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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2/23 04:25:36수정됨
Name   호라타래
Subject   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2) - 역사적 유물론과 홍차넷...?
소제목으로 어그로 좀 끌어봤습니다. 그래도 홍차넷 이야기는 구체적인 사례로 나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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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회학자들은 물질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아요. 일단 몸부터가 중요해요. 몸은 인종, 젠더, 장애와 같은 차이를 빚어내는 것으로 간주되요. 우리의 의사소통을 보다 다수에게 전달되도록 증폭시키거나, 돕는 미디어도 다른 예에요.

하지만 요 글에서 여러번 비판의 대상이 될 사회적 구성주의는 몸이나 미디어를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으로 받아들여요. 몸, 미디어가 인간의 관계, 동기, 이해관계 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그리고 자신들의 이론 속에서 물화(reific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적 구성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하지요.

물화는 복잡한 개념인데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을 비물질적인 것들로 취급할 때 써요. 구글 검색을 해보니 딱 좋은 예로 커플링이 있네요. 커플들이 아이템을 장만하는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인 사랑을 현시적인 형태로 증명하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물화의 문제는 우리가 커플링을 사랑을 위한 한 방편으로 보지 않고, 커플링=사랑이라는 도식만을 머리 속에 콕 박아버렸을 때 생기지요. 사랑을 주고 받고, 증명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커플링'만을 바라보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도되지요. 모든 개념이 그렇듯이, 각 이론에서 물화를 어떤 함의를 지닌 것으로 활용하느냐는 각기 달라요.


[물론 커플링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커플링은 물화이지만, 커플링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물화가 아니거든요]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적 구성주의가 이해하는 물화를 비판해요. 역사적 유물론 입장에서 보기에 인간의 상호작용에만 초점을 두는 건, 물화를 '정신의 착각' 정도로 격하하여 생각하는 셈이거든요. 역사적 유물론 입장에서 볼 때 물화는 '추상화의 실천(practice of abstraction)'에 따른 결과여요. 이제 다시 나왔네요. 추상화의 실천.

저자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자료를 찾아봤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추상을 그대로 대입하여 첫쨰로 이해하면 되요.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추려서 구체에서 일반으로 사상(捨象)하는 과정이 추상화잖아요. 근데 지난 글에서도 정리했듯이 앞에 실천(practice)라는 관점이 등장합니다. 일단 실천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순간부터 우리는 선험적인 무언가를 버려야 해요. 추상화를 하더라도 역사/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추상화를 한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맑시즘 하면 뭐겠어요. 19세기 사회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잖아요. 당대 사회를 자본주의(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라 파악하고, 생산 양식(mode of production)의 사유화를 그 정수라 뽑아냈지요. 역사적 유물론에서 바라보는 자본(capital)은 이와 같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추상화 방식이에요.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은 이해관계와 본질적으로 연관을 맺어요. 추상화의 실천조차도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요.

하지만 맑시즘에서 볼 때 의도, 동기, 이해관계 사이의 관계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행위주체성(agency)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아요.


[헤겔니뮤. 저자가 맑시즘을 세세하게 구분하여 접근하는 반면, 헤겔이나 포이어바흐는 조금 후려친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접근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일단은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역사적 유물론은 대개 헤겔 변증법적 관념론의 안티테제로 기술되요. 절대정신(Zeitgeist) 짱짱, 역사의 자기실현 헉헉 이게 아니라, 모든 존재가 발을 딛고 있는 실재성부터 시작하자는 거예요. 근데 여기까지는 맑스/엥겔스 전에 포이어바흐가 도달했고, 오히려 맑스/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관점을 비판했대요. 좀 머리가 아파오는데. 요 두 사람은 포이어바흐가 단순히 헤겔의 생각에서 물질-정신의 관계를 역전시켰을 뿐이라 비판했어요. 말인즉슨, 포이어바흐 같은 사람들은 초월적인 관찰자(transcendental observer)의 입장에서 "그래그래 먹고사는 건 중요하지"하고 바라보고, 그걸 물질을 강조하는 걸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정작 자기는 노동을 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요. 이건 단순히 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면 샷다마우스 하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주장할 때 그걸 '팩-트-폭-력' 같은 식으로 정당화하고 자기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양 하지 말라는 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초월적인 관찰자일 수 없어요.


