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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4/18 00:50:40수정됨
Name   샨르우르파
Subject   한국 성차별 문제의 복잡성.
한국 남녀갈등, 성차별 담론은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굉장히 과열된 상태입니다.
이 조용한 홍차넷에서도 자중하라는 공지가 나올 정도.

문제는 한국의 성차별 문제는, 밑에 다룰 요소들 때문에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서 훨씬 논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제대로 논하려면 굉장히 많은 변수를 생각해야 하며, 현상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난이도가 매우 높아요. 서구 선진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한국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걸 고려하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양 측 모두 디테일이 상당히 부실하고,
그 허점을 노리고 '이거봐 너의 주장은 헛소리임' 하고 서로를 조롱하는 악순환만 반복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남녀갈등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제 전공지식도 약간 들어가 있어요. 
잡다한 요소들을 다 다루는 이야기이기에, 성차별을 긍정했다가 부정했다가 좀 왔다갔다하는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각 챕터는 간단히만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논하려면 각 챕터별로 글을 하나씩 써야 해요. 



0.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한국이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임은 부정하기 어려움.
남녀의 성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 고용률 격차, 임금 격차, 고용안정성 격차, 경력단절의 존재, 기업과 정치권의 고위직 여성 비율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적어도 '전반적', '평균적'으로는. 
 
물론 저 격차를 전부 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문제 소지가 있습니다.  
페미니즘 떡밥 중 유명한 남녀임금격차의 경우, 
오하카 분해법(oaxaca decomposition)이라고 차별에 의한 격차와 차이에 의한 격차를 구분하는 방법론이 있습니다.
모든 남녀임금격차가 차별은 아니므로,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35% 덜 받는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또 여권이 높은 사회의 경우, 낮은 사회였으면 노동시장에서 빠져있을 여자들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많이 진출해 임금 평균을 깎아먹은고로(...) 임금격차와 성차별이 역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처럼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성차별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분명 있습니다.  
위 방법론으로 분해된 차이조차, 아예 차별과 무관한 것이라 볼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성차별적 문화로 여자가 고임금 이공계 직종에 갈 생각이 적다던가)하는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저 방법론도 오남용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날 문제였으면 이 글을 따로 쓰지 않았겠죠. 


1. 압축성장을 한지라 시대, 시기와 세대(코호트)에 따른 성차별의 편차가 엄청남.

안티페미들의 주 불만입니다. 성차별이 심하던 과거 세대/시대와 지금은 엄청나게 다르다. 
왜 지금을 옛날처럼 극심한 성차별의 시대로 생각하느냐.
지금 세대가 옛날 세대와 진짜 똑같다고 생각하느냐는 거죠. 
적어도 요즘 20대인 90년대생들은 여자가 특별히 불리한 게 없고, 오히려 병역처럼 남자로서 불리한 게 많다고.

네, 맞는 말입니다. 고용률 격차와 남녀임금격차, 경력단절 문제는 남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개선 중이고, 
성개방이 이뤄지면서 여자들도 성 이야기 하기가 비교적 편해졌지요.
예전처럼 여자가 교육을 못 받는 시대는 아니지요. 오히려 거꾸로 남자가 뒤쳐진다는 소리도 나올 정도... 


2. 연령에 따른 성차별의 편차가 엄청남.
다만 위의 안티페미들은 연령에 따라 성차별의 차이가 크다는 건 간과하고,
20대의 없거나 적은 성차별 구도가 30대, 40대, 50대...에도 계속 유지될 것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경력단절 문제로 인한 페널티가 매우 크기 때문에, 
여자들이 결혼하고 출산하는 30대부터는 여성차별이 확실히 심해집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M-커브(여성 고용률이 결혼-출산 주력연령 즈음에 줄었다 다시 늘어나는 현상), 
임금격차가 극심해지기 시작하고 유리천장 문제에 해당하는 연령대가 바로 이 세대죠.

