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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17 11:17:18
Name   nickyo
Subject   감히 경찰을 때려? 다 죽여!

그런 생각을 했었다. 2005년인가 6년 언저리의 블로그를 봤더니 내가 저렇게 써 뒀더라. 어디 감히 국가 공권력에 이 개자식들이! 아아, 참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나보다. 게시글의 사진에는 머리가 깨져 피를 바닥에 쏟아가며 두 다리를 질질 끄는 전경과, 쇠꼬챙이를 그 위에서 세차게 후려치는 한 나이든 아저씨의 순간이 찍혀있고, 쇠꼬챙이와 전경 사이의 또 다른 전경이 겁에 질려 두 팔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2초쯤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밑에는 감히.. 로 시작해서 저 폭도들에 대한 규탄과 날것 그대로의 욕설이 묻어나있다. 17살, 애국과 자유를 철저하게 믿었던 한 학생은 그 사진이 남긴 참상 앞에서 격렬한 분노를 느꼈었나보다.



어느새 단풍이 진다. 아파트 단지를 수놓은 나무들이 언제 색동옷으로 갈아입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벌써 길바닥에 낙엽이 수북하다. 가을이 왔나 싶을만큼 가을이 빨리 도망간다. 이틀 내 내리던 비가 멎으니, 비구름도 함께 먼 길을 떠난 듯 하다. 하늘은 너무 높고, 너무 맑다. 커피를 사러 나온 거리, 오전 10시 07분의 세상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낯설기까지 하다. 언제부터 이런 평화가 종종 낯설게 느껴졌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침에는 헬스장을 다녀왔다. 러닝머신의 뉴스에서는 파리의 테러와, 파리의 시민들의 '선진국적 면모'를 칭송하느라 바쁘다. 입이 서른개라도, 모자라다는 듯이 앵커와 패널의 침이 격렬하게 튀어나온다. 냄새가.. 났다. 아, 이건 내 땀냄새구나. 몇몇 종편의 굳모닝인사가 짜증나서 채널을 돌린다. 그러나 정말로, 운동이 끝나고 집에 와 빨래를 널고, 밥을 먹고, 전화를 하고. 그리고 커피를 사러가는 거리는 정말 굳모닝이라는 인사말이 적절하다고 밖에는... 인정해야만 했다. 파리의 테러와 슬픔, 이어지는 빨갱이 폭도들의 경찰 차벽에 대한 폭행과.. 사람들이 무심히 채널을 돌리는 리모콘의 소리들과, 그 아득한 거리감 사이 어딘가에 있을 평화가 유독... 이질적인것만 같은 굿모닝이다.



2007년에는 노점상들에게 분노한 기록이 있다. 떡볶이 차를 뒤집는 공권력의 수고로움에, 음식찌꺼기가 발 아래를 흐르고 주저 앉은 할머니의 울음이 사진에 잡혀있다. 까만 점퍼를 입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늠름했고, 나는 박수를 쳤다. 세금도 내지 않는 비열한 인간들 같으니! 나는 자유와 민주와 애국을 사랑하는 한 신민으로서 이다지도 올바른 사람이었나. 아, 정말 올바른 혼을 갖고있었다는 생각에 실소가 나온다. 그러고보니, 나의 평화로움은 언제부터 이질적이 된걸까. 언제부터 아침새가 지저귀고, 자가용 몇 대의 엔진소리가 잠시 머물러가고, 햇볕은 낙엽 사이로 따스하게 떨어지면서도 공기는 한껏 시원해서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아직 이 거리에 한산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보통의 표정들과 소리 없이 고요히 흐르는 하늘의 구름. 이 모든 것들 어딘가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나는 대체 어디로부터 온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블로그의 기록은 한참을 뛰어넘다, 이내 말이 없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블로그를 안 했다는 점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면 대학이 계기였던걸까? 아니,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때는 '운동'이라거나, '사회'라거나, '시민'이라거나 같은 것은 박물관 한 켠에 장식된 화석같은 것이었다. 그 박물관은 발길이 뜸하여 언제나 사람보다 유물이 더 지치곤 하는 그런 멈춰버린 공간이었고, 그래서 유물처럼 남은 단어들은 색을 잃고 사람들과 멀어져 있었을테다. 그러니 내게 대학에 들어선 발걸음이 무언가의 변화였을리는 없다. 그때 들었던 촛불은 내게 유행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고... 그때까지도 나는 철저하게 보수적이었던것 같다. 촛불을 듭시다! 폭력적이지 맙시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2MB OUT 이라는 전단을 주는 사람에게 왜 이런걸 뿌리냐고 하며, 나는 오로지 중립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노라고 오만했던 기억이 난다. 차라리 05년의 블로그가 그보다는 덜 창피하다는 느낌이다.



