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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14 08:44:13
Name   에밀
Subject   똥 먹었습니다.
다행히 꿈에서요. 현실이 아니라 다행인지, 혹은 그런 유사체험을 꿈에서나마 겪어 불행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네요. 제 안의 이과 감성에서는 꿈에서라도 그런 걸 해 봤어야 했던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는 있습니다.


꿈을 아주 어마어마하게 꿨습니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인 제게 이런 대서사시 한 편 정도야 평범한 일이긴 한데요. 오늘은 대단한 사건까지 함께 겪었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똥 먹는 꿈이 흔한 꿈은 아니잖아요.

유감스럽게도 도입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제 조력자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채 검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라기엔 다소 젊은 아저씨가 함께했는데요. 외가 앞 골목이었습니다. 전 평소에도 땀이나 신발 문제에서 자유로운 환경이라면 뛰어가기를 즐기는데요, 그렇게 달리다 웬 사마귀가 다리를 걸어 넘어질 뻔했습니다. 이 사마귀가 보통 사마귀가 아니에요. 마치 쿵푸팬더 시리즈의 맨티스처럼 다리도 쭉쭉 늘어나고, 말도 하고 똑똑합니다. 그래 걔가 제 다리를 후리는 걸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싸울 태세를 잡고 있으려니 그 아저씨가 다급히 뛰어와선 저를 말리시네요. 얘랑은 싸우면 안 된다고, 얘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여기서부터 꿈이 슬슬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

그 친구는 도술을 익힌 도사 사마귀였던 거죠. 그 친구가 환상을 보여줍니다. 시점 전환을 해서, 위성 시점이 되어서는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그렇게 하듯 지구를 지구본 돌리듯 돌립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아라비아 반도 남단, 그러니까 예멘쯤 되겠네요. 아라비아 반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흔히 우리는 거길 사막이 많은 건조 기후라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제 꿈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긴 사실 거대한 태풍에 가려(?!) 위성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오지, 엄청난 밀림이 있는 곳이었죠. 사마귀의 도술은 저와 검은 아저씨를 그리로 인도했습니다. 이제 위성 시점이 아닌 항공 시점쯤 될까요. 홍수가 나는데 가만 보니 그 일대에 조잡한 움막과 동굴집이 널려 있었고 아주 작은, 벌레 정도 크기의 다소 원시적 복장의 인간들이 복작복작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더니 집으로 피난하는데요. 아니 글쎄, 자신들보다 몸집이 더 큰 파리를 불러 집으로 함께 피난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주 놀라운 광경이었죠. 세상에, 그냥 물에 쓸려 죽을 파리를 대화를 통해 구하다니? 심지어 개미와도 소통하며 같이 지냅니다. 이미 사마귀의 도술로 여기 온 시점에서 망한 거 같은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

다시 장소는 외가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마귀가 여전히 신비로운 분위기로 말을 합니다. 제가 마왕을 쓰러트려야 한대요. 이때 마왕을 제가 파리로 떠올린 걸 보면 그 마왕이 바알이었나 봅니다. 그랬더니 이제껏 다소 헤픈 분위기였던 검은 아저씨가 갑자기 근엄해집니다. 따라 오라면서요. 따라 갔더니 그 검은 아저씨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곤 제게 덤벼들었습니다. 스승님의 제자니 경쟁자인 셈이죠. 근데 이분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입니다. -_- 유재석 씨랑 박명수 씨랑 길 씨에 노홍철 씨가 기억에 남네요. 그래 사형들과 치열하게 매일같이 대련하며 도력을 쌓던 어느 날 스승님이 갑자기 저를 부릅니다. 제 할아버지에게 가야 한대요. 슬슬 이 뭔지도 모를 개꿈의 끝이 다가옵니다.