물론 지금 30대 이상도 옛날과 다릅니다. 
하지만 20대라면 모를까 30대 이상의 성차별은 지금도 유의미하게 존재합니다. 
중장년층 이상의 남성들이 '한국은 여성차별이 심하다'고 말했다면
시대/세대 요소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연령구조를 경험상 인지하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영역별로 성별의 유불리 편차가 엄청남. 
4에서도 말하겠지만 한국 성평등 수준이 후발주자로서 어중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양육-교육-병역처럼 남성 역차별까지 나오는 분야부터, 
제도처럼 차별이 있을지 몰라도 '심각한 수준의 차별'은 없는 분야,
고용률 격차처럼 한국이 아직은 남성우위 사회구나 소리 나오는 분야,
유리천장처럼 '이런데도 여성차별 없다는 소리가 나와?' 같은 분야까지 가지각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한쪽 분야에서 눈부신/열악한 성과를 보고, 전체가 그런 양 여기는 무리한 일반화는 곤란합니다.
불행히도 양쪽 모두 그런 일반화를 많이 보이고 있어요. 


4.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구 선진국 수준의 성평등은 이루지 못함.
건국이후 지금까지 이뤄온 한국 성평등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이미 호주제 폐지처럼 세계적으로 모범사례가 된 게 많습니다),
한국이 지금까지 선망해온 서구 선진국들 수준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위에 말한 성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 고용률 격차, 임금 격차, 고용안정성 격차, 경력단절의 존재, 기업과 정치권의 고위직 여성 비율 등을 고려했을 때
타 선진국에 비해 심하게 나타나긴 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한국 여권은 세계적으로 보면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하자는 건
한국 생활수준이 세계 평균 이상이며 말레이시아, 태국, 러시아, 폴란드 같은 나라보다 나으니 
지금 삶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자는 소리와 다를 게 없을 수 있습니다.  


5. 1-4의 요소가 합쳐져, 특히 여성에게 기대와 현실 간 괴리가 큼.
20대까지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하나, 그 이후는?  
지금의 한국은 여자 총리, 대통령도 나온 여풍의 시대라는데, 직장에서 일해보니 불리한 면도 꽤 있다. 
이쪽 분야는 성평등이 많이 이뤄졌는데 여기는 완전 엉망이야. 아직 갈 길이 멀어.  
미국 이민오니 분위기가 확실히 여자들 일하기 좋네. 거기서 일해야지.  

여권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경험이 반복되다보니 여자들이 불만을 가지기 쉽습니다. 


6. 여성에게 불리하나, 성차별과 직접 잇기는 어려운 면들
결과적으로 성차별이 됐지만 그 현상 자체를 성차별이라 보긴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격차와 경력단절 문제는 한국의 호봉제 시스템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대기업-정규직-노조 vs 중소기업-비정규직-비노조의 심한 갭)도 크게 작용하는데, 
호봉제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자체가 여자들을 조지려는 악랄한 기업인들의 음모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요. 
현존 사회현상 속에서 시스템이 만들어지다보니 결과적으로 여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간 것...

이 부분을 고치려면 단순히 성차별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등의 방법론을 이용해 심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쪽 전문지식은 일반인은 물론 페미니스트도 부재한 경우가 많다는 것.  


7. 한국의 특수성인 징병제 문제.
안티페미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거죠.
요즘 청년들은 군대 문제로 여자에 비해 2년 뒤쳐지고 시작한다고. 
징병률은 나치, 일제보다도 더 높은 기형적인 수준이라고.

