀 웃기긴하다.

그냥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래도 될까 싶었던 양심이 내 고민을 잡아당기고 있었던게 아닐까, 빨리 차가 나와서 이 고민의 끈을 끊어줬으면 바랬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 큰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

차 하나 바꾸는게 무슨 소원이냐 싶긴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꽤 큰 고민이였고 선택이였다.

그래도 차가 바뀌고 소원을 이루니 세상이 조금은 더 밝게 보이고 더 기운이 나는걸 보니 사람은 가끔 욕심을 부릴줄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며 자랑 겸 소회를 마쳐본다.


------------------------------

올해 차를 바꾸며 제 머리속에 이래저래 복잡했던 심경을 어딘가에는 남겨보고 싶어 끄적여 봤습니다.

가족들도 좋아하는걸 봐서는 괜한 고민이였나 싶지만 그당시 저한테는 큰 고민이였습니다.

아무튼 차를 바꾸니 좋네요 ㅎㅎ

그냥 개인적인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고민에 함께 고민해주시고 조언해주신 분들께 모두 또 한 번 감사말씀 전합니다.



36
  • 잘하셨습니다!
  • 축하드립니다. 잘하셨어요
  • 축하드려요!!!
  • 축하합니다 ????
  • 로망을 이루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새차 축하드립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893 일상/생각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 승인이 났습니다. ㅎㅎ 15 + 큐리스 25/12/12 619 23
15889 일상/생각[뻘글]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방 문제와 LLM 은 얼마나 다를까? 12 레이미드 25/12/11 549 1
15886 일상/생각뭔가 도전하는 삶은 즐겁습니다. 4 큐리스 25/12/09 665 11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1215 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797 5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809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740 0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191 18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813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746 7
15844 일상/생각추위 속의 수요일 골든햄스 25/11/12 568 5
15843 일상/생각내가 크던 때와, 내 아이가 크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 9 Klopp 25/11/12 860 12
15835 일상/생각집을 샀습니다. 8 절름발이이리 25/11/08 1093 13
15829 일상/생각마음이 짠합니다. 4 큐리스 25/11/07 850 5
15827 일상/생각짧은 이직 기간들에 대한 소회 27 kaestro 25/11/06 1153 5
15816 일상/생각요즘 단상과 경주 APEC 4 김비버 25/10/30 1103 13
15815 일상/생각3번째의 휴직 기간을 시작하며 2 kaestro 25/10/30 1006 6
15810 일상/생각저는 바보 입니다... 4 이십일세기생명체 25/10/29 892 8
15808 일상/생각회사 업무로 이혼할뻔 했습니다. ㅎㅎ 3 큐리스 25/10/28 1418 8
15803 일상/생각생각보다 한국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스포츠 6 hay 25/10/25 1399 0
15798 일상/생각누군가의 은중 uni 25/10/22 969 6
15794 일상/생각우리 회사 대표는 징역을 살까? 3 Picard 25/10/21 1388 10
15793 일상/생각뉴미디어 시대, 중세랜드의 현대인 meson 25/10/21 755 0
15790 일상/생각여러 치료를 마쳐가며 2 골든햄스 25/10/19 1175 23
15789 일상/생각역사 커뮤니티들의 침체(?)에 대한 잡설 10 meson 25/10/19 1305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