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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1/01 14:26:27
Name   횡빈
Subject   3등 3등 3등
홍진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2등이 아니고 3등이라면 어떨까요? 나이스네이처(ナイスネイチャ/1988-)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은 '브론즈 컬렉터'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거든요. 특히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아리마기념(有馬記念)에서 3년 연속 3위를 차지한 것은 괴거(怪挙), 이업(異業)으로 불릴 정도의 진기록이었습니다. 유명 경마평론가 이사키 슈고로는 '2년 연속 3위면 그럴 수도 있다 정도로 아무도 놀라지 않지만, 3년 연속이라면 대단하다. 전혀 다른 수준의 임팩트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나이스네이처의 88년 세대는 토카이테이오(トウカイテイオー/1988-2013)의 세대입니다. 이전에 탐라에 짧게 쓴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전설적인 명마였죠. 이 토카이테이오가 클래식에서 2관을 달성할 동안 나이스네이처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원래 대단한 기대주도 아니었고, 누나가 데뷔하자마자 부상으로 은퇴한 적이 있어 일부러 늦게 데뷔시켰건만 그럼에도 몇 경기 안 뛰고 골막염으로 휴양에 들어갔거든요. 덕분에 사츠키상(皐月賞), 일본더비(日本ダービー) 둘 다 출장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복귀한 뒤로는 승승장구하는데, 연상의 고마(古馬)들을 제치고 G3인 코쿠라기념(小倉記念)에서 첫 중상(重賞)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클래식이 있는 3세 시즌(당시엔 나이 세는 법이 달라서 4세) 봄까지는 특출나지 않던 말들이 여름을 거치면서 급성장, 판도를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이런 말을 가리켜 夏の上がり馬라고 합니다) 1991년에는 나이스네이처가 이 역할로 기대를 모으게 됩니다. 가을의 클래식, 킷카상(菊花賞)의 전초전이었던 G2 교토신문배(京都新聞杯)에 또다른 유력마 이부키마이카구라(イブキマイカグラ)에 이어 인기 2위로 출주, 우승을 차지했고요.

킷카상은 세대 최강 토카이테이오가 부상으로 불참했기에 마찬가지로 이부키마이카구라가 인기 1위, 나이스네이처가 인기 2위로 출주합니다만 이번에는 4위에 그치고 말았고, 대신 12월에 G2(현재는 G3) 나루오기념(鳴尾記念)에서 우승하며 세번째 중상 트로피를 챙깁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나이스네이처가 전설의 브론즈 컬렉터가 될 거라곤...

지난번에 다이유우사쿠와 1991년 아리마기념에 대해 썼었는데, 당시 나이스네이처는 인기 2위에 최종순위 3위였고, 이때부터 나이스네이처는 2년이 넘도록 우승을 못하게 됩니다. 1992년 연초부터 지병이던 골막염으로 장기휴양, 복귀 뒤에는 강한 말을 상대로는 선전하지만 이기지 못하고(善戦マン、善戦ホース), 자기보다 약한 말을 상대로도 자꾸 지는 모습이 반복했죠. 막판 스퍼트가 약해서 치고 나오질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ジリ脚) 원래는 막판 스퍼트가 강점이었다는 게 아이러니.

91 G1 아리마기념  3위
92 G2 마이니치왕관 3위
92 G1 천황상(가을) 4위
92 G1 마일CS 3위
92 G1 아리마기념 3위
93 G2 닛케이신문봄배 2위
93 G2 한신대상전 3위
93 G2 산케이오사카배 2위
93 G2 마이니치왕관 3위
93 G1 천황상(가을) 15위
93 G1 재팬컵 7위
93 G1 아리마기념 3위

이쯤 되면 사실상 3위에 돈 걸어야 하는 수준(실제로 은퇴 뒤에 3위 이내 말 2마리를 맞히는 '와이드' 마권이 도입되자 포스터 모델로 기용됐습니다). 93년 가을에 부상 여파로 G1을 내리 망치면서 이 해의 아리마기념은 인기 10위로 굴러떨어졌는데도 과학처럼 3위에 올랐죠. 재밌는 건 '브론즈 컬렉터'로 활약한 시기가 정확히 91아리마기념부터 93아리마기념까지라는 겁니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 동안 40회의 경주에 나갔는데 이 시기 이외에 3위라고는 커리어 데뷔한지 얼마 안 됐던 91년 1월, 커리어 4번째 경주뿐입니다(덧붙여 이 레이스 이후 골막염으로 장기휴양)



이후에도 꾸준히 중상에 참여했고 94년 7월에는 G2 타카마츠노미야배에서 우승, 2년 7개월만에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지방에서 열린 2티어 대회였음에도 무려 65000명의 관중(당시 츄쿄경마장 역대 2위)가 모여서 나이스네이처를 응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는 먹어가고 부상은 끊이질 않으면서 점점 성적이 하락했고, 이 해에는 아리마기념마저도 5위에 드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1995년 1월 마주가 사망하고 나이스네이처의 매각 얘기가 나왔으나 2월에 열린 교토기념(京都記念)에서 2위로 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매각을 단념, 이듬해까지 경주마로 활동하게 됩니다(그러나 회광반조였던 건지 이후 은퇴까지 부진합니다). 마지막 해였던 1996년에는 사상 최초의 아리마기념 6연속 출장이 예정되어있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말의 생명을 위해 출장을 포기, G1 16회 출주, 중상 34연속 출주라는 기록을 남기고 은퇴합니다.

종마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몇 년 뒤에 등록 말소되지만 원체 개성있는 인기마였기에 지금도 고향의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미가 무려 36세까지 살면서 일본 암말 최장수 기록을 세웠는데 장수가 유전인 듯 합니다. 경주마 시절 부상으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이 역시 아이러니.

그밖에 마방 직원이던 바바 히데키와의 관계도 유명합니다. 원래 나이스네이처는 성격이 드러워서 까다로운 말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바바에게만 마음을 열어서 나중에는 바바가 옆에 없으면 경주 게이트에 들어가길 거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바바는 나이스네이처의 팬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이런 팬서비스가 나이스네이처의 인기를 높이는데에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허나 1998년 바바는 나이스네이처를 통해 알게 된 팬의 결혼식에 참가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여담으로 나이스네이처가 3연속 3위를 차지했던 1991년부터 1993년의 아리마기념은 3년 내리 거짓말 같은 언더독의 승리라서 따로따로 떼놓고 봐도 재밌습니다. 따지고 보면 연말 그랑프리답게 매년 영화가 따로 없긴 하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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