매우 긴 징병기간, 부작용이 우려될 정도로 높은 현역비율, 열악하고 비인권적인 복무 환경, 
보상 시스템의 부재 등 청년 남성들이 불만을 가질 요소가 많은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8. 80-90년대생 남초 문제.
과거의 성차별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지속적인 사회적 악영향을 끼치고 있죠. 
남초 현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과 연애하고 결혼하기 어려워서 거기서 소외된 남성들이 극단화되기 쉽습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8090년대생 남초현상은 성평등에 기여하기도 했는데, 
1) 여성들이 수가 적다보니, 협상력이 여성에게 치우쳐져 연애와 결혼 문화가 더 여성친화적인 쪽으로 변화함. 
2) 성차별이 극심한 가정에선 딸을 낳지 않았을 것이므로(...), 태어난 딸들은 시대에 비해 더 여성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경우가 많음. 
참 안타깝고도 아이러니한 현상입니다. 


9. 경제적 불안전성과 동시에 찾아온 남녀평등.
원래 성평등화와 같은 문화적 진보는 백래시를 동반하는 게 당연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은 다양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므로.

경제 좋을 시절에도 이런데, 지금과 같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는 오죽하겠습니까.. 
특히 '여자들이 노동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면서' 더 많아진 경쟁자를 목격하게 된 청년 남자들의 고뇌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뒤에 여자들이 진입했다면 비교적 압력이 덜했겠지만, 시기 조합이 남자들에게 많이 안 좋았어요.

여자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야한다는 소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권신장이 확실히 이뤄진 시기가 사회적 부정교합 없이 잘 이뤄질 '최선'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누가 의도했겠냐만은. 
  

10. 딱 잘라 어디가 더 성평등하다고 단정하기 힘든 문화의 차이.
여성할례나 명예살인이 만연한 문화권과 여기를 비교한다면 어디 여권이 더 좋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여기지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은 어떨까요?

1) 한국의 부부별성이랑 서구 전통의 부부동성 중 어떤 게 더 성평등한 방식인가?
2) 찌질하지는 않지만 캣콜링같은 문제 행태를 보이는 서구권 남자, 찌질한 면은 있지만 캣콜링은 없는 초식남형 동북아 남자. 
어느 쪽이 더 성평등에 가까운가?    

아마 어지간해선 쉽게 답하기 힘들 겁니다. 
한국의 문화는 서구에 비해서도 선악구도, 우열구도를 쉽게 적용하기 힘든 수준까지 발전했거든요. 
이 질문을 너무 쉽게 답하면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11. 청년들의 남녀갈등을 본격화하는데 일조한 인터넷 문화의 특성.
요즘 인터넷 문화가 부족화되어, 집단 내부에서 확증편향되어 극단화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산한다는 비판은 거의 클리셰죠.
저는 남녀갈등도 주요 예시라고 보는데, 이상할 정도로 언급이 없습니다.

특정 성별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이성의 추한 모습을 너무 자주 접해서 상대에 대한 불필요한 혐오감만 양산하고,
집단논리 때문에 집단의 극단적인 논리에 쉽게 반대하지 못하며,.
못 버틴 사람들이 떨어져나가면 극단화된 부류만 남고, 확증편향을 통해 더더욱 극단화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지요.
 
실제로 메르스 갤러리의 기원으로 알려진 남연갤은 실제로 연예인들을 까고 빨던 극성 팬덤 집단이었습니다. 
유명한 남초 커뮤니티인 엠팍과 펨코, 여초 커뮤니티인 여시는 스포츠/연예인 팬덤끼리 치고받고 싸우던 공간입니다.    



사실 할 이야기 더 있는데.. 일단 주요 요소인 것들만 이야기했습니다.
성차별 문제를 말하려면 최소한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해야 하는데, 인터넷 문화는 점점 극단화되고 오프라인도 단순무식한 사고에 물들려하니 참...  

이 남녀갈등 대란에서 벗어날 날이 오길 원합니다. 일단 저부터 보고 느낀 걸 적어봤습니다.


p.s. 토비님 권고대로 문제 소지 부분을 아예 삭제했습니다.
무리하게 요약했다가 불필요한 논쟁만 유발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35
  • "각 챕터는 간단히만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논하려면 각 챕터별로 글을 하나씩 써야 해요." 시리즈물 고고고
  • 너무 상식적인. 재미가 없을 정도로 상식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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