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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7 18:04:36
Name   AGuyWithGlasses
Subject   [사이클] 랜스 암스트롱 (2) - 뚜르 드 프랑스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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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 (1) - It's not about the bike.



2.5.

랜스가 USPS에 입단한 1998년은 사이클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해 중 하나였습니다. https://kongcha.net/?b=3&n=8856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이클은 약쟁이 스포츠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면서 수많은 팬들이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9년, TDF보다 앞서서 열렸던 지로 디탈리아마저 판타니의 EPO 복용이 적발되면서 개판이 됩니다. 수많은 선수, 코치, 팀 닥터 들이 법정에 서고, 스폰서들이 스폰을 철수하게 되는 등 사이클 업계는 정말 세기말의 시기를 보냅니다.



이러한 가운데 1999년 USPS에 새로운 감독이 들어옵니다. Johan Bruyneel(요한 브뢰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벨기에 출신으로, 막 은퇴하여 34살밖에 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96년도 TDF Stage 7에서 내리막 커브를 돌다가 실수를 하여 자전거와 함께 7m 밑으로 추락했지만 다시 자전거를 메고 올라와서 완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USPS는 뭔가 스폰서도 덕지덕지 더 붙고 팀의 몸집이 불어납니다. 후술하겠지만 1999년 이전과 이후 랜스의 팀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라집니다.


3.



1999년 TDF는 자전거 업계에서도 중대한 고비를 맞은 대회였습니다. 전 대회와, 바로 직전에 열렸던 지로 디탈리아가 약물 파동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면서 그 누구도 믿을 놈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사이클이라는 스포츠의 존망이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대회 직전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난 대회에서 추방당한 Festina 팀의 선수들이 팀이 해체된 뒤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팀으로 TDF에 참가를 신청했는데, 이 선수들에 대한 처리를 놓고 논란이 심했으며(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었습니다), 팀 하나가 TDF 직전에 있던 스위스 투어에서 팀 리더가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조직위가 해당 그 팀 출전을 막아버리고 대타로 다른 팀을 넣어버리는 사건도 발생했죠.

USPS 팀은 우승 후보로는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랜스가 암에서 회복되어 지난 해 부엘타에서 4위를 차지하여 놀랍게 부활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그랜드 투어 우승감은 아니라고 다들 본 거죠.

그렇게 시작한 TDF. Stage 1의 개인 독주 경기(ITT)에서부터 랜스는 우승을 차지하며 생애 처음으로 옐로 저지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Stage 8의 ITT에서도 우승하여, 2위와의 격차를 2분 정도로 벌립니다. 여기까지도 좀 의외지만 그럴 수 있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랜스는 아르덴에서 강했던 선수고, 이런 순간적인 업힐 파워가 있는 선수들은 TT에서 굉장한 활약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루 휴식일을 가지고 난 다음 펼쳐진 Stage 9. 스위스와 맞닿고 있는 라 그랑-보난에서 아래로 내려와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세스트리에레까지 가는 험한 산악 코스를 지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암스트롱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여, 경쟁자들을 모두 '발라버리고'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합니다. 2위와의 격차는 무려 6분 3초. 그야말로 투르를 터뜨린 거죠. 이 날의 경기결과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였고, 일부에서는 약물 의혹을 제기합니다. TT에 강하고 체구도 큰 사람이 어떻게 산악까지 저렇게 잘 탈 수가 있는가. 하지만 강화되어가는 도핑 테스트에도 전혀 걸리지 않았고, 더더군다나 미국에서 새로 온 신흥 강자에게 기존 유럽인들이 텃세를 부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당시로서는 논란이 묻히고 맙니다.



이 날 벌어진 시간차는 다시는 회복되지 않았고, 이후에 스테이지 우승을 하나 차지하여 2위와 7분 37초차, 3위와 10분이 넘는 시간차이를 내버리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해 버립니다. 이 때부터 전세계에 암스트롱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어쩌구저쩌구...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백악관 초청까지 받는 몸이 됩니다.

4.



2000년의 TDF는 그 어느때보다 기대되는 투르였다고 전해집니다. 1999년 압도적인 차이로 종합 우승을 거머쥔 떠오르는 신성 랜스 암스트롱이 가장 큰 우승후보로 점쳐졌지만, 라이벌들의 이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1997년 Stage 10에서 압도적 차이로 TDF를 터뜨리며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96년과 98년에 콩을 먹었고 99년 부엘타를 우승한 독일의 얀 율리히, 98년 지로-투르 더블을 기록하고 99년도 EPO 적발 직전까지 지로를 압도적으로 박살냈던 마르코 판타니, 페스티나 사건으로 주춤했지만 언제나 땡땡이 저지를 차지하던 리차드 비렝크...

그러나 랜스는 또 Stage 10에서 TDF를 터뜨리고, 몽방뚜에서는 판타니에게 승리를 양보할 정도로 차이를 크게 벌렸으며, 브리앙송에서는 이미 율리히와 7분이 넘는 차이를 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스테이지에서 율리히의 반격으로 시간을 조금 잃었습니다만, 그뿐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율리히와 6분이 넘는 시간차이로 종합우승. 3위와는 이미 10분 차이가 넘었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우승이었습니다. 얀 율리히는 TDF에서만 세번째 콩을 먹으며 콩의 전설을 찍기 시작합니다.



