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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1/23 00:45:22
Name   우너모
Subject   [조각글 12주차] 괜찮아
[조각글 12주차 주제]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소개하는 글입니다.
픽션으로서 인물 소개를 해도 좋고,
논픽션으로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소개해도 좋고,
비평적으로 작품을 소개해도 좋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처음 써보는 소설이라, 문장이나 구성 아무거나 그냥 생각나는대로 다 평가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싶은 말

뭘 소개할까.. 하다가 최근에 들은 뉴스 중에 좀 충격적이었던 걸 하나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취준생이 취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사채를 빌려서 몇 달간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가짜로 출근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살했어요.
만약 내가 그 사람과 친구였다면, 하는 생각으로 써본 글이구요,
처음 써 본 소설입니다. 처음 생각보다 장황하고 사념적으로 써서 좀 만족스럽지 못하네요. '나'와 종수라는 인물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의 느낌을 주려고 노력해봤는데,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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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괜찮아, 임마. 너도 곧 될 거야”

종수는 소주 한 잔을 시원스레 털어 넣고는 말했다. 그 놈의 괜찮아. 사람들은 그 말을 할 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아님 뭐라도 말하면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걸까? 취기에 자꾸만 고꾸라지는 이마를 손으로 받치며 나는 소주 한 잔을 내 잔에 대충 따랐다.

“야, 너는 왜 공기업이냐? 갑자기. 그쪽은 별 생각 없다매?”
“……뭐 조건이지, 조건. 결국 오래하다 보니까 안정적인 거 찾게되더라.”

그래? 하고 물으며 종수의 잔을 채워줬다. 시큰둥한 내 말투에서 반감이 드러났는지 그의 얼굴에 떨떠름한 표정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우리는 서로 더 묻지 않고 한 잔씩을 더 마셨다. 시시한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좀 어떻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러기엔 나도 종수도 너무 취했다. 우리는 계산서를 챙겨서 일어났다.

오늘의 술자리는 종수의 취업을 축하해주는 자리였다. 한 명은 늦었고, 한 명은 오지 못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면 다들 그러듯이 평일 저녁 약속이란 지키기 힘든 거니까. 그래도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느라 노곤해진 친구 둘이 종로로 왔고, 종수와 나까지 남자 넷은 일곱 시부터 급하게 저녁을 먹고 급하게 술을 마셨다. ‘나는 니가 끝내는 잘 될 줄 알았다’는 둥, ‘거기 내가 아는 사람 거기에 있는데 나중에 한 번 만나보라’는 둥, 그런 자리에서 으레 오가는 말이 친구들 사이에 오갔다. 종수는 신이 나서인지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한 편의 약속 대련처럼 자연스러웠다.

둘은 마신 술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일어났다. 비도 오기 시작했고, 회식에서 연일 마신 술 때문에 오늘은 일찍 가봐야 겠다고 한다. 종수는 굳이 붙잡지 않고 그들을 보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질척댈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사실 근래 몇 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내린 비처럼 적당한 이유야 있었겠지만.

내가 한 잔 더 하자고 남은 건 그래서가 아니었다. 그냥, 뭔가 모르게 그의 취업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일어날 때 뭔가 모르게 종수의 얼굴이 쓸쓸해 보이기는 했다.

실내포차에서 나온 시간은 12시 반에 가까웠다. 막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나는 어슬렁 어슬렁 술집 건물 계단을 밟아내려갔다. 벌써 빗물에 젖은 바닥이 불결하고 미끄러웠지만, 그래서라기보다는 그저 과장된 여유를 부려보고 싶었다. 계산을 종수가 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결국 사람이란 건 계산을 하는 사람과 계산이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눠지기 마련이다. 나는 계산대를 바라보며 뻘쭘하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됐고, 나는 안 됐으니까. 1층 출입문을 열고 나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야,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자."
"너 담배 언제부터 다시 폈냐? 4학년 때 끊고나서 한 동안 안 피더니. 있으면 하나 줘라."

