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12/16 16:50:11
Name   트린
Subject   또 다른 2025년 (10)
10.

수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음에도 이것저것 지시했다. 보민도 엄마도 모든 걸 그대로 따랐다.

"보민 씨, 저 사람 핸드폰..."
"가져가?"
"일단 해제부터. 시간 더 지나서 식으... 하여간 지문 인식이 안 돼."
"아, 알았어."

보민은 께름칙한 마음을 애써 참으며 앞으로 넘어진 남의 품을 뒤졌다. 액정이 깨져 금이 간 갤럭시 25가 나왔다. 여기서 잠금 방식이 패턴이나 번호면 사실상 끝장이었다. 전문가를 만나고 뭐하고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운이 좋은 편인지 다행히 폰은 지문 인식으로 잠겨 있었다.
보민은 피가 안 묻은 손가락 하나를 잡고, 본인 사진이 바탕 화면인 핸드폰에 들어간 뒤 설정에서 잠금 상시 해제를 선택했다.

"됐다."
"총도."
"알았어."

그가 물건을 챙기는 사이, 수진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기는 엄마를 지나쳐 본인 방에 들어갔다. 그녀는 미리 챙겨놓은 커다란 옷가방과 야구모자, USB, 납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적당한 크기의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나눠 썼다.
5분이었다. 신도림에 있는 구로 경찰서에 총격으로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관들이 들이닥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예상되었다. 이제 2분이 지났다.
수진은 롱패딩을 두 겹으로 걸치며 말했다.

"보민 씨는 파카 벗고 담요를 걸쳐."
"응? 어색하잖아."
"AI CCTV 윤곽선만 왜곡하면 돼."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불황과 국민 반대로 주요 지점만 계엄령인 상태. 사람마다 검문검색하는 건 용산, 종로, 판교, 강남, 시청, 서울역 등 인기 시위 지역이나 정부 주요 시설이 모인 곳뿐이다. 새벽인지라 사람도 별로 없고, 있어도 그냥 너무 추워서 무리하는 남자 아니면 새로 생긴 어이없는 패션 정도로 보고 그냥 지나칠 것이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마법"을 더해야겠지만 일단 사람 눈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두운 색 담요에 끈을 묶어서 마무리하는 걸 수진이 앞에서 도우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들어왔어?"
"남이 술 취해서 그런지 차 앞에 통행증을 흘렸어. 그걸로 사진만 가리고 일행인 척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말했지."
"007이 따로 없네."
"그리고 현관 앞에서 서성거렸더니 안에서 막 난리가 나고, 옆집 나오고, 그러다 문이 열리고 어머님이 도움을 청하시더라. 아주 운이 좋았어."

아니, 운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보민은 무장 탈영병이 될 판이고, 수진은 잘해 봐야 계엄하 군사법정에서 최소 무기징역 감이었다.
하지만.

"고마워. 나도, 엄마도 구해 줘서."

수진의 속삭임이 볼에 닿았다. 그녀의 진심이 피부를 덮었다. 이유를 모르고 사라졌던 연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보민은 참지 못하고 허리끈을 매는 수진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바쁘다고."
"바빠서 이 정도야."
"울 엄마."
"헉!"

보민이 급하게 입술을 뗐다. 수진이 살짝 웃었다. 눈에 생기도 잠시 돌아왔다가 올 때만큼 갑자기 사그라졌다.
보민은 어떻게든 저 생기를 돌려주고 싶었다.

"나 캠핑카 뒤에서 숨어서 너 바라볼 때 난 헤어진 이유가 배남인 줄 알았어."
"바보."
"근데 아무래도 이상하더라고. 분위기도 이상하고, 네 표정도 그렇고. 그런데 언뜻 총이 보이고 네가 애써 그를 달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들어왔어.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수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더 이어가려는데 엄마가 와서 음식을 건넸다. 엄마는 수진이 시킨 대로 자신 몫의 모자를 챙기고, 수진과 보민을 같이 끌어안더니 밖으로 나갔다. 경비원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4분.
두 사람은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112 신고 센터에 들어간 총격음 신고는 데이터 공유로 구로 경찰서와 계엄사 사령부 양쪽에 들어갔다. 신고 분류가 2회 총격, 신고 내용은 "아파트에서 소란 후 총격"이었다. 2인 1조로 출동한 경찰관들은 사이렌을 켜고 순찰차를 기동하는 동시에 자이 아파트 경비실로 전화했다. 경비실에서는 707 대원 중사 배남이 총을 휴대하고 정보사 중위  안수진의 아파트 301호에 난입했다고 말해 주었다.  
두 명 중 젊은 경찰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확실한가요? 어떻게 그렇게 신원을 잘 아시죠?"
"함께 왔다는 사람이 들어올 때 증을 보여주더라구요."
"동행자가 있었다고요?"
"네, 그런데 같은 부대라기에 그 사람 신분은 안 물어봤어요. 배남 중사란 분은 입주자 분이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마지못해 같이 올라갔어요."
"그 뒤로는요?"
"총 소리가 나는데 무서워서 못 올라갔죠."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경비원이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제가 중간에 순찰을 해서 백퍼센트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근무자에게 물어보고, 앞문 뒷문 CCTV 확인하고 말씀드릴까요?"
"그래주세요. 빨리요. 제 개인전화 알려드릴게요."

