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1/26 00:49:18
Name   YORDLE ONE
Subject   운명적인 이별을 위한 기다림에 대하여
제가 보기엔 이 제목이 좀 남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글을 남겨봅니다.

저는 얼마전에 아버지의 다리가 아픈 이유는(https://kongcha.net/?b=3&n=1633) 이라는 글을 남긴 사람입니다. 당시 홍차넷 여러분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응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결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아버지께서는 2015년 12월 31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당시 지방에서 올라오던 중이라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9월 말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한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의 기억을 남겨보고자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편의를 위해 평어체로 작성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지난 글과 같이, 음울한 내용으로 채워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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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남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은 제목과 같이 운명적인 이별에 대한 내용인데 이것을 누군가에게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하려면 아버지가 호스피스로 이동하고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2015년의 7월부터 12월은 5년, 10년 후 쯤의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어떤 느낌으로 기억에 남게 될까. 아버지의 입원, 수술, 호스피스 병동으로의 이동, 혼수상태,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아버지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보다 더욱 고독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떤 방법으로도 아버지의 죽음을 향한 여정에서 느끼는 고독함을 달래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9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시한부 환자이고, 더 이상 일반 병동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킨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내용을 눈물콧물 펑펑 쏟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해줬다. 다음 날 아버지는 매우 점잖게 호스피스로 이동하는 동의서에 동의한다는 의미의 사인을 하셨다. 동의서는 작성했으나 아버지가 이동할 호스피스 병동에는 당장 자리가 없어 일단 아버지는 기존에 머물던 병실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대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지 기약이 없어서 초조해했더니 간호사분께서 하셨던 의미심장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자리는 금방 나요.] 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이니? 나는 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병생활을 하며 그 간호사분께서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말대로 자리는 금방 나서, 나흘정도 기다린 9월 말쯤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병동 이동을 앞두고 호스피스 병동 쪽 담당의사와 면담을 하였다. 보호자의 동의서를 다시 한번 작성해야했다. 환자가 급한 상황에 처하여 안 좋은 꼴이 나더라도 병원에서는 응급처치 등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냉혹한 내용의 동의서에 사인을 마치는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구토감이 아직까지도 생각날 것 같다. 의사는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은 음식을 무엇이든 다 드셔도 괜찮다고 말했고, 나는 당뇨인데도 상관 없는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당뇨병 환자가 식이요법을 굳이 하는 이유는 수십년 후 늙어서 찾아올 합병증을 대비해서 그러는 것이라 대답하였다. 우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예상 수명은 3개월인데. 아무튼 아버지께선 호스피스로 완전히 이동을 하셨다.

이 무렵 어머니께서도 다른 병원에 입원하고계셨다. 어머니는 근 10년에 걸쳐 4차례의 허리 수술을 받으셨는데, 1. 디스크 수술 -> 2. 척추에 보정물을 설치하는 수술 -> 3. 기존 보정물을 더욱 강하게 구속해주는 수술 -> 4. 여태까지 고정되있던 나사 등을 모조리 걷어내고 다시 새롭게 척추를 펴는 수술 의 히스토리에서 4번째 수술을 받고 수술한 자리가 아무는 것을 누워서 기다리고 계셨다. 정상적으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3개월 가량의 안정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셔서, 나와 누나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가며 간병을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와서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사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쪽을 간병하는 편이 내겐 훨씬 심신이 편한 일이었다. 두분 다 거동이 힘든 상황이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었다. 동기부여의 문제다.

아버지는 간병해도 낫지 못할 것이고, 어머니는 간병을 해주다보면 회복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풍기기 시작한 죽음의 기운이 어머니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 아버지와의 대화가 과거를 포커싱하고 있다면 어머니와의 대화는 미래를 포커싱하고 있다는 그런 사실은 똑같이 간병을 하면서도 내게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이것이 정상적인 간호이고 간병일텐데 호스피스에선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오로지 소모되기만 할 뿐이다.

