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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12 04:54:42
Name   王天君
File #1   Dior_and_I_3_Vogue_26Feb15_pr_b.jpg (496.0 KB), Download : 2
Subject   [스포] 디올 앤 아이 보고 왔습니다.


크리스챤 디올은 동명의 디자이너가 1950년대에 창립한 후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굳건히 이어오고 있는 세계적 브랜드입니다. 디올은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라프 시몬스를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합니다. 이는 라프와 디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였던 라프 시몬스가 과연 디올의 여성스러움을 어떻게 체화할 것인가? 크리스챤 디올이라는 왕국의 새로운 계승자로서 라프는 어떻게 전통과 미래 사이를 이을 것인가? 오뜨 꾸뛰르를 준비하기에 8주라는 시간은 너무나 촉박하지만, 젊은 디자이너와 오래된 브랜드 명가의 많은 이들은 이를 해낼 수 밖에 없습니다.

디올 앤 아이는 라프 시몬스가 오뜨 꾸뛰르를 준비하는 기간을 다큐멘터리 장르에 담았습니다. 패션계 하면 떠올릴 서늘하고 독기서린 악마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거니는 모델들도 영화 막바지에 수많은 주변인물들 중 하나로 나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옷도, 그 옷을 입는 모델도 아닌, 옷을 만드는 수십명의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재의 크리스챤 디올을 책임지는 라프 시몬스와 과거의 크리스챤 디올을 책임졌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입니다.

크리스챤 디올은 영화 중간중간 기존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나레이션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자신의 패션 철학이 어땠는지 디올이라는 브랜드와 자가자신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했던 디올은 여성성을 훨씬 강조한 디자인으로 패션계에는 새 바람을 일으켰고 동시에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창업주의 이 철학을 어떻게 이어받으며 자신의 독창성으로 승화시킬 것인지 라프 시몬스는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는 오뜨 꾸뛰르를 현재와 미래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만들 것을 선언합니다.

라프는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힙니다. 의사소통의 벽에 간간히 부딪히기도 하고, 옮기고 싶은 디자인이 있지만 정작 제작업체에서는 불가능하다며 퇴짜를 맞기도 합니다. 수석 재봉사가 다른 고객과 상담하러 자리를 비운 탓에 오뜨 꾸뛰르 용 드레스의 제작이 미뤄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몸 담은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자서전을 읽다가 덮어버릴 만큼 선대의 아이디어에 자신의 영감이 삼켜지는 것은 아닌지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부담은 라프 혼자서 느끼는 게 아닙니다. 디자이너인 라프 시몬스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재봉사들도 쉽지 않은 도전에 낑낑댑니다. 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드레스를 만들고 디자이너의 새로운 요구에 수정작업을 계속하며 오뜨 꾸뛰르까지 당일까지 전력질주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 명의 주인공을 보좌하는 보조인력이 아닙니다. 이들은 오히려 크리스챤 디올이라는 브랜드의 역사를 떠받치는 기둥으로서 라프 시몬스 못지 않은 존재감을 펼칩니다. 영화는 이들과 인터뷰를 나누며 패션 명가에 소속되어있다는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는 이 시대에도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결국 인간의 손과 땀을 탈 수 밖에 없기에 패션은 예술이 되는 것이겠지요.

오뜨 꾸뛰르 날이 다가오면서 이들의 도전은 점점 실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디올이 거주했던 집의 핑크빛 톤과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라프는 패션쇼 현장 전체를 꽃으로 도배합니다. 재봉사들은 원단을 자르고 꿰매며 서 말은 훌쩍 넘는 보배들을 계속해서 꿰매어 갑니다. 신출내기 티를 아직 벗어내지 못한 모델 위에 걸쳐져 디올의 의상은 사람과 함께 무대를 연습합니다. 하루 전날까지도 이들은 날을 새며 옷의 장식을 떼어내고, 행사 당일 오전까지도 채 완성되지 않은 드레스를 마무리짓느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행사 현장에는 유명인사가 하나 둘 도착하고 여기저기 플래쉬 세례가 터집니다. 라프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카메라에 멋적은 미소를 흘리기까지 합니다. 높이 솟은 모델들은 새하얀 얼굴 아래 라프와 직원들의 8주가 담긴 의상을 걸치고서 대기합니다.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고, 모델들이 차례차례 런웨이를 향해 진격합니다. 슬로우모션 속에서 디올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이에 경탄하는 관객들의 얼굴이 지나갑니다. 쇼를 지켜보던 라프는 눈물을 터트립니다. 안도의 한숨일 수도 있겠죠. 혹은 자신이 진두지휘했음에도 미가 탄생하는 순간은 인간의 손을 넘어서는 경이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의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는 예측 너머의 감동적인 지점이 존재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고급으로 치장되는 세계 속에서도 영화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패션계의 이면에는 진중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사람이 있고, 창조와 혁신을 위해 골몰하는 예술가가 있고, 한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는 프로페셔널리즘의 화신들이 있습니다. 한 업계의 최정점에서 아름다움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개미들의 본능적인 대열같으면서도 프로그램의 프로세스 과정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감격에 가득차 객석에 인사하는 라프의 모습에서 미련없이 이야기를 잘라버리는 이 영화의 마무리는 단호한 맛이 있군요. 그 모든 고생담과 고뇌로 차곡차곡 쌓았다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툭 하고 넘어트리는 파괴의 미학이 기승전결 구조에서 어떤 힘을 갖는지 좋은 사례입니다.  

@ 영화에 나오는 모델 Esther Heesch 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쇼가 최초의 런웨이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원래 전형적인 미인상에 별로 끌리는 편이 아닌데도 탄성이 나올 정도의 미모였습니다.

@ 자세히 보면 현재 대한적십자사의 총재이자 과거 MCM의 회장이었던 김성주씨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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