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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17 16:16:42수정됨 |
Name | 오디너리안 |
Subject | 손기정평화마라톤 첫풀코스 도전기 |
(일기처럼 느낀점을 쓴글이니 읽기가 좀 불편하시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_ _ ) 대회전날 첫 풀코스완주에 대한 긴장감때문인지 제대로 밤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이른시간인 11시에 침대에 누웠고 꿀잠을위해 족욕까지 했는데 말이다. 안대를쓰고 잘때듣는 달콤한 음악도 틀어보고 발가락에 힘을줘서 머릿속에 피도 순환시켜보고 집안 환기도 시켜보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3시까지 불면증과 싸움을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극약처방을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불을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수납장에 묵혀둔 오래된 양주를 꺼내 한잔 마신다. 빨리 취하기위해 냉장고에서 맥주도 한캔 따서 섞어 마신다.... 예상과 달리 정신이 더 멀쩡해졌다......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결국 이렇게 날이새고 벽시계를보니 6시가 지나있었다. 이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남은시간동안 눈만 감고 누워있다가 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왠걸 곧바로 잠이 들었다...... 8시에 일어났으니 한시간 반쯤 잔것같다. 강하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완주를 하게된다면 이것은 진짜 신이 도우신것일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완주를위해 여기저기서 정보를 찾았으며 단백질보충용으로 장어도 3일치를 주문해서먹고 나름 카보로딩이라고해서 바나나와 함께 탄수화물 섭취도 열심히 했건만 마지막 수면계획 실패는 정말로 실망감이 크다. 머릿속에 오늘 달리기는 실패로 끝날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과함께 깊은 한숨을 쉬어본다. 오전 8시부터는 이미 정해놓은 순서대로 먼저 샤워를 간단하게하고 바나나 한개, 죽 한그릇을 렌지에 데워 천천히 먹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여유있게 10분정도 다녀온다. 준비물은 배번표, 런닝용가방, 휴대폰, 파워젤3개, 여분의마스크1장, 신용카드 이렇게 챙겼다. 가방은 대회 하프코스이상 신청자에게 주는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었고 겉보기에는 별로였는데 대회전 훈련시에 10km정도 착용해보니 꽤 쓸만해서 대회때도 착용하기로 한것이다. 피부쓸림과 출혈을 막기위해 사타구니와 비피점에 바쉐린을 열심히 그리고 듬뿍 발라준다. 3천원짜리 거의 반통을 발랐다. 대회용어플인 런데이도 체크하고 각종 배터리도 확인하고 복장준비도 완벽했지만 수면부족을 해결할 방도가 없기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9시쯤 집앞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30분후 시작장소인 겸재교 아래에 도착했다. 크루 몇분이 나와서 응원도 해주시고 2km정도 동반주를 해주겠다고해서 늦으면 절대 안되었다. (아마 이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반갑게 맞아주시며 단체사진도 찍고 연신 화이팅을 외쳐주신다. (아 어쩔수없이 죽기살기로 뛰어서 완주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해본다.) 아직 대회경험이 없으신 여성크루 한분이 첫 3km를 동반주 해주셨다. 초반 5km까지 6분30초 페이스를 이분 때문에 지킬수 있었던것 같다.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혼자만의 달리기를 이어간다... 언택트레이스라 급수대도 따로 없고 주로 통제도 전혀 안되며, 제일 원했던 페이스메이커도 없거니와 같이 뛰는사람이없어 분위기조차 그냥 홀로 LSD를 42.195km로 해야하는 상황이라 할수있을까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나마 유일한희망은 도착할때 마중나와 주신다는 크루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10km지점까지 6분초반대 페이스로 도착했다. (수면부족때문에 욕심을 버려서인지 비교적 쉽게 달린 느낌이 든다.) 주로에서 간간히 같은대회 배번표를 달고 뛰는 참가자가 보이긴 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어떤분은 10km대회를 벌써 마쳤는지 인증샷을 찍고 계셨다.. 얼마나 부럽던지.. 참고로 이번대회 풀코스 참가자는 전세계를 통틀어 총140명 내외이다. 나는 오늘 대회의 목표였던 4시간30분 완주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어떻게 대회종료 시간내에 완주할수있을까만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끝까지 조깅페이스를 생각하게 되었고 도래지를 떠나 장거리 비행을 해야하는 철새처럼 몸에 최대한 힘을 빼고 이제부터 하체는 내 하체가 아니니 없는셈 치자. 