TDF가 끝나고 두 달 뒤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랜스는 여기에도 참가합니다. ITT 부문에서는 동메달을 차지하고, 원데이 클래식 부문에선 13위로 경기를 마칩니다. 얀 율리히는 ITT 은메달, 원데이 클래식 부문 금메달로 랜스에게 설욕하는데 성공합니다. 율리히가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랜스를 이긴 대회이기도 하죠. 사진은 ITT 시상식인데, 금메달은 랜스의 팀 동료였던 러시아의 Ekimov가 차지했습니다.


5.



1999년 이후 랜스는 2005년까지 7연속으로 TDF 종합 1위, 스테이지 21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사이클 역사상 불멸의 기록을 달성합니다. 7연속은커녕 7번 우승 자체가 사이클 역사에 없는 기록입니다. 그전까지 총 4명이 TDF를 5번 우승한 것이 종전 기록입니다. 작 앙크티, 에디 먹스, 베르나르 이노, 미구엘 인두라인이 그들이죠. 인두라인은 이중에 유일하게 5연속 우승을 달성한 괴인입니다. 그 후에도 크리스 프룸이 총 4번 우승했습니다. 랜스의 인기는 어딜 가나 하늘을 찔렀고, 사이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히고, 이 분야 끝판왕 에디 먹스와 비교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아마 이 시기가 사이클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이때쯤에 LiveStrong 밴드도 나왔죠. 2004년에 나오자마자 전미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되었고, 곧 전세계로 뻗어나간 아이템 되시겠습니다. 총 8천만 개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LiveStrong 재단은 랜스가 1997년에 세운 재단으로, 원래는 랜스 암스트롱의 이름이 붙어있었죠. 2012년 이후 랜스가 재단 이사직을 사임하고 나서 이름을 뗐습니다.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암 환자들의 물리적, 정신적 재활을 돕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시기가 TDF에서 우승하기 시작한 때랑 겹치죠. 글 전체를 통틀어 1999년이 갖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6.

다만, 랜스에 대한 비판도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그 중 하나로, 랜스는 TDF를 제외한 다른 경기에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투르에만 집중해서 승리를 따가고 나머지 시즌은 쉰다는 비판이 많았죠. 아무리 그랜드 투어 리더라도, 보통 팀들에서 여러 대회에 나올 것을 종용합니다. TDF를 노릴 선수들이면 보통 지로나 부엘타를 엮어서 2개 GT에 출전하는 것도 보통이죠.

랜스는 2월달 짧은 투어대회 하나정도와 4월 중순에 열리는 Amstel Gold Race(아르덴 클래식), 그리고 TDF 준비대회인 도피네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대회에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팀의 선수들은 이게 불가능합니다. 사이클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팀의 스폰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리더급 선수들은 가급적 많은 대회를 나올 것을 요구받고, 선수들도 자기 이름값이 있고 커리어 욕심이 있으니 대회 출전계획을 시즌 전부터 정교하게 짜서 나옵니다. 보통 아무리 못 해도 스테이지 기준으로 60~70스테이지는 소화하죠.

반면 랜스의 USPS는 철저하게 투르만 노리고 나오는 팀입니다. 처음부터 투르 우승을 조건으로 스폰서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랜스는 30스테이지나 간신히 나오는 수준입니다. 이 짓이 가능한 이유는, 이 로드사이클이라는 산업이 TDF에 기형적으로 몰빵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TDF의 위상이나 규모가 너무 커서 타 대회들을 압도하고도 남는 수준이라, TDF만 우승해도 효과가 엄청난 거죠. 게다가 미국은 사이클의 전통이 비교적 약한 나라입니다. 우리도 자전거는 몰라도 TDF는 알잖아요? 그걸 노린 겁니다.
한마디로 USPS는 TDF만을 위한 팀이었던 겁니다. TDF 우승을 못 하는순간 파멸하는 팀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를 쓰고 수단방법 안 가리고 우승을 한 겁니다. 실제로 2005년 RCA 재판에서 랜스의 우승에 거액의 보너스(나중가면 이게 오백만 불까지 올라갑니다)가 걸려있었다는 것이 밝혀지죠. 가히 TDF 산업이라 불러야 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랜스는 7연패를 한 당시에도 유럽에서는 올타임 레전드 정도로 평가받지는 않았습니다. 에디 먹스에겐 확실히 밀리고, 3대 그랜드 투어 우승이 10회가 되는 이노에게도 밀린다고 봤습니다. 지로 2연속, 투르 5연속 우승의 인두라인과 비교가 많이 되었죠.

여담으로 현재 Team Sky가 이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구조가 이렇게 잡혀있어서 크리스 프룸이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부엘타나 지로는 나갔습니다만...  2월달 돈 되는 대회 하나->3월 파리-니스 하나(투르 대비용)->6월 도피네(투르 대비용)->투르라는 공식을 2015년까지 유지했고 나중 가서야 부엘타나 지로 추가한 수준인데 이거 랜스랑 구조가 같죠. TDF 우승 못 하면 팀 유지 못하는 수준인 것까지 같습니다. Team Sky 운영비는 어지간한 팀 2배~3배로 추측되거든요.


여기까지는 사실 어지간한 사이클 팬들 아니면 잘 와닿지 않는 문제이지만, 이와는 중요도가 한참 다른 비판의 목소리가 이 시기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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