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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8/11 07:38:18
Name   王天君
File #1   201506081453003560_d.jpg (108.7 KB), Download : 3
Subject   [스포] 베테랑 보고 왔습니다.


의욕은 만점, 팀워크는 살짝 삐걱거리는 광역수사대는 중고차 사기 매매단을 노립니다. 좌충우돌 끝에 이들을 일망타진한 현장의 중심에는 좀 과격하긴 해도 범인 검거 하나는 빠릿하게 해치우는 서두철 형사가 있습니다. 이 무대포 형사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생겼으니, 도움을 줬던 드라마 피디가 자신을고급 파티에 초청한 것입니다. 들뜬 기분도 잠시,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한 젊은이의 패악질이 서도철의 눈에 들어옵니다 . 아무리 드라마의 제작자고 재벌 2세라지만 참지 못한 서도철은 뼈 있는 한 마디를 날리고, 조태오는 도발적으로 이를 받아칩니다. 서로가 너털웃음과 닝글거리는 미소로 불편한 첫인상을 나눈 다음날, 서도철은 자신이 아는 트럭 운전수가 신진 물산 본사에서 투신해 중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사건 정황에 뭔가가 있음을 직감한 서도철은 사건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고, 신진 물산의 후계자를 노리는 조태오는 슬슬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은 형사와 재벌2세의 대결을 중심 골격으로 삼고 있는 액션 영화입니다. 흐릿한 실마리를 가지고 악바리처럼 달려드는 형사와,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이를 무마하려는 재벌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신선한 설정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고용자라는 소재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또한 회장이 직원을 폭행하거나, 경찰이라는 조직 내의 갈등처럼 익숙한 이야깃거리들이 살점으로 붙어있습니다. 이렇게 실제 사건들을 건드리고 있기에 영화는 다소 시사적인 무게를 갖추게 됩니다. 인물들이 속한 조직들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부당거래>를, 서민 형사와 냉혈한 유산자의 갈등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공공의 적>을 닮아있습니다. 감독의 장기인 쌈빡하고 날렵한 액션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통쾌하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의 분노는 개인과 사회 사이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결말은 무책임한 판타지에 더 가까워 보이네요.

먼저 이 영화 속 악의 축인 조태오란 캐릭터가 와닿지 않습니다. 이 인물은 시종일관 안하무인에 비인간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통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싸가지 없는 재벌 2세”의 전형성의 집합체로만 보입니다. 사건의 원흉으로서 이야기에 동력을 제공하고, 욕받이 무녀처럼 관객들의 스트레스를받아내는 기능성만이 도드라져보인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분노를 건드리는 권력자로서의 질감은 풍부하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우는 인간으로서의 밀도는 부족해보입니다. 서자로서의 열등감이 슬쩍 비춰지긴 하는데 한 인간의 분노와 공포를 납득시키기에는 여백이 많은 편이구요.

이 성격파탄자의 탄생을 재벌이라는 배경과 좀 더 연관지었다면 조태오라는 인물은 돈의 횡포를 상징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에 굽신굽신하는 사람들과 자랐다거나, 황금만능주의의 위력을 목도했다거나, 재벌 가문의 특권의식 같은 설정들이 뒷받침되었다면 이 캐릭터는 보다 인간적인 공포와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관객이 부지런해야 하는 클리셰적 상상의 영역이고 정작 영화는 재벌 2세라는 배경을 지닌 한 개인에게 온 분노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조태오의 행동과 동기를 재벌이라는 계급적 측면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우연히 재벌 자식으로 태어난 사회부적응자 개인 한 명의 파행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조태오라는 인물은 “돈 많은 새끼들”  집단의 대표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영화가 사회적 이슈들을 차용해 계급적 대결을 환기시키고 있음에도, 가장 중요해야 할 메인 악당과의 대결에서는 그 주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권선징악 스토리는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정의가 이기는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야기가 게임의 판 자체를 벗어나는 인상이 들곤 합니다. <베테랑>이 닮고자 했던 <공공의 적>을 본다면 이 문제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형사 강철중과 존속살해범 조규환이 부딪히는 게임은 “조규환이 부모를 죽였느냐 아니냐”를 증명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부딪히는 클라이맥스는 “조규환이 부모를 죽였다”는 증거를 강철중이 제시하기 때문이지요. 억지스럽긴 하지만, 강철중이 조규환의 손톱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고, 이를 들이밀기 때문에 이 둘의 대결은 강철중이 판정패를 받았던 1라운드에서 2라운드로 다시 넘어가게 됩니다. 도중에 고흥식이라는 무고한 사람이 죽고, 강철중이 순경으로 떨어지는 우여곡절이 생기지만 이 둘이 서로를 노려보는 무대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를 잡느냐 못잡느냐”의 주제가 일관성있게 유지됩니다. 그 현장에서 조규환이 정말 강철중에게 맞아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조규환은 존속 살해범으로 법적 처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벌려진 게임판에서 “조규환은 부모를 죽인 놈이다”를 증명하고 강철중이 최종 승자가 된 거지요. 게임의 룰에서나 이야기의 주제 면에서 딱히 나무랄 바가 없는 마무리입니다.

