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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9/03 15:37:53
Name   Raute
Subject   역대 최강의 브라질: 1958, 1970, 1982
축구의 나라가 브라질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월드컵 최다 우승에 슈퍼스타들도 엄청나게 배출해서 역대 올스타팀 만들었을 때 가장 무서워보이는 것도 브라질이죠. 흔히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셀레상(Seleção, Selection)이라고 부르는데 1958년, 1970년, 1982년, 이렇게 세 팀이 역사상 최강의 셀레상으로 꼽힙니다. 월드컵 때문에 4년 단위로 자르는 경향 때문인지 공교롭게 딱 12년 주기네요. 여튼 이 세 팀을 한 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리기 귀찮아서 포메이션은 타 사이트에서 주워오고 설명을 덧대는 식으로 하겠습니다.


1958

월드컵 결승 vs 스웨덴

1958년을 최강으로 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축구사 최강의 듀오인 펠레-가힌샤가 멀쩡하게 가동된 유일한 월드컵이었거든요. 펠레-가힌샤는 함께 출전했을 때 40경기 36승 4무라는 엽기적인 기록을 남긴 걸로 유명합니다(가힌샤는 A매치 데뷔 이후 49경기 연속 무패였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당한 펠레 없이 혼자 뛰었다가 패해서 50경기 1패로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62/66 두 번의 월드컵에서 펠레는 모두 부상당했고(62년은 2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회마감, 66년은 1차전에서 태클 때문에 부상당한 상태로 출전 강행하다 탈락) 가힌샤는 66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났기 때문에 이 조합이 제대로 가동된 건 58년과 59년(남미선수권)밖에 없습니다. 사실 58년도 펠레의 부상 때문에 첫 2경기는 빼먹고 시작했습니다만 어쨌든 팀의 8강을 확정지은 조별리그 3경기와 모든 토너먼트를 씹어먹었거든요.

물론 이 둘만 대단했던 건 아닙니다. 사실 이 대회의 최우수선수는 '미스터 풋볼' 지지였고, 역사상 최고의 중앙미드필더로 꼽힙니다.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는 공격하는 풀백의 시초로 여겨지며, 파올로 말디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을 다퉜습니다. 라이트백 자우마 산투스 역시 후술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여겨졌고요. 지우마르와 지투는 펠레와 함께 몇 년 뒤 '산타스치쿠스(Os Santásticos)'라는 위대한 팀을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면에서도 상징적인 팀인데 백4,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포백이라고 부르는 수비형태로 우승한 최초의 팀이 58브라질입니다.  50년대의 주류는 WM(3-2-2-3)이었고, 5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무적의 헝가리가 MM(3-2-3-2)을 쓰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WM의 변형이었지 근본적으로 다른 전술은 아니었거든요. 동유럽과 남미에서 시도되었던 백4와 지역방어 실험이 가시적인 성과를 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거죠.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4-2-4는 좌측의 날개가 중앙으로 내려오면서 미드필더 역할을 하는데, 이 때문에 4-3-3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60년대 후반 가면 WM이 사라지고 유럽 축구계에 4-3-3의 시대가 열리는데 브라질이 그 씨앗을 제공한 셈이죠(다만 58년보다는 62년이 4-3-3에 더 가까워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으니 레프트윙 마리우 자갈루는 카뉴테이루(비행공포증)과 페페(부상)의 대타였으며, 최전방 바바는 골 기록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때 펠레는 겨우 17세로 이미 괴물이긴 했지만 그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덕분에 전방의 공격작업은 가힌샤가 뚫고 중앙이 마무리하는 다소 단조로운 패턴이었고요. 다시 말해 멤버 하나하나는 쩔지만 막상 공격진이 조금 아쉬워서 경기력이 역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압도적이진 않은 거 같다는 거죠.