나는 종수에게 담배를 하나 건네준 뒤, 그가 자기 라이터를 꺼내는 걸 봤다. 그제서야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당겼다. 습 후. 빗물에 담배연기가 이지러졌다. 금요일 자정이 넘은 시간치고는 종로가 한산하다. 비가와서 그랬겠지. 입안이 텁텁해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종수에게 말했다.

"야 오늘 잘 먹었다. 고마워."
"아니 내가 오히려 고맙지. 비도 오는데 끝까지 남아서..."

한 마디가 오간 후에 우리는 다시 길게 한 모금 빨았다. 말보로의 텁텁한 맛에 목이 답답했지만 종수도 나도 침은 뱉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에도 침은 뱉지 않았다. 그와 나는 같은 과에 속했지만 3학년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서야 같이 담배를 피다 친해졌다. 나는 꽁초는 적당한 데다 버리기도 했지만, 종수는 꽁초도 꼭 쓰레기통을 찾아서 집어넣는 사람이었다. 내가 물었다.

"야, 근데 뭐 회사는 다닐 만 하냐? 직장인치고는 술 마시고 회사 얘기를 별로 안 하네?"
"뭐, 다 똑같은 얘기 해서 뭐하냐? 아직 세 달도 안 채워서 크게 하는 일도 없어. 뭐 그리고......."
"그리고 뭐?"
"너도 신경쓰일 거 아냐. 우리끼리 뭐 그런 얘기만 하면."

종수가 담배를 손으로 튀겨서 끄면서 덧붙였다. 그는 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않고 쥐었다.

"아 나 때문에? 뭐 하루이틀 일이냐, 괜찮아."
"그래 너무 자학하지말고 견딘다고 생각해라. 이런 이야기도 이제 지겹겠지만."
"됐어, 임마. 괜찮아. 이제 차 끊겼는데 넌 어떻게 가냐?"
"택시 타고 가지 뭐. 너는?"
"그래야지. 가자 이제."

나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아서 껐다. 종수는 자기 손을 한 번 내려다 보더니 길 구석에 담배를 대충 던졌다.

2.
아마 우리가 당시에 같이 듣고 있던 것은 이용준 교수의 화폐금융론이었을 것이다. 이용준 교수의 강의 방식은 명료했다. 수업이 시작하면 그가 들어와 출석을 부른다. 그는 휴대폰 시간 기준으로 수업에 1분도 늦거나 빨리 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백색 칠판에 그날의 강의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천천히 써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마리의 달팽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아니 시발, 왜 그 교수는 피피티를 안 쓰지? 피피티로 써서 강의노트 올려주면 자기도 시간 아끼고, 학생들도 시간 아끼고 얼마나 좋냐 이거야."

종수의 담배를 받아 입에 물면서 내가 말했다. 종수가 자기 라이터로 불을 켜서 내 입에 대어 주었다. 그리고 종수가 말했다.

"그 교수님 밑에 제자도 많다던데, 왜 우리 수업 조교 형도 우리과 선배잖아."
"아니 그리고 왜 수업 내용이 교과서 요약해서 읽어주는 걸로 끝인건데? 마치면 질문도 제대로 안 받아주면서."
"원래 그런 식이랍니다. 그 형 말이. 왜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도 문제은행에서 퍼온다던데. 채점도 실은 조교가 하고."
"교수하기 쉽다, 쉬워."

그 때 우린 이런 식의 대화를 많이 했다. 대학과 사회에 널려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투덜대는 식이었다. 때로는 치졸한 불평일 때도 있었고, 나름 비장한 사회 비판일 때도 있었다. 나는 늘 문제를 제기하고, 종수는 동조했다. 그는 바보는 아니었지만, 딱히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스물 다섯 살의 내가 그를 편하게 생각했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수가 또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내가 대학원 가려고 했던 거 아니냐, 쉽게 살라고."
"그래도 교수 되는 게 어디 쉽냐. 개빡세."
"어차피 지금 학점으론 되지도 않을 일이니까.. 뭐.."

그는 그 말을 하고는 옆에 있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손톱으로 벤치에 붙어있는 종이조각을 떼기 시작했다. 종이 조각에는 '오늘 6시30분 인문관 3층 중앙연극부 다연 정기공연'이라고 붙어있었다. 종이조각에 붙어 있는 유리테입이 누렇게 바래고 들뜬 것으로 보아 적어도 며칠은 지난 공지인 듯했다.

