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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12/23 11:06:01수정됨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1. 통상임금은 무엇인가

연장/야간/휴일에 일했을 때, 50%가 가산된 추가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은 다들 아실 겁니다.  원래 일하기로 약정했던 근로시간을 초과했을 때,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그리고 법정/약정휴일에 일한 경우 50%가 가산된 시급을 지급해야 하고,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국민들이 아프면 정부 입장에서도 세입은 줄고 복지비용은 더 지출되니, 이런 제한을 두는 거죠.

그런데 직원이 연장/야간/휴일근로한 대가를 지급하기 위해서 기본 시급을 도출하는 게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체로 오래된 회사일수록 그간의 히스토리가 집약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게는 월급에 포함되는 세부 항목이 10개를 넘나들기도 하고, 각각의 지급요건이 전부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기본급, 상여금, 상여금1, 생산장려수당, 명절상여금, 교통지원비, 식대, 온열수당, 원격지수당, 주거지원비, 임금협약 체결 소급분 등등...

그 중 어떤 것까지 포함해서 시급을 확정하고, 50%를 가산해서 추가 지급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노동법 영역에서는 기본시급에 포함되는 그 범위를 [통상임금]이라고 부릅니다.


2. 통상임금을 그간 어떻게 정해왔을까

사실 통상임금은 현실적 필요 때문에 널리 활용되는 개념이지만, 법 구조상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장/야간/휴일수당, 연차미사용수당 등을 통상임금으로 산정해서 지급하라고 써있는데, 그래서 그 통상임금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에서 "법과 이 영에서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기재된 걸 활용해야 하는데, 조금 어렵게 쓰자면 '모법의 위임 없이 시행령에서 통상임금의 개념을 정한 상황'이 되는 거죠.  국회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보는데, 하두 수십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보니 학계에서만 문제제기하고, 실무상으로는 고착화되어 버렸습니다.

여튼 위 규정에서 우리는 몇가지 기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상임금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①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서 지급되기로 정해져 있고, ② 정기적으로 지급되며, ③ 특정한 요건을 만족했다면 예외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이어야 한다는 거죠.  뒤의 두 가지를 보통 정기성, 일률성이라고 부릅니다.  각각에 관해서도 많은 판례들이 있지만, 그건 여기서 생략하기로 합시다.

그런데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여기에 한가지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쟁점, [고정성] 개념이 추가된 거죠.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이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에, 해당 금액이 지급될 거라는 확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고정성' 개념을 창시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 임금지급일에 재직 중이어야 한다는 조건, ▲ 한달에 15일 이상 출근한 사람한테만 지급된다는 조건, ▲ 근무실적이 사전에 정해진 기준을 초과해야 지급된다는 조건이 걸린 수당이라면, 정기성과 일률성을 만족하더라도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러한 기준이 인정되면서 지난 십여년 간 회사들의 임금구조는 더더욱 누더기가 되어 갔습니다.  특히 연장/야간/휴일수당을 칼같이 계산해서 줘야 하는 제조업 계통에서 이런 문제가 더 컸죠.  그간 많은 사업장에서 애용되었던 조건은 임금지급일 재직조건, 출근일 조건인데, 보통 상여금에 이런 조건을 달아서 통상임금성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임금협상을 할 때에는 통상임금이 아닌 상여금 액수를 늘려서 연장/야간/휴일수당을 고정시킨 거죠.

