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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8/30 19:31:56
Name   Under Pressure
Subject   2008 수능 - 죽음의 트라이앵글
2007년 11월에 치러진 2008 대수능은 모두가 역대 최악의 수능이라고 꼽는 시험입니다. 심지어 대놓고 수능을 물수능으로 조져서 수능무용론 문제를 촉발시킨 14~16수능도 여기엔 못 따라갑니다.

단순히 물수능이라서도 아니고, 복수정답 처리가 문제도 아닙니다. 후술할 등급제 수능 입시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만, 이를 관통하는 문제는 바로 제목에서 말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었습니다. 2006년 3월즈음에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 하나의 제목이 바로 이것이었는데요, 정말 놀랍게도 당시 수험생들이 맛보았을 처절함의 핵심을 짚는 말입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그림 하나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제가 2012년경까지 수험생들 위주 과외를 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는 그때까지의 입시경향은 압니다만 그후로는 잘 모르고, 논술 지도나 원서 관련으로는 안 했기 때문에 이 시대 이후로도 이 그림이 유효한지는 잘 모릅니다. 확실한 건 대입에서 논술이 이렇게까지 중요시되는 분위기는 이 때가 시작입니다. 그전까지는 대체로 수능이 우월하고 내신은 약간 보조적인 정도였는데, 2004년부터 이 기조가 확 바뀌기 시작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아주 일관성이 있습니다. 지금하고 똑같습니다. 애초에 현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있던 시절에 이 건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거든요. 그때와 다를 수가 없어요. 무조건 학생부 비중, 특히 내신을 위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초창기에는 극단적으로 수능을 페지한다는 안까지 나왔다가, 최종적으로는 수능을 약화시키자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수능을 약화시키면 자연스럽게 대학들은 학생부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수능을 덜 준비해도 될 테니 학생들의 부담이 적어지고, 공교육이 살아날 것 아니냐는 의도였죠.


그렇게 해서 2004년 초, 2007년에 치러질 08수능부터 적용될 안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등급제 수능'이죠. 등급제 수능 역시 사진 하나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저와는 무관한 성적표입니다. 구글 검색으로 긁었습니다 전 이제 30대란 말입..)
뭔가 많이 휑하죠? 표준점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등급만 존재합니다. 표준점수 체제를 버리고 커트에 따라 1등급에서 9등급까지로만 나눈다는 거죠. 등급의 퍼센트는 현재 내신 9등급제와 같습니다. 이것조차 처음에는 청와대에서 5등급제로 하자고 했다가 교육부에서 펄펄 뛰면서 타협 끝에 9등급으로 결정한 것이고, 1등급의 비율도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나 문재인 당시 비시설장은 7%까지로 하자고 했다가 역시 교육부에서 날뛰어서 4%로 결정된 것입니다. 당시 기사로도 나왔고 나꼼수 시절 정봉주가 증언하기도 한 내용입니다.

이 안은 이미 200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발표되자마자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이거 무슨 수로 대학 입시를 할 거냐고... 지금 수능 체제도 대입 변별이 쉽지 않아서 이것저것 이상한거 넣는 추세인데 그러냐. 여기에 대해서 전교조는 내신을 살리는 것이 공교육을 안정시키고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면서 정말 강하게 나갑니다. 정부도 당연히 물러서지 않았죠.

애초에 내신 강화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논리입니다. 우선 비평준화 학교에는 적용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런 학군에 사는 중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려면 고등학교를 낮춰서 가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런데 당시 비평준화 지역 학교 대부분은 연합고사도 폐지된 채로 중학교 성적 그대로 반영되서 고등학교 배치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실제로 2007년 엄청나게 피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내 경쟁 체제는 이때부터 완전 아사리판이 됩니다. 뭐 지금은 이게 더 심해져서 이제는 고1 첫 중간고사와 첫 모평 성적이 3년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던데... 그 시초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제도가 첫 적용된 2005년 3월부터 일선 고교는 그야말로 정글이 됩니다. 옆 학생 공책 찢고 책 버리고, 중간고사 끝나더니 자살하고 자퇴자가 속출하고... 조중동 주작같죠? 이 이야기는 한겨레신문 2008년 7월 1일자 기사에서 따온 겁니다.
약간 이야기가 새긴 하는데 학종 이야기도 좀 하고 넘어가면, 제가 학종 체제를 처음 본 순간 고등학생들 진짜 다 죽겠구나 하는 말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최상위권 입시는 이렇게 되면 고교 3년 12번 중 한 번이라도 삐끗할 때마다 상위권 대학 하나씩 날아간다는 결론밖에 안 나오던데 정확하게 그렇게 되었죠.