한편 58브라질은 62년까지 묶어서 58-62브라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보통 62년은 58년보다 평가가 떨어집니다. 58년 멤버 거의 그대로 갔는데 4년이 지나서 평균연령 서른의 늙은 팀이 되어 있었고, 펠레가 조기에 이탈한 것을 가힌샤가 말 그대로 '하드캐리'로 이끌어서 우승시켰거든요. 가힌샤는 '펠레의 공백을 메꾼다'는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설 중의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만 팀 차원에서는 58보다 평가가 좋을 수가 없는 거죠.


1970

월드컵 결승 vs 이탈리아

흔히 역대 최강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팀입니다. 지역예선부터 본선까지 12전 전승으로 우승한데다 최초로 컬러TV로 송출된 대회를 펠레가 우승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상징적인 면에서도 특별하죠. 이 팀의 최대 강점은 공격진영에 슈퍼스타가 많다는 겁니다. 사실 70년에 뛰었던 펠레의 동료 중 58년의 가힌샤-지지에 비견할 만한 초월적인 괴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정도 경지에 이른 선수들이면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경기를 쥐락펴락 할 능력이 있고, 그 숫자가 70년 쪽이 더 많았던 거죠. '하얀 왕(Rei Branco)'로 불리던 크루제이루의 토스탕, 66년에 이미 가힌샤를 밀어내고 보타포구의 에이스 소리를 듣던 '허리케인(Furacão)' 자이르지뉴, 코린치안스의 에이스 '파르키의 작은 왕(Reizinho do Parque)' 히벨리누, 상 파울루의 에이스 '황금의 왼발(Canhotinho de Ouro)' 지르송, 그리고 월드컵 앞두고 불꽃을 태운 '왕(O Rei)' 펠레까지 5명의 브라질 에이스가 모인 꿈의 팀이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이 에이스들의 역할을 잘 나누지 못하면 망했겠지만 브라질은 성공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결정한 조합은 지르송이 후방에서 공을 배급하고, 히벨리누가 좌측과 중앙을 오가며, 토스탕이 최전방에서 버텨주고, 자이르지뉴는 우측의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고, 마지막으로 펠레가 필드 전역을 누비며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보통 저런 거물을 1명만 상대해도 괴로울텐데 무려 5명이나 되니 정말 고역인 거죠. 한 명 두 명 막는 걸로 끝이 아니라 완벽하게 공간을 장악하고 공을 차단해야 했거든요. 근데 5명의 기량이 워낙 출중한데다 심지어 이들을 보좌하는 수비형미드필더 클로도아우두도 대단한 테크니션으로 그 유명한 70월드컵 마지막 골에서 이탈리아 선수 4명을 드리블로 농락할 정도였죠. 여기에 주장이자 라이트백인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자우마 산투스와 함께 라이트백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선수이며, 특히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수비수가 아니라 축구선수로도 역대 최고 중 하나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자이르지뉴가 맘껏 뛰놀아도 다 커버해주고 심지어 본인이 올라가기까지 하니 덕분에 막을 사람이 또 늘었네? 공격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팀이었고 이들을 막는다는 건 당시 기준으로 입축구의 영역이었던 거죠.


1970년 결승 펠레의 볼터치 위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를 제외한 수비진은 12년 전에 비해 확실히 손색이 있습니다만 워낙에 화려하고 공격적인 팀이었고, 선수 개개인 뿐만 아니라 팀으로서의 완성도도 매우 높은, 정말 사기적인 팀이었습니다. 한편 이 때의 펠레가 어느 정도의 기량이었는가는 꽤 논란이 있는데, 아무래도 반복된 부상으로 신체능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였고(특히 66년이 치명적이었다는 게 중론) 드리블보다는 패스로 경기를 풀려고 해서 젊었을 때보다 보는 맛이 별로입니다. 해서 개인전술이 감퇴한 만큼 실력이 떨어졌다는 주장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숙한 노련미로 엄청난 찬스메이킹을 선보였으니 최고의 기량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70년의 펠레가 최고다'라고 말했고, 토스탕은 '70년의 펠레로 감히 그를 평가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팀 동료들 사이에서도 저렇게 의견이 갈리니 정답은 없겠죠.