대학교 2학년때였나, 학교의 단체 야구잠바를 맞추는 과정에서 체대와 시비가 붙었다. 사회대의 입장은 등에 학교명을 크게 붙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울이면 SEOUL N' 이 붙고, 고려면 KOREA가, 연세면 YONSEI가 붙듯이... 그러나 체대는 '전통적'으로 이 학교의 단체 야구점퍼는 '학교명'을 붙일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오로지 체대만의 정체성이라며... 그것이 '룰'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면 아마 그게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룰'을 지킵시다! 고 얘기하던 내가, '룰'을 공격해 본 것이... 지금까지도 '폭도'를 입에 달고다니는 학우들조차 그 때에는 한마음이 되어 체대를 상대로 싸웠다. 한번은 새벽 4시에 술집이 모여있는 유흥가에서 체대생들과 우리 사이에 시비가 붙은 적도 있다. 멱살을 틀어 쥔 운동한 이들의 이두박근은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야릇한 해방감을 주기도 했다. 그 야릇한 느낌이 뭐였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들이 받고, 또 들이 받고 그렇게 룰을 깨버렸다.



하지만 이게 딱히 '자리'를 정하는 싸움은 아니었던것 같다. 어딘가에서 본 그람시의 구절처럼, '산다는 것은 편드는 것이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읇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지체가 약간 있어 굼뜬 친구를 매몰차게 내치던 사회의 냉엄함을 엿봤을 때일까? 아니면 일한 돈을 떼이면서도 그걸 받아내는 것이 사업주의 호의임을 굳게 믿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두 번씩 고개숙여 했던 때였을까? 약간의 영향들은 있었겠지만 그게 가장 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한다. 그렇다고 이 일상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리가 없는 것이다... 일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나의 일상이 어딘가에 묶여버렸다는 것이기도 하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 앞 복도에 올라오자,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께서 열심히 복도를 쓰신다. 인사를 하려 하니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신다. 나는 머쓱해지면서도 별 생각 없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다. 아침에 운동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맛있게 먹었더니 어쩐지 기분도 좋고 기운차다. 간만에 왼손과 놀아볼 생각에 인터넷을 켜고 야동을 골랐는데 갑자기 연결이 불량이다. 반쯤 내린 바지춤을 올리고 잔뜩 심통이 난 상태로 통신사에 전화를 한다. 남자 상담사가 전화를 받고, 자초지종을 설명할까 하다가 그냥 인터넷이 안된댔더니 어마어마하게 송구스러워 한다. 아니, 뭐 송구스러워 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쪽 지역에 셧다운이 생겼다며 급히 직원을 보내서 리셋중이라고 했다. 한시간 정도가 소요될거라며, 몇 번이고 연신 죄송하다고. 아, 아니에요. 그냥 좀 재미좀 보려고 한건데 뭘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소중이는 이내 축 힘이 빠져있다.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본다. 주변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11.14일의 민중봉기에 대해 벌써부터 반성과 비판, 그리고 정당성과 메세지를 뽑아내느라 난리다. 몇 개의 소수 언론이 11.14의 비극적이고 참혹한 광경에 대해 반복적으로 서술하며 정부를 규탄한다. 조금만 스크롤을 내리면 조선일보 페이지와 자유주의 페이지 같은 곳에서 개 폭도 망나니들 불법 아웃 하며 머리나쁜것들은 선동이나 당한다는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분노가 차올라서 악플을 마구 써대려다 문득, 아 여기는 그래도 좀 평화롭지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다. 가려진 것들을 꺼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조금,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앗, 인터넷이 된다.