당시 내 생활 루틴은 주 5일 지방에서 일을 하고,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온 후 토요일-일요일에 걸쳐 간병인을 쉬게 하고 내가 아버지를 간병한 후, 다시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아침에 간병인이 오면 교대를 한 후 지방으로 출근하러 내려가는 패턴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하러 가는 길은 내게 있어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 당시의 일기 표현을 빌리자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늘 심장 한켠 어둠 속에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허연 안광을 번뜩이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스트레스였던 이유는, 가기 싫다는 마음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나도 죄스러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간병 중에 어떤게 그렇게 싫게 느껴졌을까? 개인차야 좀 있을 수 있겠지만 거동이 불가능한 가족의 간병을 해보았다면 배설물이 담긴 기저귀를 교체하는 것이나 엉덩이를 닦아주는 것, 욕창을 방지해주기 위해 누워있는 체위 등을 바꿔주는 것, 목 안에 가득 차서 숨을 못 쉬게 하는 가래를 기계를 이용해 빨아내는 것? 그런 것은 힘든 일에 속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힘든 것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체위를 바꾸는 것도 기저귀를 교체하는 것도 내 몸의 물리적인 힘이 소모되서 힘든 것 보다, 그런 교체 작업 중에 환자의 몸에 힘이 가해지게 되고, 환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몇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숙련된 간병인/간호사들이 대단한 점을 바로 이것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환자의 고통에서 느끼는 감정이 가족에 비해 관조적이다. 이를테면 몸을 옆으로 눕힐 때 환자가 고통섞인 신음을 내뱉으면, ["아.. 아픈가보다 어떡하지 나까지 막 아픈 것 같아...아픈 것 같으니 살살해야겠어..으으"] 라며 우물쭈물거리는게 아니라,(여기엔 개인차가 있음) ["할아버지 좀 아플건데 잠깐만 참아요~ 으쌰 영차! (쿵!) 좋아 끝났다~ 잘했어요 잘했어!"] 라며 신속하게 짧고 굵게 끝내버린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가족은 아무래도 그렇게는 잘 못하는 것 같다. 아파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도 그랬다. 난 아직도 저렇게 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굳이 몸에 힘을 가하지 않더라도 환자가 멀쩡히 누워있다가 격통이 찾아오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 대체로 옆에 있는 보호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냥 너스콜에 의지할 뿐이다. 딱히 내가 환자의 손을 잡아주거나 이마를 만져주거나 다리를 주물러주거나 해도 환자의 고통이 사그러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장 좋은건 진통제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잠들게 되는 순간이 보호자로서도 폭풍을 보낸 후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내가 간병을 하게 되는 날엔 아버지가 아파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약기운을 빌려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아버지가 아파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한 채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짧아져만 갔고, 그럴 수록 내가 진통제를 떠올리는 빈도는 높아져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아버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숨쉬는 시간은 줄어갔다. 약기운에 취해 자고 있다가 어느날 일어나면, 몸에 붙은 장비를 떼내고 잡히는걸 집어던지면서 광증을 부리기도 하고, 이성을 잃고 간병인과 간호사에게 욕을 퍼붓거나 환각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는 날도 있었다. 그 와중에  약간 기묘한건 가족에게는 또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스피스 쪽에서 뭔가 환자에게 일이 닥칠때마다 가족을 찾는 이유가 그런 점 때문인 것 같다. 호스피스에 대부분 홀로 남아있는 환자 입장에서 마음을 허락할 상대는 역시 가족 뿐인 것이다. 나는 몇번이나 일하다가 병원에서의 긴급호출을 받아 조퇴하고 병원에 올라가는 경험을 했었다. 갑자기 건강이 안좋아져 긴급 조치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성을 잃고 폭주하며 광증을 부린 날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고 간병인을 잘라버리라고 분노했던 날도 있었다. 그 날은 비가 거세게 쏟아지던 늦가을날이었고 쇠약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갈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항상 그렇게 아버지가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있는 일이었지만, 가끔 있는 그런 일이 기억에 더 남는 법이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나면 독기가 함께 휩쓸려나간 듯, 어느새 눈에 총기가 돌아오면서 온화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그런 날 아버지에게 문병이나 간병을 가게 되면 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은 채 느긋하게 졸다가 깨거나 하면서, 낮, 밤을 그렇게 보냈다. 우리 부자관계는 굉장히 서먹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는 날이 다가올 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몰래 품고 있던 애정을 확인하듯이 그렇게 손을 잡고 놓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나는 또 방심했다. 사실은 아빠가 항암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괜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의사가 예견했던 아버지의 예상 수명 날짜가 어느새 지나있었음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온화하게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가끔 찾아오는 통증은 진통제로 잠재우는 그런 일상이 점점 루틴화 되어갔다. 병원 전체에 깔려있는 음울함, 우울함, 심신의 괴로움은 어느새 내 일부로 녹아들어 어느새 적응이 되어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의식의 끊을 놓지 않고 손을 잡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하던 시간은 11월 말을 기하여 사라졌다. 아버지는 고열에 시달리느라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그렇게 고열을 한번 겪을 때 마다 아버지에게 주어진 인간의 고유한 기능들은 차례차례 정지되어갔다. 우선 식사를 잘 씹을 수 없게 되면서 금식 상태가 되었다. 의식을 유지할 힘이 없어져서 혼수상태가 자주 찾아오게 되고, 말을 할 힘을 잃게 되어 지방에서 내가 매일매일 걸던 전화도 이제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누워서도 손만은 잘 뻗어서 이것저것 집어들곤 했었던 그런 간단한 움직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잠자다가 격통이 찾아들때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부들부들 떨면서 허공으로 손을 휘젓는 등의 몸부림을 보이곤 했는데,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그렇게 격통이 찾아들때면 파들파들 떨기만 할 뿐 어떤 상호 작용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보고 있는지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소리가 들리긴 하는 모양이지만 보고 있는 시선엔 초점이 없었고, 내가 얼굴을 가까이 해서 들여다 보면 나를 빤히 보는 것 같다가도 내가 고개를 스르륵 옆으로 치우면 멍하니 내 얼굴이 있던 부분을 퀭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젠 사랑한다고 말해도 아주 약한 힘으로 손을 꽉 잡아주지도 못했고, 나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악화는 한 달 남짓한 기간 사이에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매주 주말이 되어 아버지를 보게 될 때 마다 아버지의 모습은 급속도로 수척해져갔다. 간병생활을 하며 내가 싫어하게 된 두 가지 표현이 있다. 하나는 암걸리겠다는 표현이고, 하나는 피골이 상접한다는 표현이다. 아버지의 당시 모습은 피골이 상접한다는 표현의 예시로 가장 적합한 모습이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푸근한 인상의 호빵맨같던 할아버지가 이렇게 바싹 말라버리다니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상상만 해도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픔을 나눠갖지 못하는 것, 그리고 항상 당신의 곁에 있어주지 않은 것 등등 자학할 거리가 계속해서 떠오르고 계속해서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싶어지는 처절한 자괴감이 떠오르곤 했다. 생각해도 답이 안나오는 문제지만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병드는 과정이다.