[정몽준의 '버스비 70원' 인식은 당연히 정몽준의 삶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지요]

맑스/엥겔스 입장에서 포이어바흐는 역사적으로/변증법적으로 생각하는데 실패했대요. '생각하기'는 우리 눈앞의, 어제 오늘 내일의 일상에 뿌리를 두는 실천(practice)이여요.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한 영역(종교)에서 다른 영역(개인의 종교적 믿음)으로 관념이 전파되는 고정된 과정이 아니에요. 일상 속에서 각 개인이 세계에 영향을 받고, 세계에 영향을 주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거든요.

변증법은 어떤 고귀하거나, 명상에 잠긴 관점들 간의 충돌이 아니에요.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추상화의 실천들이지요. 이미 구성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우리의 조건을 조형하는 과정은 - 니체는 이걸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라 불렀지요 - 단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갈등과 투쟁의 결과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이어바흐가 초월적인 관찰자인 체 한 것은, 자신의 추상화 실천이 어떠한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지 책임지지 않은 셈이래요.

160년 후에 라투르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했어요. 라투르의 공격 대상은 사회학자들이였어요. 라투르의 눈에는 사회학자들이 실제 사회가 눈 앞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지 않고, 이론을 끌어다가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적용하는 것 같았나 봐요. 특히 비판 사회학자(critical sociologists)라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이 '사회적 설명(social explanations)'을 더 중시한 나머지 경험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적인 요소들을 너무 쉽게 무시했다고 비판해요. 이 사회적 설명에는 '폭로(exposure)'를 위해서 비가시적이고 구조적인 조건만 가지고 특정한 실천의 논리를 추출하는 독해방식이 포함되어요.

[본문에는 없는 예이지만, 이 내용을 읽으면서 현재 한국의 젠더 이슈가 떠오르더라고요. 일군의 학자들은 비판사회학적 관점에서 흔히 '메갈리아/워마드' (이런 지칭도 그렇게 적절하다 느끼지는 않아요)로 호명되는 세력이 보여준 공격성을 해석했어요. 미러링(mirroring)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서 겨냥한 것은 바로 '폭로'의 효과였다 느껴요. 제가 여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운영자의 이해관계로 침묵을 택하겠습니다 ㅋ_ㅋ 아마 다수와는 또 다른 입장일 거예요]

저자는 사회학 일부에 만연한 접근 방식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선언(the price-not-paid manifests)'이라고 표현해요. 한 현실에 대한 설명에서 다른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똭 하고 이동하는데, 그 중간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 것이요. 포피어바흐, 비판사회학자들도 있지만 멀리멀리 거슬러 올라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비판해요.


[동굴의 우화]

왜냐면 동굴의 우화는 어째서 소크라테스가 벽에 묶여있던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거든요. 그냥 풀려났다고 가정했을 뿐이에요. 풀려난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의 빛을 경험하고 돌아올 수 있지만, 다른 죄수들에게 자신이 본 '현실'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어요. 정치적 현실주의가 돌아오는 거지요. 이러한 흐름에서 플라톤의 유비는 관념론이 지닌 논리적 불가능성을 증명해요. 상대도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하여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지 않는 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따르도록 할 수 없고, 집단을 만들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어요. 플라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이자 철학자인 자신을 따르라 요청하지요. 왜냐, 자신은 편견과 오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철학자니까요.

고럼 이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이 있죠. 맑스, 엥겔스, 라투르 등은 뭐가 다르냐는 거예요.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같은 거 아냐?는 생각이 떠오르겠지요. 맞아요. 따르라는 설득은 같아요. 근데 믿고 따르라는 얘기는 안 한대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설명하는 점이 다르다네요.

