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0/04 15:29:57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생선회와 삼국지

생선회가 일본에서 비롯된 음식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논어'에 보면 "밥은 정백한 것을 좋아하였고 회는 얇게 썬 것을 좋아하였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서'의 '동방삭전'에는 "생고기를 회라 한다"고 나오는데, 회는 육류와 생선을 엷게 썰어서 초에 절인 요리로 중국에서는 본래 일본의 사시미처럼 날로 먹었습니다. 현대 중국요리에서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육회와 생선회를 전혀 먹지 않지만 춘추 시대에 생식은 예사로운 것이었고, 공자도 육회를 즐겨 먹었습니다. 송나라 중기에도 회 요리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송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소동파도 생선회를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이후부터는 회를 먹는 풍습이 사라집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은 조선인이 소나 생선의 살을 날로 먹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며 싫어했다고 합니다.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도 "중국인은 반드시 고기를 익혀 먹으며, 결코 날로 먹지 않는다"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송나라 이후 중국에서 생선회가 사라진 주된 이유는 석탄의 사용으로 인한 조리법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송나라 이전까지는 대부분 음식을 찜통에 넣고 찌거나 물에 오랫동안 삶아서 조리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중기부터 석탄이 채굴되면서 사회 곳곳에 보급되었고, 주방에도 석탄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석탄은 기존의 나무나 숯보다 월등한 화력을 낼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인해 강렬한 불로 굽거나 튀기는 조리법이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바람에 자연스럽게 생선 요리도 회보다는 구이나 튀김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지요. 양쯔 강 하류 등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생선회 요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생선의 살을 날로 먹는 방식은 아닙니다. 살짝 끓이거나 식초에 담가두었다 먹는 방식이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생선회와는 전혀 다른 요리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의 옛이야기들을 보면 생선회와 관련된 것들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기생충과 관련된 독특한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볼까 합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진등'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겁니다. 도겸 사후 서주에서 유비와 여포를 섬겼으며, 조조가 여포를 토벌할 때 은밀히 조조를 도와서 여포를 생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그 후에는 조조에 의해 광릉 태수로 임명되어 유유자적한 만년을 보냅니다. 진등이 태수로 있던 광릉은 현재 지도에서 찾아보면 황해로 흘러가는 화이허의 남쪽에 있는 도시 양저우입니다. 양저우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인지 강에서 잡히는 생선들을 재료로 하는 요리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생선을 익히지 않고 먹는 회가 유명했다고 합니다. 양저우는 화이허에서는 가깝지만 황해와는 거리가 제법 있어서 바닷고기보다는 민물고기들을 조리한 요리가 많았습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음식 재료로 쓰이는 민물고기들은 농어나 잉어인데, 양저우에서도 그런 생선들로 만든 회가 많았습니다. 진등은 이런 생선회들을 즐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알 수 없는 증세로 점점 몸이 나빠졌습니다. 속이 답답해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았고 얼굴이 붉어지고 뱃속도 더부룩해서 몸속에 돌멩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진등은 당시 중국 전역에 이름을 날리던 명의인 화타를 불러 치료를 부탁하게 됩니다. 화타는 진등을 진찰한 뒤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약을 먹은 진등은 구역질이 나 요란하게 토악질을 했는데, 놀랍게도 대가리가 붉은 꿈틀거리는 벌레가 잔뜩 나왔습니다. '삼국지'에 따르면 그 양이 작은 항아리 세 개에 담아도 될 정도 였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보고 당황한 진등에게 화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태수께서는 평소에 익히지 않은 음식들을 드십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화이허에서 잡히는 물고기들로 만든 회를 좋아합니다"
"모든 고기나 생선의 몸 속에는 저렇게 작은 벌레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대로 먹으면 저 벌레들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기생하면서 양분을 빼앗아 먹고 몸을 나약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태수께서 이런 병에 걸리신 겁니다."
"허면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병이 너무 오래 진전되어 나을 가망이 없습니다. 앞으로 3년 후에 다시 저런 증세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몸을 더 오래 보존하고 싶다면, 다시는 비린 생선을 드시지 마십시오"

화타의 말대로 진등은 3년 후에 병이 재발해 죽게 됩니다. 이 때 진등의 나이가 39세였다고 합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69 기타생명체의 과밀화 2 모모스 15/10/16 8102 2
    1262 기타사과문 11 난커피가더좋아 15/10/15 6479 0
    1254 기타실력이 +1 되었습니다. 장기 묘수풀이 (댓글에 해답있음) 30 위솝 15/10/14 9580 0
    1243 기타정자왕 침팬지 11 모모스 15/10/13 13915 3
    1235 기타여자 앞의 남자..(사회심리) 17 눈부심 15/10/12 9341 3
    1234 기타이스터섬 12 모모스 15/10/12 9826 3
    1205 기타니캅 이해하기 34 눈부심 15/10/08 10984 0
    1200 기타히스파니올라섬 모모스 15/10/08 11756 4
    1198 기타고수가 되는 지름길 장기 묘수풀이 (댓글에 해답있음) 62 위솝 15/10/07 10273 2
    1185 기타선조의 음식, 나폴레옹의 음식 11 마르코폴로 15/10/06 6745 0
    1183 기타기생충 이야기 7 모모스 15/10/06 10354 2
    1170 기타생선회와 삼국지 20 마르코폴로 15/10/04 8171 0
    1168 기타과거와 현재 23 눈부심 15/10/04 9594 0
    1162 기타나이 개그는 아직도 통하는지... 13 까페레인 15/10/02 7768 0
    1161 기타가축화된 포유류는 어떤게 있나? 19 모모스 15/10/02 11991 1
    1156 기타누가 윈스턴 처칠을 화나게 만들었나?... 4 Neandertal 15/10/01 8178 0
    1154 기타글을 쓰는 건 되게 어렵네요 13 피아니시모 15/10/01 6657 0
    1143 기타gentlemen and ladies는 왜 안 되는 걸까?... 8 Neandertal 15/09/30 8140 5
    1135 기타[야구] 09/30 2015 KBO리그 티타임 9 삼성그룹 15/09/30 6197 0
    1132 기타만들고 보니 조금 어려워진 장기 묘수풀이 (댓글에 해답있음) 63 위솝 15/09/30 8543 1
    1113 기타마이크로소프트는 왜 공짜점심을 제공하지 않는가. 24 눈부심 15/09/28 6655 0
    1111 기타미국 실리콘 벨리의 의식주 중 '주' 10 눈부심 15/09/28 6024 0
    1104 기타어떤 똥휴지회사의 잔머리 16 눈부심 15/09/26 8947 0
    1099 기타일본방사능 - 사망의 진짜 원인 26 눈부심 15/09/25 15717 0
    1098 기타'떡'보다 '빵' 좋아하는 사람이 대장암 발생 위험 높다 18 새의선물 15/09/25 737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