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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12/02 21:51:16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업의 성격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파악해야 할 정보가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가운데 탑티어로 중요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업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피씨방과 카페는 모두 초단기임대업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호텔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커피맛이나 피씨의 성능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결정타가 되는 것은 입지 + 유연한 공실 컨트롤 능력이겠네요.

어떤 식당은 임대업에 더 가까운 성격을 보입니다. 경치 좋은 곳에 건물 하나 올려놓고 가벼운 브런치류를 파는 곳은 제품의 맛이나 재료비보다는 인테리어와 경관이 더 중요할 겁니다. 또다른 식당은 물류업에 가까울 겁니다. 차별화된 음식을 파는 것은 아니지만 배달시간을 최적화해서 하루에도 수백수천건 배민주문을 처리한다면 사실 쿠팡같은 일을 하는 거지요.

D램이랑 낸드 파는 업은 원자재개발업의 성격이 있습니다. 이동네에서 나오는 구리랑 저동네에서 나오는 구리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이 회사에서 나오는 8기가 디램이랑 저 회사에서 나오는 8기가 디램이랑 사실 큰 차이가 없거든요. 미리 주문받고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잔뜩 만들어 놓고 파는 거라서 마치 금속이나 곡물, 석유화학제품들의 가격이 [시가]로 변화하는 것처럼 디램이랑 낸드값도 오르락내리락 하지요.

석유 캐는 애들이 너무 많아지면 유가가 떨어져서 다 같이 손해를 보니 오펙 같은 걸 만들어서 감산/증산 컨트롤을 한다... 는 아이디어가 삼전/하닉의 감산/증산 컨트롤 노력과 흡사하지요. 서로 업의 성격이 비슷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왜 요즘 메모리반도체 투자자들이 HBM 같은 거에 환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코모디티의 성격이 많이 희박하거든요. 각각의 고객님이 원하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고객님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주문받은 만큼만 만들어서 팔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주산업 같은 거지요. 업의 성격이 파운드리스럽게 변하는 겁니다.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어렵게하던 코모디티적 요소가 희석되는 거지요.

어떤 기업은 외국에서 광물이나 원유를 잔뜩 사와서 살살 가공한 다음에 약간의 마진을 붙여서 그 다음 업체에 넘겨주는 형태의 사업을 합니다. 구리를 사와서 살살 가공해서 파는 G사라든가, 철광석을 사와서 살살 가공해서 파는 P사라든가, 원유를 사와서 살살 가공해서 파는 S사라든가, 아무튼 많습니다.

이런 업을 뭐라고 부를까... 떼다 파니까 떼팔이라고 해보겠습니다.

떼팔기업들이 공유하는 성격, 곧 [업의 성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매출액이 엄청납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대량으로 재료를 떼와서 가공하기 때문에 장부에 찍히는 매출액이 어마무시합니다.

2. 이익률이 박합니다.
100조어치 원재료를 떼와서 105조에 팔면 매출은 105조지만 이익은 5조이지요. 5조가 커보이지만 이익률로 보면 5%입니다.

3. 재료값의 변동에 취약합니다.
100조에 재료를 사왔는데 열심히 가공해서 105조에 팔려고 보니까... 재료값이 폭락했네? 이렇게 되면 고갱님들이 절대로 105조에 안사가려고 합니다. 95조 부르는데... 별 수 있나요,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관계가 중요하니까 걍 손해보고 팔아야합니다.

4. 설비투자액이 높습니다.
재료를 워낙 대량으로 떼와서 가공하기 때문에 이런 재료의 중량과 부피도 엄청납니다. 제품이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 수만톤 수십만톤 단위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장도 엄청 커야 하고, 엄청 큰 공장의 감가상각비도 팍팍 찍히고, 가동중단/유지보수/신공장건설 등 돈 나갈 구석이 많습니다.


S-oil을 예로 들어볼까요?

1. 스오일의 작년 매출은 42.4조입니다.
2. 순이익률 4.96% 되겠습니다. 2.1조 벌었네요.
3. 유가 떨어진 덕분에 올해 순이익은 반토막 예정입니다 (1.1조)
4. 그런데 올해 설비투자액은 2조 조금 넘습니다.

연간 매출이 30~40조를 넘나들고 (포텐 터지는 해에는) 2조 넘게 순이익이 들어오는 이 회사의 시총은... 짜잔, [8조]입니다. 벌어봤자 태반은 설비투자로 나가잖아요. 그러니 밸류를 높게 쳐주기 어렵습니다.

성숙한 시장의 떼팔이는 밸류에이션이 이처럼 박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업의 성격입니다.


이미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양극재업의 성격도 실은 비슷합니다. 대충 밸류에이션을 해볼까요?

에코프로비엠이 약속한 캐파증설 최종단계가 71만톤인가 그럴겁니다. 시장수요둔화나 LFP문제 같은 거 그냥 없는셈 치고 정말로 에코비엠이 아주 이상적인 상황에서 공장을 돌린다고 가정하지요. 저 71만톤 가운데 합작물량은 빼야합니다. 한 60만톤 전후로 남겠네요. 또한 이런 설비는 보통 풀캐파로 못돌립니다. 평시에 대략 50만톤정도 가공해서 팔면 적당할 듯합니다.

현재 삼원계 양극재값은 킬로그램당 38불, 하지만 가격이 급락중이므로 머지않아 30불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읍니다. 30불에 5%면 1.5불, 이게 에코비엠의 순이익입니다.
1.5불 * 캐파(50만톤) = 7.5억불이네요. 대충 순이익 1조, 매출 20조 정도입니다. 양극재값이 올라가면 매출 30조에 순이익 1.5조, 운이 아주 좋은 해라면 매출 40조에 순이익 2조도 가능할 겁니다. 반대로 운이 나쁜 해라면 적자가 나기도 할 겁니다.

매출 40조에 순이익 2조면 S-oil과 다를 게 없습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성장해서 성숙한 업체가 되는 시나리오에서 에코프로비엠의 시총은 (2028년 기준) 8조~10조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현재 에코비엠의 시총은... 27조입니다.

제가 보기엔 너무 비쌉니다.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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