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9/15 17:35:32
Name   Nardis
Subject   그녀는 바라던 자유를 얻었을까?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추석과 전혀 관계없는 글을 시간이 좀 남아서 써보기로 하였습니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겠지만 홍차인은 홍차넷에...음?

저의 첫 인터넷 경험은 중학교 때 부터로, 이전 모뎀이나 ISDN 등의 시대에는 가세가 어려워 도무지 집에서 인터넷을 쓴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으나 ADSL의 빠른 보급과 함께 2000년 비로소 집에 인터넷을 들여오는 쾌거를 이룩하게 됩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감성적인 모습이 남아있긴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은 정제되지 않은 감성으로 넘쳐나고 있던 시기로 나에게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별다른 일이 없어도 요동치는 감성이 만나 쓸데없는 창작열이 불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포탈에 카페 서비스가 지속되고 있지만 커뮤니티로서의 위상은 높지 않지요. 하지만 카페 서비스 초기에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출범하지 않았거나 출범 초기였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모인 카페에서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상당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 배경에서, 저는 시, 소설 등의 습작을 올리고 서로 평가해주는 카페에 가입하여 대략 2002년 정도부터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짧은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던 저는 시를 쓰고 올리는 것을 반복하며 몇몇 유저들과도 댓글과 메일 등으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3이었던 2003년, 카페에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열어 유저와 유저를 편지 친구로 이어주는 참으로 아날로그 감성이 넘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그것도 되도록 나이대를 맞추고 지역을 비슷하게 운영진이 조정하여 이어준다고 하여 재밌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에 저 역시 이 이벤트를 신청하여 편지 친구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편지친구의 닉네임은 '자유롭게' 였고 저와 같이 부산에 사는 동갑 고3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첫 편지에서 서로의 습작을 교환하였고, 학생들이 대개 그렇듯이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과 학교에서의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쩐지 서로 공감하는 일들이 많았고, 비록 시를 쓰는 방식은 서로 다른 점이 많았지만 일상적인 순간의 감정을 캐치하여 그려내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시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인가의 편지를 나누었던 우리는 점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뿐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 등 더 사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편지를 통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 뿐만 아니라 여전히 시를 교환하고 시가 잘 써지지 않는다는 고민, 무슨 소재로 시를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 등도 잊지 않고 착실히 전달했고 고3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고충들도 조금씩은 공유했습니다. 3번째 편지 이후로 우리는 닉네임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어색하고 가족들이 편지함에서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이유로 닉네임 대신 실명으로 편지를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둘 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연락 수단은 편지, 쪽지, 메일이 전부였기에 모든 연락은 느리게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수능이라는 다가오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연락조차 수능을 전후해서는 간단한 응원만 교환되었습니다. 수능을 치르고 몇 일이 지나서 우리는 편지를 나누었고,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 우리 한 번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나면 어떻게 알아보나 하는 걱정을 잠깐 했지만, 대학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을 해주마 하고 어려운 사정에도 폰을 사주신 아버지 덕에 서로 문자를 주고 받고 약속을 해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나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건전한 어린 학생들이 할만한게 별건 없었고 우리는 인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서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희는 각자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기도 했고, 그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의 학교에 가고 나서도 몇번인가 더 편지와 메일을 주고받았고, 편지 속에 여러가지 문제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휴대폰을 정리한다는 그녀의 말 뒤 두어 번의 메일 만을 주고 받은 뒤 연락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편지들을 가끔 꺼내볼 때마다 그녀는 그 많던 고민들을 정리하고 그녀가 원하던 자유를 얻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부디 잘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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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성글엔 춫천


절름발이이리
아마 편견이겠지만, 감수성 풍만한 사람들이 진정 자유롭게 사는 경우를 많이 못 본 것 같습니다. 어떤 처지 어떤 상황이건 이런 성향의 분들은 각종 상념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가 많더군요. 돌처럼 무던한 태도가 자유를 누리기 최적화된 마음가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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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때의 감수성이 20대 30대에도 지속될 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지라...그런 마음이 그녀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는지, 원하던 자유가 그냥 물흐르듯 마음대로 사는 것인지 당시 그녀를 얽매고 있던 것들을 뿌리치고 싶을 따름이었는지 아무것도 저는 알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진정 자유롭다는 게 뭔지? 사람 누구나 자유로움의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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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타래
저도 비슷한 친구가 있었어요. 올려주신 글 읽으니 옛날 생각 솔솔 나네요. 저희는 편지보다는 MSN 통해서 소식을 주고받고는 했고, 미묘한 호감 정도만 주고 받는 사이였지요. 대학에 입학하고, 여행을 다니고, 동아리 활동에 바빠지면서 시나브로 잊어간 인연인데 잘 살고 있을런지 궁금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ㅎㅎ 메신저에도 등록은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닐수도)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마음 정리하고 싶다면서 절간 생활을 하면서 연락이 어려워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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