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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5 15:39:41
Name   二ッキョウ니쿄
Subject   눈 길이 쓰다듬는 사이


우린 술집 입구에서 당황스런 얼굴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눈이 너무 많이온다. 그쵸? 어떡하지. 바로 맞은 편 가게의 간판이 흐릿해 보일 정도의 폭설이었다. 그녀는 몇 번 하늘을 쳐다보는 듯 하더니 술이나 한 잔 더 하고 갈까? 하고 물었다. 금방 그치지는 않겠죠? 폭설이 고마웠다.

신기했다. 눈보라에 걸음이 막혀 다시 돌아온 술집의 공기는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옷 앞자락에 묻은 눈을 살짝 털고 다시 자리에 앉자 주인장은 메뉴판을 들고 오다가 어? 혹시 뭐 놓고 가셨어요? 하고 묻는다. 어, 아뇨. 눈이 너무 많이와서. 눈이 많이와요? 네. 아이고 그렇구나. 강냉이 한 그릇을 다시 받고 술을 시킨다. 안주는 시키지 말자. 왜요? 음, 배불러서. 너 먹고 싶으면 시켜. 아, 저도 그다지. 그치만 깡술만 먹기도 좀 그런데. 그럼 탕이나 하나 두고 먹을까? 눈 올때는 오뎅탕 괜찮지 않나요? 나쁘지 않지.

그녀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어쩌다 둘이 술을 마시게 됐더라. 하필이면 스터디에 둘만 나왔고, 하필이면 둘 다 할 일이 없었고, 하필이면.. 그렇게 대충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어쩌다보니 술도 먹었는데. 적당하게 헤어질 시간에 눈이 쏟아진 셈이다. 그러고보니 어색함에 한 번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는데, 폭설 앞에서 눈을 마주치고 나니 어쩐지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우리의 말은 점점 흐릿해졌다.


쨍, 하고 소주잔이 부딫힌다. 쪼르륵, 하고 다시 빈 잔이 채워진다. 찰랑이는 물결 너머로 그녀의 까만색 원피스가 들어온다. 원피스가 함께 물결을 따라 춤을 춘다. 앞접시에 식어가는 오뎅탕을 한 국자 뜨고는, 다시 술잔을 든다. 쨍, 하고 소주잔이 텅 비어간다. 흐릿해진 말 만큼이나 우리의 눈빛도 흐릿해진다.


잠깐만, 하고 일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쫒는다. 몇 데니어일까. 원피스 밑으로 내려온 스타킹을 눈으로 훑는다. 탄탄해 보이는 허벅지와 매끈하게 뚝 떨어지는 종아리, 얇게 휜 발목 밑에 붉은 구두가 반짝인다. 또각이는 소리가 그녀의 움직임보다 반 박자 정도 늦게 귓가를 두드린다. 으음, 고개를 휙휙 젓는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숨결과 함께 흩어진다.

취했니?

어느새 그녀는 자리에 앉아있다. 쪼르르, 술잔이 또 다시 찬다. 으음, 그러게요.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 가는 대로 그녀를 쓰다듬어본다. 약간 헝클어졌던 앞머리가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가느다란 눈썹 끝에 매달려 긴 속눈썹을 간신히 타고 내려온다. 햐안 피부와 오똑한 코를 천천히 바라본다. 분홍빛 입술에 번들거림이 묻어난다. 은은한 조명이 입술 끝에 머물고 내 눈도 떠날 줄 모른다. 벌어졌다 닫히는 입 사이로 새하얀 이와 선분홍색 입술, 붉게 물든 혀가 살짝 스쳐간다. 날렵한 턱선과 이어진 목선을 지나 그녀의 쇄골과 어깨를 훑는다. 아, 쇄골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공간에 몸을 뉘이고 싶다. 저 곳에 얕은 숨결을 불어보고 싶다. 솜털 사이사이를 간지럽히며 그녀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기대한다. 이윽고 쇄골의 끝에서 봉긋하게 올라온 가슴으로 천천히 눈이 내려간다.