경찰관은 습관대로 내부 CCTV 데이터 보전, 비 관계자 열람 금지, 유출도 하지 말라고 일렀다.
내부 CCTV 데이터는 물론, 신고받자마자 강력 사건이라는 조건으로 모든 행인의 추적이 시작된 외부 AI CCTV면 도착 전에 웬만한 상황은 확실해질 것 같았다.
자이 아파트는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복잡한 구시가지가 아니었다.  계획된 구역에 좌우 도로가 뚫려 있어서 CCTV망이 방범, 도로 교통 등 2중으로 촘촘이 깔려 있는 신개발 부촌 지역이었다. 심지어 주변의 다가구에도 나름의 대책을 세운 특이한 곳이었다.
운전 중인 고참이 말했다.

"치정인가 본데?"
"그런 것 같습니다, 선배님."
"골치 아프네."

총기 사건인데 심지어 연루자가 707인 만큼 젊은 경찰관은 단말기에 초기 정보를 넣으며 인질 사건 가능성, 폭발물 휴대 가능성으로 항목을 팍팍 늘려나갔다. 또한 경찰 특공대를 요청하면서 오기 전까지 현장을 봉쇄해야 하므로 지원팀을 3개 요청했다.  또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의 가장 윗대가리인 국군방첩사령부에 정보 공유 및 지시를 요청했다.
어차피 계엄 중 경찰은 그냥 요식 행사였다. 앞에서 경찰이 욕은 다 먹고, 거만한 놈들이 거만한 표정으로 보안이다 지랄이다 헛소리 해대며 봉쇄를 트집으며 수사라는 이름으로 제식구 감싸기에 바쁠 것이다.
군 경찰, 군 검찰, 군 정보사가 민간인과 군인이 있을 때 누구에게 유리하게 행동할지는 평소에도 뻔했다. 심지어 특전사에 정보사가 거론되는 추문이다? 책임지는 자는 없이 모든 게 흐지부지 될 것이다.  
고참이 말했다.

"자이 근처에 굴다리 위가 교통섬이잖아. 오늘 교통 애들 있을 텐데 1분 거리야. 초동으로 불러서 넣어."
"실탄 휴대는 했는데... 상대가 특전사잖아요. 무리이지 않을까요?"
"인천 건처럼 뉴스 나오는 것보다는 낫지. 네 명이잖아. 앞뒤, 계단이랑 엘리베이터 이렇게 하나하나 지키면 되겠네."  

교통과에 전화하기 전 젊은 경찰관 핸드폰이 인기 애니 <먼작귀> 속 가상의 보이그룹 "Pajama Parties"의 밝은 노래를 토해냈다.

"아으, 친일파 새끼."
"선배님도 참. 네, 여보세요."

경비원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다른 경비원이 목격하길 앞문으로 두 명, 뒷문으로 한 명이 나갔는데  앞문은 배남을 따라 들어온 남자와 안수진, 뒷문은 안수진의 엄마라고 설명했다.

"나눠서 양쪽으로요? 다친 사람들은요? 셋 다 멀쩡한가요?"
"셋 다 얼굴이 엉망인데 걷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습니다."
"복장은요?"
"일반적인 겨울옷에 모자와 마스크를 썼습니다."
"배남 동료란 사람은 진짜 군인 같던가요?"
"네, 체격이나 머리나 말투가 다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젊은 경찰관이 끊고 추가 정보를 넣었다. 추가 정보는 112 지령실로 직행했고, 이어서 정보사로 번개처럼 흘렀다.
고참은 안 그래도 별로 없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아, 일하기 싫어진다."
"이 사람들 도망가는 거죠? 죽을까 봐 도망가거나, 죽인 다음 도망가거나."
"그렇지."
"어떻게 해야 하죠?"

