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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12/26 14:38:41수정됨 |
Name | Picard |
Subject | 국힘 전대 선관위원장 유흥수의 심상치 않은 과거 |
http://omn.kr/224cr ==== 유흥수 고문은 선거에 정통하다는 평을 들을 만한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때의 선거치안을 담당한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이었다. 대통령 전두환이 서울시경찰국장이던 그를 지금의 경찰청장인 치안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대통령 취임 8일 뒤인 1980년 9월 9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그를 선거치안 책임자에 임명한 배경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그를 전당대회 선관위원장에 위촉한 배경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 정부체제를 대대적으로 바꿔야 했으므로, 치러야 할 이벤트도 많았다. 개헌안을 국민투표(A)로 확정해야 했고, 새로운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B)와 대통령선거(C)를 치러야 했다. 또 신헌법 부칙 제5조 제1항이 기존 국회의 해산을 규정했기 때문에, 국회를 다시 구성하기 위한 총선(D)도 실시해야 했다. 개헌안 시안 확정은 A·B·C·D 네 가지를 신속히 치를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네 가지를 잘 치러내지 못하면 전두환 정권이 확립될 수 없었다. 그래서 네 이벤트를 치를 치안 관리자의 역할에도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이 당시 시안 확정일이던 9월 9일에 유흥수 서울시경국장을 치안본부장으로 임명한 배경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그가 전두환 정권을 만족시켰다는 점은 그 뒤 일어난 일들에서 확인된다. 그는 네 가지 일을 다 치른 뒤인 1982년에 충남지사가 되고 1984년에 정무제2수석비서관이 되고 1985년에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이벤트들을 정권의 필요에 맞게 치러내지 못했다면, 이런 '경사'들이 연이어 생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필요에 맞게 4대 이벤트를 치른 사실이 함축하는 의미가 있다. 2007년 11월에 경찰청이 발간한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백서>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백서에 따르면, 경찰은 1981년 2월 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때 "금품 매수, 투·개표 간섭, 후보자 매수, 허위 투표, 사전운동 등 부정선거운동" 등의 방법으로 개입했다. 3월 25일 총선 때는 "허위 투표, 각종 제한규정 위반, 허위사실 공표, 기부행위의 금지 등 위반, 후보자 비방, 득표수 조작, 사전운동 등 부정선거운동"을 저질렀다. 그런데 경찰이 그런 일을 저지를 당시의 경찰 총수가 유흥수였다. "전당대회 경선의 공정한 운영을 맡을 선거관리위원장에 유흥수 상임고문님을 추천하고자 합니다"라는 정진석 위원장의 문장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 당헌당규를 바꾼 것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하나 보군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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