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게시판입니다.
Date 15/07/24 17:29:24
Name   Raute
Subject   [와우] 와우 입문한 이야기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게임 장르는 시뮬레이션입니다. 코에이 시리즈, 문명, HOMM, FM, 패러독스 시리즈, 여기에 MoO라든가 각종 심 시리즈라든가 뭐 하여간 이것저것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 참 많이도 했습니다.

시뮬레이션에 열광했던 건 물론 제가 저 장르를 좋아해서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그래픽카드를 달고 있는 컴퓨터가 없어서'였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이 리니지부터 와우, 아이온 등 각종 MMORPG를 즐길 때 제가 해본 거라곤 마비노기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괜찮은 컴퓨터를 맞춰봐야지... 라고 해서 야심차게 이것저것 맞추고 달았던 그래픽카드가 암당의 HD7870이었고, 그걸로 아키에이지에 도전했다가 2주만에 질려서 포기. 그렇게 저는 MMORPG와는 인연이 없나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정말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그래서 꼭 한 번쯤은 해보자 해서 마음 먹고 하나의 게임을 질렀습니다. 와우요...

어쩌다가 중고 GTX780을 구해서 붙였으니 정말 사양 문제도 없을 것이고, 아마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여유기간인 한 달이고, 운 좋게도 아직까지 친구들이 와우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도전해봤습니다. 사실 굳이 와우를 하기로 한 건 [아얼저]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즈샤라 얼라이언스를 해볼까 했는데 친구가 뜯어말려서 하이잘 호드로 갔고 타우렌을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한 5년쯤 전에 친구들이랑 해보겠다고 잠깐 만들었다가 13쯤에서 멈춘 캐릭이 보이네요. 삭제하고 새로 만들기! 그리고 시작을 했는데... 오예 신세계입니다. 다른 MMORPG들은 렙 10~15만 되어도 반복되는 퀘스트뿐이라 지루해서 때려쳤는데 이건 무슨 질릴 때쯤 되니까 미니게임으로 퀘스트를 깨게 해주네요. 오그리마 뒷문 쪽에서 즐긴 벌목꾼 퀘스트는 정말 끝내줬습니다.

얼레 알고 봤더니 하이잘 호드도 망섭이랍니다. 제 친구가 저에게 뒷통수를 날린 거였어요. 게다가 친구들이 절 두고 아즈샤라 호드로 갔어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다시 만들라는 거 처음에는 괜찮다고 그냥 남았어요. 어차피 친구들은 만렙에 정공 뛰다가 부캐 만들어서 놀고 있는 와우 훼인들이고, 저는 이제 갓 15쯤 찍은 늅늅이니까요. 근데 친구들이 자꾸 권하기도 하고 저도 혼자 하려니까 좀 적막해서 결국 새로 만들었어요. 친구들이 시작하자마자 5천골을 쥐어주네요? 와켓부터 이것저것 만들고 놀고 뭐하니까 사냥할 시간이 없네요. 잡다한 컨텐츠 하느라 하루에 레벨 1 올리고 남은 시간은 딴짓거리 하면서 보냅니다.

새로 만든 트럴트럴냥꾼으로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드디어 레벨 20을 찍고 새로운 필드로 넘어갔어요. 얼레? 갑자기 제 캐릭터 위로 뭔가가 겹쳐집니다. 으아니 타란튤라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친구가 갑자기 절 때리네요. 저는 중증의 아라크네포비아를 갖고 있는지라 스카이림도 동굴에 거미 대신 곰 나오는 모드를 까는데 이렇게 두툼한 친구를 보고 있노라니 오금이 저리는 거에요. 잽싸게 두들겨팬 다음에 마을로 후다닥 도망가고 친구들에게 살려달라고 했죠. 거기 가지 말고 동부왕국의 어느 필드를 가면 괜찮을 거랍니다. 열심히 비행선 타고 비행루트 찍고 이것저것 만지면서 동부왕국으로의 이주를 꿈꿨는데... 저기, 친구님? 여기도 저한테는 지옥인데요? 그 지옥을 뚫고 저의 가나안을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불지옥이었네요. 맙소사...

오그리마로 겨우겨우 기어와서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을 부르는데 알고 봤더니 저 빼고 다들 절지동물 좋아하더라고요. 심지어 한 녀석은 귀엽다고 기르기까지 했었다는데... 제가 이사 가서 이 친구 집에 안 놀러간 게 참 다행이에요.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판타지에 거미 몬스터는 기본 아님?' 이런 반응이고, 대격변 이후의 필드는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면서 막막해하는 거에요. 사실 질러놓은 정액이 아깝고 뭐고 여기서 와우를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심지어 친구 녀석이 저한테 이것저것 절지동물 펫을 보여주더라고요. 나중에 같이 놀 때 제가 공포심에 나동그라지면 안 되니까 미리 테스트를 하겠다면서요. 뭐 거미만 아니면 괜찮았어요. 나름 아바투르처럼 재미나게 생긴 녀석도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제 공포심의 기준에 대해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친구의 로켓을 타고 칼림도어 어딘가의 안전지대로 보내줬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부 불모의 땅까지 왔고 그 희귀하다는 아즈 얼라에게 사냥당하면서 나름 35까지 찍었어요. 와켓몬은 올 10을 달성했죠! 그리고 무슨 습지대로 들어갔습니다.

'얘들아, 이 습지대는 어떤 곳이니?'
'습하지'
'거미는 안 나올걸?'
'근데 나 지금 퀘 받으러 마을 가는 길인데 왜 내 눈 앞에 통상보다 3배 빠른 녀석이 보이는 걸까?'
'아 거기 나오냐?'

... 오그리마로 돌아왔습니다.

거기 말고 35-40 필드 하나 더 있는데 거기는 괜찮을 거래요. 얘들아... 정말이니...? 잊혀진 땅을 지나가야 하는데 제가 거기 안 가고 남부 불모의 땅 간 이유가 잊혀진 땅에는 거미가 있을지도 몰라서라는 말 때문이었는데... 괜찮을까요... 아하하...

지금 제 트럴이는 오그리마에서 열심히 친구들이 길드 은행에 모아둔 재료를 탕진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이상 와우 입문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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