다들 쉬쉬하지만 경찰관들은 반체제인사는 물론이고, 공무원들의 정보도 AI CCTV에 입력되어 언제든지 추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표면적으로야 해당 공무원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이는 양날의 검으로서 누군가 현 계엄 체제를 배반할 때 사이버 사냥개를 푸는 데 쓸 것이라는 점은 자명했다. 즉 엄마는 모르지만 안수진과 미지의 남자는 백퍼 AI CCTV에 추적된다. 자이 동서남북 1킬로미터 안에는 어디를 가도 다 CCTV가 깔려 있었다. 심지어 자이 근처 다가구 주택 거리에는 중국인들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린다는 핑계로 원래는 광화문이나 공항에만 깔던 AI CCTV를 사거리마다 깔아놓은 상태였다. 누군가는 그게 일반인들 동적 데이터를 확보하고, 비밀리에 태그를 붙여서 실제로 복잡한 상황이 터지는 현장에서 AI 대응력을 높이는 학습 데이터로 정부가 활용한다고 수군거렸다.
두 사람은 도망갈 데가 없었다.  
고참 경찰관은 연말 분위기고 인적이고 전혀 없이 가로등과 CCTV만 가득한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바라보았다. 도착까지 1분 남았다.
정보를 알게 된 이상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 차를 타고 어디로든 다른 데로 갔으면. 식구들 불러서 좋은 데 빌려서 하루 잤으면. 아니면 무리해서 경찰 공무원이니 심사받아 해외라도 갔으면.
사이버 사냥개의 지시를 받아 사냥개 노릇을 안 했으면.

"계엄 개새... 들이 지랄할 수 있으니 우린 두 사람을 쫓는다. 이미 타깃 추렸을 거야. 관제센터 CCTV 데이터 연동 요청해."
"넵."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902 스포츠[MLB] 김하성 1년 20M 애틀랜타행 김치찌개 25/12/17 35 0
    15901 일상/생각두번째 확장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1 + 큐리스 25/12/16 123 5
    15900 창작또 다른 2025년 (10) 1 트린 25/12/16 97 2
    15899 일상/생각PDF TalkTalk 기능 업글 했어요.^^ 제 몸무게 정도?? 2 큐리스 25/12/16 233 2
    15898 경제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2)-상 6 K-이안 브레머 25/12/16 230 5
    15897 음악[팝송] 데이비드 새 앨범 "WITHERED" 1 김치찌개 25/12/16 76 1
    15896 일상/생각불행에도 기쁨이, 먹구름에도 은색 빛이 골든햄스 25/12/16 283 13
    15895 IT/컴퓨터잼민이와 함께하는 덕업일치 9 Beemo 25/12/15 395 3
    15894 창작또 다른 2025년 (9) 2 트린 25/12/14 272 2
    15893 일상/생각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 승인이 났습니다. ㅎㅎ 16 큐리스 25/12/12 957 32
    15892 창작또 다른 2025년 (8) 3 트린 25/12/12 285 1
    15891 오프모임12월 26일 송년회를 가장한 낮+밤 음주가무 모임 [마감] 22 Groot 25/12/12 794 8
    15890 정치전재수 사태 13 매뉴물있뉴 25/12/12 1046 3
    15889 일상/생각[뻘글]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방 문제와 LLM 은 얼마나 다를까? 13 레이미드 25/12/11 687 1
    15888 음악Voicemeeter를 이용한 3way PC-Fi -3- 제작, 조립, 마감 2 Beemo 25/12/11 270 4
    15887 창작또 다른 2025년 (7) 2 트린 25/12/10 328 2
    15886 일상/생각뭔가 도전하는 삶은 즐겁습니다. 4 큐리스 25/12/09 752 11
    15885 오프모임중꺾마의 정신으로 한 번 더 - 12월 9일, 오늘 저녁 광주에서 <점봐드립니다> 8 T.Robin 25/12/09 700 4
    15884 창작또 다른 2025년 (6) 4 트린 25/12/08 332 3
    15883 음악Voicemeeter를 이용한 3way PC-Fi -2- 5 Beemo 25/12/08 324 2
    15882 경제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1) 5 K-이안 브레머 25/12/08 502 8
    15881 음악Voicemeeter를 이용한 3way PC-Fi -1- Beemo 25/12/08 353 6
    15880 창작또 다른 2025년 (5) 6 트린 25/12/07 368 4
    15879 창작또 다른 2025년 (4) 2 트린 25/12/06 445 2
    15878 창작또 다른 2025년 (3) 3 트린 25/12/04 583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