아버지의 예상수명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는 일하면서 괜히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올때마다 덜컥 가슴이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고, 어머니께 전화가 올 때도 마찬가지로 가슴이 졸아드는 기분이 들었다. 웃긴건 어머니 역시 내가 전화를 걸어올 때 마다 안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화일까봐 무서우셨다고 한다. 나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갔다가 분기탱천한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이 상황에 지금 니가 제정신이냐는 요지의 꾸지람을 들은 후로 술을 마시지 않도록 정신무장을 다시 했고, 너무 늦게 잠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주말에 아버지를 간병하러 가는 날엔 아버지에게 새롭게 찾아온 무호흡증세로 인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버지가 쉬익쉬익 숨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곤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주무시다 돌아가시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했다. 아버지의 무호흡증세는 점점 심해져 결국 산소호흡기를 장착하고 생활하게 되었다. 아니 생활이라는 표현이 걸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갈수록 잠들어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얼마 안되는 깨있는 시간에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곤 했다. 이런 것을 생활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이게 정말 삶인걸까? 나는 삶의 가치란게 어떤 것인지 점점 알기 어려운 기분이 되어갔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12월 말이 되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면, 12월 중순까지 어머니는 허리가 완쾌되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사실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고 계셨다. 어머니는 마땅히 아버지 옆에서 그 고통을 나눠받아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라 생각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심심하면 나나 누나들에게 그냥 간병인 돈주고 쓰지 말고 내가 가서 아버지 간병을 하는게 낫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셨지만, 택도 없는 말씀 말고 회복에 집중하라는 자식들의 말에 크게 반발하지 않으신걸 보면 스스로의 허리가 그런 고된 일과 (중환자의 간병은 정말이지.. 중노동이다)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계신 듯 했다. 아마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느꼈을 감정 중엔 초조함의 비중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호선 종점에 사는 우리 가족은 5호선 반대편 종점 근처 호스피스에 입원해있는 아버지를 보러 갈 때면 상당한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나 역시 지방-집-병원-지방-집-병원의 엽기적인 이동경로를 몸소 겪을 때 마다 삭신이 비틀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허리수술을 마치고 재활중이던 어머니는 오죽했으랴. 차 안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는 몸상태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한번 보러 가고 나면 일주일은 후유증으로 앓아눕게 되곤 했었다.

애초에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 문병을 가는 것에 대해 썩 탐탁치 않은 기분이 들었었다. 어머니 허리가 완치가 되지 않은 상황에 허리 수술한 부분이 덧나기라도 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하드코어한 어머니의 장거리 이동은, 힘들긴 힘들어도 두 분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라 뭐라 모질게 말하기도 힘들었다.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가겠다는데 아들내미가 그걸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어머니와의 통화 중 전화기 너머로 힘없이 들려오는 [오늘 병원다녀와서 피곤하다] 라는 말에, 그저 고생했다는 말 말고는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다. 어머니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차라리 빨리 나아서 원없이 아버지를 만나고 하고 싶은말을 다 하라고 해주고 싶었다. 만나러 가는 여정이 험난해서 다시 몸져 눕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실에 대해 속상해하고 한탄하기보다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거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되는 등,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 후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12월 초순 까지는 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몇번 가보기도 했으나, 그 후로는 집에서 요양만 하게 되고 아버지의 몸 상태를 자식들로부터 전해듣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빈혈로 침대를 벗어나는것도 버거워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좋아졌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예측했던 아버지의 기대 수명은 사실 12월 초였기 때문에 하루하루 지날 때 마다 내가 초조해하듯, 어머니도 초조해하는 날이 한달정도 계속되었다.

