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11/26 23:34:35 |
Name | 메아리 |
Subject | 괴물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4) |
세 시간쯤 지났을까, 조심스레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서늘한 기운 덕분에 밤이 깊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때 늦은 청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묻어 주었기에 방 앞에 주차해놓은 차 근처까지 무사히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뒤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거기 꼼짝 마!” 꼼작 마라는 그 말에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소리치며 따라왔다. 나는 앞에서 불쑥 나타난 누군가를 밀쳐 버리고 다시 뛰었다. 어딘가로 한참을 뛰다가 살펴보니 바닷가였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 하필 바닷가라니.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잡힐 판인데. 뒤를 돌아보니 손전등을 휘두르며 사람 몇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에는 검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고 뒤에는 도깨비불 같은 손전등 불빛들이 어두운 공간을 휘적이고 있었다. 진동이 느껴져 스마트폰을 꺼내보니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오른쪽엔 커다란 절벽이 길을 막아서고 있었고 왼쪽으론 길게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식어버린 계절 탓에 물이 차갑긴 했지만, 그들이 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내가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오는 이들이 다른 길로 사라지고 나면 절벽을 타고 넘어 도망가면 된다. 신발로, 바지로 점점 차가움이 밀려들었지만, 우선은 더 깊이 들어갔다. 마음은 급했고 바닷물은 생각보다 무거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파도가 몰려와 물을 뒤집어쓰길 몇 번 반복했다. 이놈의 바다는 나를 반기지 않는구나, 내 피는 자기와 같은 파란색이 됐는데. 문득 물에 색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왜 바다는 파랗게 보이는 걸까. 거친 물결이 연달아 얼굴로 덮치자 숨 쉬는 것이 차츰 힘들어져 갔다. 매고 있던 돈 가방도 점점 거북해진다. 스마튼폰의 징징거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메시지를 확인하려 걸음을 멈추고 스마튼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언제 떴는지도 모를 달빛이 반사되면서 화면을 볼 수 없었다. 순간 앞에서 커다랗고 묵직한 것이 그대로 나를 덮쳐왔다. 손을 빠져나간 폰은 물속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몸을 바로 일으키려 했지만, 땅에 발이 닿지 않았다. 등의 돈 가방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으로 점차 짠 물이 밀려 들어왔다. 그 짠맛이 집요하게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힌 상태로 얼마간 지나자 나도 모르게 두어 번 몸이 움찔거린 후, 점차 눈앞이 검푸르게 변해갔다. 물 밖에서 나를 찾던 손전등 불빛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 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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