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어느새 반포대교를 지나 15km지점에 도착했다. 기운이 빠지거나 허기는 지지않았지만 만일에 대비하기위해 일단 파워젤을 한개 먹어본다. 맛이 쓰다.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겼는지 화장실을 두번이나 들렸다. (한강변 주로라서 그런지 화장실이 곳곳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다행인것은 몇일전 5km리허설 대회에서 장경인대쪽 통증이 있었는데 아침에 테이핑을 열심히해서 그런지 딱히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홍대근처인 상수역부근 21km 반환점에서 인증샷을 재빠르게 찍고 턴한다. 이때까지도 별 무리없이 달리기는 진행되었다. 보통lsd 훈련을 하면 17~18km지점에서 사점이 한번씩 왔었는데 이만하면 참 다행이었다. 30km지점을 지난후부터 이제는 같은대회 배번호를 착용한 러너는 한두명만 보일뿐이다. 그마저도 지쳐서 걷고 있는분이다. 마음속으로 화이팅을 외치고 느린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달린다. 아직 특별한 부상의 조짐이 느껴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지쳐서 페이스가 느려지긴 했지만 아직 6분20초대를 유지하며 달릴수 있음에 감사했다. 대회전 최대 훈련거리가 32km라서 이후 대비를 잘 해야하기때문에 조금이라도 더빠른 페이스는 독약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35km정도 지나자 말못할 신체적 고통과 포기의 감정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하체는 이제 완전히 퍼져서 팔을 앞뒤로 흔드는것 밖에는 할수 없었으며 누군가 그랬듯이 달리기는 상체로 하는것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무릎과 종아리에 통증이 몰려들고 심한 갈증과 함께 전날 수면부족으로인한 체력고갈을 뇌에서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한가지 희망적인것은 1km를 더 뛸때마다 최대거리를 갱신했다는 약간의 뿌듯함과 풀코스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것이었다. 이제 얼마 안남았다. 39km 지점에서는 이제 걷뛰를 하기 시작한다. 10~20m정도를 걷다가 다시 1km를 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읽었던 '덤덤히 뛴다' 라는 구절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덤덤히였는지 무심히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좀비처럼 눈이 풀리고 옷에는 땀에 쩔다못한 흰 소금기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저멀리 중랑천변 공원에 시계탑이 보인다.. 빨간색 LED 숫자가 14:13분을 가리킨다 잉? 잘하면 30분까지 도착하겠는데?? 아니 6분페이스로 달렸는데 이게 가능한것인가? 이것은 은근슬쩍 하늘이 도우신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에너지를 짜내어본다. 내 신체도 이것을 눈치챘는지 뇌에서 쥐 오줌만큼의 도파민 비슷한것을 뿜어내는것처럼 느껴졌다. 목표점까지 가방안에서 실행되고있는 대회용어플은 신경쓰지않았고 오직 가민시계가 42.195km를 가리킬때까지 뛰었다. 42.2km 4시간28분18초... 아..얼떨결에 성공했네?? 그리고 진짜 육성으로 '뒈지게 힘드...네' 라는 말을하려고 하는순간 기다리고있던 크루 두분이 나를 반겨주시며 연신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신다.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 밖에 할수없었다. --------------------------------------------------------------------------------------- 나름 우여곡절이 많은 완주였다. 수천, 수만명이 동시에 출발하는 축제분위기, 북치고 장구치는 요란한 응원과 급수대 그리고 듬직한 페이스메이커, 차량통제, 응급차, 포토존, 시상식, 방송까지... 올해 마지막 목표는 꼭 정식대회 풀코스 완주를 해보는거였는데 전세계적 감염병덕분에 어쩔수없이 이렇게라도 대신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자신감이 1+ 되었으며, 달리는기쁨을 알게된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종종 마라톤이 인생과 비유된다는 인터뷰를 자주 봐왔지만 달리기를 아니 조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쯤 지난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걸음마를 뗐을뿐이라는 생각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인생이 더 남았을지, 얼마나 더 긴 거리를 달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는것은 내가 살면서 해왔던 별 것들과 비교해봤을때 정말로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홍차넷은 탐라만 주구장창 쓰다가 정말 오랫만에 왔네요.. 다들 잘 계시는지..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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