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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4/03 09:01:18
Name   The xian
Subject   그냥 써 본 2022년 LCK 스프링 시즌 결산 (하)
* 10위 ~ 6위는 [그냥 써 본 2022년 LCK 스프링 시즌 결산 (상)]을 참조해 주세요. https://kongcha.net/free/12681
* 순위는 역순입니다.


정규 5위, 최종 4위 - 광동 프릭스

시즌 초만 해도, 선수들 체급에 어울리지 않게 손발이 솔랭만큼도 안 맞던 3주차까지만 보고 광동 프릭스의 스프링은 이대로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심전 승리로부터 기력 회복에 성공한 페이트를 시작으로, 이기는 경기만큼은 1인분은 할 정도로 자기 역할을 하게 된 엘림, 노틸러스를 만나며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한 호잇 등이 줄줄이 기량을 되찾으며 광동 프릭스는 자연스럽게 팀 기량도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이겨 나가던 광동은 막판 5-7위 경쟁의 승자가 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이겨서 5위가 되었습니다. PO 1라운드에서는 기량이 나아진 선수들의 좋은 활약은 물론, 시즌 내내 다소 아쉬웠던 테디도 중요한 5세트 막바지에 드래곤의 영혼을 스틸하고 마지막 한타에서 생존자가 되어 경기를 끝내는 클러치 히터의 면모를 보여주며 PO 2라운드에 진출했지요.

힘들게 올라간 PO 2라운드에서 T1에게 일방적으로 지긴 했지만, 그 경기를 다시 봐도 결과가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나올 만큼 광동 프릭스가 경기를 크게 잘못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수라고 해 봐야 2세트의 초반 다이브 실패와 마지막 3세트 드래곤 둥지 앞 전투에서 상대 선수 둘을 물어 죽이고 드래곤을 가져간 다음에 역습을 허용한 것 정도인데 첫 번째 다이브 실패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실수는 다른 경기 같으면 빈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정도였지요. 누구 말마따나 도대체 광동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져야 했나 싶을 정도의 순간이었습니다.

스프링의 모습을 놓고 광동 프릭스가 더 높이 올라가려면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통 꼽는 것은 후반 운영입니다. 더 자세히는 후반 운영에 핵심이 되는 정글과 서포트를 맡은 선수들의 지속 가능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겠지요. 다만 부족함을 좀 더 채워야 체급에 더 어울리는 성적이 날 것 같은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이고, 그래도 끝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시즌이었습니다. 스프링 시즌 초반 밑도 끝도 없어 보였던 슬럼프를 맞은 시간들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한 기억은 광동 프릭스의 다음 시즌과, 앞으로의 여정에 분명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3위 - 담원 기아

2라운드 T1전을 보면서 칸이 말한 '이렇게 밀릴 때 구국의 결단을 내려줄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2022년 스프링 정규 시즌 담원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때로는 결단하고, 때로는 버티며 완급조절을 해주던 탑과 바텀 듀오가 빠진 자리는 새 선수들로 메우기에 컸다는 것이 결과로 증명되었고, 기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정규 시즌의 획일화된 전략으로 인한 게 더 크지만 쇼메이커도 부침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규 시즌의 담원 기아는 디펜딩 챔피언에 걸맞지 않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계자나 언론들에게 '강팀 판독기'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고, 팀을 홀로 지탱한 것은 캐니언이란 말이 나왔죠.

허나, 그런 우려 속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담원 기아는 분명히 정규 시즌의 담원 기아와 다른 운영 능력과 향상된 경기력으로 디펜딩 챔피언의 위엄을 보여 주었습니다. PO 1라운드에서는 난적 프레딧 브리온을 상대로 정규 시즌보다 훨씬 나아진 밴픽, 전략, 퍼포먼스로 완승을 거두었고, PO 2라운드에서도 젠지를 상대로 소위 '체급 차이'를 상쇄시키는 노련한 밴픽과 운영을 통해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습니다.

캐니언의 지휘 아래 상대의 정글을 비롯한 전 라인을 말려 죽이며 상대를 거의 질 정도까지 몰아넣었던 5세트. 저는 그렇게 속절없이 골드차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담원 기아가 LCK 역대 최초로 4회 연속 결승 진출팀이 되나 싶었습니다. 다만 1만 골드 차까지 날 정도로 유리했던 그 경기가 탑 억제기 앞 전투의 패배, 캐니언의 횡사가 겹치며 기세가 꺾이고, 바론 앞 전투에서 진 것이 결정타가 되며 그 결말은 아쉽게도 대역전패가 되어 버렸지요.

