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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4/29 07:44:23
Name   tannenbaum
Subject   사돈 어르신
조카가 결혼할때 걱정이 무척 많았습니다.

우리 조카 사위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칠순이 훌쩍 넘으신 사돈 어르신은 김천분이시고 사부인께서는 울진분이십니다. 게다가 조카사위가 늦둥이라 나이차 많이 나는 형제도 계시더군요. 결혼식장에서 저보다 나이 많으신 사위 큰형님이 저에게 깍듯하게 사장어른 사장어른 하는데 돌아버리는 줄..... ㅜㅜ

보수적인 경상도 분들이라 스물두살 밖에 안된 애가 결혼전에 애기부터 만든 걸 어찌 생각하시려나, 전라도... 그것도 광주 사람인 우리 조카를 탐탁치 않게 여기시면 어떡하나.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우리 형 때문에 실제 아버지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흠이 되지 않을까, 형제 많은 집이라 시집살이 고되지는 않을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죠. 조카사위가 당신 부모님들은 우리 조카를 무척 맘에 들어 하신다고 말했지만 저는 입장이 또 다르니까요. 이럴때 보면 저도 확실히 유교탈레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거 같아요.

걱정 한가득 안고 결혼식장에서 사돈 식구들을 처음 뵈었을 때 솔까 겁나 쫄았어요. 어쩜 그리 한 인상하시고 한 덩치들 하시던지... 우리 조카 나이 많은 서방 만난것도 짠한데 고된 시집살이 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경상도 시부모와 나이 어린 전라도 며느리 조합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혼집은 시댁에서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되는데다가 가시네가 모델인지 뭔지 한다고 대학도 때려친 고졸이지 형수랑 다르게 음식도 겁나 못해 집안일 한번도 안해봤어 벌어 논 돈도 없어 변변한 직업도 없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네이트 판에서 봤던 고된 시집살이 며느리 스토리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마구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 속 타는거 아는지 모르는지 가시네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식을 마쳤습니다. 제가 어찌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래 사위가 착하니깐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겠지 생각으로 발걸음 무겁게 돌아왔었더랬죠. 그리고 얼마 뒤 조카손녀 돌잔치 때 두번째로 사돈댁 식구들을 뵈었습니다. 역시나 나이 많으신 조카사위 큰형님은 제게 사장어른 사장어른 하시는데 불편해 죽는 줄..... ㅜㅜ

그날 제가 본건 참 행복하고 다정한 가족들이었습니다. 이런 표현 좀 그렇습니다만.... 사돈어르신과 사부인께서 우리 조카와 조카손녀를 물고 빠시더군요. 우리 조카를 바라보시는 눈에서 그분들의 평소 모습과 진심이 보였습니다. 그분들이 연기를 한거라면 아마 오스카상 한트럭은 수집하셨겠죠. 다른 형제분들도 귀이 대하시는걸 보면서 안심도 되고 쪼매 창피할라 그러더만요.

경상도 노인분들이니 전라도 며느리를 싫어 하시진 않을까...
요즘 세상에 대학도 안나오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게 성에 부족하시진 않으실까...
쥐뿔도 없는 우리 집이 변변찮아 마뜩해 하지는 않으실까...
형제가 많으니 시집살이가 고되지는 않을까...
손주가 아니라 손녀라 실망하시진 않으셨을까...

편견에 가득차 있던 건 오히려 저였더라구요. 칠순을 넘긴 분들도 저리 하시는데 [새파랗게 젊디 젊은] 제가 오히려 그분들만도 못한 편견에 갖혀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저한테는 맨날 반말 까고 함부로 막대하면서 삥 뜯어가던 가시네가 지네 시부모님께는 콧소리 내가며 아버니임~~ 어머니임~~ 함시롱 살살거리는데 와.... 사돈 어르신들 간 쓸개 다 빼먹것더만요. 완전 억울!!! 나한테도 좀 그래보지.

p.s. 조카사위가 나이 차가 많이 나 걱정했는데 벌써 둘째 생긴거 보면 맘 푹 놔도 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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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훈ㅡ
  • 일추
  • 어르신 글은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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