1982

1982 2라운드 vs 이탈리아 / * 주니오르와 레안드루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1954 헝가리, 1974 네덜란드와 함께 월드컵 우승을 못했음에도 최강팀으로 언급되는 82년 셀레상입니다. 감독의 이름을 따서 텔레 산타나 셀레상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산타나가 86년에도 감독을 맡았고, 이때는 82년과 구성이 좀 다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별명입니다. 다른 별칭으로는 영국 언론이 부르는 '황금의 4중주(Golden Quartet)이 있는데 널리 쓰이진 않고 당대 브라질에서는 황금세대(Geração de Ouro)로 불렀습니다.

70년의 셀레상이 그러했듯 82년의 셀레상도 각팀의 에이스들이 가득했는데 지쿠는 '하얀 펠레'란 별명에 걸맞게 펠레 이후 브라질이 낳은 최고의 슈퍼스타로 플라멩구를 이끌고 남미를 제패해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서독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로 여겨졌습니다. 소크라치스는 '황금의 뒷꿈치(Calcanhar de Ouro)'라고 불릴 만큼 센스가 좋았던 코린치안스의 에이스였고, 파우캉은 이탈리아에서 뛰고 있었는데 1년 뒤 로마에게 42년 만에 세리에A 우승을 안기며 '로마의 여덟번째 왕(L'ottavo re di Roma)'으로 불리게 됩니다. 세레주는 '공의 주인(O Patrão da Bola)'으로 불리던 특급 미드필더였고 여기까지 4명을 보통 4중주로 묶습니다. 당시 셀레상의 포메이션을 4-2-2-2로 볼 것이냐 4-3-3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는데 4-2-2-2는 이 4명으로 중원을 채웠다는 거죠. 한편 양 측면도 대단해서 주니오르는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었고, 레안드루 역시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지쿠와 함께 플라멩구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의 전진능력 덕분에 가뜩이나 강한 브라질의 허리라인은 난공불락 수준이 됩니다.

이 팀의 약점은 이들과 나머지의 격차가 제법 났다는 겁니다. 수비야
70년이 그랬듯 공격력으로 찍어누르면 되는데, 전방은 확실히 무게감이 꽤나 떨어졌거든요. 특히 세르지뉴가 문제인데 까놓고 역대 최강 셀레상이란 이름에는 격이 떨어지는 선수였습니다. 재밌는 게 바스쿠 최고의 선수인 호베르투 지나미치는 벤치를 달궜으며, '미네이랑의 왕(O Rei do Mineirão)' 헤이나우두는 예선에서만 쓰이고 본선에선 뽑히지도 못했습니다. 뭐 감독이 보기에는 당시에 저 두 명보다 세르지뉴가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름값으로는 그렇습니다. 만약 부상으로 낙마한 카레카가 있었으면 좀 달랐을 거라고들 하는데 예선에서는 안 쓰다가 대회 앞두고 소집해서 '리그에서 잘한다더니 써보니 괜찮네?'였었고 그때 22세였던지라 크게 달랐을까 싶기는 합니다. 저는 세르지뉴를 계속 썼을 거 같네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승 못했다는 거죠. 아무리 경기력이 좋았네 어쩌네 해도 결국 패자이고, 1982 이탈리아는 정말 1년 반짝 불태운 그런 팀인지라 최강라인으로 들어가지도 않거든요. 결국 그런 팀에게 침몰당한 1982 셀레상을 최강으로 꼽기는 어렵죠. 한편 Joga Bonito라고 해서 브라질 특유의 공격적이고 화려한, 즐기는 축구관이 있는데 이걸 마지막으로 제대로 구현한 셀레상이 1982년이고, 80년대쯤 되면 축구 인프라가 좋아져서 영상을 봐도 현대축구와 꽤 흡사한 느낌이 납니다(물론 지금처럼 강력한 압박은 볼 수 없고 대신 살인태클이 반겨줍니다만). 그래서 82 셀레상이 시각적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70 브라질이 최강에 그 다음이 58이고, 82는 여기 낄 레벨이 아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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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이 들어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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