하지만 이내 흥을 잃었기 때문에, 그냥 좀 더 생각을 하기로한다. 나는 언제부터 한 쪽의 편에 서게 된 것일까.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었을 때부터였나? 확실히 그걸 읽고 나서는 조금 더 확신을 갖기는 했겠지만. 아, 그러고보니 기억난다. 물대포를 맞으면서 노트북을 들고다니던 진중권의 모습에 열이 받았던 기억. 왜 저렇게 물대포를 쏴대고 여학생의 머리를 밟고... 피시방 야간알바를 할 때 였던것 같은데. 그랬었지. 아마 그것도 하나의 영향일 테지만, 지금의 진중권은 영...시시하다. 왜 사람은 저렇게 시시해져버리는건지. 아무튼, 또 뭐가 있었지 했더니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과, 재능교육과, 유성기업같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것들이 내게 엄청 큰 문제는 아니었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도 아니었지만... 아마 그런 문제들을 다룬 책들과, 사진들과... 수기들과... 이어지는 자살...같은 것들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옮겨간게 아닌가 싶다. 내가 믿었던 자유는, 애국은, 민주주의는 그 단어 자체로 하나의 모래성이 되어 빠르게 스러져간 셈이다. 그토록 굳건해 보이던.. 중간계 전투의 그 커다란 성같던 돌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가는것이 점점 빨라진다. 눈 앞에서 최루가스를 먹고 속이 매캐해져서 눈물어린 기침을 한다. 나도모르게 열이 받아 경찰 버스를 끌어내는 밧줄을 잡는다. 손이 탈 것 처럼 뜨겁다. 어릴 때의 줄다리기만큼이나 신나는...일이었다. 문득, 캡사이신이 녹아 흰 색으로 뿜어져 나오는...(왜 하필 흰색일까, 그걸 뒤집어쓰는건 다른 의미로도 영 불쾌하다)최루액이 쏟아지고 우린 또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뿌리채 뽑혀 드러나버린 평화의 기만과 무너져버린 일상. 사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뺏긴 것 없는 내가 왜 거기에 그렇게 가까이 서 있으려 했는지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나'의 싸움이었는지, 혹은 '남'의 싸움이었는지...



모난 돌이 제일 앞에서 깨져버린다고들 한다. 깨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로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본다는것은 묘한 기분을 준다. 그래서 나는 삼일째 일상적이지가 않다. 이 평화로움 어딘가에 가려진 것들이 자꾸 불쑥불쑥 신경을 건든다. 나는 깨져나가는 모난 돌이 아니었다. 모난 돌 뒤에서 모난 돌같은 행세를 했던 것 같다. 선도투쟁의 전략을 비판하면서도, 명백한 대안도 없는 공허한 비판들에 열받았었는데 그럴 자격이 있긴 했던걸까? 하지만 시민에게 자격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테다. 오히려 이건 이성적이라기보단 지독히도 비이성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왜 그 자리에 자꾸 미련을 갖는지를 아무리 과거에서 찾아본다 한들 시원한 답변이 마땅치가 않다. 그나마 알아낸 것이라곤, 자유! 애국! 민족! 민주! 자주! 주체! 같은 단어들을 너무 성실하게 배웠던 나머지... 그게 이런 것일줄을 모르고 배웠던 나머지... 그 단어들이 이제는 내게 하나의 모난 돌이 되어 결석으로 꽉 박혀 어딘가가 막혀버린 것이라고.. 그래서 물을 아무리 먹어도 일상은 평화로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커피 다 마셨다. 여전히 햇살은 밝고 하늘은 맑은 듯 하다. 공부를...해야겠다. 빨리,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이제는 다신 만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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