뭐하니?

흠칫, 하고 고개를든다. 아, 취했나봐요.

쨍, 하고 또 소주잔이 울린다.

그의 고개가 푹 하고 숙여진다. 소주잔을 쥔 손 등은 뼈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다. 손가락은 길게 뻗어있고, 팔뚝에는 힘줄이 살포시 솟아있다. 소매 안 쪽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 몇 번이고 손이 뛰쳐나갈 것 같은 것을 치맛자락을 붙잡고 참았다. 그가 취해 있는 사이 그의 머리부터 하나하나 뜯어본다. 잘 정돈된 검은색 머리카락, 셔츠의 카라와 목 사이로 슬그머니 보이는 등판, 조금만 더 밝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참고 이내 어깨에서 팔로 다시 시선이 간다. 넓게 벌어진 어깨는 푹 숙인 머리보다 조금 더 높게 솟아있다. 툭 튀어나와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저 어깨와, 술 잔을 쥐어잡고 있는 손, 소주잔을 살며시 감싼 긴 손가락. 그녀는 다리를 한 번 꼰다. 아, 만져보고 싶다. 아니, 만져지고 싶은건가. 귓 등이 화악 달아오른다.


남자는 이내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고개가 살며시 테이블에 닿는다. 이윽고 잘 오므린 다리가 슬그머리 풀려 그녀의 다리를 툭, 하고 친다. 그녀는 흠칫, 하고 놀랐지만 곧 슬그머니 다리를 푼다. 서로의 다리가 살며시 테이블 밑에서 지그재그로 뒤섞인다. 그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술잔을 손에서 뺀다. 동시에, 그의 기다란 손가락을 살며시 붙잡는다. 아, 손가락의 안쪽은 부드럽고 뼈 마디는 거칠다. 딱 맘에 드는 손가락이었다. 잠들어버린 남자의 손 끝에 머문 손은 이내 살그머니 그의 팔뚝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처음엔 검지손가락으로, 나중엔 검지와 중지로, 그러다가 이내 못이기는 척 손바닥으로. 그 때 남자가 움찔, 하며 고개를든다. 그녀의 손도 놀랜 나머지 휙 하고 테이블 밑으로 사라진다. 그는 약간 멍한 얼굴로 그녀에게 묻는다. 저 오래 잤나요? 어, 아니. 아 죄송해요. 아니야. 그만 갈까요? 그의 일어나는 몸이 휘청인다. 그녀는 놀라며 그를 붙잡는다. 나한테 기대. 아니에요. 아냐 너 넘어질 것 같아. 엎드려서 숨겨진 가슴팍이 그녀의 어깨위로 쏟아진다. 딱 숨이 가빠질 정도의 무게와 뜨거움에 그녀는 데일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몸은 어쩜 이렇게 단단할까. 그녀는 과감하게 그의 어깨와 허리를 두른다. 반쯤 안긴 자세로 서자 그의 몸 속에 자신이 풍덩, 하고 빠져든 느낌이다. 아, 이런. 자극이 너무 심하잖아.

겨우 술 값을 계산하고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폭설은 심했다. 남자는 연신 미안해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다가 묻는다. 그럼 우리 한 숨 자고 갈래? 순간 그녀를 누르던 남자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휘둥그레진 두 눈은 탄탄하게 다져진 몸매와는 다르게 귀엽기 그지없다. 그의 시선이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훑는게 느껴진다. 아까도 그러더니. 순간 번화가 한복판에서 온 몸이 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어 얼굴이 빨개진다. 뭐야, 처음도 아닌데. 그는 몇 번의 숨을 고르다가, 눈발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손은 가느다랗다고 생각했던 손가락들 사이에 꽉 잡혀 빠져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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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피곤씨
    눈 나쁜 놈...
    알료사
    눈이 바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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