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3/11/22 13:41:30
Name   카르스
Subject   셋째를 낳기로 한 이유
(중략)

아이를 가진 건 애국과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었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값을 매길 수 없이 크지만 그 비용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운 좋게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인프라가 갖춰진 신도시에 살아 아이 키우기 수월하다. 아이가 귀해진 나라에서 출산과 돌봄에 주는 혜택도 적지 않다. 가장 큰 행운은 주변의 도와주는 손길이다. 필요할 때마다 한달음에 달려오시는 부모님과 갑자기 일이 생겨도 첫째와 둘째 등원을 맡아줄 이웃들이 있다. 아랫집 어르신들은 층간소음 걱정 말고 애들 마음 편히 지내게 하라고 격려하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그 마을을 가진 우리는 복받았다.

개인적 여건에 더해, 아이를 낳기로 한 배경엔 앞으로 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들 힘들어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시절에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명색이 ‘경제사 박사’라 시계를 백년 단위로 넓혀 보는 습관이 든 나에겐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 지금의 초저출산이 인구 과밀로 인한 경쟁 과열과 후생 감소의 결과라면, 반대로 인구 과소는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다. 흑사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음에 이르렀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도리어 임금 증가와 근로 여건 개선, 그리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었다. 유행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단순 노동자의 임금이 적게는 1.5배, 많게는 5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영주-농민 간 비대칭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 봉건제가 무너졌다.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망률 증가를 의미하는 ‘적극적 억제’가 생존자들의 삶을 개선한 것이다.

이후 몇번의 기근과 전염병 유행, 전쟁을 통해 굳어진 만성적 노동력 부족은 여성의 노동 참여를 늘려 가족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중세시대 20살 이하였던 유럽의 평균 초혼 연령은 16~17세기에 25살로 높아졌으며, 유럽의 비혼 여성 비율은 평균 12%로 1% 내외인 아시아 국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후 농업 생산성 증가와 상업 발달로 노동수요가 증가했지만, 출산율 감소라는 ‘예방적 억제’가 작동하면서 인구 증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형성된 고임금 경제구조는 기계화에 대한 요구를 늘렸으며, 방적기, 증기기관, 제철 기술 등의 발명을 촉진해 18세기 산업혁명의 발판이 됐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한국전쟁 뒤 출산율이 급증하며 등장한 베이비붐 세대는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의 중핵이 됐다. 그러나 자원의 증대는 이내 한계점에 달했고 오히려 인구 과밀이 여러 부작용을 가져왔다. 베이비붐 세대의 구매력에 맞춰 물가, 집값, 교육비가 치솟았는데 청년세대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격차가 커지고,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겐 희망도 사치가 됐다. 예방적 억제는 자원이 부족한 세대의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를 시작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면서 임금이 증가하고 근로 여건이 개선될 것이다. 노동력 부족은 기술집약적 산업의 발전을 추동할 것이며, 생산성의 비약적 증대로 우리 자녀들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일이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로 기술 발전과 직업 전환을 지원해야 하고, 변화하는 경제구조에 발맞춰 노동 관행도 바꿔 가야 하며, 생산성 향상의 열매를 분배하는 새로운 복지제도도 고안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급증할 부양 부담을 해소할 방안과 아이를 낳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지원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그래도 나는 낙관적이다. 지금껏 그래 왔듯, 인류는 답을 찾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7311.html
=======================================================
저 낙관론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홍차넷 바이브에 딱 맞으면서도 사회적 시사점을 많이 던진 칼럼이라 올려봅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9457 스포츠교체 아웃 직후 섭섭해하는 손흥민을 본 콘테 감독 반응 2 tannenbaum 22/05/13 4591 0
18965 외신한국 코로나 검사하는 것 좀 봐 8 기아트윈스 20/02/28 4591 1
24085 IT/컴퓨터'싸이월드 부활' 카운트다운 돌입…5월25일 오후 1시 오픈 예고 8 swear 21/04/28 4591 0
26134 사회공군 F35기 기관포는 ‘공갈포’... 도입 후 실탄 한번도 안샀다 13 Cascade 21/10/13 4591 0
13591 경제광양 세풍산단에 중국 알루미늄공장 건립 반대 확산 1 보내라 18/11/29 4591 0
20759 의료/건강 부산항 입항 러시아 선박서 선원 16명 코로나19 집단 확진 4 맥주만땅 20/06/23 4591 0
22551 국제독일 사망자 역대최다…메르켈 "접촉 최소로 줄여야" 강력 호소(종합) 7 다군 20/12/10 4591 0
33815 사회언론이 쟁점을 단순화하면 생기는 일 4 뉴스테드 23/03/18 4591 6
9240 경제'국민 경차' 스파크의 추락.. 경차 국내 판매량 꼴찌로 전락 11 알겠슘돠 18/04/10 4591 0
17432 사회동성혼·간헐적 가족…혈연 넘어선 새로운 가족 공동체 9 하트필드 19/11/09 4591 1
281 기타'MS 구매' 황당 질문? 이은재는 억울하다 14 kpark 16/10/07 4591 0
31257 사회부모가 버린 10세 손녀 성폭행·촬영 할아버지, 징역 17년 확정 11 swear 22/09/10 4591 0
35353 경제김주현 금융위원장, 새마을금고 사태 수습 진땀…“유튜브 말 믿지 말라” 5 Beer Inside 23/07/07 4591 0
14618 국제백악관 "트럼프, 예산안 서명하지만 국가비상사태 선포할 것" astrov 19/02/15 4591 0
23323 스포츠유벤투스, '1208억' 손흥민 영입 위해 '선수 3명' 처분 계획 4 Darwin4078 21/02/15 4591 0
17692 경제미국 소득격차 50년래 최고..경제 좋다는 데 왜? 2 메리메리 19/12/04 4591 0
20252 사회곽예남 할머니 유족 "정의연, 장례비 1800만원중 지원 20만원" 16 작두 20/05/16 4591 0
28444 정치'막판 단일화' 효과는…"安 지지층은 중립적, 부동층 반응에 달렸다" 20 인생은아름다워요 22/03/03 4591 0
16413 국제“아베, 한국을 2015년으로 되돌리려 해…‘타협적 화해’는 위험” 3 날쇠 19/08/15 4591 0
7454 스포츠'국가대표 영구제명' 안우진, 스포츠공정위 16인에 달렸다 10 tannenbaum 18/01/12 4591 0
17950 문화/예술송나라 과거제도를 인어공주에 싸서 드셔보세요 17 기아트윈스 19/12/24 4591 20
22302 정치윤건영 "경고한다, 檢과 감사원 선 넘지마라…국민이 文에 한 명령을 수사?" 28 Carl Barker 20/11/15 4591 0
9504 스포츠LG 트윈스, 적나라한 사인 훔치기?…더그아웃 '커닝페이퍼' 2 tannenbaum 18/04/18 4591 0
23584 사회키오스크서 20분…"딸, 난 끝났나봐" 엄마가 울었다 16 혀니 21/03/12 4591 0
36640 정치윤재옥 "행정망 마비, 역대정부 누적된 문제…대기업 참여해야" 8 야얌 23/11/21 4591 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