2004년 발표되었던 이 대입제도 개혁안을 가장 반긴 곳은 정작 전교조도 아니고 학원가였습니다. 2004년 말부터 2005년까지는 내신학원이 우선 대호황을 맞게 됩니다. 지금 대치동에서 유명한 큰 학원들이 이 전까지는 내신을 그렇게 신경써서 봐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 학원들조차 시험 3주 한달 전부터 내신을 봐주게 되고, 그 수요를 다 감당 못하니 소규모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서 내신을 봐주게 됩니다.

대학들은 이 개혁안의 문제점을 바로 알아차립니다.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에 '논술고사 비중 제한'이 없었고, 수능 등급을 지원 '자격'으로 의무화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쯤되면 교육부가 뭔 생각을 하고 안을 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죠. 즉시 서울대가 2006년 입시요강에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는 걸 떡 박아넣고 2005년 말에 예시문제를 내기 시작합니다. 연고대 이하로도 아차 싶었는지 죄다 정시에 논술을 집어넣게 되고, 그리하여 2006년에는 논술학원이 대세가 됩니다. 2006년 2007년 이 두 해 국어학원 선생들은 정말 떼돈 벌었을 겁니다.

이러는 사이 수능의 비율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트라이앵글 3개의 고리가 완성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교육부가 예고한 등급제 수능의 첫 해인 2007년이 됩니다.

우선 재수생이 확 줄었습니다. 겉으로 봐도 한번 실수해서 등급 하나 떨어지는 순간 수천명이 자기를 밟고 가는 이런 제도에서 시험을 치고 싶을까요? 표준점수 1점차이는 과가 하나 바뀌는 정도라면, 등급 하나 차이는 대학이 휙휙 바뀝니다..
그래서 이 해 수능 응시자 수는 작년에 치러진 18수능 이전까지 십 년간 역대 최저수준이였습니다.

대학들은 교육부가 별 반응이 없자 대놓고 수능 우선선발제와 '정시' 이과논술을 채택합니다. 대부분의 서울권 학교에서 정시에 이과논술을 봤던 해는 아마 이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습니다.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학교별로 한 차례에서 두 차례까지 논술 모의고사라고 내서 보러 갔었는데 그렇다고 부담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죠. 게다가 이 해는 정말 교육부가 손을 완전히 놨는지 정말 개판으로 문제가 나왔습니다. 서울대는 대놓고 본고사로 내고, 고대는 이과논술이라 해놓고 문과논술 형식 절반을 빌려오는 병크...
우선선발이라는 제도는 그러니까 수능컷마다 점수를 매겨서(이것도 학교마다 다 다른데 연대를 예로 들면 1등급 100 2등급 98 3등급 95 이런식..) 반영비율을 과목마다 다르게 하고(역시 연대 자연계를 예로 들면 언외 1배 수탐 1.5배 가중치) 더한 점수를 기준으로 정시 인원의 50%까지는 이 점수안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논술 없이 붙여주겠다는 거였죠. 정말 제도 복잡성이 이루 말할 수가 없던 해입니다. 그렇게 정부가 강조하던 내신은 실질적으로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수능 500 내신 1000점이라는데 실제로는 내신 기본점수가 올 가를 받아도 990점 뭐 이런식으로 설계를 해서... 거의 모든 대학들이 이딴 식으로 요강을 냈는데 교육부는 정말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수시비중이 극단적으로 증가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만 이 시절에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수시논술이라는 게(특히 문과) 붙는 놈은 모조리 붙고, 안될 놈은 아예 다 떨어지는 구조인데, 이 시기에는 수시전형에서 대기자가 없던 시절입니다. A랑 B대학 수시에 붙은 학생이 A에 등록하면 B대학의 빈 1자리는 수시 불합격자 중 최상위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시로 전환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학원계에선 그래도 5:5정도 되는거 아니냐 했었습니다. 나중에 이는 수시전형에 대기자가 생기면서 엄청난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만... 여튼 이래서 이 해의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그야말로 철옹성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6월과 9월... 뭐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만 그대로 시험은 강행되었고,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습니다.