"아니 이런 걸 왜 제 때 안 떼냔 말이야. 자기들이 붙였으면 자기들이 떼야지."

그가 유일하게 참지 못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널려있는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것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지 않은 왼손 검지로 벤치를 득득득 긁었다. 유리 테입이 조금씩 뒤집어지더니 결국 벗겨졌다. 나는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떼나, 라고 생각하며 피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나는 그의 그런 점이 재미 있다고 생각했다.

"야 너 그러면 손톱에 더러운 거 다 낄텐데."
"괜찮아, 씻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뜯어낸 종이를 손에 쥐었다.

3.
종로의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던 원혁과 민규도 이맘때에 친해진 사이였다. 그 둘은 그렇게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가까이 앉고, 시험기간이 되면 서로 범위를 물어보는 그런 사이였다. 졸업 이후에 그들과 다시 만난 건 종로가 처음이었다. 그게 아마 2년하고도 두어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들과 다시 만난 건 그 술자리로부터 한 달이 조금 안 되게 지나서였다. 대구의 장례식장에서.

"야, 말도 안 된다."

원혁이 말을 꺼내면서 내 잔에 소주를 따랐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민규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지만 민규도 대답하지 못했다. 민규는 퇴근하고 바로 나온 길이라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구겨진 양복이 더욱 초췌해보였다. 입을 다문 그의 얼굴은 양복보다 더 구겨져 있었다. 민규는 소주병을 받아 원혁이에게 잔을 따라주었다. 나는 그의 표정이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내가 원혁이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것은 슬픔이 복받쳐서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스물 여덟, 결혼식에 가본 경험은 이제 조금 생겼지만 장례식에 가본 일은 별로 없었다. 장례식장에서는 건배를 하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는다. 그게 내가 아는 장례식 예절의 전부였다. 아마 여기가 잘 모르는 친척의 장례식장이었어도 나는 대꾸를 안 했을 것이다. 나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러게."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될 것 같은 생각에 민규가 덧붙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뭐가, 어떻게 말도 안된다는 건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셋 다 알 수 있지만, 원혁은 아마 그걸 입 밖으로 꺼내어 같이 황당해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친구가 죽었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목숨을 버렸다. 우리 중 누구라도 울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잔에 스스로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종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잘 모르는 이들은 아마 그가 자다가 뇌출혈로 죽었다고 들었을 지도 모른다. 으레 이런 죽음은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실제와는 다른 사인으로 알려지니까. 아마 그의 진짜 사인은 질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목을 메었다.

"취업, 돈이 뭐라고..."

민규가 갈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크흠.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더 들을 수가 없어서 소주를 입 안에 털어넣고 일어났다. 원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어디 가?"
"집에 가려고...더 있기가 좀 그렇네."
"그럼 우리도 같이 일어나자."

장례식장의 정문 구석에 나는 잠시 섰다. 사람들의 동선에서 비켜선 자리를 찾다보니 어둑어둑한 구석이었다. 품에서 담배를 찾아 입에 물자, 원혁은 담배를 꺼냈고 민규는 한 발짝 물러섰다. 원혁은 연기를 한 모금 뱉은 다음, 화단에 소리를 내지 않고 침을 뱉었다. 그리곤 말을 꺼냈다.

"그럼 종수 걔 실제로는 지난 몇 달 간 사채 빌린 돈으로 애들 만나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한거냐?"
"그랬다네.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하.. 참.. 너무 이해가 안된다 왜 그랬는지."
"그 때부터 죽으려고 그랬나보지 뭐."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 입 밖으로 나온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너무 현실적으로 하고 있는 두 친구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반 넘게 남은 장초를 꺼뜨리곤 쓰레기통을 찾았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먼저 간다. 그 말을 서둘러 던지곤 발을 뗐다.

"야, 괜찮냐?"

뒤에서 원혁이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2
  • 소재가참좋네요 실제로 뉴스를 봤을때보다 작가님이 써주신 소설을 읽는지금이 더 가슴이아프고 속이쓰립니다. 그래서 다음작품은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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