저는 포스트시즌에서 보여 준 담원 기아의 모습은 지난 시즌까지 3-Peat를 달성하면서 얻었던 왕조의 경험과 유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트의 패배는, 담원 기아의 현재 역량에서 노출된 팀 운영의 틈과, 약간의 불운이 겹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경기는 졌지만, PO 2라운드의 전반적인 인게임 운영 능력은 젠지의 체급을 오히려 능가한 순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5세트 1만 골드 앞서던 때까지는요.

다만 역설적으로, 그 경기의 패배는 이제 담원 기아가 더 이상 왕조의 경험과 유산을 그대로 가지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프링은 끝났으니, 이젠 캐니언에 집중된 부담도 돌아봐야 하고, 쇼메이커에게 서포트를 강요하는 전략처럼 팀의 힘을 깎아먹는 듯한 요소들을 좀 줄이고 왕조의 유산을 지금의 팀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너구리의 합류일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담원 기아가 결승에 가서 4시즌 연속 챔피언에 도전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 시즌까지 LCK에 '담원 왕조'가 군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영원히 기억될 위업입니다.


2위 - 젠지

스토브리그가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은 입을 모아 2022년의 젠지를 T1은 말할 것도 없고 디펜딩 챔피언 담원 기아도 초월한 체급을 가진 유일신, 1황으로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반지 원정대 2기는 피넛의 합류로 오더 능력이 보강되었다는 평가를 들었고, 위기에 몰려도 '이 선수만 잘 컸다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줄 만한 '최종병기'인 쵸비까지 왔으니 팀 전체의 위기관리 능력도 더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정규 시즌에서 그 평가와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젠지의 정규 시즌 성적은 2위지만, 젠지가 거둔 15승 3패는 평상시의 LCK 시즌이라면 팀이 충분히 우승을 하고도 남을 성적이고, 더욱이 코로나 이슈를 겪으며 주전 선수가 한두 명씩 교대로 빠진 기간 동안에도 T1과의 경기를 제외한 다른 경기를 모두 이겼다는 것은 젠지라는 팀의 체급과 기량이 주전 선수가 일부 이탈하는 정도로 크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한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니 1위를 하지 못했다고 젠지의 정규 시즌 성적의 의미를 축소하면 안 될 말입니다.

그러나 젠지의 오더, 위기관리 능력의 향상이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은 시즌 중의 코로나 이슈 대응이 아니라 담원 기아와의 PO 2라운드 마지막 세트의 1만 골드 역전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젠지는 자신들이 평소 체급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초반에 거의 죽을 정도로 두들겨 놓는다고 해도 넥서스를 부술 때까지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팀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모습은 반지 원정대 1기에서는 거의 없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놀라웠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결승전에서는 체급의 젠지라는 말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전반적으로 T1에게 초반 우위를 잡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이겼던 2세트마저도 초반에 열세였다가 역전승을 거뒀지요. 물론 그렇다고 젠지의 체급이 상대보다 반드시 낮다고 할 것은 아닌 게, 2세트에서 초반 불리함을 딛고 역전한 것이나 3세트에서 골드 격차가 그렇게 났는데도 오브젝트를 스틸하는 등의 운영 능력으로 경기를 따라붙은 것은 젠지의 팀 체급과 기량이 높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런 모습들이 몇몇 약점 때문에 스프링 결승에서 우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도요.

그래서 저는 어제의 결승전이 젠지라는 팀의 최고점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승전의 패배 때문에 특정 선수들의 약점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저는, 이런 정도의 관록과 체급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면, 선수 개개인의 방향성과 팀 합을 좀 더 제대로 맞춰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에 성공하면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은 더욱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승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승'에 대한 고민과 결론은 필요합니다. 젠지가 결승 이후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체급과 기량 외에 젠지의 우승을 위한 '약간의 디테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단지 저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1위 - T1