이 해 평가원장이 '등급제에선 등급 변별력 못맞추면 그야말로 망할텐데 어떻게 출제할 것인가'는 질문에 직전해 수능에서도 등급 변별력 잘 맞췄고 자신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능 당일 이과기준으로 엄청난 뒤통수를 칩니다. 수리 가형 1등급 컷이 100이었던 거죠. 박근혜 정부시절 수능 무력화 이전 시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던 일입니다. 그전까지 수리 가형은 커트가 87 88선에서 놀아서 이과 절단기...가 아니고 변별력을 주던 시험인데 이걸 이렇게 조져놓은 겁니다. 게다가 이과는 수리 반영비율이 정말 높았던 시절에 이딴 짓을 해놓은 겁니다. 이건 누가 봐도 엿먹어보라는 수준. 과탐도 정말 쉽게 나와서 상위권 중상위권 안 가리고 정말 지옥을 봤던 해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해에 아 이제 수능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조져서 수시로 전부 유도하겠구나 싶었고 이후에 정말로 그렇게 기조가 변하게 되서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이 해 입시에서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 많이 벌어졌냐면, 대표적인 예로 강남대성에서 전체 하나 틀린 이과생이 그 틀린 하나가 수리 1번이라서 수학이 2등급이 되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올 1등급이 이론적으로 총점 445점으로도 가능했습니다-_-;; 저정도는 아니지만 실제로 460점 후반맞고 올1등급을 인증한 사례를 당시 오르비에서 봤었죠. 469점이 498점보다 한참 앞설 수 있는 실-력 수능이 된 겁니다. 저 498점은 강남대성 레전드 사건으로 남았다나..

이런 식이 되니까 다들 수능 끝나자마자 정보 부족으로 혼란에 빠졌고, 결국은 2차 수시와 정시 논술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되어 2007년 말 학원가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터집니다. 수능만 가르치던 대형 학원들조차 급하게 논술 채점하는 사람들 불러와서 논술강좌 열고 열흘에 백만원 이런 식으로 받아댔죠. 저 시절 수험생들은 1월 초까지 전혀 놀지 못하고 미친듯이 논술에 매달리고 학교 설명회 뺑뺑이돌고 눈치싸움을 역대급으로 해댔습니다. 평소랑 이게 차원이 달랐어요. 어느 정도로 개판이었냐면 이 해의 대입 입결 데이터는 전체 입결 추세에서 빼고 볼 정돕니다-_-;;; 정말 말도 안 되고 이유를 말하려면 각 대학들 요강 다 끌고와서 수십 줄씩 써야 합니다.. 배치표도 전혀 무의미했어요.

결국 극도의 혼란과 정보 부족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하향지원을  하는 바람에 상위권 대학들은 최초는 우선선발의 영향으로 터져나가는데 대기 추합에선 정말 말도 안되는 빵꾸가 터져나갔습니다(로스쿨 영향도 있었긴 했지만 서울법대 2배수 컷 -7 사건은 정말 레전설로 남았습니다). 중상위권 대학은 반대로 하향지원의 대폭격을 맞아서 커트가 쭉쭉 올라가며 상당수 학생들이 다음 해 반수를 하게 됩니다. 2008년 재수학원들은 정말 터져나갔다더군요.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인수위를 설치하자마자 제도 원복과 '본고사 절대로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야 했고, 결국 이과 정시논술은 2009년을 끝으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트라이앵글이 깨지지는 않았다는 것은 비극이죠.

이후 각종 입시사이트에서 한동안 노무현은 금지어 수준이 됩니다. 나무위키 가보면 아마 2010년대 초 속칭 '젊은 보수' 세대의 기원이 여기에 있을거라 추측하는데, 당시 오르비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는 저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거의 세기말 수준으로 노무현을 스포츠처럼 까댔고 그 분위기 그대로 일베로 가지 않았나 싶거든요.


여담으로 전 재수를 해서 08수능을 치는 미친짓을 했고 9월달부터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렇게 좋은 결과는 못 얻었습니다 쩝.

마지막 여담으로 당시 서울대 정시논술 문제를 첨부합니다. 이과논술의 경우 절반도 못 풀어도 붙었다는 문제들인데, 푼 사람들 말로는 정규 수준의 대치동 '사교육'을 받고 풀 수가 없었다고... 제한시간이 5시간이었다던가 그렇습니다.
http://admission.snu.ac.kr/samples?bm=v&bbsidx=8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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