함께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께 가는 길에 이런저런 말을 하십니다. 사실 제 할아버지가 정체를 숨기고 지내신 전대에 유명했던 도사라고 하시네요. 이제 뭐 놀랍지도 않습니다. 마왕의 봉인에도 참여하셨대요. 그런데 이번에 찾아가는 건 마왕이 할아버지를 급습했기 때문이라고, 할아버지께서 위중하시다고 합니다. 얼른 찾아뵙고, 네가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어느새 길 씨가 마을에 와 있습니다. 버스를 뛰어서 쫓아오다니 놀랍네요. 도술의 신비? 그나저나 내린 곳이 이상합니다. 여긴 외가가 있는 마을이네요. 친할아버지가 여기 계실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삭히고 마을에 들어섭니다. 근데 마을이 이상해요. 똥판입니다. 특히 외가 뒤편 언덕 위가 아주 거하게 똥판입니다. 어떤 할머니께서 똥을 치우시다 저와 스승님을 나무랍니다. "이게 다 니들 때문이야!". 근데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대체 뭔지 ㅠㅠ

외가에 들어섭니다. 마을에서부터 나던 똥냄새가 아주 진하게도 풍깁니다. 여기가 똥냄새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안방에 드니 할아버지께선 누워 계시고 할머니께서 수발을 들고 계십니다. 제가 들어갔음에도 저를 알아보는 느낌이 없고 누워만 계십니다. 전 할아버지에게 와락 안깁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시선을 제게 주시네요. 여기서 끝났어야 했습니다... 스승님, 아니 스승놈이 말을 걸기 전인 이때요. 여전히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스승놈이 똥 같은 소리를 합니다. "할아버지의 똥을 먹어야 한다.". 그 똥이 그냥 똥이 아니래요. 할아버지의 도력을 응축한 그런 똥인 거죠. 똥의 정수요, 아니 도력의 정수요. 할아버지께서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싸우고 계셨는지 아냐며 깜짝 놀라고 있는 절 타박해요. 제게 도력을 물려주기 위해 아직도 싸우고 계신 거였죠. 나쁜 스승놈아,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실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ㅠㅠ... 아무튼 이 상황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조용히 주방에 갔다 오시더니 사발을 하나 가져오셨습니다. 이제껏 말씀도 없으시던 할아버지께서 힘을 잔뜩 주십니다. 표정이 보입니다. 지금도 그 표정이 보입니다. 아악... 할아버지께서 주신 도력의 정수, 아니 똥의 정수는 염소똥마냥 동글동글합니다. 구슬 같네요. 귀엽다. 귀여웠다.

그걸 먹었습니다. 제 의지로요. 인간이... 되기로 하셨군요...가 아니라. 생각했죠. '나 지금 똥을 먹고 있구나...'. 그러면서 이 미친 꿈도 끝났습니다.


사실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꿈이라는 게 늘 그렇듯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걸 붙잡고 억지로 줍고 모아 만든 글이죠. 일단 원인으로 EBS 다큐멘터리를 꼽고 싶습니다. 인류 진화사를 다룬 다큐였는데, 제가 좋아하는 주제인 플로렌스 섬의 호빗족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아마 이게 좀 꼬여서 그 벌레 크기의 인류가 됐겠죠. 그리고 어제 밤에 본 <검은 사제들>이 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께서 누워 계신 장면은 영신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양과도 비슷했습니다. 옆에 달고 다닌 검은 스승놈도 아마 비슷한 원리로 나왔겠죠. 신부가 아니라 도사인 건 -.- 제가 그 영화를 보며 <전우치>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만, 그러면 내가 강동원? 미쳤네. -.- 파리가 마왕인 건 자기 전 바알을 검색했기 때문이겠죠.

끝으로 똥은
https://kongcha.net/pb/pb.php?id=qna&no=2498
이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맨날 똥 생각하다 똥 먹는 꿈을 꿨습니다.
지나치게 똥을 생각하지 맙시다.
아침으로는 카레를 먹었습니다.
카레 맛있네요. 전 어쨌든 이과거든요.



6
  • 에이 지지
  • 글 제목 첫 단어 보자마자 글쓴이가 누구인 줄 단번에 알았습니다
  • 이거 지난번 질문글 2탄인거죠?
  • 시리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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