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9/06 17:15:04
Name   우리아버
Subject   그녀(elle)의 독고구검
예전에 모 수업에서 논쟁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잠깐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용인즉슨 상대논리의 대전제를 깨버리라는 것이었다. 난 이 표현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무협소설 소호강호에서 주인공 영호충이 익히는 독고구검이라는게 있는데, 작중 최강의 검법으로 알려져있다. 구체적인 모습은 잘모르기에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초식이 없는 검법이라는 설명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상대방의 초식을 근본부터 밟아버리는게 아니지 않았나싶다. 본디 무공은 초식이라는 일종의 행동패턴을 따라야 비로소 위력이 발휘되건만, 독고구검은 강맹한 위력으로 압도하는것도 아니요, 초식도 없소, 상대초식에 대응하는게 아니라 상대의 행위를 봉쇄해버리는게 아니었을까.
영호충은 여러무공을 연마했음에도 절정에 미치지 못했고, 몸은 내공이 뒤틀려 성하지 못했다. 그에게 독고구검을 가르쳐준 화산파 풍청양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실력이 있음에도 화산파 내부 계파투쟁에서 패했다. 그런 그가 독고구검을 완성했다. 선수필승을 당해봤기에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걸까, 영호충은 최강이 아님에도 독고구검으로 역경을 헤쳐나간다.
소오강호의 세계는 완전 뒤틀려있다. 정파와 사파가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이들은 정파가 죽이려든다. 믿었던 사부 악불군은 최강이 되기위해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아는 엄격한 스승이자, 자상한 남편이고
아비이다. 악불군이 들인 사위 임평지 역시 복수를 위해 화산파에 들어왔고 최강을 추구한다.
동방불패, 악불군, 임평지는 최강무공 앞에 섰다. 그런데, 댓가가 심상치 않다. 알까기. 딱 나 살아있는동안만 최강으로 살다가는 셈이다. 최강? 그래 할테면 해봐라. 동방불패는 그나마 낫다. 여자로써의 정체성이 있었으니깐. 그런데, 악불군, 임평지는?? 버젓이 가정을 꾸린 이가 이도저도 아닌 존재로써 최강이 되려한다. 그런데, 이들은 시원하게 발라버린다. 이제부터 이들은 목적의식만 남은 생체기계이다. 이들이 맹신하는 가치는 더이상 세계를 그리지 못하고 오롯이 직선으로만 그어진다.
중화짱개를 맛봤으면 유럽짱개도 맛보고 싶은 법,
소호강호가 정파,무공등 상상의 요소, 상징을 사용했다면, 프랑스 영화 엘르(elle, 그녀)는 훨씬 도발적으로 아예,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질문을 던진다. 여주인공 미셸의 집안은 콩가루집안이다. 아버지는 연쇄살인마고, 어머니는 젊은남자랑 놀아닌다. 아들은 호구요, 전남편은 바보다. 한편 미셸은 부조리를 당하고, 부조리를 저지른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미셸은 관객의 판단조차 뒤흔들어버린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 웃기지마 자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봐라. 그녀는 훌륭하게 불란서식 독고구검을 구사한다. 검도 없고, 초식도 없지만 그녀의 처세술은 마치 독고구검을 상상케한다. 런닝타임이 끝났을때, 우린 엘르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한마디로 끝내고 싶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1
  • 구밀복검인줄......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16 경제그냥 쉬었다는 청년들 증가, 정말 노동시장 상황 악화 때문인가 3 카르스 23/08/22 3029 5
6520 기타그냥 심리학과 다닌 이야기 17 풍운재기 17/11/03 6769 12
12681 게임그냥 써 본 2022년 LCK 스프링 시즌 결산 (상) 10 The xian 22/03/29 2716 0
12694 게임그냥 써 본 2022년 LCK 스프링 시즌 결산 (하) 3 The xian 22/04/03 3456 7
10728 일상/생각그냥 써보는 그냥 일상 7 쉬군 20/06/29 4432 19
11656 일상/생각그냥 쓰는 이야기 1 私律 21/05/08 3356 6
11521 일상/생각그냥 아이 키우는 얘기. 4 늘쩡 21/03/25 3976 18
14055 정치그냥 오늘 커뮤보면서 했던 생각 37 매뉴물있뉴 23/07/21 4142 37
2864 기타그냥 이번 강남역 사태는 올라갈수도 없는 지방 4 klaus 16/05/23 4398 0
10690 사회그냥 이야기 12 Schweigen 20/06/16 5126 22
4481 일상/생각그냥 잡담 6 와이 16/12/30 2818 0
11493 일상/생각그냥 회사가 후져요. 11 Picard 21/03/15 4679 2
9084 일상/생각그냥…그날의 기억 4 bullfrog 19/04/16 4382 16
6239 영화그녀(elle)의 독고구검 11 우리아버 17/09/06 4649 1
5581 방송/연예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OST 엘범이 나옵니다 1 Leeka 17/05/06 3914 0
8836 일상/생각그녀는 나를 좋아했을까? 12 어제내린비 19/02/04 5465 6
9666 일상/생각그녀는 바라던 자유를 얻었을까? 4 Nardis 19/09/15 4882 14
6661 창작그녀는 언제나 보라색 가방을 메고 다녔다 11 은우 17/11/27 4065 8
55 기타그녀들의 은밀한 이야기 - 핑거스미스 Fingersmith 2 시아 15/05/30 9598 3
7587 음악그녀와 첫 만남 5 바나나코우 18/05/26 3662 3
2300 일상/생각그놈의 건강 8 헬리제의우울 16/02/26 3975 1
7080 일상/생각그는 너무 재밌다고 했다. 8 발타자르 18/02/10 3852 4
5476 요리/음식그대의 뽀얀속살을 그 위에서 보았을때 내 심장은... 11 다시갑시다 17/04/20 5560 7
13855 일상/생각그동안 SNS와 뉴스에 휘둘리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1 컴퓨터청년 23/05/14 2424 3
4219 일상/생각그동안 즐겼던(?) 취미들 21 Vinnydaddy 16/11/23 4916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