스토브리그를 마치고 T1에 대한 평가는 긍정평가도 꽤 있었지만 부정평가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작년의 LCK 준우승-월즈 4강을 이뤄 낸 전력을 거의 그대로 지켰다거나 페이커의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잖게 있었지만, 부정평가는 더 어마어마하게 많았지요. '스토브리그에 내보낸 선수와 코치는 많았지만 제대로 된 영입이 없었다.'라는 말도 많았고, 몇몇 관계자들까지 거들며 약 2년 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페이커의 후계자' 운운하는 소리는 어느덧 '페이커로는 더 이상 우승할 수 없다'로 바뀌며 그 여파가 지난 스토브리그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예 선수들의 포텐을 믿으면서도 그 선수들이 한 시즌을 통으로 주전 자리에 앉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있었지요. (* 참고: 제우스는 2021 서머를 월즈까지 통으로 쉬었고, 오너와 구마유시는 돌림판을 멈추기 전까지 지난해 1년 내내 주전과 서브를 오갔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시즌에 들어서기 전까지 T1은 소위 담티젠 등으로 불리는 강팀 집단 중 하나로 지목되기는 하였으나 젠지보다는 분명히 한 등급 아래였고 담원과는 비슷한 정도이거나 조금 낮은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T1은 시즌이 시작된 후, 승리만을 쌓아 갔습니다. 물론 세트 패배도 있었고, 경기를 질 수 있는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도 어려웠다고 했던 담원 기아나 프레딧 브리온과의 경기도 있었고, 설 연휴 이후 흔들렸던 한화생명전 같은 경기도 위기였지요. 하지만 T1은 연이은 승리로 과거 자신들의 2015 서머 시즌 SKT T1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서 [리그제 LCK 시즌 최초의 정규 시즌 전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여기에서, 리그제 정규 시즌 전승 기록만으로도 T1은 이미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남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2015년 서머 시즌 SKT T1, 2020년 서머 시즌 담원 같은 무적 포스를 자랑하던 팀들조차도 해낼 수 없었던 업적이 바로 [정규 시즌 전승]이니까요. 하지만 본래 어떤 스포츠든 정규 시즌보다는 포스트시즌이 중요하고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승입니다. 정규 시즌을 압도한 팀에게 '어나더 레벨'이니, '무적함대'니 같은 수식어가 붙고, 어느 선수의 무지막지한 K/DA가 화제가 된다 한들 그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삐끗해 우승하지 못하면 '정규시즌도르'같은 비아냥을 듣기 좋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T1은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완승을 거두며 PO 2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했고, 지난 시즌 준우승 이후 다시 돌아온 LCK 결승전에서 만 2년 만에 T1과 페이커가 기록한 열 번째의 LCK 우승을, [시즌 전승 우승]의 위업으로 완성시키며 자신들의 업적이 자칫 흐릿해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잠재워 버렸습니다. LCK의 지난 역사를 돌아봐도 전승 우승은 토너먼트제였던 2013-2014 윈터 시즌의 당시 SKT T1 K가 기록한 것이 마지막이었고 리그제 전환 이후에는 전승 우승을 기록한 팀이 그 누구도 없었으니 이 위업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토너먼트제 시즌의 전승 우승]을 이룬 팀(SKT T1 K)과, [리그제 시즌의 전승 우승]을 이룬 팀(T1)이 결국 둘 다 T1이라는 것. 그리고 2013-2014 윈터 시즌에서 당시 SKT T1 K의 전승 우승을 이룬 주전 선수들 중 하나였던 페이커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2 스프링에서 여전히 T1의 주전 선수로 건재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제 시즌의 전승 우승을 이룬 것은 위업이란 말로도 표현할 길이 부족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싶습니다.

물론, 승부의 세계에 영원한 왕은 없는 법이고, T1의 연승도 언젠가는 끊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MSI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고, 챔피언의 숙명으로 비시즌 기간을 대회 출전에 쓴 만큼 정비 기간이 줄어든 서머 시즌에는 스프링보다 헤매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T1이 왕좌에 돌아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시 이전처럼 왕조로 군림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수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서 '실수를 해도 이길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인드셋이 혼탁해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한 T1은 계속 강팀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고, 지금보다도 더 많은 우승을 노릴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천재성은 진작에 인정받았지만 은근히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스스로도 우승에 계속 실패해 좌절하고 마음을 졸였던 케리아는 우승과 함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었고, 혼자 퍼스트에 들지 못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오너는 결승전 MVP로 이번 시즌 가장 마지막에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제우스는 도저히 처음 결승을 경험하는 신인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 내내 상대 탑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했고, 구마유시는 과거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째서 자신이 이 팀에 그렇게 남고 싶어했는지를 증명하며 자신에 대한 비웃음마저 환호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리고 페이커는 자신과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오프닝에 등장한 지금도, 홀로 경기복을 입고 경기장에 서서, 한 세트만 져도 숱하게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에 맞서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며 가장 높은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T1의 열 번째 LCK 우승, 제우스, 오너, 케리아의 첫 번째 LCK 우승, 주전으로는 처음 맞이하는 구마유시의 두 번째 LCK 우승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선수보다도, 그 어떤 팀보다도 위대한 선수, 페이커의 열 번째 LCK 우승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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