어느덧 12월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아버지의 예상 수명은 어느 새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담담한 마음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반응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귓속말로 말씀드리곤 했다. 사랑한다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린다고. 공허하게 사라진 귓속말이었지만 전해졌으리라 믿고 싶다.

몸 상태가 어느정도 좋아졌다 판단하신 어머니는 드디어 침대를 벗어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 올랐다. 한 달 만에 있었던 어머니의 아버지 문병은 지금 돌이켜보면 멈춰있던 톱니바퀴들이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당시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의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병실에서는 기적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 허공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선 확실하게 그쪽을 주시하고 씨익 웃으며 반응하셨다고 하며, 분명하게 어머니를 향해 초점을 맞추고 어머니가 온 것을 인지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 귀에 대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속삭이면서, 내 말이 들리면 눈을 깜박여보라는 말에 아버지는 꿈벅꿈벅 눈을 크게 깜박여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오셨다고 했다. 전화로 그런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는 무척 우셨고,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기적이란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먼 길 가신 보람이 있으셨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도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서 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문병 후로 급격히 상태가 안좋아지셨다.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마치 더 이상 기다릴 힘이 없다는 듯 이틀이 지난 12월 31일, 자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임종실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어머니가 전해주는 그 사실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부랴부랴 집에서 연락받고 임종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정신을 잃고 그 생명을 유지해준 아버지께 감사함을 느꼈다. 내내 고통스러워하던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지켜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부터 생각했다. 상주를 보면서도, 모든게 끝나고 나서도, 그리고 모든게 끝나고 3주가 흐른 지금, 방금 전까지도 계속해서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몇번이고 위독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4인 병실에서 같이 있던 환자들이 열 번이 넘게 바뀌는 것을 보면서도, 오로지 혼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예상 수명보다 한 달이나 오랫동안 살아계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의사가 잘못 짚은 것이었을까.

9월 말 즈음에 두 분이 동시에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때, 내가 아버지의 영상편지를 어머니에게 전해드린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1분 30초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 걱정 말고 몸 조리 잘 하라고. 어머니는 그냥 피식 웃었지만, 나는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아버지는 그 후에도 어머니가 문병을 오거나 전화를 할 때 마다 몸조리를 잘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머니가 어느정도 기운을 차리고 아버지를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는 어찌되었든 살아계셨다.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어머니는 하고픈 말을 다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아버지 쪽에서는 어머니에게 못다한 말을 다 할 수는 없었다. 그것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버지의 예상 수명이 다 하는 그 날까지 마음의 준비를 다 마치지 못한 모질이 아들내미도, 한 달이나 더 살아계셔준 덕분에 자연스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의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해치워나갈 수 있는 주변머리를 얻을 수 있었고, 감정을 더욱 쉽게 추스릴 수 있었다. 누나들도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하며, 어머니는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모든것이 유족들에게 완벽하게 작용한 이별이었다. 2015년 한 해를 넘기지 않았고, 힘들 때 간병해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렸으며, 나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고찰해볼 기회를 얻게 해준 소중한 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1개월 더 살아계실 수 있었던 것은 의사의 오판 같은게 아니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아버지는 이렇듯 가족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운명적인 이별을 위하여 어머니를 기다려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살아갈 것이다.

――――――――――――――――――――――――――――――――――――

원래는 이 글을 쓰려고 한 게 아니라 호스피스에서 간병을 하면서 지식공유차원에서 제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써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 글을 먼저 쓰게 되었네요.
다 쓰고 나니 좀 들쭉날쭉한 구성인지라 창피하기도 하고.. 지난 일기들을 뒤적거리며 모아 쓴 글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더 일찍 쓸 수도 있었던 간병 후기(?)였지만 장례 마친 후로 여러모로 뭔가 집중이 안되는 슬럼프를 좀 겪고 온 것 같습니다.
이제 충분히 쉬었겠다 얼른 제정신으로 돌아와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난 번 썼던 글에 관심 보여주신 홍차넷 회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2
  •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새벽에 눈물흘리게 되네요. 저도 아버지께서 예순 중반이신데다 잔병치레가 늘고 힘이 약해지시는걸 느끼는것만으로도 엄청 허하고 슬프던데.. 글 정말 감사히 읽었습니다. 힘내세요.
  • T.T
  • 힘드셨을텐데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버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 누구나 겪게 되는 일입니다..
  • 좋은곳에서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겪게 되겠죠..
  • 펑펑 눈물나네요. 많이 힘드셨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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