<베테랑>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도철은 조태오를 잡아넣어야 합니다. 이 게임은 타락한 펀드 매니저 한 명을 잡아넣는 것보다 훨씬 더 판이 크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찰 조직은 서도철에게 비협조적입니다. 서도철 혼자서는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이 보다 본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면 영화는 높으신 분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태오를 잡아 넣을 수 밖에 없는 강력한 법적 동기가 주어져야 합니다. 조규환이 흘린 손톱조각처럼, 결정적인 패가 경찰 측에 주어졌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영화는 “경찰의 동료애”를 작은 톱니바퀴 삼아서 이야기 전체를 움직입니다. 막내가 칼부림을 당했다는 사실로 경찰의 우두머리를 감정적으로 자극하고 서도철에게 한 패를 붙여주는 거지요. 낭만적이지만 그만큼 내적 논리가 허술합니다. 만일 막내가 칼부림 당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서도철이 의도한 것처럼 절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테니까요. 여기서는 개인의 기지도, 시스템 앞의 개인의 약점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힘에 대항하는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역으로 더 실감하게 된다고 할까요. 경찰조직이 감정을 앞세워 움직이는 모습은 공권력을 등에 업었을 뿐 막내의 복수를 외치는 깡패 조직처럼 보이니까요.

게임의 규칙으로 본다면 서도철은 조태오에게 패배합니다. 조태오는 배기사를 두들겨패는 땡깡을 부리다가 살인미수를 저지르고, 사건 은닉을 도모했습니다. 핸드폰 문자 시간이나 배기사의 평소 문자 습관 등 서도철은 승리에 필요한 조각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조태오는 최측근인 최상무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 게임판에서 물러나버립니다. 기껏 모아놓은 증거들이 거짓 자백에 다 빨려들어간 셈이지요. 여기서 영화는 갑자기 게임의 룰을 바꾸고 조태오를 마약 사범으로 엮어넣습니다. 마약이라는 용서 불가의 죄목으로 사법적 승리의 빌미를 억지로 마련한 느낌이 강해요. (이 때문에 후반부로 갈 수록 조태오는 폭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동시에 영화는 “갑의 횡포를 (법의 힘으로) 응징한다”는 주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죄가 뭐가 됐든 저 나쁜 놈을 감옥에만 넣으면 장땡이라는 일종의 정신승리로 영화의 주제가 변질되는 거죠. 서도철과 관객들이 분노한 지점은 조태오의 마약이 아닙니다. 힘없는 서민을 괴롭히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본가적 측면이죠. 그러나 영화는 정작 이를 법으로 심판하지 못합니다. 아마 조태오가 마약을 하지 않고, 조금만 더 상식적으로 굴었다면 서도철은 어쩔 수 없이 패배했을 겁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긍정해도 정작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에서 선의 승리는 없습니다. 노사갈등이나 자본의 횡포에서 영화는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못하니까요.

<베테랑>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거칠게 뒤섞여있는 영화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서도철이라는 슈퍼 형사가, 법이라는 초능력을 무기로, 돈이라는 크립토나이트를 휘두르는 렉스 루태오를 쓰러트리는 이야기죠. 그러나 영화는 현실이라는 배경에서 서도철에게 초인적인 권능도, 난관을 뛰어넘는 재기도 주지 못합니다. 결국 영화는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를 우선하는 배트맨의 문법을 따릅니다.그러나 어정쩡하게 넘어간 과정에서 오는 배트맨식 고뇌와 씁쓸함은 다 무시하고 결론에 도착해서는 슈퍼맨식 통쾌함과 신뢰감만을 만끽하려 합니다. 글쎄요. 어찌됐건 그 양아치한테 한방 먹였어, 라는 이런 식의 무용담으로 통쾌하기에는 영화가 건드리는 현실들이 영화 속에서도 별로 바뀐 것 같지 않군요. 무언가를 기어이 보여줘야 한다는 협객의 의기는 결말에서는 좀 넣어뒀어도 좋았을 겁니다. 쐬주 냄새 풀풀 나는 액션키드의 허풍처럼만 들려서 날라차기를 하던 가오를 잡던 헛헛한 감정이 더 크게 맴돕니다.

@ 마동석의 까메오 출연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의외인만큼 낭비가 심했어요.

@ 살인교사를 시키고, 그것이 회장님인 아버지에게 걸린 다음에, 출국 직전 마약 파티를 벌이는 사람의 심리를 전 이해할 수가 없군요.

@ 부당거래와 연결해 본다면 좀 재미있는 캐릭터 농담들이 있네요.

@ 장윤주 씨의 연기는 좀 오그라들었습니다. 능청스러움과 자연스러움 사이에서 가끔씩 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네요.

@ 유아인씨의 자의식이 이번 영화에서는 좀 독으로 작용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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