이건 노사간의 이해가 맞았던 측면이 있습니다.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만 인상시켰을 때, 노동조합 집행부 입장에서는 매월 지급 받기로 한 금액이 O% 올랐다고 조합원들에게 협상성과를 선전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연장/야간/휴일수당까지 연동해서 인상될 수 있는 인건비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협상들이 몇년간 쌓이면서, 심하게는 상여금이 기본급보다 더 크게 잡히는 사업장까지도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임금지급일 재직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처음 내리게 됩니다.  여기서 재판부는 정기상여금도 근로의 대가이고, 일한 부분에 관해서 당연히 근로자가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인데, 재직 요건 같은 걸 괜히 붙여서 지급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해버렸습니다.  고정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무효가 되어 버렸으므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회사는 최근 3년치 연장/야간/휴일수당을 전부 다시 산정해서 지급하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아베스틸 이후 많은 사건에서 유사한 하급심 판결이 나왔고, 하나둘씩 대법원에 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죠.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마치기 전에 나온다던 대법원 판결이 안나오고, 정권이 바뀌고, 이거 또 내년으로 판결 밀리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슬슬 나올 때 즈음 드디어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생중계하겠다는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3. 뭐가 바뀐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 2013년에 자신이 제시했던 고정성 법리를 스스로 아예 폐기해 버렸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고정성 요건을 그대로 둔 채로, 요런 이유 때문에 고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 건데, 거기서 몇발자국을 더 내딛은 셈입니다.  대법원이 설명한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고정성이라는 기준이 법령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지급요건 하나 붙이는 식으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키는 용도로 활용되어 와서, 결과적으로 입법취지를 훼손한다는 점,

② 통상임금은 정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되어야 하는 금품을 이야기하는 건데, 휴직이나 월 중도 퇴사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지급되지 않는 걸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요건으로 삼는 게 과도한 점,

③ 사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상임금의 특징은 각종 조건들이 성취되었다고 가정하기만 하면 바로 충족되는 것이니 문제될 게 없는 점,

④ 애초에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억제하려는 입법목적을 고려했을 때 통상임금을 과도하게 축소하는 행태를 인정하기 어려운 점.

결국 고정성이 있든 없든 간에 일률성과 정기성 요건만 맞춰지면 전부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판결이고, 임금지급일 재직 요건이니 출근일 요건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의미 없어진 셈이죠.  사실 업계에서는 임금지급일 재직 요건은 대법원에서 날릴 거 같지만, 출근일 요건은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저도 새로 근로조건 세팅하는 사업장에서 출근일 요건을 많이 활용하기도 했구요.  결과적으로는 핵폭탄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4. 적용범위가 어떻게 되는가

임금은 소멸시효가 3년입니다.  임금산정이 잘못되었거나, 통상임금 같은 임금산정의 기초 자체가 바뀌게 되면 최근 3년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죠.  과거 몇차례 통상임금 관련 사건이 제기되었을 때, 현대기아차 같은 곳은 청구분만 수천억원에 달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조금 특이한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신뢰해서 형성된 관행이 너무나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고,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하다 보니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대신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에서만 이번 판결의 소급효를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여튼간에 판결이 선고된 2024. 12. 19. 자 연장/야간/휴일근로부터는 얄짤없이 바뀐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덕분에 기업 인사/노무팀에서는 연말 곡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이미 임금협약 체결된 곳들은 노동조합에게 개정하자고 읍소해야 하고, 노동조합 없는 곳에서도 개별 직원들과 근로계약서를 전부 다시 작성하고, 취업규칙을 뜯어고쳐야 하는 판입니다.  만약 직원들이 근로계약서 수정 체결을 거부하면 연장/야간/휴일수당 및 연차미사용수당 부담이 꽤나 커질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연간 6조원 상당이라고 하고 있는데, 어떻게 산정된 값인지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5. 꼼수

노무사단톡방 등에서는 이미 많은 꼼수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걸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예를 들어 상여금 지급 요건을 '해당 월에 1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한 경우'로 제한한다든지, 실적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상여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뭐 그런 방안들이죠.  다만 새로 세팅하는 사업장이 아니라면 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방법들입니다.

아마 기존 사업장들은 직원들에게 반대급부를 일부 제공하면서 근로계약 및 단체협약, 취업규칙을 수정하거나, 전체 연봉 중 고정OT 비중을 줄이는 방식 등으로 대응하게 될 듯 합니다.  이런 타이밍에 필드를 떠나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게 쓴다고 쓰긴 했는데, 그럼에도 생소한 부분들이 적지 않게 있을 겁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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