맑스/엥겔스에게 그 방법은 추상화의 실천이였어요. 아까 추상화의 실천은 역사적이고 물질적이라고 했어요. 이거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을 현실이라 가정하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현실이 될 것이다"라는 주장과는 달라요. 이거는 여전히 정신과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깔고 있거든요.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어떠한 방식으로 정의하는 그 자체가 현실적인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조건들은 언제나 우리가 사물들의 한 가운데로 던져지기 전에 존재해요. 우리의 관점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사회적 구성주의는 물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물들은 역할이 없거든요. 사회적인 것은 개인의 자아(cogitos)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이고, 사회적 구성에 사물이 끼어들 공간은 없어요. 그렇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유물론에서는 사물의 역할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야겠지요?

역사적 유물론에서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 조건을 선택할 수는 없는' 까닭은 바로 물질성 때문이에요.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는 변형되지 않는 물질들이요. 홍차넷을 예로 들어볼게요.

회원들은 타임라인에 하루 4개까지 글을 올릴 수 있어요. 회원들의 타임라인 활동은 남은 타임라인 개수가 몇 개 있는가에 영향을 받아요. 자정 전에 남은 탐라권을 소모하려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지요. 탐라권의 개수 제한은 토비님이 php 코드를 짜서 제한한 결과여요. 즉, 타임라인이라는 공간은 토비님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졌고, 회원들의 행동은 거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요(사물성은 사물화하는 물질적 실천의 결과이다 Objectivity is a consequence of material practices of objectification)


[자정이 다가올 수록 글을 많이 올리는 이유는 갬생충만도 있고, 자기 전 탐라도 있겠지만, 자정 전에 털어버려야 한다는 압박감도 가설로 제기할 수 있지요. 2년 전에 조사했던 자료입니당]

타임라인의 개수 제한을 뚫는 방법은 없지요. 왜냐? 컴퓨터 코드라는 것이 특정 조건에 따라 0/1의 결과를 리턴하도록 짜여져 있으니까요. 제가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빌고 빌어도 4개가 끝이에요(사물은 그 물질성 때문에 저항한다 Objects resist because of their materiality).  홍차넷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4개로 제한하는 사이트 내 운영 지침은 코드가 없으면 강제성이 약해지지요(제도는 그 물질성을 통해 규제한다 Institution regulate because of their materiality). 그리고 횐님들은 타임라인 게시글 4개라는 상황을 당연스레 받아들여요. 하지만 타임라인 게시글 제한이 영원히 4개이리라는 법은 없지요. 지금도 이전에 3개였다가 늘어난 것이고요. (운영진을 포함하는) 이 사이트 구성원들이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 필요에 따라 토비님이 php 코드를 바꾸는 노동을 한다면 탐라 갯수는 달라질 수 있는 거지요(특정한 상황들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되는 것은, 그것들을 현실로 정의하는 것이 물질적인 실천일 때이다 Situations becomes real in their consequences only if defining them as real is a material practice).

타임라인은 물질적 공간이자 사물이에요. 횐님들이 그 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실천 practice)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원들 간의 상호작용만 관찰해서는 답이 안 나와요. 이 공간의 물질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인간이 이 물질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포괄해서 봐야지요.

비근한 예를 들었으니 자본 이야기로 마무리 해 볼게요. 자본은 생산 관계를 추상화 한 귀결이여요. 그리고 그 자체는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켰고요. 사용가치와 별개인 교환가치가 '생성'된 것은 개인간 경쟁 때문에 나타난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에요. 특정한 이해관계가 다른 이해관계를 비용으로 지불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상화 해가는 실천으로 봐야지요. 이 실천은 무작위적인 해석이 아니라, 자신들이 종사하는 이해관계의 구체성을 조형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해요.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1-0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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